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분위기를 타면 무서운 팀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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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부상은 떼놓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이번이 프로 첫 시즌이지만, 몸 상태가 언제나 좋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강주호만 봐도 경기 시작 전 파스를 뿌리면서 시작하고, 국대에선 양준이 부상당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봤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열이 많이 내렸고 아프다기보단, 살짝 몽롱하다.
몸과 정신이 따로 논다고 해야 하나?
항상 공을 받을 땐 공을 던진 순간 어디로 날아올지 대충 궤적이 예상됐는데 오늘은 조금씩 반응하는 게 느렸다.
웃긴 건 인식한 순간 이미 미트를 낀 손은 거길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거였다.
아무튼 그 상태에서 프렌즈에서 가장 까다로운 타자, 서도하가 좌측 타석에 들어섰다.
“아파 보이는데 쉬지 그랬냐.”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진짜 걱정돼서 그래.”
“그래서 다음 주 돌핀스전에 좀 쉬려고요.”
“아오, 진짜 사람을 뭐로 보냐. 그래 쉬어라, 쉬어!”
그러더니 잠깐 날 흘깃 쳐다봤다.
“진짜 쉴 건 아니지?”
그 모습에 약간 웃음이 났다.
그래도 대화는 여기까지.
어차피 더 얘기 해봤자 똑같은 얘기만 반복할 뿐이고, 지금 몸 상태론 볼 배합을 생각하는 것만 해도 힘들었다.
‘설마 이거까지 생각한 건가?’
서도하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차분하게 서도하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떠올렸다.
‘뛰어난 좌타자로 홈런은 없지만, 좌우 구분 없이 원하는 곳에 공을 보내는 능력이 탁월함.’
그 외에도 작전 수행 능력과 주력이 좋아 내보내면 까다로운 타자였다.
초구는 몸쪽 포심.
어제 더그아웃에서 타격하는 모습을 지켜보긴 했지만, 오늘은 어떻게 타격할지 간을 보기 위해서였다.
-퍽!
“볼!”
존 보다 서도하의 몸에 더 가까이 들어갔다.
묵직한 포심이 바로 옆에 꽂히자 간담이 서늘한지 투덜거렸다.
“어우, 씨. 야, 말 좀 걸었다고 이런 걸 던지냐?”
“죄송합니다.”
“미안하면 가운데 포심 하나만 꽂아봐.”
“예.”
당연히 가운데 포심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1번 타자를 상대할 때도 느꼈지만, 오늘 허하준의 제구는 그리 좋지 않았다.
평소보다 좌타자 쪽으로 공 하나 정도 빠지는 느낌.
그걸 의식해 좌타자 바깥쪽에 포심 사인을 냈다.
-따악!
하지만 서도하가 바깥쪽에 몰린 포심을 가볍게 밀어 때려 안타를 치고 나갔다.
‘아쉽네.’
조금 더 바깥쪽을 요구해야 했을까.
그래도 이후 타석에 들어온 3번 타자 오대현은 삼진으로 잡아냈다.
그 와중에 서도하가 1루에서 허하준의 신경을 자극했지만, 허하준의 견제는 리그 최상위.
“세이프!”
가까스로 세이프될 정도로 날카로운 견제를 뿌렸다.
서도하도 대단한 게, 보통 이런 상황을 겪으면 리드폭이 줄기 마련인데 계속 넓은 리드폭을 유지했다.
그렇게 2사 1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온 4번 타자 페드로 산체스.
‘확실한 한 방과 노림수가 좋은 선수.’
특히 어제 이호민을 상대로 친 홈런처럼 몸쪽에 몰린 공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우선 바깥쪽에 어떻게 대처할지 알아보기 위해 초구는 아예 볼이 될만한 바깥쪽 슬라이더 사인을 보냈다.
“스트라이크!”
노림수를 바깥쪽에 가지고 있었는지 방망이가 후욱하고 지나갔다.
방망이와 공의 격차가 큰 걸 보면 보고 친 건 아니다.
카운트도 잡았고 수확도 있었다.
2구는 다시 바깥쪽 스플리터.
“스트라이크!”
이번엔 방망이가 나오지 않았지만, 포구 위치를 살짝 끌어올리면서 스트라이크를 얻었다.
순식간에 몰아붙인 상황.
‘한 번 뺄까? 아니면 승부?’
잠깐 고민했지만, 굳이 유리한 상황에서 급하게 던질 필요가 없었다.
다시 한번 낮은 스플리터.
허하준의 공이 뿌려졌고, 동시에 소리가 들렸다.
“뛰었다!”
산체스의 방망이가 나왔지만, 그대로 헛스윙.
문제는 스플리터가 생각보다 더 빨리 떨어졌고, 블로킹 한 공이 우측으로 튀어버렸다.
타자가 그걸 보자마자 곧바로 1루로 달렸고, 다행히 멀리 튀지 않아 공을 잡고 1루에 뿌렸다.
“아웃!”
휴, 겨우 한숨 돌렸다.
3루를 보니 스타트를 빨리 한 서도하가 이미 도착해있었다.
이닝이 끝나긴 했지만, 타자가 살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2루로 뛰는 주자와 타자, 그리고 날카롭게 떨어지는 공.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하니 몽롱한 정신으론 대처하기 어려웠다.
“침착하게 대처 잘했어. 계속 침착하게만 하자.”
“예.”
더그아웃에 들어가자 강기호가 내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아직 남은 이닝이 길다.
잠깐 눈을 감고 한숨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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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상태는 최악이었지만, 경기는 치열하게 흘러갔다.
리그 재개 후 처음으로 7번에 들어갔다.
첫 타석에 들어간 건 2회 말.
6번 채지훈이 사무엘 우즈에게 2루타를 때려내면서 2사 주자 2루.
에이스 간의 대결에서 선취점을 낼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좋은 공은 오지 않았고 3-1에서 볼이 들어오면서 볼넷으로 출루했다.
2사 주자 1, 2루가 됐지만 8번 타자 이준이 삼진을 당하면서 이닝이 끝났다.
타석에선 점수를 내지 못했지만, 다행인 건 3회 초가 되자 허하준의 제구가 조금은 안정됐다.
‘조금씩 옆으로 간 게 도움이 됐나?’
공이 우측으로 치우치는 상황.
그래서 매 이닝이 시작할 때마다 조금씩 우타자 쪽으로 움직였다.
이게 도움이 됐는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게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구가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순간 실점이 나왔다.
8번 타자의 출루, 9번 타자의 번트.
1번 타자는 잡아냈지만, 결국 서도하의 안타.
나와 배터리를 이룬지 47과 2/3이닝 만에 실점이자, 연속 완봉 기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깝네.”
“그러게요. 좋은 공이었는데.”
실점 이후 더그아웃에서 올라가란 사인이 나왔다.
안타를 허용한 공은 존 살짝 밑으로 꺾여 들어가는 스플리터.
제구도 좋았고 코스도 좋았다.
다만, 서도하가 그냥 잘 쳤다.
“언젠가 깨질 기록이었어.”
다행히 허하준은 그리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러더니 나한테 툭 하고 물었다.
“넌 어때?”
“저요?”
“응. 네 기록이기도 하잖아.”
내 기록이라.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저도 괜찮아요. 이기기만 하면 되죠.”
“그렇지. 점수 뽑아줄 거지?”
“당연하죠.”
“오케이. 그럼 빨리 끝내고 들어가자. 점수 내야지.”
웃고 있는 허하준과 얘기를 끝마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얘기했던 것처럼 깔끔하게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고 허하준이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사직을 가득 채운 관중들이 일제히 허하준을 향해 박수를 쳤다.
“허하준! 멋있다!”
“마! 어깨 피라!”
“허하준 파이팅!”
비록 완봉과 무실점 기록은 끊겼지만,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줬다.
그건 마린스 선수단 역시 마찬가지.
“고생했다. 어때? 홀가분하냐?”
“글쎄? 별생각 없는데.”
“내 생각엔 넌 절에 갔어야 했어. 그랬으면 벌써 부처님 됐을 거다.”
김호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돌아갔다.
이닝이 바뀌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감독님이 타자들을 불러 모았다.
“설마 하준이가 완봉승 못했다고 오늘 경기 못 이긴다고 생각하는 놈은 없겠지?”
“그런 생각 하는 놈들이 있으면 제가 착실하게 정신 교육 시키겠습니다.”
“좋아. 그동안 하준이 덕분에 쉽게 야구 했으니 오늘 좀 빡시게 야구 하자. 타자들, 알겠나?”
“예!”
“이번 타석부터 대충 휘두르는 놈들은 끝나고 정신 교육에 특타 할 각오 해라. 출루 못해도 좋으니 공 하나라도 더 보고, 적어도 5회가 끝나기 전에 동점 만들자.”
감독님의 주문에 눈빛들이 무서워졌다.
“김수호!”
“예!”
갑자기 내 이름이 나와서 조금 긴장했다.
“넌 편하게 쳐.”
“예?”
“와, 감독님 수호만 특별 대우하십니까?”
최치호가 본인답지 않게 툴툴거렸지만, 소용없었다.
“어. 부러우면 네가 포수 하던가.”
“그건 좀···.”
“아무튼, 오늘 지면 수호 빼고 다 각오해! 해산!”
감독님이 가자 주장인 최치호가 다시 한번 정리했다.
“감독님 말씀 들었지? 오늘 지면 각오해라.”
방망이를 든 최치호가 사나운 눈빛으로 말하자 좀 무서웠다.
그래도 기록이 깨져 어수선할 수도 있는 분위기를 잘 잡았다.
이제 분위기를 이어갈 차례.
이닝의 선두 타자는 바로 이주학.
“넌 부럽다.”
“뭐가?”
“오늘 못 쳐도 특타 아니라며. 아씨,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특탄데.”
“나도 오늘 쳐야돼.”
“왜?”
“욕먹기 싫거든.”
욕보단 허하준이 내려갈 때 받았던 환호와 박수가 듣고 싶다.
“뭔 소리래. 누가 널 욕해? 네 욕하다 걸리면 팬들한테 작살날걸?”
바로 그 팬들이 욕한다고.
아무튼 이주학이 출루에 성공하면 상위타순으로 연결된다.
“내가 어떻게든 1루는 밟고 온다.”
본인도 그걸 아는지 의지를 다지고 타석에 나갔다.
-따악!
“오! 이주학이!”
“이야, 웬일이래? 잘 쳤다! 나이스!”
투수의 초구를 냅다 후려쳐 안타를 만들어냈다.
이제 1번으로 이어지는 상위타선.
박은성의 번트로 이주학이 2루로 들어갔고 최치호의 적시타가 터지면서 동점.
기록이 깨지고 살짝 가라앉았던 응원의 열기가 미치도록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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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들 갑자기 뭘 잘못 먹었나.’
프렌즈 포수인 박희준이 당황한 채 공을 받았다.
분명 상대 배터리의 기록을 깨고 선취점을 낸 건 프렌즈였는데 그 이후 마린스 타자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다.
최치호의 동점 적시타 이후 오준혁과 강주호의 연속 안타로 역전.
이후 1사 1, 3루의 위기에서 채지훈을 병살 처리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채지훈이! 빨리 은퇴해라!”
“야구가 장난이가!”
‘무슨 병살 한 번에 저렇게 달려드냐.’
몇 번을 와도 적응 안 되는 부산 팬들의 고함에 박희준이 몸을 떨었다.
심지어 본인한테 하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물론 팬들이 저렇게 화내고 있지만, 이미 마린스로 기세가 넘어간 상태.
이번 4회 초 공격이 정말 중요했다.
하지만 실점 이후 더 단단해진 허하준에게 막혀 삼자범퇴.
‘더 이상 기세를 타게 하면 안 돼.’
마린스가 기세를 타면 무서운 팀이라는 건 정말 유명한 말이다.
반대로 초장에 잡아두면 나중이 편한 팀.
그래서 오늘 에이스인 우즈까지 내보낸 거 아닌가.
프렌즈로서도 많은 것이 걸려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경기였다.
이번 이닝의 선두 타자는 김수호.
마린스에서 나온 돌연변이.
‘뭔 기록이 이러냐.’
ops가 1.2가 넘는다니, 괴물도 이런 괴물이 없다.
그래서 김수호가 나오면 내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바깥쪽 승부를 하기로 감독과 얘기했다.
하지만 이미 역전당한 상태에서 선두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는 건 최악이었다.
‘오늘 몸 상태도 별로던데, 그냥 붙을까?’
첫 타석에선 대놓고 볼인 공에 휘둘렀고, 수비에서도 포일을 기록할 정도로 컨디션이 별로였다.
“도하야.”
“왜요?”
“너 쟤랑 같이 국대 갔다 왔으니 알지? 오늘 컨디션 어때 보여?”
“음···. 확실히 별로 좋아 보이진 않아요.”
“그래?”
“예. 국대에 있을 땐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거든요. 나카무라 공 칠 땐 진짜 미쳤었는데.”
“아, 그거. 나도 봤지.”
“아무튼 그때 비하면 확실히 오늘 좀 둔하더라고요.”
“알겠어. 고맙다.”
서도하의 말까지 들으니 더더욱 확신이 생겼다.
이번 이닝, 김수호를 확실하게 잡고 가야겠다.
그걸 사무엘 우즈에게 설명해주고 그라운드로 나섰다.
김수호가 타석에 서자 투수도 아닌데 절로 긴장이 됐다.
“스트라이크!”
하지만 초구, 실투가 들어왔지만, 김수호가 반응하지 않자 속으로 환호했다.
‘됐다!’
150km의 빠른 공이었지만, 한 가운데로 들어온 공.
이 공에 반응하지 못할 정도라면 컨디션이 안 좋은 게 확실했다.
그렇다면 더 공격적으로.
‘몸쪽 포심 한 번 더.’
사무엘 우즈도 별다른 표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공을 던졌다.
-따아악!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몸쪽으로 들어온 공을 그대로 퍼 올렸다.
프렌즈의 외야수들이 타구를 잠깐 따라가는 듯하다 이내 뛰는 걸 포기했다.
“와아아아아! 김수호! 김수호!”
‘미친놈아, 컨디션 안 좋다며.’
어쩐지 더그아웃에서 감독님의 매서운 시선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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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 김수호 복귀와 함께 연패 탈출!]
[데뷔 후 20경기 만에 11호 홈런! 신인왕 경쟁, 아직 모른다.]
ㄴ 아무리 그래도 신인왕은 황인재지.
ㄴ 근데 마린스 포스트시즌 보내면 받을 만하지 않냐?
ㄴ 황인재 홈런 벌써 22개임. 지금 미쳤음.
ㄴ 그래서 최근 10타수 무안타?
ㄴ 치사하게 팩트 들고 오지 마라.
[허하준, 연속 완봉승 기록은 끊겼지만 개인 6연승 달성! 최다 이닝 무실점 기록도 경신해.]
ㄴ 정확하게 7경기 50이닝 무실점이네 ㄷㄷ
ㄴ 심지어 중간에 노히트 노런에 5완봉승까지 ㅋㅋㅋ 그냥 미쳤었다.
ㄴ 미쳤었다는 과거형이고. 오늘도 7이닝 1실점했는데 이게 만만해 보임?
ㄴ 빨리 허하준 메이저로 꺼졌으면.
ㄴ 김수호도 손잡고 같이 꺼져라 제발.
[마린스 감독, 오늘 경기는 타자들이 에이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