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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55화 (55/203)

55화 완승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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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가 연애를 한다는 사실은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팬들은 오히려 선수들이 결혼을 빨리하길 원했고, 연애한다고 하면 축하해 줬다.

가정을 가진 선수들은 그 자체로 동기부여가 된다.

분유 버프라는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김호기는 그 대상이 문제였다.

“진짜네요?”

“비밀로 해라. 진짜.”

김호기의 여자친구는 저번에 부모님이 시구하실 때 도와줬던 그 리포터가 맞았다.

내가 알기론 인기가 상당할 텐데.

“당연하죠.”

그냥 정보의 원천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김호기는 조금 걱정되는지 계속 나한테 확답을 요구했다.

아무리 자팀 선수지만 사내연애라는 게 걸리나 보다.

사내연애는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으니까.

그리고 공인과 공인의 만남은 좋은 얘깃거리가 된다.

겨우 진정한 김호기가 나한테 물었다.

“근데 너는 연애 안 하냐?”

“있어야 하죠.”

“내 주변에만 해도 너 소개해달라고 난린 데 없다고?”

“예. 없어요. 그런 거.”

또래 여자애들을 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

“그럼 소개해줄까?”

“예?”

갑자기 들어온 질문이라 당황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뇨. 괜찮아요.”

“왜? 괜찮은 애들인데, 이뻐.”

“바빠 죽겠는데 연애할 시간이 어딨어요. 나중에요, 나중에.”

참고로 내 하루 일과는 퇴근 후 다음 경기 스카우팅 리포트를 보면서 볼배합을 짜거나 스윙 연습을 하는 게 전부다.

“나중 언제?”

“음···.”

글쎄···.

“우승하면?”

내 말에 김호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와, 설마 했는데 진짜네.”

“왜요?”

“너랑 똑같이 말한 사람이 있거든.”

“저랑요? 누가요?”

“어. 허하준이라고, 그냥 둘이 사귀어라. 잘 어울리네.”

“전 여자가 좋아요.”

순간 나쁜 말이 나갈 뻔했지만, 겨우 웃고 넘어갔다.

“아, 근데 허하준 선배 얘기하니까 궁금한 게 생각났는데 왜 그렇게 우승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프로선수 중에 누가 우승하기 싫겠냐만, 허하준이 우승에 관한 얘기를 할 때 보인 날카로운 눈빛은 너무 인상적이었다.

“어? 넌 모르나?”

“예?”

“그, 흠. 아니다. 나중에 본인한테 직접 들어.”

“아니 말하려다가 안 하는 건 뭐에요. 궁금하게.”

“아무리 그래도 내 친구 얘긴데, 본인한테 들어야지.”

그 이후로도 반쯤 장난으로 홈런 쳐준다고 말하면서 계속 물어봤지만, 김호기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입이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칼 같은 사람이다.

아쉽지만 나중에 직접 물어보지 뭐.

"그래서 내가 자기랑 어떻게 만났냐면...."

아, 그건 안 궁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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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기에서 이기는 게 가장 좋지만, 불가능하단 걸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리그 1위 팀의 승률도 아무리 잘 나와봤자 6~7할이 한계였다.

그래서 선수들이 시리즈의 임하는 각오는 보통 위닝시리즈만 하자였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약간 달랐다.

일단 전통적으로 꼴찌를 두고 경쟁한 팀답게 서로 너는 이긴다 라는 생각이 기본으로 깔려있다.

그리고 현재 8위인 피닉스와 경기차는 2.5경기.

즉, 스윕을 하면 8등으로 올라간다.

2승 6패의 상대 전적 역시 50% 근사치로 맞출 수 있다.

거기에 다음 주 평일엔 우리보다 유일하게 등수가 낮은 호올스와 경기가 있으니 분위기를 타면 무섭게 질주할 수 있었다.

특히 일요일 경기엔 허하준이 등판하니, 오늘 경기와 내일 경기에만 승리를 한다면 스윕 가능성도 꽤 컸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피닉스 역시 우리의 추격을 떼어놓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

특히 첫 경기가 시리즈의 성패를 좌우하니 선수들의 집중력은 극에 달했다.

1회 초부터 피닉스 1번 타자의 기습번트를 시작으로 2번은 방망이를 짧게 잡고 최대한 컨택을 하기도 했고, 일부러 타격 동작을 길게 하며 김호기의 신경을 건드는 3번 타자도 있었다.

“후, 개빡치네.”

삼자범퇴로 마무리하긴 했지만 김호기가 불쾌한 기색을 내 비췄다.

“괜찮아요. 어차피 선배님 공 못 쳐서 그러는 거예요.”

“뭐야, 그 자신감? 든든한데?”

“제가 제일 잘 아니까요.”

강기호가 내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그 누구도 투수를 못 믿어 줄 때 포수만은 무조건 투수를 믿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말 한 게 아니라곤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오늘 공은 정말 괜찮았다.

“그 커브, 진짜 좋던데요?”

“그치? 오늘 좀 긁히는 날인가? 어때, 롤렉스 준비해야 할까?”

롤렉스는 퍼펙트게임을 한 투수가 포수에게 주는 시계였다.

고작 1회가 끝난 지금 시점에선 엄청난 설레발이었지만, 남 욕하는 것도 아닌데 별 상관없다.

“저는 롤렉스 서브마리너요.”

“뭐야, 갑자기 진지하게 받기야? 그리고 너 시계에 관심 있었냐? 그런 것 치곤 시계 차고 다닌 적은 없던 거 같은데.”

김호기가 내 손목과 얼굴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봤다.

솔직히 말하면, 허하준과 노히트 노런을 했을 때 조금 찾아보긴 했다.

진짜 조금.

“농담이에요. 시계 찰 일도 없어요. 아무튼 오늘 선배님 공 진짜 좋으니까 자신감 있게 해도 좋아요.”

“오케이. 너만 믿고 던진다. 실점하면 홈런 쳐주는 거지?”

“당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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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는 양 팀 다 별일 없이 끝났고, 이제 2회 초 피닉스의 공격.

피닉스 날개짓의 동력이자, 오메가인 황인재가 타석에 들어왔다.

사실 피닉스는 좀 기형적인 팀이다.

마린스도 선수층이 젊긴 하지만 구심점이 될 만한 베테랑이 어느 정도 있다.

타자 중엔 강주호, 채지훈, 최치호 등이 있었고 투수 중엔 이용기가 베테랑으로서, 허하준이 에이스로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피닉스는 구심점이라고 할 만한 베테랑은커녕, 주장부터 20대였다.

그런데 팬들은 오히려 좋아하는 거로 알고 있다.

젊어진 팀과 나름대로 선방 중인 팀 순위.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팀이 바로 피닉스인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누가 뭐라 해도 황인재가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황인재만 확실히 잡으면 경기가 쉬워진다는 말이었다.

그게 쉽지만은 않은 게 황인재의 마린스 상대 타율이 4할이 넘는다.

홈런도 4개나 있고.

핫콜드 존이 강주호처럼 온통 빨간 걸 보면 약점도 딱히 없었다.

그만큼 까다로운 타자였지만 항상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나마 내가 황인재에 대해 잘 아는 게 도움이 됐다.

초구는 존 바깥쪽 낮은 곳에 체인지업.

‘공을 띄우는 것만큼은 피해야지.’

하지만 공은 안쪽으로 들어왔고, 황인재의 방망이는 어김없이 돌아갔다.

“파울!”

그나마 다행인 건 투심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타이밍이 빨라 파울이 됐다.

살벌했던 타구음을 의식하지 않은 척 심판에게 공을 받고 곧바로 김호기한테 던졌다.

이럴 때일수록 결과만 봐야 한다.

결국 실투가 파울이 됐고, 우리는 카운트에서 유리하게 시작한다.

오직 그것만을 염두에 두고 다음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에 슬라이더.

계속 도망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타자를 상대로 우완 사이드암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

“볼!”

부드럽게 흘러나가는 공을 그대로 지켜봤다.

아쉽게 볼이 됐지만, 괜찮은 공이었다.

“공 좋습니다!”

1-1은 황인재가 가장 좋아하는 카운트다.

그만큼 집중력이 올라간다는 소리며, 어지간한 변화구론 방망이를 끌어낼 수 없다.

그래서 김호기의 공 중에 가장 좋은 변화구를 선택했다.

바깥쪽에 낮은 커브.

사이드암의 커브는 조금 특별한 궤적을 가진다.

웰링턴같이 완전 오버핸드 선수가 아닌 이상 결국 던지는 손에 의해 궤적이 형성된다.

쓰리쿼터도 그렇고, 사이드암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사이드암이 던지는 커브는 우타자 몸쪽에서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면서 떨어진다.

물론 충분히 떨어지지 않으면 그냥 느린 공이 돼버려서 장타를 허용하기 십상이지만, 오늘 김호기의 커브는 날카로웠다.

-따악!

이번에도 방망이가 나왔고, 공의 윗부분을 때린 탓에 큰 바운드가 형성되며 그대로 유격수 이민상이 잡아서 1루로 송구.

“아웃!”

큰 산을 넘기긴 했지만, 다음 타석에 통할지는 미지수.

“선배님, 최곱니다!”

하지만 벌써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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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아웃에 들어와 장구를 벗으며 타격 준비를 하는데, 강주호가 자꾸 무릎을 접었다 폈다 하는 게 보였다.

“아직도 불편하세요?”

“이 정도야 뭐, 맨날 달고 사는 거지.”

휴식기에도 국가대표로서 열심히 뛴 탓에 강주호의 무릎은 회복이 더뎠다.

선수가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사는 거야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지만 강주호 나이쯤 되면 부상이 한두 개가 아닐 거다.

“왜, 신경 쓰이냐?”

“제가 2루타 쳤을 때 3루에 못 가실까 봐 그러죠.”

“얼씨구. 이미 홈런 쳐서 더그아웃에 있을 건데?”

쓸데없는 말장난 이후 강주호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곤 말했다.

“어우, 기대니까 좀 낫네. 타석에서도 좀 기대고 있어도 되냐?”

“그건 좀 어렵고, 1루에 나가 계시면 홈까지 천천히 걸어올 수 있게 해드릴게요.”

그러자 어깨에 올라간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으, 아파요.”

“엄살은.”

그 말을 끝으로 강주호가 타석에 나섰다.

그래도 웃는 걸 보니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강주호는 출루에 성공해 무사 주자 1루.

본인이 한 말은 지키지 못했지만, 대신 내가 한 말을 지킬 기회가 왔다.

약속도 약속이지만 내가 괜히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다.

강주호의 치명적인 약점은 주자로서 역할을 온전히 못 한다는 것.

땅볼이 나오면 2루에서 아웃 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이번 타석에선 낮게 오는 공은 포기하고 최대한 타구를 띄우기로 했다.

다행히 피닉스 선발 투수 김승수는 제구가 좋은 투수는 아니었다.

“볼!”

강주호에게 볼넷을 허용한 것에 이어 초구도 완전히 빠지는 볼을 던졌다.

“볼!” “볼!”

그리고 다시 연속으로 볼.

3-0의 카운트.

그 어느 카운트보다 스트라이크가 들어올 확률이 높았다.

사실 주자가 없었다면, 아니 강주호가 주자가 아니었다면 굳이 방망이를 내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여기서 볼넷을 얻는다고 해도 다음 안타 때 강주호가 홈에 들어올 가능성은 적다.

볼넷을 얻어도 무사 1, 2루가 되긴 하겠지만, 그럴 바엔 차라리.

-따아악!

아까 한 말을 지키기 위해 한 가운데에 오는 공을 때렸다.

한 가운데로 밋밋하게 들어온 139km의 포심.

완벽히 장타를 의식한 스윙에 그대로 담장을 넘어갔다.

“그렇지!”

일루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천천히 뛰고 있는 강주호의 뒤를 보며 뛰었다.

2루를 지나 3루에 도달했을 때, 황인재와 눈이 마주쳤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웃음이 났다.

홈에 들어오자 강주호와 웃으면서 들어갔다.

“역시 넌 리틀 강주호가 맞네.”

“홈런 쳐서요?”

“아니, 내가 약속 하나는 기막히게 지키거든.”

그런 것 치곤 홈런 치겠다는 약속은 못 지킨 것 같은데.

물론 이 말을 하면 또 어깨가 뚫릴지 몰라서 속으로 삼켰다.

더그아웃에서 전광판을 보자 마린스 옆에 2라는 숫자가 추가됐다.

그리고 곧 그 숫자는 2에서 5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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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에 대거 5득점을 한순간 기존 계획을 약간 수정했다.

보통 타순이 한 바퀴 돌 때 볼배합을 바꾸는 편이지만, 오늘은 약간 상황이 달랐다.

초반부터 큰 점수 차는 지는 쪽 타자의 조급함을 유발한다.

이걸 이용 안 하면 서운하지.

“오케이. 홈런 쳤으니까 내가 따라준다.”

김호기 역시 내가 요구하는 대로 공격적인 투구를 이어갔다.

바깥쪽 승부를 하는 건 계속 이어가되, 투심 비율을 높였다.

투심을 자주 던지니 스윙 비율이 늘어났고, 맞춰 잡거나 중요한 순간 커브나 슬라이더를 활용하면서 실점 위기를 극복했다.

물론 출루를 허용했을 때 약간 흔들리긴 했지만, 도루하는 주자를 잡아내니 그런 기색도 사라졌다.

결국 6이닝 동안 2실점 호투.

“우리 진짜 잘 맞는 것 같다.”

“제 생각도 그래요.”

김호기는 본인의 투구가 꽤나 마음에 드는지 아이싱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하, 맨날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

“그러게요.”

2회 5득점, 3회 2득점, 5회 1득점, 그리고 방금 잭 미켈의 솔로 홈런으로 다시 1득점.

총 9점을 낸 타선과 선발의 호투.

아직 3이닝이 남긴 했지만, 7점 차이다.

선발이 호투하고 타선이 폭발했다.

이보다 완벽한 경기가 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시야에 내일 선발이 보였다.

기존 선발이었던 박지호 대신, 기회를 받은 내 동기.

이호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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