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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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끼리의 대결은 서로 홈런 하나씩을 허용하면서 끝이 났지만, 점수가 달랐다.
허하준은 1점, 루카스 앤더슨은 3점.
경기가 8회에 접어들었을 때 스코어는 3대1.
나는 강주호 대신 1루로 들어갔고 포수 자리엔 최필주가 앉았다.
8회엔 무려 세 명의 투수가 올라왔다.
오상엽 – 이민수 – 이신영이 각각 한 타자씩 상대하면서 이닝을 끝마쳤다.
점수를 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선 답답한 일이었겠지만, 우리로선 상대 타자들을 흔들어 놓은 아주 좋은 작전이었다.
“Holy Shit!”
저렇게 극찬까지 하는데, 안 좋은 작전 일리가.
호재는 이어졌다.
8회 말, 1번 이규영부터 시작한 타선에서 1점을 더 뽑았다.
9회 초에 들어갔을 때 3점 차.
9회 초 1사 주자 1루.
국가대표 마무리 김형주가 3점의 리드에 자신 있게 공을 뿌렸고, 전 타석에 홈런이 있던 알렉스 브래드포드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따악!
강습 타구를 유격수 우오준이 가볍게 잡아내고 2루로, 그리고 최건우가 공을 받고 마지막으로 내게로.
“우아아아아악!”
“우승이다!!!”
“금메달!!! 시발!!! 해냈다!”
공을 받아내자 더그아웃에서 괴성과 함께 선수들이 뛰쳐나왔다.
마지막 아웃을 잡은 공을 뒷주머니에 넣은 채 마운드로 달려갔다.
글러브, 모자 할 것 없이 손에 잡히는 모든 걸 공중으로 던지면서 기쁜 감정을 뿜어냈다.
“야, 잡아!”
“빨리 빼지 마시고!”
물건뿐만 아니라 감독님, 코치님, 그리고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는 강주호와 양준까지.
“하나, 둘, 셋!”
-우승이다!
“으아악!”
전부 하늘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다음 차례는.
“여깄다! 빨리 나와!”
“우리 복덩이! 금메달 너 때문에 딴 거다!”
“올려!”
내가 됐다.
아무튼 그렇게 웃고 즐기다 보니 어느새 시상식이 열리고, 모두의 목에 금메달이 걸렸다.
“으. 퉷. 순금은 아니네?”
옆에서 우오준이 메달을 이빨로 깨물었다.
“더럽게, 뭐 하냐?”
“원래 이런 거 받으면 해야 하는 게 국룰입니다, 국룰.”
소소한 웃음과 함께, 마지막으로 다 같이 촬영하면서 결승전이 마무리 됐다.
“자, 찍겠습니다!”
내 왼쪽엔 허하준이, 오른쪽엔 강주호가 섰다.
이 두 사람과 함께 이루겠다고 말했던 우승.
비록 한국시리즈는 아니었지만, 드디어 첫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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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우승! 결승서 미국 상대 4대1 승리! 24년 만에 금메달 재탈환!]
[7전 전승, 베이징의 신화를 재현하다!]
[금메달보다 값진 수확, 한국 야구의 미래를 발견하다!]
[김수호 7회 결승 홈런, 올림픽 5경기서 4홈런]
[김목근 감독의 신의 한 수. 우승으로 이끌다.]
[야구 금메달의 주역, 김수호는 누구?]
[김목근 감독, ‘올림픽 MVP는 당연히 김수호’, ‘앞으로 김수호의 시대가 열릴 것’]
[김수호,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 ‘어서 팬들 만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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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의 올림픽 결승전.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의 유망주가 출전하고 언젠가 메이저리그로 올 수 있는 선수들이 출전하는 만큼 미국 현지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는 경기였다.
[한국 투수가 2년 뒤에 메이저 진출하는 그 투수 맞지?]
-메이저 최소 3선발이라는 평가가 있던데 공 어때 보여?
ㄴ 포심은 최고 96마일(약 155km)에 묵직하고 스플리터는 90마일(약 145km)에 각이 예술인 투수야
ㄴ 공 하나만 봐도 알겠는데? 앤더슨에게 전혀 밀리지 않잖아.
ㄴ 꽤 탐나는데? 한국인이면 몸값도 그리 안 비싸지?
ㄴ 캉 형제들 이후 한국 선수들이 전부 실패해서 구단들이 머뭇거릴 수도 있어.
ㄴ 아무튼 우리 팀에 잘 어울리겠어.
ㄴ 응원하는 팀이 어딘데
ㄴ 필리스
ㄴ 쉣
[한국 투수 공도 좋은데, 난 포수가 더 눈길이 가는데?]
-혹시 정보 아는 사람 있어?
ㄴ 정보는 알지만, 관심 갖기엔 너무 일러
ㄴ 왜?
ㄴ 고작 18살밖에 안 됐거든
ㄴ 뭐? 저런 스플리터를 완벽하게 포구하는 선수가 고작 18살?
ㄴ 심지어 올림픽 기간 타율이 5할이 넘어. 홈런 3개는 덤
ㄴ 홈런도 3개? 미쳤는데?
ㄴ 18살에 한국인 루키 포수? 이런, 필리스 팬들이 좋아하는 거만 가지고 있잖아
ㄴ 정신 차려. 저런 선수라면 필리스가 아니라도 무조건 좋아한다고
ㄴ Fucking 필리건
[멍청한 놈들. 기껏 앤더슨까지 보내줬는데 준우승?]
-WBC에서 보자
ㄴ 이러고 WBC도 지면 어쩌려고
ㄴ 25인 외가 나간 올림픽이랑 올스타가 출전하는 WBC가 비교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ㄴ 하긴, WBC는 우승 못하면 진짜 망신이지
ㄴ 올림픽도 마찬가지야
그렇게 김수호는 미국에 있는 팬들에게까지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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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역시 호주는 소고기제! 그치!?”
“맛있긴 하네요.”
3주 동안 놀지도, 마음껏 돌아다니지도 못한 대표팀을 위로하기 위한 선물.
바로 도미니카 공화국 전에 콜드게임으로 얻어낸 강주호의 골든벨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KBO나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등에서 자리를 마련해주긴 하겠지만, 그땐 높으신 분들도 올 테니 마냥 축하를 위한 자리는 아닐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축하하는 자리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그래서인지 모두 미친 듯이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여기 1인분 추가요!”
“한국말로 하면 어떡하냐. 어... 원 모얼 아니지, 쓰리 모얼 플리즈.”
이런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으니, 솔직히 얼마나 나올지 도저히 감이 안 잡혔다.
하지만 강주호는 그저 웃으면서 술과 고기를 먹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허하준이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해?”
“아, 저번에 저랑 먹었던 건 진짜 조금 먹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요.”
만약 강주호가 오늘처럼 먹었다면 난 지금 국가대표가 아니라 그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있지 않았을까?
“수호야, 너 고기 잘 굽는다. 얼른 먹어.”
“그거 피 떨어지는데···.”
“레어 모르냐? 이래서 부산 촌놈은. 쯧.”
우오준이 겉만 익힌 소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뭐, 아무튼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
“자자, 주목. 감독님께서 한 말씀 하신답니다!”
“와아아아!”
올림픽 기간 중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우승으로 증명해낸 김목근 감독님.
“다들 고생 많았다. 4년 뒤에 또 볼 수 있으면 좋겠구나.”
무뚝뚝하신 성격다운 담백한 말씀이었다.
김목근 감독님의 나이가 나이다 보니 은퇴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건 아니신가 보다.
“어, 방금 수석코치님 표정이 안 좋아지신 거 같은데요?”
“뭐 임마? 헛소리하지 말고 고기나 먹어.”
“자네 감독이 하고 싶나? 여기 그리 좋은 자리는 아니야.”
“어후, 아닙니다. 전 감독님이랑 같이 은퇴해야죠. 나이가 몇인데.”
진실은 수석코치님만 알 것이다.
아무튼 감독님의 말이 끝나고, 이 자리의 사실상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두 명의 선수가 중앙으로 나왔다.
“크흠. 뭘 이런 걸 하라고.”
“에이, 그래도 은퇴인데 한마디 하셔야죠.”
“막상 판을 깔아주니까 민망하네. 주호야, 너 먼저 해라.”
강주호와 양준.
프로 선수 중에 은퇴를 하고 싶을 때 하는 선수가 몇이나 될까.
한국 야구 선수 중 아마 지금까지 100명이 채 안 될 거다.
그만큼 부상, 부진 등의 이유로 등 떠밀려 은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프로 은퇴는 아니었지만, 최고의 선수들만 올 수 있는 국가대표 은퇴는 프로 은퇴만큼 힘든 일이었다.
보통 나이를 먹으면 기량이 떨어져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마련이니까.
특히 1루수는 워낙 쟁쟁한 선수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고, 포수는 오랫동안 하고 싶어도 부상과 체력적인 부담이 많은 포지션이라 더 힘들었다.
그런 두 포지션에서 30 후반까지 국가대표로 뛴 두 선수는 정말 대단한 선수들이었다.
“내가 이런 거 하지 말라니까. 우오준 너지?”
“아닌데요.”
“크흠. 뭐, 아무튼 다들 고생 많았다. 사실 국가대표란 게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야. 남들보다 시즌 빨리 시작해야 할 때도 있고, 남들 쉴 때 경기를 더 뛰어야 하니까.”
강주호가 잠깐 목을 축이고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유니폼에 태극기를 걸 수 있는 건 수많은 선수 중에 오직 30명 남짓한 우리뿐이다. 그만큼 우리가 모든 선수를 대표하고, 국민들이 우리를 통해 프로 야구 전체를 본다고 생각하고 행동하자. 너희들이라면 잘할 거라고 믿는다.”
“울지마! 울지마!”
“아무도 안 우는데요?”
“새꺄, 분위기 몰라? 원래 이런 연출이 필요한 거야.”
“너넨 진짜···. 어휴, 지용이가 고생이 많다.”
“하하.... 그렇죠. 뭐.”
“아니, 선배님. 인정하시면 저희가 뭐가 됩니까!”
“나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실망이다!”
억지로라도 분위기를 띄우려고 하는 우오준과 이규영을 보면서 모두 웃었다.
자발적인 은퇴는 절대 슬퍼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축하해줘야 할 일이고, 또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적어도 나는 우오준과 이규영의 행동에 동의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면, 다들 너무 고맙다.”
강주호가 모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금메달 한 번 메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너희 덕분에 소원 하나는 이루게 됐다. 진짜 고맙다.”
한 시대를 상징했던 선수의 인사에 우리는 그저 박수로 화답했다.
그리고 양준 차례.
“앞에서 어떤 놈이 다 말해서 딱히 할 말이 없네.”
“그러니까, 흡. 말입니다.”
“선배님, 웁니까?”
“아냐, 그냥 고추가 매워서 흡.”
양준이 훌쩍이는 우오준을 따뜻하게 바라봤다.
“솔직히 마지막이라고 자리를 깔아주니까 진짜 실감이 나네. 사실 너네 입장에선 내 빈자리가 그리 안 느껴질 거다. 워낙 괴물인 놈이 한 명 나왔으니까.”
양준과 눈이 마주쳤다.
자뻑은 아닌데, 솔직히 내 얘기는 맞으니까.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는데 너희 정말 멋지더라. 선배가 아닌 한 명의 야구팬으로서, 국민으로서 정말 흥분되는 경기였어. 지금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난 끝. 더는 못해.”
아무래도 오글거리는지 양준은 비교적 짧게 하고 끝냈다.
“자, 모두 고생한 선배님들께 박수!”
-짝짝짝
그렇게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두 전설이 나란히 국가대표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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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은 강주호를 포함한 최지용, 양준 같은 고참들이 나눠서 계산했다.
“내가 사겠다니까!”
“됐다. 너만 은퇴하냐?”
“다음 국대에 올 수 있을지 모르니까 지금 미리 사놓죠 뭐.”
훈훈한 광경이 지나고, 이제 메인이 남았다.
“전 잠깐 만날 사람 있어서 갔다 올게요.”
“뭐? 여자?”
“아뇨. 그럴 리가요.”
“스읍, 수상한데.”
계속 의심하는 이규영한테 그냥 한 번 웃어주고 이탈했다.
“오, 김수호 선수 아니에요?”
선수촌 내였지만 어쩐지 다른 종목 선수들이 많이 알아봐서 잠깐 얘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다 보니 어느새 약속한 시각이 됐다.
“왔냐?”
“어.”
아까 마신 술 때문인지 약간 비틀거리면서 내 앞에 온 황인재.
내가 황인재를 싫어한 이유.
아니, 싫다기보단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낀 이유.
오늘 경기를 치르면서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인간 황인재가 아닌, 야구 선수 황인재에게 거부감을 느꼈다.
내가 중학교 때까지 한 야구와 고등학교부터 한 야구가 달라진 이유는 황인재 때문이었다.
오직 승리만을 위한, 그걸 위해서라면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는 마인드와 방식.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항상 황인재가 뛰는 걸 보면 혼자 야구 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내가 추구했던 야구와 정반대의 분위기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재학 내내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한 지는 이제 물어보면 알겠지.
“잠깐 앉자.”
황인재가 내 옆에 앉는 것 대신 날 내려다 봤다.
“짧게 얘기하고 끝내자.”
“그래. 그래서, 왜 그렇게 말한 건데?”
“한심해서.”
“뭐?”
술기운 때문일까.
순간 열이 확 치솟았다.
“네가 그런 재능을 가지고, 그딴 표정을 짓고, 그러면서 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존나 한심해서 그랬다.”
“그건···.”
“그래도 지금 여기서 너랑 얘기하는 걸 보면, 내 눈은 정확했네.”
“....”
“내가 말한 재능이 야구 실력이라고 생각해?. 재능만 갖고 야구 해봤자 고만고만한 선수에서 끝날걸? 내가 말한 건 재능에 맞지 않는 네 노력이야.”
내가 아무 말 않자 황인재가 이어 말했다.
“뭐, 됐어. 넌 내가 원하는 만큼 해줬으니까.”
“뭔 소리야.”
“네가 내 방식을 싫어하는 것 정돈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나도 네 방식이 싫거든.”
"그래서?”
“내 방식과 네 방식, 뭐가 옳은지 내기 하자. 피닉스와 마린스. 두 꼴찌팀을 먼저 우승시키는 쪽이 이기는 거로. 어때.”
“...콜.”
“좋아, 그럼 올해 부....”
“근데 이번 올림픽은 왜 빼냐?”
“... 뭐?”
"이번 올림픽은 내 방식으로 우승했잖아. 안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