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위기 뒤 기회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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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동료를 처음 만나는 건 아니지만, 돌핀즈 선수들은 어딘가 특별했다.
이규영과 우오준이 내내 편하게 대해준 것도 있고, 투수인 최지용과 오상엽 역시 내가 직접 공을 받아본 투수들이었다.
물론 그 선수들이 있다고 해서 마음이 약해지거나 그런 건 일절 없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 오히려 상대가 돌핀스라서 더 불타올랐다.
물론 작년 우승팀에 현재도 리그 1등인 만큼 상대하기 어려운 팀이다.
그래도 저번 시리즈에 위닝을 따내서 어느 정도 할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저번 시리즈는 우연이었다는 듯, 1회 초부터 최지용이 위력적인 투구를 해내며 삼자범퇴로 마무리했다.
1회 말 돌핀스의 공격.
선두 타자는 당연히 이규영이었다.
“어제 기억하지?”
“뭘요?”
“난 너 믿는다.”
“전 모르는 일인데요?”
서로 자기 할 말만 하는 대화였지만, 내 머릿속은 활발하게 돌아갔다.
이규영은 상대해 본 타자 중 까다롭기만 따지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타자지만, 약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150km가 넘는 빠른 공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거기에 발을 이용한 2루타를 종종 만들어내지만, 장타 기대치가 낮다.
물론 1루에 나가면 2루는 프리패스란 말이 있을 정도로 빠른 발을 자랑한다.
그래도 이규영을 2루에서 잡아낸 적도 있었고, 오늘도 잡아낼 자신이 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차라리 안타를 맞더라도 정면 승부를 하자였다.
주자가 있어도 흔들림 없는 하스를 믿는 볼 배합.
그리고 내 송구를 믿었다.
“스트라이크!” “파울!”
초구는 몸쪽 포심, 2구는 다시 몸쪽 커터로 파울.
“너무 진심인 거 아냐?”
“미래의 메이저리거 상대하는 건데 이 정도는 해야죠.”
“아오, 저 입을 아주 그냥. 괜히 말했어.”
투 스트라이크에도 여유를 잃지 않은 이규영이 곧 그 이유를 보여줬다.
“파울!” “볼!” “파울” “파울!”
존에 들어온다 싶으면 방망이가 나온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다른 타자들과 다르게 어떻게든 방망이에 맞춘다.
2스트라이크를 먼저 잡은 것치곤 투구 수가 많아지는 상황.
“스트라이크 아웃!”
그래도 7구만에 처음 던진 슬라이더에 헛스윙하면서 삼진을 잡아냈다.
‘웬만하면 슬라이더는 안 던지려고 했는데.’
첫 타석에 슬라이더를 숨겨 두 번째 타석에 쉽게 쉽게 가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그게 헝클어진 거니 삼진을 잡아냈음에도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습, 너 내 쪽으로 타구 보내지 마라.”
이규영이 예전에 했던 장난스러운 경고와 함께 타석에서 물러났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만 보면 산뜻한 출발이었다.
하지만 1위 팀답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2번 타자 박광민이 들어오는 걸 보며 하스에게 공을 넘겨줬다.
산 넘어 산이라고, 박광민 역시 만만치 않은 타자.
거기에 이규영이 들어가면서 둘이 얘기한 걸 보면 분명 오늘 구종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들어왔을 터.
그래도 오늘 하스의 공은 처음 보는 타자가 정타를 만들어내기 힘든 공이었다.
-딱!
좌타자 몸쪽으로 휘어들어 가는 커터에 땅볼이 나왔다.
“아웃!”
1루수 채지훈이 잡고 하스가 커버 하면서 아웃.
그리고 3번 타자 한상욱은 투심으로 땅볼을 유도해냈다.
“아웃!”
삼진과 땅볼 2개.
하스 역시 최지용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좋은 투구로 1회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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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초, 마린스의 공격.
최지용은 마운드 위에서 차분하게 강주호를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괴물이 분명해.’
최지용이 자신 있게 도전한 메이저리그였지만 결국 2년 만에 쫓겨나듯 돌아왔다.
사람들의 비난이나 조롱은 상관없었다.
야구선수로서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
하지만 최지용이라는 선수가 가진 한계를 알게 된 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반면 타석에 들어온 강주호는 자신이 쫓겨난 메이저리그에서 4년 동안 활약한 괴물.
당연히 전성기와 비교하면 폼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런 강주호의 뒤에서 스윙하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괴물이 있었다.
김수호.
솔직히 말해서 자신은 운이 좋았다.
김수호와 동년배였으면 은퇴할 때까지 상대할 때마다 평생 고통받았을 거니까.
‘그래도 아직 나한텐 안 되지.’
강주호나, 김수호나 괴물인 건 마찬가지.
그래도 강주호는 자신 보다 늙었고, 김수호는 아직 완벽하게 여물지 않았다.
아직 최지용에게 둘을 이길 여지가 있는 셈.
포수와 사인을 교환하고 공을 던졌다.
“흐압!”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투구를 마치자 절로 기합이 나왔다.
“스트라이크!”
몸쪽으로 잘 들어간 포심에 주심의 스트라이크 소리를 듣고 전광판을 바라봤다.
‘144km.’
전성기에 비하면 턱없는 구속.
하지만 구속에 대한 미련은 놓은 지 오래다.
2구는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115km의 슬로우 커브.
“스트라이크!”
상대하는 타자에 따라 실투라고 느껴질 법한 공이었다.
‘확실히 늙긴 하셨네.’
전성기의 강주호였다면 이미 공은 담장 넘어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나이를 먹은 만큼, 강주호는 더 늙었다.
강주호를 상대로 순식간에 잡은 0-2의 유리한 카운트.
‘오케이.’
포수가 보낸 사인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저에서 본 찬란한 재능들.
그리고 일본의 나카무라 준이나 한국의 허하준 같은 재능과 비교하면 자신은 너무나 초라하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 험난한 야구판에서 한 때 리그를 지배할 수 있었던 건, 그에게도 분명한 재능이 있다는 뜻.
그리고 그 재능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공을 던진 순간, 마치 공이 멈춘 것 같은 느낌으로 타자를 향해 날아간다.
갑자기 미친 듯한 변화를 보여주더니 그대로 포수의 미트마저 피한 채 홈플레이트에 도달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강주호의 방망이가 헛돌고, 공을 놓친 포수가 급하게 공을 찾았다.
하지만 강주호는 느린 주자, 강주호의 위치를 확인하고 여유를 되찾은 포수가 1루에 공을 뿌리며 아웃.
[방금···. 너클볼이죠?]
[최지용 선수, 언제 너클볼을 배웠나요? 진짜 구종 습득 능력만큼은 리그 최고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재능, 그건 구종을 일정 수준까지 금방 배울 수 있는 재능이었다.
그래도 너클볼을 던지는 건 지금까지 투구 메커니즘과 달라 시간이 꽤 걸렸지만, 결국 터득했다.
물론 여타 다른 구종들이 그랬듯, 일정 수준이 되자 완성도를 높이지 못했다.
‘너클볼은 다를 줄 알았는데.’
순간 떠오른 생각에 최지용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메커니즘 때문에 고생했지만, 어쩌면 이게 자신의 해답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쉬웠지만 한국에선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쓸만했다.
아무튼 강주호는 너클볼로 잘 넘어갔지만, 문제는 이제 시작이었다.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김수호.
어떤 코스의 공도 홈런을 만들어내는 괴물.
피홈런이 많은 자신에겐 최악의 상대였다.
최지용의 시야에 강주호가 들어가면서 김수호와 대화하는 게 보였다.
“너클볼인 것 같은데?”
“너클이요?”
국가대표에서 최지용과 호흡을 맞춰본 김수호로서도 처음 듣는 구종이었다.
물론 너클볼을 던진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너클볼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투수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것.
놀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김수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최지용과 상대해 본 적은 없지만, 공을 받아 본 경험이 있다.
그때 느꼈던 건 최지용은 구속에 비해 상당히 공격적인 투수라는 것.
초구에 노림수를 가진 채 최지용을 바라봤다.
‘카운트에 몰리면 답이 없다.’
김수호의 생각대로 최지용은 승부를 피할 생각이 없었다.
관중들은 자신들의 에이스가 상대 타자를 피해 가는 걸 보려고 온 게 아니다.
포수가 제안한 첫 사인을 거절하고, 최지용이 사인을 보냈다.
초구는 싱커.
그리 자주 던지는 공은 아니지만, 파울을 유도해 카운트를 잡아내기 쓸만한 구종이었다.
운 좋게 땅볼이 되면 그걸로 아웃을 잡을 수도 있었고.
‘좀 쫄리는데?’
어디로 던져도 다 쳐낼 것 같은 긴장감.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에 최지용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이겨내고 공을 던졌다.
-따아악!
식겁한 타구음과 함께 3루수가 다이빙을 해봤지만, 공을 잡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3루심이 라인 안쪽을 가리켰다.
“2루!”
3루 라인 선상을 따라 흐른 공에 김수호가 2루까지 노리는 상황.
타구가 워낙 빨라서 2루에서 접전이 이뤄지는 상황.
좌익수가 공을 한 번에 2루에 던졌고 2루수 역시 부드럽게 잡아서 태그.
“세이프!”
수비로 유명한 돌핀스다운 수비였지만, 김수호가 타격 후 주저 없이 2루로 달려서 간발의 차이로 세이프가 됐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3루수가 슬쩍 다가와서 미안함을 표현했다.
잡았으면 좋았겠지만, 자기 잘못이었다.
‘너무 급하게 승부했어.’
어쩌면 강주호를 잡아내서 신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음 한켠에 김수호 또한 쉽게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하지만 김수호는 늙은 강주호보단 자신을 도륙 냈던 메이저리그의 타자들에게 더 가까웠다.
‘잊자. 집중하자.’
다음 타자는 유독 자신에게 까다로운 채지훈.
-따악!
풀카운트 승부 끝에 깔끔한 중견수 앞 안타에 김수호가 홈으로 파고들었다.
“세이프!”
결과는 세이프.
‘마음에 안 드네.’
잠깐 방심의 대가치곤, 상당히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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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초 선취점을 냈지만, 2회 말에 곧바로 동점을 허용했다.
4번 타자이자 3루수 김효준의 홈런.
곧바로 동점을 만드는 걸 보니 역시 강팀이었다.
그래도 하스 역시 만만치 않았다.
초구에 맞은 홈런이라 흔들릴 법도 한데 5번 타자에게 자신 있게 공을 던졌다.
결국 커터로 땅볼을 유도해내며 아웃.
1사 주자 없는 상황에 6번 타자 우오준이 타석에 들어섰다.
“몸은 좀 괜찮냐?”
“아뇨, 안 괜찮은데 선배님 조언 듣고 참고 뛰려고요.”
“하여튼, 쩨쩨한 새끼. 자, 형님한테 좋은 공 하나 줘봐.”
“예. 기대하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절대 좋은 공을 줄 생각은 없다.
우오준이 올림픽에서 부진한 건 본인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리그에 돌아와서 3홈런을 치며 맹활약하고 있다.
수비는 두말할 것도 없고.
충분한 장타력이 있는 선수한테 좋은 공을 주면 결과가 좋을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초구는 우타자 바깥쪽 포심.
“스트라이크!”
145km의 속구.
하스도 우오준을 잡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는지 오늘 경기 최고 구속을 찍었다.
“나한테 이러기냐?”
“당연히 특별 대우해드려야죠.”
우오준이 낮게 투덜거렸지만, 어차피 엄살이다.
포심을 그대로 흘렸으니 이번엔 투심으로 유혹해보기로 했다.
-딱!
“파울!”
1루 선상에 흐르는 파울.
다음 공은 커터, 우타자 기준 바깥쪽으로 살짝 휘는 공이라 꽤 효과가 좋았다.
-따악!
하지만 바깥쪽보다 존 가운데에 더 가깝게 들어오면서 유격수 방면으로 타구가 날아갔다.
까다로운 타구였지만 이민상이 백핸드로 잡아내면서 그대로 1루에 송구.
“아웃!”
국가대표 유격수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했다.
하지만 약간 신이 난 탓일까.
다음 타구에 곧바로 실책 하면서 1루 주자를 살려 보냈다.
그래도 하스가 흔들리지 않고 8번 타자를 무난하게 잡아내면서 이닝 종료.
“후, 유격수란 놈들이 어째 이리 똑같냐.”
수비 코치님이 더그아웃에 있던 이주학까지 싸잡아 혼내는 걸 보면서 장비를 풀었다.
하지만 곧 풀어놨던 장비를 다시 껴야 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아웃!”
9번 이민상부터 시작한 3회 초 공격은 순식간에 삼자범퇴로 마무리.
역시, 만만치 않은 투수였다.
하지만 하스 역시 까다로운 이규영을 포함한 3회 말 돌핀스 공격을 삼자범퇴로 처리했다.
그리고 4회 초 우리 공격.
3번 타자 오준혁은 아웃 당했지만 강주호가 안타를 치면서 1사 1루 상황.
내 타석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