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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53화 (53/203)

53화 흐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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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서 함께 고생했던 동료를 만나는 건 기쁘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국가대표는 최고의 선수만 모아놓은 곳.

국가대표에 차출됐다는 것만으로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라는 거다.

인천 스타즈의 이민수는 올림픽에서 선발로 한 번, 결승전에 불펜으로 한 번 나온 게 전부였다.

하지만 단연코 국내 언더핸드 투수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생소함을 무기로 삼는 언더핸드 투수가 선발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다.

오늘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 하는 우리로선 라인업에 변동을 줬다.

원래 지명타자로 나오던 김민석이 빠지고 강주호가 지명타자, 그리고 좌타자인 채지훈이 1루수 겸 7번으로 들어왔다.

이주학도 9번으로 한 경기 만에 다시 선발로 복귀했고.

매진은 아니지만, 오늘도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주는 관중들의 함성과 함께 하스와 그라운드로 나왔다.

“레타쿠가 함께 하신다.”

마운드에 올라 눈을 감고 짧게 읊조리는 하스 뒤에 유격수 자리에서 마찬가지로 눈을 감고 있는 이주학이 보였다.

으음. 눈까지 감고 있으니까 진짜 비슷하네.

하스가 눈을 뜨자 잡생각은 그만두고 연습 투구를 시작했다.

원래 경기 시작 전에 하는 연습 투구는 오늘 어떤 공이 좋은지 포수로서 투수의 컨디션을 체크 하는 중요한 일이다.

“나이스 볼!”

그래서 보통 이렇게 공을 받아주면서 최대한 투수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불펜에서 아무리 공을 받아본들, 결국 마운드에서 그 공을 못 던지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하지만 하스는 그럴 걱정이 없는 투수였고, 공을 받아보니 포심보단 투심과 커터, 그리고 슬라이더가 괜찮았다.

경험 상 세 가지 패스트볼 구질 중 2가지가 괜찮은 날엔 적극적으로 승부를 이끌어 가도 좋았다.

하스의 강점인 볼넷이 적다는 걸 활용하기 좋은 날이다.

제구가 좋은 것보단 어떤 상황이든 존 안에 공을 넣는 능력이 빛을 발하는 날.

상대 타자들 역시 이런 하스의 투구 스타일을 당연히 알고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냈다.

1회 세 개의 아웃카운트를 잡는 동안 상대한 타자는 총 4명.

삼진은 없었지만 좋은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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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공이 더럽네.”

1번 타자로 첫 타석에 나간 박은성이 땅볼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낮게 투덜거렸다.

언더핸드 투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따져봐도 귀하다.

KBO로 한정하면 우리 팀엔 없고, 다른 팀들도 주전으로 쓸 만한 선수는 1명 있을까 말까 한 정도.

2군에는 언더핸드가 아니라 그냥 공을 밑에서 던지는 수준의 투수밖에 없어서 박은성에게 가서 물었다.

“어떤데요?”

“스읍. 뭐라 해야 하지. 공이 살아 움직인다고 해야 하나? 도착할 때까지 계속 변하는 느낌이야. 거기에 쟤 투구폼도 워낙 극혐이라.”

항상 하는 말이지만, 상대 팀이 욕하는 건 극찬이다.

박은성의 말처럼 스타즈의 선발 투수 이민수는 언더핸드 투수 중에서도 더 특별한 투구폼을 가졌다.

“마운드에 완전히 닿을 듯이 던지는 거요?”

“어. 그래서 땅에서 올라오는 느낌이 들어. 거기에 변화도 심해서 맞추기가 까다롭네.”

스카우팅 리포트에 의하면 이민수의 손과 마운드와의 거리는 10cm 이하.

최치호와 오준혁 역시 공략해내지 못하며 범타로 물러났다.

그렇게 양 팀 모두 소득 없이 1회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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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 타석에 들어갔다.

“민수 공은 처음이지?”

“예. 멀리서 본 것 말곤 없어요.”

“기대해. 오늘 공 진짜 좋거든.”

강주호도 꼼짝 못 하고 삼진을 잡아낸 걸 보면 확실히 오늘 공이 좋긴 한가 보다.

그런 최필주의 자신감을 증명하듯, 언더핸드 특유의 역동적인 투구폼이 이어지고 땅끝에서 솟구친 공이 내 머리 위치까지 올라왔다.

“볼!”

이민수의 주요 구종은 투심, 커브, 싱커, 그리고 가끔 던지는 슬라이더로 알고 있다.

전광판에 찍힌 115km의 구속을 보면 방금 공은 커브.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지는 평범한 커브와 완전히 다른 궤적.

갑자기 든 생각인데 12 to 6의 커브를 던지는 2m 신장의 웰링턴과 이렇게 솟아오르는 커브의 이민수가 맞대결했으면 보는 맛이 있을 거 같다.

다음 2구, 낮게 깔리며 들어오는 궤적에 방망이를 돌려봤지만, 마지막에 훅 가라앉았다.

“스트라이크!”

“싱커에요?”

“글쎄?”

최필주가 대답을 피했지만, 이미 피한 것부터 답을 말해준 것과 다름없다.

밑에서 솟구치는 커브와 가라앉는 싱커의 조합.

까다롭기 그지없다.

투심을 봐야 알겠지만, 마치 가위바위보 하는 느낌이 든다.

솟아오르는 커브, 상하 대신 좌우 변화가 있는 투심, 가라앉는 싱커.

개성이 확실한 세 가지 보기를 내놓고 맞추라는 듯 투구를 이어갔다.

“볼!” “볼!” “스트라이크!”

3-1의 카운트에서 작정하고 노려봤지만, 이번에도 마지막에 가라앉으면서 헛스윙이 됐다.

낮게 제구가 잘 된 싱커는 그만큼 치기 어려웠다.

“잠시만요.”

타임을 외치고 잠깐 타석에서 빠져나왔다.

‘거의 다 된 것 같은데.’

타석에 들어오기 전, 강주호가 해준 조언이 있었다.

‘언더 투수들은 정면 승부를 꺼려. 잘못 맞으면 한 방에 훅 가니까. 그러니까 공을 따라가려고 하지마. 네 존을 갖고 기다려.’

강주호의 말처럼 언더 투수는 중력을 거스르고 힘을 싣기 어려운 투구폼 특성 상 다른 투수들보다 구위와 구속이 낮았다.

이민수도 최고 구속이 135km에 불과했으니 구속만 놓고 보면 치기 어려운 공은 아니다.

결국 공의 무브먼트와 타이밍으로 승부를 보는 투수.

그래서 가위바위보란 표현이 더 어울렸다.

강주호의 말을 듣고 이번 이닝에 세 가지 구종을 모두 봤다.

그리고 지금 기다리는 공은 단 하나.

처음에 봤던 그 커브.

-따아악!

이민수의 손을 떠나 날아온 공이 더 솟아오르기 전에 빠른 타이밍에 당겨쳤다.

타구가 3루수 키를 넘는 걸 보고 그대로 2루까지 내달렸다.

“세이프!”

나 혼자만의 가위바위보였지만, 내가 이겼다.

이후 잭 미켈은 범타로 물러났지만 내가 3루에 들어갔고, 채지훈의 안타가 나오면서 무난하게 1점을 뽑았다.

하지만 3회 곧바로 1점을 내주면서 다시 동점.

후, 젠장.

오늘 경기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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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는 세 번 중 한 번만 이기면 된다.

투수로선 억울할 법도 하지만, 원래 야구란 게 그런 거니까.

아무튼 이 말대로라면 이미 2회부터 이민수에게 이긴 거였다.

근데 볼넷은 뭐지? 무승부? 아니면 판정승?

아무튼 4회 말, 볼넷을 얻어내면서 1루로 출루했다.

내 주력은 포수 중엔 빠르고 전체 타자 중엔 평범한 편이다.

도루는 아직 없지만, 상대가 이민수라면 혹시 도루 사인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사인은 안 나왔고, 눈치껏 리드폭을 넓히면서 이민수를 괴롭혔다.

“세이프!”

“그냥 뛰어라.”

이민수의 견제에 1루에 돌아오자 1루수가 말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사인이 안 나오네요.”

그 말을 하고 다시 리드폭을 넓게 가져갔다.

2아웃 주자 1루.

장타가 나오면 홈까지 노려볼 수 있다.

그리고 타석에 있는 잭 미켈은 충분히 장타를 기대할 수 있는 선수였다.

다시 투구를 시작한 이민수였지만, 공이 가운데 몰리는 게 보였다.

-따아악!

공이 맞자마자 곧바로 내달렸다.

목표는 최소 3루.

하지만 2루를 밟고 3루로 향할 때 3루 주루 코치의 손이 선풍기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그대로 3루 베이스를 밟고 돌아서 홈으로.

시야에 최필주가 자세를 잡는 게 보인다.

힐끔 중계 중인 공을 확인한 다음 채지훈의 슬라이딩 사인을 보고 그대로 최필주를 지나 슬라이딩.

“세이프!”

엉덩이에 미트가 닿는 게 느껴졌지만, 내 발이 베이스에 닿는 게 훨씬 빨랐다.

이걸로 이제 2대1.

다시 역전이다.

“마! 니 리틀 강주호 맞나! 행님이랑 너무 다른데?”

“제가 다 닮으려고 하는데 주력은 안 닮으려고 합니다.”

“맞다. 그런 거 닮으면 큰일 난다. 얼른 드가라.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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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양 팀 야수들이 자주 엎어지는 날이었다.

내가 아까 한 슬라이딩은 차치하고, 이민수야 언더투수답게 땅볼 유도가 좋은 투수였고 하스도 타자와 정면승부를 하는 투수다.

딱히 땅볼이나 뜬공 비율이 어느 하나 튀는 선수는 아니지만, 오늘 좋은 공들이 다 땅볼 유도에 최적화되어있다 보니 야수들이 수비를 위해 자주 엎어져야 했다.

이런 구도에선 수비가 좋은 팀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전년도 실책 1위인 우리 팀이 불리했고, 실제로 실책도 나왔다.

3회 실점한 것도 실책에서 시작했고, 더 치명적인 실책은 6회 초에 나왔다.

3루수 오준혁이 최필주의 무난한 번트 타구를 채지훈 머리 위로 날려버렸다.

다행히 잭 미켈이 백업을 오고 있어서 추가 진루는 막았지만, 1사 주자 2루가 무사 주자 1, 2루가 된 상황.

타석엔 9번 타자가 번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럴 땐 그냥 번트를 주는 게 좋다.

하지만 쉽게 주고 싶지 않았다.

현재 우리가 1점 차로 아슬아슬한 리드를 가져가고 있다.

1사 2, 3루가 되면 안타 하나에 역전이다.

실패를 유도할 겸 최대한 까다로운 코스로 공을 요구했다.

-딱.

낮은 코스의 커터.

빠진 공에 억지로 대려고 한 탓일까, 소리만 들어도 빗맞은 타구가 느리게 3루 방향으로 굴러갔다.

맞자마자 오준혁에게 내가 잡겠다는 사인을 주고 오준혁이 베이스를 밟는 타이밍에 맞춰 강하게 3루로 뿌렸다.

“아웃!”

아슬아슬했지만 포스 아웃 상황이라 아웃.

그리고 이번엔 오준혁이 1루로 정확하게 뿌리면서 2아웃.

“퍼펙트 가디언.”

소리가 들리는 곳엔 하스가 웃으면서 서 있었다.

언제 들어도 오글거리는 가디언 소리였지만, 칭찬이니까.

하스가 글러브를 맞대고 다시 마운드로 돌아갔다.

아직 방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2사 2루에 1번 타자.

오늘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체인지업으로 땅볼을 유도했다.

무사 1, 2루 무득점.

흐름은 다시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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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뒤 기회라고 했던가.

5회까지 2실점 투구수 70개로 효율적인 투구를 하던 이민수의 제구가 흔들렸다.

[아, 이민수 선수, 또 볼넷입니다!]

[이전까지 볼넷을 하나밖에 내준 적 없는 이민수 선수였는데 이번 이닝 벌써 2개쨉니다!]

[2루에는 오준혁, 1루에는 강주호. 그리고 타석엔 오늘 2루타 하나와 볼넷이 있는 김수호입니다.]

[바로 직전에 좋은 수비를 보여줬던 김수호 선수거든요. 하지만 피할 곳이 없습니다!]

스타즈 배터리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에 만난 김수호.

최필주와 투수코치가 급하게 마운드에 올라갔다.

“민수야, 괜찮아?”

“예.”

투수코치의 물음에 이민수가 대답하긴 했지만, 표정은 누가 봐도 창백해 있었다.

‘불펜에 여유가 있긴 한데···.’

1, 2차전에 투수전이 진행된 만큼 불펜 소모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민수가 갑자기 흔들린 거라 아직 몸이 다 풀리지 않았다.

결국 김수호와의 승부는 피할 수 없었다.

“어떡할래. 피하고 싶으면 시간 끌어서 바꿔줄게.”

“아닙니다. 제가 마무리 짓겠습니다.”

굳이 이민수에게 이런 말을 한 건 이민수를 자극하기 위함이었다.

무난하면서 소심한 성격의 이민수.

투수로서 그리 좋은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의지를 가다듬고 김수호를 무사히 잡아낸다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선수였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투수코치와 최필주는 빈손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야, 살살 하자.”

“... 네.”

‘표정 봐라. 존나 진심이네.’

김수호의 답이 늦은 건 머뭇거린 게 아니라 이미 타석에서 집중하고 있어서였다.

‘후, 민수야. 가자!’

초구는 오늘 경기 내내 김수호의 헛스윙을 끌어낸 싱커.

“스트라이크!”

“좋아! 이대로 하자!”

최필주가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김수호를 살폈다.

‘미동도 없네.’

일부러 자극하기 위해 한 말인데, 소용없었다.

일단 2스트라이크만 잡으면 된다.

다음은 싱커로 마무리.

그걸 위해 약간 바깥쪽으로 움직였다.

이번 공은 오늘 경기 김수호를 상대로 한 번도 던진 적 없던 슬라이....

-따아악!

“쒯.”

예측했다는 듯 망설임 없이 나온 방망이가 그대로 공을 강타했다.

“세이프!”

2루에 있던 주자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으며 최필주가 망연자실하게 2루에 서서 들어간 김수호를 바라봤다.

‘개새끼.’

별명처럼 아주 인정머리 없는 놈이었다.

올림픽 동료끼리 좀 돕고 살면 어디가 덧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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