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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74화 (74/203)

74화 조언의 결과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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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첫 경기는 정말 중요하다.

설사 지더라도 어느 정도 팽팽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모를까.

에이스끼리의 대결에서 9대2라는 큰 점수차로 패한 대구 에이스의 분위기는 처참했다.

그중에서도 팀의 에이스가 무너지는 걸 가장 가까이에서 본 이석훈은 더욱 힘들어했다.

그를 힘들게 한 건 비단 팀의 패배뿐만이 아니었다.

‘... 이게 나보다 한 살 어린 실력이라고?’

개인으로서의 패배.

의식하고 있던 김수호의 실력을 보면 볼수록 점점 늪에 빠져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이석훈이 이번 경기에서 놀란 건 총 3번.

첫 번째는 허하준의 스플리터를 봤을 때였다.

제이든 스미스가 구사하는 스플리터 역시 타자들을 농락할 만큼 좋았지만, 허하준은 뭐랄까, 격이 달랐다.

솔직히 말하면 저 공을 칠 자신은 물론, 잡을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그 공을 너무 편안하게 받아내는 김수호를 보며 놀랐다.

마지막은 완벽하게 제구가 됐다고 생각한 공도 가볍게 쳐 내는 타격 실력.

‘양준 선배님보다 더....’

무의식중에 떠오르는 생각을 애써 무시하며 장비를 정리하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어땠어?”

“예?”

“수호, 잘하지?”

최정윤이 다가와 김수호 얘기를 꺼냈다.

“나도 처음엔 깜짝 놀랐어. 뭐 저런 놈이 있나 했거든.”

“아, 하하....”

“그래서 이렇게 포기할 거야?”

“솔직히 제가 걔만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금 스미스 스플리터도 잘 못 잡는데···.”

“맞아. 걔만큼은 못하지.”

훅 들어오는 최정윤의 말에 이석훈의 표정이 굳어졌다.

‘빈말이라도 할 수 있다 해주지 않나?’

김수호와 자신, 둘 다 호흡을 맞춰본 최정윤이 한 말이라 더욱 쓰게 들렸다.

“그래서, 포기할 거냐고.”

“그건···. 아니죠.”

“좋아. 선배님, 들으셨죠.”

“석훈이, 기세 좋은데?”

코너에 가려 보이지 않던 공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양준 선배님?”

“오랜만이다. 석훈아.”

올림픽 이후 재활하던 양준이 다시 에이스로 돌아왔다.

“몸은 다 나으셨어요?”

“아니, 일단 지타로 복귀. 포수는 아직 너야.”

“아....”

“아무튼 가랑이 찢어질 준비는 됐지? 김수호, 그놈 따라가려면 가랑이로 안 끝나.”

고민은 잠시였고, 대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김수호 때문이 아니더라도 양준이 직접 코칭을 해주겠다는 건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예. 준비됐습니다.”

“오케이. 가자.”

씩씩하게 말하는 모습에 양준이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석훈의 비교 대상이 김수호라 그렇지, 동년배 중엔 뛰어난 포수였다.

물론 자신이 가르쳐준다고 해서 단번에 이석훈의 실력이 늘진 않을 거다.

그건 극소수의 선수만 가능한 영역이니까.

하지만 계속해서 노력하다 보면 발목 정도는 따라갈 수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양준, 본인이니까.

아무튼 최정윤이 두 포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잘됐네.’

올림픽 이후, 양준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까 고심했다.

김수호를 보면서 힌트를 얻었지만, 이석훈 스스로 무언가 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오늘 경기 직전, 김수호를 소개해줬다.

아마 이석훈도 경기를 치르면서 확실히 느꼈을 것이다.

김수호가 얼마나 괴물 같은 놈인지.

‘심지어 올림픽 때 보다 더 늘었던데.’

아마 이석훈이 한 걸음 걸을 때, 김수호는 10걸음, 혹은 그 이상을 갈 것이다.

이 차이는 극복하지 못한다.

하지만, 꾸준히 걷다 보면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자신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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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경기에서 대패했음에도 눈으로 보이는 에이스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이유야 알기 쉬웠다.

양준의 복귀.

포수로서 복귀는 아니지만, 양준이 더그아웃에 있는 것 자체로 분위기가 바뀔 만큼 영향력이 대단했다.

물론 우리 분위기도 좋았다.

“캬, 이게 7등의 공기인가?”

“어쩐지. 오늘 날씨가 엄청 좋더라고요.”

“마. 너무 취하지 마라. 좀 있으면 6등 공기도 맡을 수 있다.”

어제 경기의 결과로 0.5경기 차로 7등으로 올라섰다.

오늘 지면 다시 8등이지만, 반대로 이기면 세 번째 경기의 결과와 상관없이 7등이 된다.

물론 6위 울프즈와는 3경기, 5위 스타즈와는 4경기 차이가 난다.

‘아직 멀었네.’

하지만 우리가 꼴찌였을 때, 지금 이 성적을 기록할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도, 에이스도 아직 가을의 희망을 놓기엔 일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경기도 치열하게 흘러갈 거라고 예상했다.

문제는 선발인 웰링턴이었다.

“웰, 오늘 컨디션 괜찮아요?”

“음, 컨디션이야 좋지만....”

“좋지만?”

“여기는 나랑 안 맞아.”

하긴, 웰링턴의 성적을 보면 저런 말을 하는 게 단번에 이해가 됐다.

웰링턴의 대구 구장 등판은 오늘로 벌써 3번째.

이전 2번은 5회를 채 던지기 전에 강판 됐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러면 곤란한데.

내 얼굴이 금칠하는 말이었지만, 어쩔 수 없지.

“걱정하지 마요. 이전 경기들은 제가 없었잖아요.”

“그건 그렇지, 브로. 오늘도 잘 부탁해.”

다행히 웰링턴은 진지하게 받아줬지만, 여기엔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들었냐? 지가 없었대.”

“날이 갈수록 얼굴 가죽이 두꺼워 지는 것 같다?”

하필 영어를 할 줄 아는 강주호가 다른 선수들에게 실시간으로 통역을 해줬다.

“뭐, 틀린 말도 아니죠.”

그나마 허하준이 내 편을 들어줬지만, 반응이 영.

“그 나물에 그 밥이지. 됐다, 오늘 저녁에 비빔밥이나 먹자.”

그 말을 들은 선수들이 순간 흠칫했다.

“뭘 봐. 나도 비빔밥 좋아해.”

“육회 비빔밥이요?”

“새끼가! 내가 고기 없으면 밥 안 먹는 줄 아냐?”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결국 강주호가 졌다.

“큼큼. 숙소 앞에 한우 집 육회 비빔밥 맛있더라. 거기나 가자.”

“어제도 거기서 뭉티기 드셨잖아요.”

“주말엔 뭉티기 안 해.”

아,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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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 잡담이 도움이 됐는지, 아니면 진짜 내가 포수를 서니까 달라진 건진 몰라도 웰링턴은 3회까지 안타 1개만 허용하며 호투 중이다.

“브로, 그래서 언제 저 숫자가 1로 바뀌는 거지?”

“음, 글쎄요.”

문제는 타자 중 그 누구도 1루를 밟지 못했다는 거지만.

“괜찮아. 야구가 그렇지 뭐.”

“네?”

이 사람이 정녕 내가 알던 그 웰링턴이 맞는 걸까?

“뭐야, 그 외계인 보는 표정은?”

속마음까지 읽혔다.

이 정도면 100%인데?

“솔직하게 말해봐요. 당신 웰 아니지?”

“걱정하지 마. 나, 인간은 안 먹어.”

“평소에 엘리랑 이렇게 놀아요?”

“아니, 아직 말도 못 하는 애랑 어떻게 그래. 그냥 상상하는 거지.”

아무튼 웰링턴의 말처럼 야구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제 제이든 스미스를 상대로 1회부터 빅이닝을 만들어낸 타선이 그보다 못한다는 멧 위버를 상대로 출루도 못 한다니.

“아웃!”

1번 타자 박은성이 아슬아슬하게 1루에서 아웃 됐다.

비디오판독까지 진행했지만, 결과는 아웃으로 유지.

“스읍, 안 풀리네.”

박은성이 아쉬운지 계속 그라운드를 돌아봤다.

노아웃에 발이 빠른 박은성이 출루했다면 확실히 힘이 됐을 텐데 아까웠다,

“그래도 팬들 반응은 좋았어요.”

“쯧, 아쉽네. 그래도 공 두 번 보니까 아예 못 칠 정도는 아니더라.”

그때, 관중석에서 환호가 들려왔다.

“나이스!”

최치호가 안타를 치면서 첫 출루에 성공했다.

“에일리언한테 먹히기 싫으면 큰 거 한 방 보여주고 오라고.”

“아까 인간은 안 먹는다면서요.”

“설정이 바뀌었어.”

저렇게 쉽게 설정이 바뀌어서야, 웰링턴은 작가 하면 안 되겠네.

대기 타석에 나가 오준혁의 타격을 지켜봤다.

“아웃!”

잘 맞은 타구가 펜스 좌중간 펜스 앞에서 잡혔다.

솔직히 대구가 아니었다면 평범한 플라이였겠지만, 관중석은 마치 홈런을 뺏긴 듯한 반응을 보였다.

아쉬움은 잠시뿐인지, 이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4번 타자! 김수호! 홈런 김수호!”

그 소리를 들은 투수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듣기만 좋은데 뭐.

어제 첫 타석까지만 해도 이석훈이 먼저 말을 걸었지만, 그 이후는 목소리 한 번 듣지 못했다.

그래도 선배인데, 인사는 해야지.

“안녕하세요.”

“...어.”

내 추측일 뿐이지만, 이석훈도 마음고생깨나 할 거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둘은 비교 대상이 됐고 팀 분위기도 안 좋으니까.

하지만 그게 내 타격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오늘 경기는 7등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 했고, 잘 모르는 이석훈보다 이게 더 중요하다.

이석훈도 딱히 떠들고 싶어 하진 않았고, 이제 포수보다 투수를 생각할 때가 됐다.

멧 위버는 대구 에이스 선수답게 땅볼 투수.

2회, 첫 타석에선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싱커에 땅볼로 아웃 됐다.

지금 상황은 2사 1루.

좌우 끝이 깊은 구장 특성상 코스가 좋으면 1루 주자도 충분히 홈에 들어올 수 있었다.

물론 제일 좋은 건 홈런이지만.

첫 타석에 싱커로 재미를 봤고, 배터리가 홈런이 나올법한 공을 던질 것 같진 않다.

“...볼!”

심판이 평소보다 느린 박자로 콜을 했다.

스트라이크를 줘도 뭐라 할 수 없는 코스였는데, 운이 좋았다.

반면에 멧 위버는 아쉬워하는 걸 숨기지 않았다.

아마 양준이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아무튼 볼 카운트도 유리해졌고, 투수도 약간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낮은 공에 초점을 두고 멧 위버가 공을 던지길 기다렸다.

“스트라이크!”

‘와, 지금 이 공을 던진다고?’

반응을 보니 실투는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 가운데 높은 공이라니, 대비했다면 넘어갈 법한 타구였는데.

‘양준 선배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억측이 아니었다.

어제보다 에이스 벤치에서 나오는 사인이 늘었다.

지금도 벤치에서 계속 사인이 나오고 있다.

공을 잡는 건 이석훈이지만, 머리는 양준인 느낌.

오히려 더 재밌어졌다.

‘1-1에서 양준 선배라면....’

허를 찔렀으니 다시 한번 높은 공? 아니면 땅볼을 유도해낼 수 있는 낮은 투심이나 싱커?

“파울!”

정답은 이 중에 없었다.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

‘한 방 먹었네.’

솔직히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있었다.

이제 카운트가 몰린 상황.

오늘 제구를 보니 실투를 던질 것 같진 않았고, 존 안에 들어오는 건 전부 쳐내기로 했다.

“볼!” “파울!” “파울!” “파울!”

‘아오, 빡시네.’

마지막 공은 많이 위험했다.

하지만 어찌어찌 쳐내고 있는 상황.

투수로서 기껏 줄인 투구수를 다시 늘리고 싶진 않을 거다.

이제 슬슬 승부수를 던질 타이밍인데.

‘바깥쪽!’

배터리의 선택은 아까 헛스윙을 유도해낸 슬라이더.

유인구였지만, 약간 밋밋하게 들어왔다.

-따악!

날카로운 타구에 1루수가 점프했지만 잡지 못했다.

그 말은 즉, 충분히 2루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뜻.

일찌감치 스타트를 끊은 최치호가 홈에 들어가면서 1대0.

깔끔한 선취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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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네.’

이석훈에게 직접 볼 배합을 해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김수호만큼은 배터리 코치와 함께 의논해 사인을 냈다.

사실 김수호랑 붙어보고 싶기도 했고.

아무튼 마지막에 그 공은 아쉬웠다.

잘 들어갔다 싶었는데, 손목을 틀면서 정확히 맞추다니.

“이래서 천재 놈들이란.”

강주호, 강기호 형제나 허하준, 김수호까지.

불합리하다, 불합리해.

그나마 후속 타자를 땅볼로 잡아 내 점수는 안 내줬으니 다행이었다.

오늘 양준의 타순은 6번.

4회 말, 2번부터 시작하는 타선에서 출루를 한 명이라도 한다면 갚아줄 기회가 있었다.

‘어디 볼 배합도 잘하는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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