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66화 (66/203)

66화 위기 뒤 기회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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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호가 내게 알려준 것 중 가장 인상 깊은 게 있다.

“1루에 내가 있으면 타구를 멀리 날린다고 생각하고 쳐.”

얼핏 들으면 뭔 소리지 하겠지만, 따져보면 굉장히 합리적인 얘기다.

일단 강주호 자체가 느린 주자였다.

나도 발이 빠른 편이 아닌데 땅볼이 나오면 노아웃이나 1아웃 상황에선 병살의 위험이 크다.

2아웃에도 단타가 나와봤자 강주호의 주력으론 1, 2루가 될 뿐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공을 띄워서 장타를 노리는 것이 낫다는 게 강주호의 말이었다.

물론 마음대로 공을 띄울 수 있다면 말이다.

현재 상황은 1사 주자 1루.

어중간한 땅볼을 쳤다간 그물 같은 돌핀스 수비에 막혀 병살타가 될 가능성이 컸다.

지금은 강주호의 말대로 타구를 띄우는 게 제일 좋은 상황.

최지용이 1루를 힐끔 쳐다보고 투구에 들어갔다.

“볼!”

초구는 바깥쪽 낮게 들어왔다.

존에 걸치는 듯했지만, 마지막에 약간 가라앉으면서 볼이 됐다.

구속이나 마지막에 가라앉는 걸 보면 내가 2루타를 만들어낸 공 같았는데, 그걸 초구부터 다시 던지다니.

역시 최지용의 깡은 대단했다.

“볼!” “스트라이크!”

감탄도 잠시, 연속으로 낮은 코스를 던지면서 볼 카운트 2-1.

특히 세 번째 공은 평소라면 방망이가 나갔을 법한 코스였지만 이번 타석에서 낮은 공을 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무리 최지용이라도 바깥쪽 낮은 곳에 일정하게 공을 던질 순 없는 노릇이다.

‘분명 높게 하나는 온다.’

“볼!”

4구마저 볼이 되자 상황이 편해졌다.

볼넷으로 1, 2루가 되면 뒤에서 맹렬하게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채지훈과 만나게 된다.

과연 돌핀스 배터리가 그걸 원할까?

다섯 번째 공이 최지용의 손에서 떠나는 순간 올라갔던 왼발이 땅을 찍었다.

‘지금!’

바깥쪽 약간 높은 공.

-따아악!

생각보다 높게 들어왔지만,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노리던 코스와 비슷한 공이었고, 손을 타고 온몸에 퍼진 진동이 타구의 질을 말해줬다.

문제는 이 타구에 강주호가 어디까지 가느냐인데.

곧 그것도 중요하지 않게 됐다.

타구는 우익수를 넘어 그대로 우측 담장을 살짝 넘겼다.

“오오오오!”

“와아아아!”

“마린스 김수호!”

아까 공을 쳤을 때 진동이 몸을 울렸다면, 이번엔 환호와 감탄, 그리고 응원가가 섞인 소리가 내 귀를 타고 온몸에 퍼졌다.

그 소리는 3루에 가까워질수록 더 커졌고, 그 소리를 더 가까이서 듣기 위해 절로 걸음이 빨라졌다.

3루를 지날 즈음 파란 유니폼 사이 검게 물든 3루 응원석에 손짓하며 그대로 베이스를 돌았다.

홈에 도착하자 강주호와 채지훈이 서 있었다.

“아이고, 숨 차라. 얀마, 홈런 치면 좀 천천히 돌아라. 너 때문에 내가 빨리 뛰었잖아.”

“마, 잘했다. 저 행님은 유산소 좀 해야 한다. 고마 살 좀 빼쇼!”

“이거 다 야구 주머니야. 빼면 팬들이 슬퍼하는 거 몰라?”

“살 빼시긴 하셔야죠.”

“하, 이놈이나 저놈이나. 쯧.”

툴툴거리는 강주호와 함께 더그아웃에 들어왔다.

이후 채지훈이 볼넷으로 나갔지만 추가타가 터지지 않으면서 이닝 종료.

그래도 홈런으로 뺏긴 점수를 두 배로 되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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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점 뒤진 돌핀스가 매섭게 쫓아왔지만, 컨디션이 좋은 하스는 안타를 내줄지언정 점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몸쪽! 쳤습니다! 2루수 잡아서 유격수에게 토스, 다시 1루로!]

“아웃!” “아웃!”

[더블 플레이! 마린스 내야진이 오늘 단단한 수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좌타자 몸쪽에 꺾여 들어가는 커터는 땅볼 생산에 최적화였고, 5회 말 우오준을 상대로 병살을 유도해내며 이닝을 끝마쳤다.

수비 역시 3회에 있었던 이민상의 실책을 제외하면 제법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클리닝타임이 지나고 6회가 시작됐다.

[6회 초, 마린스의 공격은 3번 타자 오준혁부터 시작합니다. 오늘 2타수 무안타의 오준혁.]

[오늘 마린스 타선은 김수호와 채지훈을 제외하면 최지용을 전혀 공략해내지 못하고 있어요. 다른 선수들도 분발해야 합니다.]

하지만 야구는 해설위원의 말처럼 쉬운 스포츠가 아니다.

“아오!”

오준혁은 이번 타석에서도 돌핀스 배터리에게 철저히 농락당하며 아웃당했다.

[삼진 아웃! 최지용이 오준혁을 또다시 잡아냅니다!]

[자, 이제부터 재밌어지는데요. 이어지는 타자들이 강주호와 김수호, 그리고 채지훈이거든요.]

[강주호는 오늘 4회에 안타 하나가 있습니다.]

이전 타석엔 강주호 특유의 부드러운 타격으로 안타를 만들어냈지만, 이번 이닝에선 최지용이 이겼다.

[스트라이크 아웃! 두 타자 연속 삼진 아웃입니다!]

[오늘 강주호 선수를 상대하는 돌핀스 배터리의 볼 배합이 참 재밌습니다.

첫 번째 타석에선 느린 변화구, 두 번째 타석에선 빠른 공을 던지더니 이번 타석에선 허를 찌르는 한 가운데 느린 포심으로 강주호 선수를 잡아냅니다!]

[최지용다운 투구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런 최지용이라도 이 선수에겐 고전하고 있죠. 자, 타석에 김수호 선수가 들어옵니다!]

[오늘 2타수 2안타 홈런과 2루타 하나. 벌써 이런 말 하기엔 이르지만 채지훈 선수를 뛰어넘는 새로운 천적이 나타났습니다!]

‘후, 우리 막내가 벌써 이러면 곤란한데.’

국가대표에서 김수호를 막내라고 부르면서 귀여워했던 최지용이었지만, 이젠 전혀 귀엽게 보이지 않았다.

첫 타석에 몸쪽에 던졌더니 2루타, 직전 타석에선 바깥쪽 높게 던졌더니 홈런.

그렇다고 승부를 피할 생각은 없었지만, 어떤 곳으로 던져도 답답한 상황에 고민이 길어졌다.

결국 선택한 코스는 안타를 맞아도 단타로 끝날 수 있는 바깥쪽 낮은 공이었다.

그에 김수호가 예상이라도 한 듯 툭 갖다 맞추면서 공이 우측으로 향했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타구.

우익수 최강민이 급하게 옆으로 달리면서 공을 쫓았다.

리그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는 돌핀스 야수진.

하지만 오히려 그게 독이 됐다.

‘다음 타자는 채지훈, 무조건 잡아야 돼.’

이런 생각과 자신의 실력을 믿고 다이빙한 최강민이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우익수, 다이빙! 아, 못 잡았습니다. 공이 그대로 뒤로 흐릅니다! 그 사이에 김수호 1루를 돌아 2루! 우익수는 아직 공을 못 찾은 상태입니다!]

[김수호 계속 뜁니다! 2루 밟고 3루로! 공도 3루에! 세잎! 김수호, 3루타입니다!]

접전이었지만 김수호가 더 빨랐다.

최지용은 살짝 아쉬움을 표현하고 다시 진지해진 얼굴로 타석에 들어온 채지훈을 상대했다.

[2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5구! 바깥쪽! 루킹 삼진 아웃! 최지용, 스스로 위기를 극복합니다!]

[마린스 입장에선 아까운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김수호 선수 기록이 심상찮은데요?]

[그 이야기는 다음 이닝에 말씀 나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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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말 돌핀스의 공격.

-따악!

살벌한 소리가 들리고 타구가 빠른 속도로 1루 관중석 위에 있는 그물을 강타한다.

이런 타구가 벌써 이번 이닝에만 3번째.

하스는 오늘 제 역할을 충분히 다했다.

선두 타자로 들어선 9번 타자를 무난하게 잡아내는 것까지 좋았다.

하지만 세 번째로 타석에 들어선 이규영이 슬슬 하스의 공이 익숙해지는지 정타가 나오기 시작했다.

“좀 살살 쳐요.”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따악!

결국 5구째, 이번엔 1루 라인 바깥이 아닌, 1 2루간을 꿰뚫는 안타가 나왔다.

결국 가장 내보내선 안 되는 타자가 1루에 나갔다.

그리고 이규영이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멀리서 봐도 넓은 리드폭을 유지했다.

그에 하스가 한 발자국이라도 리드폭을 줄이기 위해 지속해서 견제를 이어갔다.

하지만 계속 견제만 할 수 없는 노릇.

결국 1루수의 미트가 아닌 내 미트에 공을 던져야 경기가 진행됐다.

그리고 초구를 던지자.

“뛰었다! 2루!”

이규영이 순식간에 도루를 시도했다.

움직인 사람은 이규영뿐만이 아니었다.

타석에 서 있던 박광민이 바깥쪽으로 살짝 빠지는 타구를 휘둘러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냈다.

원래라면 수비에 걸려 내야를 빠져나가지 못할 타구.

“어, 어!”

문제는 최치호가 이규영 때문에 2루로 커버를 들어가는 바람에 공간이 열렸다는 것.

의도했는진 모르겠지만 공은 내야를 빠져나갔고, 스타트가 빨랐던 이규영은 유유히 3루에 들어갔다.

우리에겐 최악의, 돌핀스에겐 최상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타석엔 3번 타자 한상욱.

역시 한 방이 있는 선수였다.

한상욱이 타석에 들어서자 더그아웃에서 감독님이 걸어 나왔다.

나 역시 마운드로 올라갔고, 곧 감독님의 신호에 내야수 전체가 모였다.

“자, 다들 알고 있겠지만 지금이 돌핀스가 가장 좋아하는 상황이다.”

1사 주자 1, 3루.

3루엔 이규영이, 그리고 1루엔 박광민이 있는 상황.

“이때 돌핀스가 쓰는 작전이 뭔지 알지?”

“예.”

1루 주자가 시선을 돌리고 포수가 공을 2루에 던지면 3루 주자가 홈을 노리는 더블 스틸.

3루 주자를 의식해서 안 던지면 2, 3루가 되는 거고, 반대로 던지는 순간 이규영이 엄청난 속도로 홈으로 파고든다.

그래서 1사 1, 3루가 1사 2루에 1득점으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작전의 최대 피해자는 단연 마린스.

현재 타석에 3번 타자 한상욱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마린스 상대로 쏠쏠히 써먹은 작전을 이번에 안 쓸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감독님의 표정은 더 진지해 보였다.

“수호야.”

“예?”

“1루 주자 잡을 자신 있어?”

아마 내 대답에 따라 작전이 바뀔 것이다.

하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예. 무조건 잡겠습니다.”

내 말에 감독님이 살짝 웃으셨다.

“좋아. 치호는 주자 확실하게 찍고 홈으로 던져. 무조건 아웃카운트가 먼저야.”

“예.”

“수호는 1루 주자가 언제든지 뛴다고 생각하고.”

“넵.”

“괜히 둘 다 잡겠다고 망치지 말고 확실한 것부터 해결해. 하스는 뭐, 알아서 잘하겠지.”

짧게 설명을 마치신 감독님이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다.

“이번 이닝의 목표는 1점으로 막는 거야. 이거 다들 명심해.”

결국 벤치에서 선택한 건 애매하게 둘 다 노려서 1사 2, 3루가 되는 것보단 나를 믿고 1점을 주는 대신 주자를 없애겠다는 거였다.

부담도 됐지만, 오히려 기꺼웠다.

결국 감독님이 나를 믿는다는 말이었으니까.

자리에 돌아와 3루에 있는 이규영을 슬쩍 쳐다보니 리드폭이 1루에 있을 때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좌완인 하스 입장에서 3루를 견제하긴 쉽지 않으니 더더욱 자신감이 생긴 모양.

적당히 1루 주자에게 견제하다 초구를 던졌다.

초구는 우타자 바깥쪽에 포심.

“볼!”

공을 받는 즉시 3루에 뿌리고 싶었지만, 1루 주자가 거슬려서 결국 시늉에서 끝났다.

‘후, 확실히 골 아프네.’

그리고 2구.

“2루, 2루!”

“스트라이크!”

혼란한 상황이었지만, 확실한 오더 덕분에 3루는 무시하고 몸을 살짝 일으킨 상태에서 공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나와 있는 왼발에 힘을 주면서 그대로 2루에 송구, 그리고 곧바로 3루 주자 이규영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홈 뛴다!”

역시나 공을 던지는 걸 보자마자 홈으로 달리는 이규영.

“아웃!”

“세이프!”

결과는 2루에서 아웃, 최치호가 홈에 다시 공을 던졌지만 이미 이규영은 여유롭게 베이스를 밟았다.

“눈 하나 깜짝 안 하냐.”

나한테만 들리게 이규영이 속삭인 뒤 그대로 더그아웃에 들어갔다.

1점을 내주긴 했지만 루상에 모든 주자를 지웠다.

서로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이제 온전히 타자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

-따악!

한상욱의 스윙에 공이 높이 떴다.

“마이!”

마스크를 벗고 침착하게 위치를 확인한 후 내야 안쪽에 떨어지는 공을 받아냈다.

“아웃!”

이번 위닝에 큰 위기가 있었지만, 어찌어찌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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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2, 1점 차의 팽팽한 경기.

7번 타자 잭 미켈부터 시작하는 7회 초 공격.

잭 미켈의 출루 후 8번 타자 이민상의 타석에 대타까지 쓰면서 기회를 노렸지만 결국 최지용이 스스로 마무리 지으면서 7이닝 3실점으로 QS+를 완성했다.

이제 문제는 우리다.

7회 말, 4번부터 시작하는 돌핀스 타선.

점점 맞아 나가기 시작한 하스의 공.

타 팀과 다르게 7회를 책임질 투수가 없는 불펜진.

최악의 경우의 수가 맞물리자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갔다.

4번 타자 김효준의 안타와 5번 타자 스티브 오웬의 진루타, 그리고 우오준의 적시타로 결국 상황은 원점.

“와아아아!”

그동안 잠잠했던 돌핀스 팬들의 함성이 구장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맞이한 7번 타자 최강민.

-따악!

총알 같은 타구가 유격수 방면으로 날아갔다.

그때, 이민상 대신 대수비로 들어온 이주학이 엄청난 점프를 선보이면서 타구를 낚아챘다.

“아웃!”

그리고 빠르게 1루에 송구.

“아웃!”

1루로 급하게 돌아가려는 우오준까지 잡아내며 엄청난 수비를 선보였다.

“새끼, 미쳤네!”

“좀 멋있었다?”

“아으, 아닙니다.”

이주학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최치호와 오준혁 사이에서 히죽거리는 표정으로 더그아웃에 들어왔다.

“리!”

하스 역시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감정 표현을 하며 이주학을 반겨줬다.

그리고 내 앞에 의기양양하게 서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 할 말 없냐?”

“쩔었다.”

“큭, 고맙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아무튼 위기를 넘겼다.

이제 우리가 반격할 차례.

8회 초, 2번 최치호부터 시작하는 타순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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