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승리보다 중요한 건 없다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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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진된 창원의 경기.
마린스와 돌핀스의 경기답게 대부분 사람이 두 팀의 팬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눈에 띄는 외국인 무리가 있었다.
바로 오전에 김수호에게 까인 제이슨의 일행.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트팀 못지않게 첨단 장비를 갖춘 그들이 김수호의 도루저지를 분석했다.
“투구 동작 속도와 킴의 팝 타임이 얼마 나왔지?”
“투수는 1.37초킴의 팝 타임은 1.89초가 나왔습니다.”
“확실히 올림픽 때 보다 팝 타임이 줄었습니다. 일시적인 걸 수도 있지만 유의미한 수치 변화입니다.”
“방금 뛴 17번(이규영)의 주루 스케일에 대한 정보가 있나?”
“주력만 놓고 보면 65점, 주루 능력까지 포함하면 70점입니다.”
“흐음···.”
부하직원의 말에 제이슨이 침음을 삼켰다.
‘생각보다 수비가 좋군.’
포수나 유격수의 수비가 중요하다는 건 야구팬이라면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그건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고, 항상 좋은 포수, 유격수에 대한 갈증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KBO나 NPB에서 수비를 내세워 메이저리그 진출을 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캉을 제외하면 전부 망했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한국인 포수라면 강기호가 있었지만, 그 이전 시기에 미국에 도전했던 양준을 포함한 포수들은 전부 실패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론 한국과 비교 조차 안 될 정도로 메이저리그의 힘든 일정과 더불어 체력 소모가 큰 포수 포지션이라는 것
언어의 장벽 때문에 포수로서 중요한 투수와의 소통이 잘 안된다는 게 컸다.
그래서 제이슨의 생각에 김수호 역시 포수보단 타자로서 잠재력을 더 높이 평가했다.
1루수로서 보여준 수비도 흥미로웠고, 굳이 실패할 확률이 높은 포수를 선택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송구를 보게 되면 포수로서도 놓치기 아까웠다.
다행히 제이슨은 김수호를 잘 안다고 하는 선수를 알고 있었다.
-나카무라 준
리암 에이전시의 고객이자 일본의 에이스 나카무라 준.
사실 제이슨이 김수호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나카무라 때문이었다.
‘나카무라와 라이벌이라지?’
그렇다면 김수호에 대해 잘 알 것이다.
가령 뭘 좋아하는지, 목표가 뭔지 같은 것 말이다.
-나카무라상. 김수호에 관해 물어볼 게 있습니다.
일본도 이 시간엔 경기중이기 때문에 문자만 보내놓고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제이슨이 헛다리를 짚을 무렵.
겨우 이닝을 끝마친 김호기가 힘든 표정으로 더그아웃에 돌아왔다.
“죽겠다, 죽겠어. 쟤네 오늘 왜 저러냐? 한참 빠지는 공에 죽자고 휘두르네.”
“...그러게요?”
이규영을 2루에서 잡긴 했지만, 그렇다고 후속 타자들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다.
1회 말, 결과만 놓고 보면 세 타자만 상대했다.
하지만 과정이 문제였다.
세 타자를 상대하는 데 던진 공은 25구.
사실 김수호는 이규영과의 대화를 통해 이유를 알았다.
‘이걸 어떻게 말해.’
차마 그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걸 말할 수 없던 터라 그냥 김호기를 격려했다.
“그래도 잘 마무리 했어요.”
“그건 그런데 너무 많이 던졌어. 2회부턴 그냥 가운데 꽂아야 하나?”
“오늘 선배님 공 좋아서 그냥 꽂아도 못 칠걸요?”
“그래? 아, 네가 말하니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저 믿고 그냥 가운데 가시죠? 제가 오늘 경기에 준비한 게 있거든요.”
“진짜? 뭔데?”
김호기의 물음에 김수호는 씨익 웃으면서 이주학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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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마다 차이가 있지만, 괜히 땅볼형, 뜬공형으로 투수를 구분하는 게 아니다.
김호기는 분류하자면 땅볼형 투수.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내야 수비가 약한 마린스와 잘 맞는 유형의 투수는 아니다.
흠, 그렇다고 외야 수비가 좋은 것도 아니고, 강기호 이후에 딱히 포수가 좋지도 않았는데 이런 마린스에 잘 맞는 투수가 있나?
어쩐지 그동안 마린스 투수진 성적의 비밀을 깨달은 기분이었다.
아무튼 내야수 중 안정적인 수비를 펼치는 선수를 꼽자면 그나마 이주학과 채지훈 정도.
정확하게 말하면 이주학이 송구할 때 불안함을 채지훈이 잘 커버해줬다.
-따악!
2루 베이스 왼쪽으로 빠르게 날아간 타구.
어느새 나타난 이주학이 백핸드로 잡고 빙글 돌면서 1루로 송구.
송구가 외야 쪽으로 향하면서 불안정했지만, 채지훈이 다리를 찢으면서 공을 낚아챘다.
“아웃!”
“그렇지! 주학아, 오늘 수비 장난 아닌데?”
김호기가 공을 처리하고 들어오는 이주학한테 엄지를 치켜들자 이주학이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김호기가 먼저 공격적으로 투구하자고 말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다.
막상 존 안에 공을 넣었다가 안타를 연달아 맞으면 결국 다시 공을 집어넣기 어렵다.
그래서 언제든지 존 안에 던지는 하스가 대단한 거고.
하지만 이렇게 수비에서 투수를 도와주면 투수 역시 수비를 믿고 더 과감하게 던질 수 있다.
그렇게 2회 말은 이주학과 채지훈의 호수비와 함께 삼자범퇴로 끝났다.
1회와 같은 세 타자를 상대했지만, 공 개수는 10개가 채 안 됐다.
“수비 좋았다.”
“그래? 흐흐흐.”
“어. 오늘 우오준 선배보다 훨씬 나아.”
“뭘 또 그렇게까지 그래. 흐흐흐흐.”
괴상하게 웃던 이주학이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그, 경기 전에 본 그게 효과가 좋네.”
“그치?”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닌 자료였다.
보기만 해도 눈에 띄게 실력이 오르는 자료가 있다면 모든 선수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겠지.
내 생각엔 그 자료의 효과는 타자가 공을 쳤을 때 딱 한 박자 반응을 빠르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어제 간발의 차이로 2루에 들어간 나처럼, 야구의 한 박자는 언제나 변수를 만들어 내는 법.
“근데 그런 건 어디서 얻었냐?”
“내가 만들었지.”
“네가? 와, 진짜?”
“그걸 진짜 믿냐? 그냥 구단에 달라고 하면 다 준다.”
내 말에 이주학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표정 봐라, 공짜로 봐놓고 어이없네.
“그래도 가공은 내가 한 거야.”
야구만큼 자료가 많은 스포츠는 없을 거다.
그 수 많은 자료 중에 의미 있는 지표를 찾고, 적용해야 했다.
물론 내가 유격수에 대해 뭘 안다고 만들었냐 하겠지만, 내겐 한 달 동안같이 한 리그 최고의 유격수가 있었다.
지금 그라운드에서 공을 주고 받으면서 몸을 풀고 있는 우오준.
올림픽 때 정보 분석하는 걸 보면서 많이 주워들었다.
그 결과물을 공짜로 공유해 준 건데 이딴 반응이라니.
“필요 없으면 꺼져. 이제 안 알려 줄 거야.”
“에이, 내가 언제 그랬어. 그냥 그렇다는 거지.”
“아무튼 이제 공짜는 없어. 알고 싶으면 같이 해.”
“... 언제 하는데?”
“경기 끝나자마자 바로.”
“웩.”
대답도 안 하고 도망친 이주학이지만, 아마 밤에 내 방문을 두드릴 거다.
매일 하스에게 배운 수련을 빠짐없이 하는 걸 보면 욕심 있는 놈이니까.
아무튼 이제 슬슬 점수를 뽑아야 할 텐데.
그런 생각으로 타석에 나간 채지훈을 봤다.
-따악!
결과는 깔끔한 안타.
-따아악!
채지훈이 안타로 출루한 상황에서 청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 갔냐?”
이주학의 타구가 좌측 담장을 그대로 넘겨버렸다.
이주학의 실룩이는 얼굴이 전광판에 비친다.
김호기가 그걸 보더니 말했다.
“오늘 준비한 게 좀 많네.”
저건 제가 한 게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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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학의 홈런으로 2대0 리드.
첫 홈런인지라 아무도 반응을 안 해주는 가운데 혼자 열심히 세레모니 하는 게 웃겼다.
그러고 보니 나는 첫 홈런 때 저런 걸 해보지도 못했네.
뭐, 그땐 워낙 극적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때 상대도 돌핀스였고, 오늘도 분위기가 좋다.
이제 돌핀스의 3회 말 공격.
7, 8번 타자는 무난하게 잡아냈지만, 9번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면서 이제 이규영이 내 우측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돌고래 선배님.”
“... 득츠라···.”
이를 악문 모습에 더하고 싶었지만, 진짜 더 하면 큰일 날 거 같았다.
“선배님. 그럼 미국 가실 때 헤엄쳐서 가시겠네요?”
“하, 시발. 내가 미안하다. 미안하니까 이제 그만해.”
결국 입 안에 맴돌던 말을 못 참고 말해버렸다.
아무튼 이를 악문 이규영은 결국 이번에도 김호기를 괴롭히면서 출루에 성공했다.
안 되겠다, 다음에 또 해야지.
2사 1, 3루의 위기.
이규영은 1회 도루자 때문인지 도루 대신 리드폭만 넓히며 뛰지 않고 1루에 진득하게 붙어있었다.
하지만 박광민을 잡아내면서 3회도 무실점.
이대로 기세를 살려 위닝을 확정 짓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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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의 행복한 상상은 상상에서 끝이 났다.
[왼쪽! 큽니다! 간다, 간다! 홈런! 스코어 2대2! 동점을 만드는 박근석의 투런 홈런! 오늘 정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김호기를 상대로 몸쪽에 실투를 기가 막히게 잡아당겼습니다!]
[어제부터 양 팀 정말 뜨겁습니다! 오늘 경기도 어느 팀이 이길지 도저히 예상이 안 되는데요?]
[어제는 양 팀의 선발과 중심타선이 활약했다면, 오늘은 하위타선이 뜨겁습니다!]
[하지만 아직 동점입니다. 이제 경기 시작이에요!]
5회, 9번 타자에게 홈런을 맞은 김호기가 끝까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원정 팬들의 박수를 받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오늘 김호기의 역할은 이걸로 끝.
이규영에게 많은 공을 던진 탓인지 결국 6회엔 올라오지 못했다.
이제 마린스는 가장 큰 문제에 봉착했다.
“지호, 동준이, 기수, 찬영이라....”
이정훈 감독의 혼잣말에 근처에 있던 투수 코치가 물었다.
“누굴 준비하라 할까요? 동준이도 공이 괜찮고, 지호도 좋습니다.”
선발이 일찍 내려간 팽팽한 상황.
하지만 7회도 책임질 선수가 없는데 6회라고 있을 리가 없었다.
투수 코치가 추천해준 두 선수 중 김동준은 오늘 막 1군에 올라온 선수.
사실상 선택지는 한 명뿐이었다.
“지호 준비시켜.”
벤치의 선택은 박지호였다.
그리고 폭탄이 터졌다.
[아, 박지호 선수. 또 볼넷입니다!]
[너무 아쉽네요. 이번 이닝에 올라와서 던진 10개의 공 중에 스트라이크가 단 2개뿐입니다! 자신 있게 공을 던져야 해요!]
[3번 타자 한상욱이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박지호 초구! 우측! 넘어갑니다! 역전 쓰리런! 한상욱!]
[가운데 몰린 공을 완벽하게 때렸습니다. 이건 큰데요.]
박지호가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도 잡지 못하고 내려갔다.
하지만 다른 투수들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연달아 올라오는 대로 두들겨 맞고 내려가기 일쑤였다.
기나긴 6회 말 공격이 끝났을 때, 9대2라는 스코어가 전광판에 나와 있었다.
7점의 점수 차.
“전부 교체시켜.”
이정훈 감독의 선택은 주전들에게 휴식을 주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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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6회에 7점 차이가 나면서 끝난 경기.
중반까지 팽팽했던 경기라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이규영 : ㅋ
퇴근길에 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이규영에게 메시지가 하나 와있었다.
에라이.
돌고래 : ㅋ
이름을 바꿔놓으니 한층 낫다.
아무튼 경기야 질 수 있는 거고 매 경기에서 이길 수 없는 건 알고 있다.
문제는 내일 인데.
“후우.”
“휴우.”
내가 나오자 대놓고 한숨을 쉬는 동기 두 명을 무시한 채 걸어갔다.
“에후, 지 잘나간다고 이제 동기 버리는 거 봐.”
“김수호, 논란 있을 듯.”
“이번엔 또 뭔데.”
하지만 뒤에서 들린 꿍얼거리는 소리에 결국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넌 오늘 출장도 안 했고, 이주학 넌 홈런에 호수비까지 했잖아.”
“내 첫 홈런 경긴데 졌잖아.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내일 선발인데 돌핀스 타선 봐. 어떡하냐.”
저 둘은 훈련 할 시간에 멘트를 짜는 게 분명했다.
안 그렇다면 호흡이 저렇게 잘 맞을 리가.
“그래서 어떡하라고.”
“해줘.”
“나도 해줘.”
이 놈들은 가끔 날 파란색 너구리 로봇으로 안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바라던 바.
“오늘 잠잘 생각하지 마라.”
뒤졌다 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