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야구만 잘 하면 된다 - 3
#
방망이에 공이 맞는 순간 직감했다.
‘넘어갔다.’
아주 약간의 정적 이후 폭발한 소리에 귀가 다 먹먹해질 정도였지만, 그 어떤 홈런보다 기분이 좋았다.
날 지켜보는 수만 명의 관중을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는 그 느낌.
내 이름이 부산 전역에 울려 퍼지는 듯한 이 함성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홈에 발을 딛자 그 앞에 강주호가 서 있었다.
“나이스! 그거지!”
“역시 금메달은 다른가? 스윙 죽이네.”
강주호와 박은성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손을 치는 건지, 헬멧을 치는 건지 모를 정도로 두들겨 맞으면서 장비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앞엔 이주학이 피부와 상반된 흰니를 드러내면서 웃고 있었다.
“도와줄까?”
“좋지.”
2아웃이라 급하게 장비를 차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때 이주학이 나를 가로막았다.
“왜?”
“도와준 값은 줘야지.”
“뭐?”
어쩐지 웬일로 도와주더니.
“원하는 게 뭔데.”
“홈런 어떻게 쳤어?”
“어?”
“구종이나 이런 거 있을 거 아냐.”
“그냥 치니까 넘어가던데?”
“뭐? 죽을래?”
“아니, 진짜로.”
거짓말이 아니라 한가운데로 포심이 꽂히길래 그냥 휘둘렀더니 넘어갔다.
솔직히 말하면 이주학도 포심인 걸 알았으면 넘겼을 법한 공이었다.
“농담하지 말고. 좀 알려줘!”
진짜였지만 이대로 두면 계속 잡을 것 같아서 대충 둘러댔다.
“상대 투수 투심이랑 포심 구속 비슷한 거 알지?”
“어. 그 정돈 알지.”
“처음에 포심 히팅 포인트를 염두에 두고 방망이를 휘두르다 중간에 변화하는 걸 보고 예측해서 포인트를 바꾸면 돼. 어차피 저 투수 투심 변화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할 수 있어. 됐지?”
“... 뭐라고?”
“주학아, 그런 속담 모르냐? 뱁새가 황새 따라 하다 다리가 찢어진다.”
옆에서 듣고 있던 최치호가 말했다.
“넌 따라 하지 마. 다리가 아니라 몸이 두 조각난다.”
“...예.”
이주학이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설마 이 사람들 진심으로 믿고 있는 거야?
내가 무슨 눈이랑 뇌에 초고속카메라를 설치한 것도 아니고 투심이랑 포심을 날아오는 동안 구분할 수 있을 거라고 진짜 믿는 건 아니겠지?
애초에 저 투수가 던지는 변화구가 몇 갠데.
다시 변명하려고 했지만, 이미 이주학은 글러브를 들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설마 진짜 믿진 않겠지···?
#
재능의 벽.
사실 이주학은 남들에게 벽이 되면 됐지, 남을 보면서 벽을 느낀 적 없었다.
그건 프로에 와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자신의 뒤에 있다고 생각한 동기가 고개를 꺾어도 보이지 않을 만큼 위로 올라가니 솔직히 애가 탔다.
그래서 죽어라 뛰었다.
“이주학이, 네가 웬일이냐.”
“코치님, 펑고 부탁드립니다!”
휴식기 동안 퓨처스리그는 계속 열렸고, 이주학이나 이호민 등 어린 선수들은 휴식하는 대신 경험을 쌓기 위해 퓨쳐스 리그에서 뛰었다.
그토록 하기 싫었던 펑고를 자청할 만큼 이주학은 노력했다.
그 결과 리그 재개를 앞둔 연습 경기에서 안정적인 수비 능력을 보이면서 1군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까맣게 타버린 피부.
비록 확실한 주전은 아니지만, 그래도 1군에 남았다는 건 그에게 틀리지 않았다는 자신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김수호는 이주학이 뛰는 동안 날고 있었다.
‘괴물 새끼···.’
투심과 포심을 날아오는 동안 보면서 구분한다고?
공보고 쳐라라는 말이 저런 놈을 보고 하는 말인가 싶었다.
최치호의 말도 기분이 상했다.
‘몸이 두 조각 난다고?’
최치호가 나름 이주학을 생각해서 얘기해준 거지만, 단어 선정이 너무 셌다.
그리고 그 말이 이주학의 가슴속에 숨어 있던 열등감을 건드렸다.
솔직히 말하면 김수호가 존나 부러웠다.
올림픽 라이징 스탄가 뭔가에 1위로 선정된 것도, 금메달 딴 것도, 군 면제 받은 것도, 더 이상 주전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것도 전부 다.
물론 2군에서 김수호와 같은 방을 쓰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다.
근데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사람인 이상, 조절할 수 없는 감정.
‘나도!’
타자가 친 공이 허하준 바로 오른쪽을 지나 빠르게 다가왔다.
‘할 수!’
그 공을 백핸드로 잡고 그대로 한 바퀴 돌면서.
‘있다고!’
부드럽게 1루로 송구.
“아웃!”
와아아악!
이주학! 이주학! 이주학!
“오, 잘하는데?”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최치호가 엄지를 올리면서 감탄했다.
‘이래도 제가 두 조각 날 거라 생각하시나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주장의 포스는 너무 강력했다.
“감사합니다.”
#
이주학의 호수비 덕분에 이닝은 삼자범퇴로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세 번째 타구가 이주학에게 향했고, 평범한 타구였지만 송구 에러가 나오면서 결국 한 타자를 더 상대해야 했다.
뭐, 허하준이 실책 한두 번 경험하는 것도 아니고 별문제 없이 이닝이 끝났다.
문제는 이주학.
아까 호수비를 했을 땐 딱 봐도 자신감이 엄청났는데, 막상 실책 하니 우울해하는 게 보인다.
저런 상태로 타석에 들어가봤자 좋은 타격을 하기 힘들었다.
내가 이주학은 아니지만 어떤 마음일지 대충 이해는 됐다.
그런 만큼 지금은 어떤 위로도 딱히 쓸모없다는 것도.
‘무슨 방법 없을까.’
이주학의 단점은 사춘기 중학생처럼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거였다.
장점이기도 했지만, 야구선수로서 좋은 건 아니었다.
그런 이주학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일희일비하지 않고, 항상 일정한 마음으로 야구에 임하는 것.
근데 그런 방법을 내가 어떻게 아냐고.
애초에 그런 방법이 있었으면 내가 먼....
“여기 있네?”
우리 팀에서 이주학보다 더 피부가 검은 유일한 사람.
그리고 항상 일정한 마음으로 자신의 공을 던지는 사람.
“하스, 잠깐 얘기 좀 할까요?”
“음? 무슨 일인데?”
요그 하스.
우리 팀의 3선발이자 레타쿠라는 신을 믿으며 마운드에서 절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
“혹시 레타쿠를 믿는 데 조건 같은 게 필요한가요? 예를 들면 하스의 부족 출신이라던가, 그런 거요.”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통역에게 부탁했다.
“음, 아니. 레타쿠는 너 같은 사내를 좋아하지.”
“저요?”
“그래. 건강한 신체와 맑은 정신을 가진 사내.”
“그럼 레타쿠를 믿으면 하스처럼 문신 같은 걸 해야 하나요?”
“아, 이거?”
하스의 몸에는 일정한 패턴을 가진 문신이 있었는데, 차마 이주학에게 이거까진 권하기 힘들었다.
“아니. 이건 그냥 내가 마음에 들어서 한 거야.”
“그래요?”
사실 좀 주제넘은 것 같아 고민했지만, 어차피 선택은 이주학이 하는 거니까.
하스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주학 리, 저 친구라면 레타쿠께서 마음에 들어 하실 거다. 하지만 강요는 절대 안 돼. 강제로 믿는 건 오히려 안 믿느니만 못하다.”
“예. 당연하죠.”
“네가 주학을 설득해 오면 자세한 건 내가 설명하지.”
“고마워요 하스.”
“뭘. 넌 이미 레타쿠가 인정한 사내, 이런 부탁이라면 언제든지 해도 좋다.”
하스와 얘기하는 동안 이미 이주학은 대기 타석에 나가서 얘기하지 못했다.
2회 말 공격에선 삼자범퇴로 이닝이 끝났다.
이주학은 땅볼을 쳤지만 열심히 뛰면서 관중들의 환호를 받았다.
물론 본인은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진 않지만.
#
“야, 왜 너네만 용병 네 명 쓰냐?”
“네 명이요?”
4회 말 공격.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가자 최필주가 말을 걸었다.
“어. 유격수 용병 아냐?”
그렇게 말하고 혼자 낄낄거리는데, 솔직히 부정은 못 했다.
“노력의 결과죠 뭐.”
“그래, 열심히 하는 것 같더라. 넌 덜 열심히 하고. 우리 약속한 거 잊었어?”
헤어지기 전에 공항에서 얘기했던 걸 말하는 거였다.
“제가 대답은 안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와, 진짜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
최필주도 딱히 기대는 안 했는지 곧 말이 없어졌다.
결과는 중견수 뜬공으로 그다지 좋지 않았다.
뭐, 매번 홈런을 칠 순 없으니까.
스코어는 아직 3대0이었다.
마린스의 불펜을 생각하면 불안한 점수 차이지만, 오늘 선발은 허하준.
허하준은 지금까지 안타 1개 실책 1개로 2명의 주자만 출루를 허용한 상황.
불펜이 나올 일은 거의 없다.
“호주였으면 넘겼을 텐데. 아깝네.”
“그러게요.”
더그아웃에 들어와서 허하준과 반쯤 농담을 나눴다.
사직 구장은 펜스까지 거리는 평균, 하지만 펜스의 높이가 아주 높았다.
장 단점이 있는거니 딱히 불만은 없었다.
그보다 주학이한테 빨리 말하긴 해야 하는데.
“왜 그렇게 봐.”
계속 이주학을 힐끔거리다가 눈이 마주쳤다.
“아니, 그냥.”
“뭐 할 말 있어?”
“음.”
이왕 대화를 시작한 김에 옆으로 가서 앉았다.
“더워. 떨어져.”
“야. 너 한테 좋은 게 있는데 관심 좀 있냐?”
“불안하게 뭔 약쟁이처럼 말하냐?”
“음. 따지고 보면 약보다 좋을 수도 있어.”
“뭐? 미친놈아!”
“아니, 좀 조용히 해. 진짜 약이겠냐? 내가 올림픽에서 도핑 검사를 얼마나 받았는데.”
진짜 다행인 게 만약 결승에서도 내가 걸렸으면 세레모니도 못 할 뻔했다.
아무튼 이주학을 진정시키고 다시 자리에 앉혔다.
“너 투수한테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투수? 좋은 공 던지는 거 아냐?”
“아니. 내 생각은 좀 달라.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공을 던질 수 있는 거. 이게 제일 중요해.”
“그건 맞지. 근데 갑자기 투수는 왜?”
“타자도 비슷해. 일희일비하지 않고 본인의 스윙을 할 수 있어야지.”
무언가 짐작했는지 이주학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내 얘기냐, 그거?”
“일단 좀 들어봐. 내가 설마 너한테 이상한 거 알려주겠냐.”
하스와 레타쿠에 대해 설명해주자 이주학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진짜 그게 효과가 있다고?”
“어. 세계에 날고기는 부자들이 왜 종교를 믿겠어. 이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데 사람이 의지할 곳이 있으면 자기 능력을 100%, 아니 그 이상도 발휘할 수 있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유튜브에서 봤다.
“너는?”
“나도 있지.”
나는 나를 믿고, 허하준을 믿는다.
“스트라이크 아웃!”
때마침 이닝이 끝났다.
“아무튼 고민만 해봐. 하스는 언제든지 환영이래.”
#
5회 말 공격이 끝나고 클리닝타임 때 이주학과 하스가 같이 있는 걸 보자 그림이 묘했다.
진짜 같은 부족 출신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옆에서 통역이 열심히 설명해주고 있고, 이주학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통역사 저 양반도 사실 레타쿠 믿는 거 아니야?
어쩐지 만날 때마다 로또 용지를 들고 다니더니만.
“저 그림은 뭐냐.”
옆에서 훈련하던 최치호가 그걸 봤는지 내게 물었다.
“하스가 믿는 신이 있는데, 주학이한테 소개해 줬거든요.”
“아, 그 토레타?”
“아뇨. 레타쿠요. 토레타는 음료수.”
“아, 맞다. 그래서 갑자기 종교? 준이도 관심 갖더만.”
하스와 첫 호흡을 마치고 이준이 나한테 와서 레타쿠에 대해 물었던 게 생각이 났다.
“이준 선배도 레타쿠 믿어요?”
“글쎄? 근데 들어보니까 이상한 건 아닌 것 같던데. 하스도 먼저 물어보기 전에 말 한적도 없고. 그나저나 너도 믿냐?”
“아니요. 전 딱히.”
“그래?”
최치호는 내가 안 믿는다니까 흥미가 식었는지 다시 몸을 풀러 갔다.
음. 근데 주학이 표정이 진짜 뭐에 홀린 것처럼 풀어지는데.
내가 실수한 거 아니겠지?
#
클리닝타임이 끝나고 경기가 재개됐다.
허하준은 여전히 실점이 없었고, 상대 투수는 7이닝을 채우고 내려갔다.
그사이 우리는 1점을 더 추가해 스코어 4대0.
1회 홈런 이후 안타를 추가하진 못했지만 이게 정상이긴 했다.
매번 2안타, 3안타씩 치는 게 이상한 거지.
아무튼 하스가 계속 주학이한테 뭔가 말하는데, 궁금했지만 다가가진 않았다.
그리고 8회 말 때 이주학이 안타를 뽑아냈다.
그 틈을 타 하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주학이한테 뭘 알려줬어요?”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수행의 기본이지.”
“그래요?”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바로 레타쿠에 대해 말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레타쿠를 만나기 위해선 수행이 필요하다.”
“수행이요? 얼마나요?”
“최소 20년.”
어....
그렇구나.
“근데 저한텐 바로 믿을 생각 없냐고 물었잖아요.”
“너는 레타쿠가 선택한 남자. 이주학과 다르다.”
음, 뭐.
1루에서 1루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좋아하는 이주학을 바라봤다.
주학이가 과연 20년 동안 수행할지 모르지만, 야구 선수가 선수 생활하는 동안 사고만 안 치고 야구만 잘하면 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