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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46화 (46/203)

46화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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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투수도 중요했지만, 투수를 만나기 위해선 2회 초를 잘 마무리 지어야 했다.

4-5-6번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

누구 하나 만만한 타자가 없다.

타석에 들어온 4번 타자 알렉스 브래드포드는 일본의 홈런왕 출신의 타자.

올해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본으로 건너갈 때만 해도 공갈포 소리를 들었지만, 이젠 컨택도 좋아져 충분히 메이저리그를 노릴 수 있다는 타자였다.

‘완전 붙었네.’

한 방이 있는 타자를 상대로 몸쪽 승부는 부담스러웠다.

타자도 그걸 아는지 바깥쪽을 치기 위해 완전히 타석에 붙었다.

덩치가 있는 선수가 타석에 붙으니 타석이 꽉 찼다.

다른 투수라면 부담감을 느낄법한 상황이었지만, 허하준은 아무 망설임 없이 내가 원하는 곳으로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What?”

몸쪽에 붙었다면 책임을 져야지.

몸쪽 높은 공이 타자가 뒤로 피할 만큼 가깝게 들어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타자의 선택.

공은 정확히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갔다.

“방금 머리에 맞을 뻔했는데 이게 스트라이크라고?”

타자가 심판에게 항의해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초구를 통해 선택지를 제시했고, 이제 타자가 선택해야 했다.

바깥쪽을 포기하고 타석에서 멀어질 것인가, 아니면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

그의 선택은 결국 타석에서 멀어지는 거였다.

그걸 보자마자 곧바로 바깥쪽 포심 사인을 냈다.

“파울!”

방망이가 따라 나왔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약점을 알고 있는데 이제 몸쪽 승부 할 필요가 없지.’

어제 최지용와 호흡을 맞추면서 느낀 걸 1회에 적용했다면, 이번엔 나카무라의 공을 보면서 느낀 걸 적용할 차례.

“스트라이크 아웃!”

나카무라의 투피치가 먹힌다면, 허하준 또한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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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 스트라이크 아웃입니다!]

[우리 한국 배터리, 배짱이 정말 대단하군요. 선두타자를 상대로, 그것도 한 방이 있는 알렉스 브래드포드 선수를 상대로 초구에 몸쪽 높은 포심으로 카운트를 잡은 게 주요했습니다.]

[쉽게 던질 수 있는 공은 아니죠?]

[예. 허하준 선수 배짱이야 원래 알고 있었지만, 김수호 선수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김수호 선수가요?]

[리그에서부터 허하준 선수와 볼배합은 전부 김수호 선수가 내고 있었거든요. 오늘도 보시면 허하준 선수가 절대 고개를 안 젓습니다. 즉, 첫 번째 몸쪽 높은 공도 김수호 선수가 사인을 낸 거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엄청나군요.]

[맞습니다! 이걸 기대하고 김목근 감독이 결승전 선발로 허하준 선수와 김수호 선수를 내정한 겁니다.]

[다음 타자는 5번 타자 존 윌슨 선수입니다.]

[이 선수는 현재 스타즈에서 활약 중인 선수죠? KBO리그에서도 타격 상위권에 랭크된 선수입니다. 이미 허하준 선수와 상대를 해본 선수거든요. 조심해야 합니다.]

[말씀하신 순간 초구! 쳤습니다. 유격수 잡아서 1루로, 아웃입니다!]

[브래드포드 선수한테 포심하고 스플리터만 던져놓고 다음 선수 초구 체인지업. 이거 타자가 예상하기 쉽지 않죠.]

[윌슨 선수가 허탈한 표정으로 물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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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슨과 허하준의 맞상대 기록은 6타수 1안타.

상대 전적에서 특이한 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체인지업을 던진 적이 없다는 거였다.

그걸 노려 초구에 체인지업을 던지니 그대로 땅볼로 아웃.

‘리그에서 만나도 체인지업이 아른거리겠지.’

이어서 6번 타자 역시 범타로 처리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윌슨 표정 봤냐? 살살해.”

“살살? 결승전인데 살살?. 수호야 하준아, 아예 살과 살을 분리해 버려.”

최필주의 말에 강주호가 나서서 차단했다.

이런 농담도 할 정도로 아직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알겠지? 순살로 만들어 버리라고!”

농담 맞겠지?

시작이 좋았다.

6타자를 상대로 퍼펙트기도 했고, 중요한 건 투구수 관리가 잘 됐다.

2회에 10개도 안 던졌으니까.

“오늘 컨디션 진짜 좋은데요?”

“근데 타자들은 영 아닌 거 같은데?”

허하준의 말에 타석을 보자 그사이에 김민주가 땅볼을 치고 아웃당했다.

“저는 좋아요.”

“그래? 다다음이지? 기대할게.”

내 말에 허하준이 웃으면서 어깨를 두드렸다.

진짜 좋기도 했고, 허하준이라도 혹시 모를 긴장이 있으니까 풀어주려고 한 말이다.

아무튼 적극적으로 승부를 거는 투수는 이래서 까다롭다.

허하준 역시 적극적으로 승부하고 있어서 경기 자체의 템포가 빨라지는 느낌이 든다.

‘페이스를 내주고 싶진 않은데.’

야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엔 기세와 흐름이 중요했다.

이걸 한 번 끊어줘야 할 텐데.

김민주가 들어오자 대기타석으로 나갔다.

타석에 선 황인재 역시 나와 생각이 비슷한지 카운트가 몰리기 전에 적극적으로 방망이가 나갔다.

-따악!

잘 맞은 타구가 그대로 중견수와 우익수를 가를 듯 날아갔다.

“저걸 잡아?”

하지만 우익수의 엄청난 다이빙 캐치에 공은 그대로 사라졌다.

이거 분위기 완전히 넘어갔겠는데?

저런 투수가 흐름까지 타면 그날은 진짜 미친 날이 된다.

제일 좋은 건 그 흐름을 끊어놓는 한 방인데.

오늘 첫 타석부터 크게 휘둘렀다간 되려 타격감만 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세를 내주고 싶지도 않았고,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이라 욕심이 났다.

상대 수비수들은 평소보다 약간 물러나 있는 상황.

일단 초구를 지켜 보고 생각하기로 했다.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날카로운 공이 들어왔다.

마치 투심처럼 변화가 오면서 날아오다 끝에 가라앉는 빠른 공.

싱커.

구속은 150km를 살짝 넘겼다.

이 정도 구속을 가진 싱커는 처음 봤다.

“볼!”

2구엔 볼이 되긴 했지만 높은 투심이 들어왔다.

아니, 투심이 맞긴 한 걸까?

마지막에 가라앉는 것만 제외하면 싱커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볼카운트 1-1에서 가장 중요한 3구.

-딱!

“파울!”

“아오! 아깝다.”

약간 실투성 투심이 몸쪽에 들어왔지만, 싱커를 의식하는 바람에 방망이 위쪽에 맞아서 파울이 됐다.

그래도 파울이라 어이없게 아웃 된 것 보단 나으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타석에 섰다.

“파울!” “파울!” “파울!”

2스트라이크에 몰리자 존을 넓히고 언저리에 오는 공들을 전부 쳐 냈다.

7번째 공이 날아올 때, 생각지도 못했던 공이 들어왔다.

‘슬라이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

당연히 알고 있던 공이지만, 계속 싱커와 투심만 쳐내다 보니 어느새 기억 속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이미 스윙을 멈추기엔 늦었고, 최대한 컨택해내기 위해 오른쪽 손을 놓으면서 타격했다.

-딱.

3루 라인을 따라 구르는 공.

파울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고 3루수가 뒤쪽에 수비하고 있는 게 보였다.

‘잘하면 살겠는데?’

포수 치곤 빠르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공을 한 번 확인하고 냅다 뛰었다.

어떻게든 1루에 나가고 싶어 무작정 슬라이딩했다.

약간의 흙먼지 사이로 심판의 목소리가 들린다.

“세이프!”

“나이스! 잘했다. 수호야.”

1루 코치님의 말을 들으며 몸을 털고 일어섰다.

“슬라이딩 기가 막히네. 나이스 플레이!”

“감사합니다.”

일루 코치의 칭찬과 함께 작전을 전달받았다.

사실 작전이랄 것도 없는 게, 2아웃이라 방망이에 공이 맞으면 냅다 뛰어야 했다.

근데.

“세이프!”

날 상대로 견제를 왜 이렇게 많이 하는 거야.

리드폭이 넓은 것도 아니고, 내가 도루를 하는 선수도 아닌데.

그리고 견제할 때마다 날 보면서 웃는데, 좀 무서웠다.

“원래 저런 놈이야.”

내가 뭐라 하기 전에 1루를 보고 있던 댄 가르시아가 말했다.

괜히 열받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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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후속타 불발로 홈에 들어오진 못했다.

그리고 더그아웃에 들어오자마자 혼났다.

“야, 1루 슬라이딩이 그냥 뛰는 것보다 느린 거 몰라?”

“죄송합니다.”

“뭐라 하는 게 아니라, 네가 다칠까 봐 그러지. 지금 네 몸은 네게 아니야. 국민들 꺼 지.”

이규영이 괜히 머쓱하게 만드는 말과 함께 몸에 묻은 흙을 털어줬다.

“그래도 멋있었다.”

“흐흐. 감사합니다.”

“하, 근데 자꾸 내 역할까지 뺏어가려고 하네? 그러다가 1번 타자로 나오겠어 아주.”

“그럴까요? 포수 1번 타자는 지금까지 없지 않았을까요?”

“네가 지금 올림픽에서 하는 거 자체가 역사에 없었다.”

“그건 맞죠.”

“얼씨구.”

내가 빼지 않고 긍정하자 이규영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근데 맞는 말이니까.

-딱.

포수 장비를 다 차고 나갈 준비를 했다.

“갈까요?”

“그래. 나가자.”

많은 일들이 있는 것 같은데 이제 고작 3회.

어쩐지 경기가 길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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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이 넘어갔군.’

분명 상대방의 날카로운 타구를 우익수의 슈퍼플레이로 걷어냈을 때, 흐름을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회 말, 새로운 경계 대상이었던 그 포수가 내야안타를 쳤을 때.

그때부터 한국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다.

때로는 가장 어린, 또는 가장 오래된 선수의 허슬 플레이로 다른 선수들에게 영향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흐름이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해 미국 감독은 3회 초 공격에 기습 번트나 지속적인 커트를 주문하는 등 노력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저 루키 포수와 투수의 호흡을 끊기 힘들다.’

야구는 타이밍의 스포츠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작 0.4초 만에 도달하는 공을 쳐내기 위해서 투수와 타자의 타이밍 싸움이 치열하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저 배터리는 공을 받자마자 곧바로 투구를 준비했다.

타자 입장에선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감독은 가장 믿음직스러운 선수를 불렀다.

“가르시아.”

“예.”

“가서 한 방 치고 와.”

아무리 투수가 잘 던진다고 하더라도 경기의 승패를 정하는 건 점수.

서로 점수를 못 낸 건 똑같다.

이럴 때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건 역시 홈런.

지금까지 안타 1개를 허용한 게 전부인 상대 투수였지만, 홈런, 아니 장타만 나와도 충분히 흔들 수 있다.

그리고 이번 미국 대표팀은 그런 능력이 있는 선수가 대거 포진되어 있었다.

4회 초 공격엔 3번 타자 댄 가르시아와 알렉스 브래드포드가 나선다.

이전 타석에 공을 봤기 때문에 충분히 좋은 타구를 날릴 기회였다.

하지만 이걸 반대로 말하면.

‘실패하면 완전히 흐름이 넘어간다.’

이번 경기의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승부처.

“스트라이크 아웃!”

댄 가르시아가 2번 타자가 아웃되는 소리를 듣고 타석에 섰다.

하지만 김수호의 플레이에 영향을 받은 건 미국팀뿐만이 아니었다.

외야의 정중앙에서 멀리 타석을 바라보고 있는 이규영이 생각했다.

‘쪽팔리게.’

4년 전 떨어졌던 올림픽 국가대표라는 꿈도 이뤘고, 군면제도 확정됐다.

이제 코앞에까지 온 마지막 목표, 금메달.

그래도 나름 선배라는 것들이 마지막까지 20살짜리 막내 버스를 타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 경험은 8강이나 4강에서 충분히 즐겼다.

가뜩이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이규영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게 김수호의 1루 슬라이딩이었다.

그래서 타석에서 좀 보여주려고 했지만, 3회 타석에선 결국 또다시 땅볼.

항상 국가대표 1번 타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그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를 상징하는 건 1번 타자 말고 또 있었다.

-따아악!

‘최소 펜스!’

타구음을 듣자마자 절로 몸이 반응했다.

타구가 정확히 보이진 않지만, 서도하의 콜을 들으면서 좌측으로 뛰었다.

펜스에 다다른 순간, 공이 보였다.

펜스 플레이는 서도하가 이미 백업을 온 상황.

고민을 하기도 전에 이미 몸은 펜스를 딛고 평소보다 높이 점프를 뛰었다.

몸이 펜스에 부딪힌 충격과 글러브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동시에 느껴졌고, 왼손을 움켜쥔 채 그대로 한 바퀴 굴렀다.

“미친놈아!”

서도하가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왔다.

우익수 김규완 역시 마찬가지.

“캬. 나 아직 안 죽었네.”

글러브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원형의 느낌.

그대로 꺼내서 서도하에게 던져줬다.

“어때요? 이 정도면 버스는 아니겠죠?”

“갑자기 뭔 소리야.”

이규영의 눈에 서도하의 뒤편에 엄지를 들고 있는 김수호가 아주 조그맣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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