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세대 교체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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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벤치의 승부수?
에이스의 호투?
그것도 아니면 4번 타자의 결정력?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 있는 답이 존재하는 질문은 아니지만, 김목근 감독이 생각하는 답은 바로 의외성, 즉 변수이다.
사실 위의 세 가지는 일종의 상수다.
팀의 중심이 되는 선수와 감독이 반드시 해줘야 하는 부분.
하지만 상수 대 상수로 붙으면 전력 차이가 난다고 평가받는 미국과 일본에 이기기 힘들었다.
물론 단기전이라는 변수가 있지만, 확률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단기전에 승자를 예측하는 게 언제나 어려운 이유는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리그에서 1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던 에이스가 단기전에선 새가슴 5점대 투수로 전락하기도 하고, 홈런을 50개 친 타자가 홈런을 1개도 치지 못하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정규 리그에서 1할을 치던 타자가 갑자기 3할을 칠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처지는 선발 투수가 에이스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이런 선수들을 보통 미친 선수라고 부른다.
주로 가을 야구에서 쓰는 말이지만, 올림픽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상수’를 어떻게 공략하느냐.
그리고 ‘변수’가 어떤 활약을 펼치느냐.
이게 단기전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이다.
야구 국가대표 코치진은 지난 1년간 미국과 일본의 상수에 관해 연구해왔다.
하지만 상대도 한국의 상수라고 볼 수 있는 최지용이나 허하준, 강주호 등에 관해 연구했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 사실상 100%였다.
벤치로서는 이 선수들을 믿고 맡길 수밖에 없다.
항상 제 몫을 해주는 선수기도 했고.
그러나 변수는 얘기가 좀 달랐다.
지금 대표팀에 변수라고 부를 수 있는 선수는 단 한 명.
김수호.
같은 나이의 황인재도 있었지만, 황인재는 시즌 처음부터 본인의 존재감을 뿜어낸 선수였으니 제외.
애초에 양준이 부상으로 빠진 것부터 변수였고, 오직 허하준 전담 포수로서 생각했던 김수호가 이런 활약을 펼치는 것도 변수였다.
수비에선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주며 증명, 그리고 공격에서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며 또 증명.
그래도 만 18세의 루키 포수에게 주전 포수라는 중책을 맡기기엔 고민이 따랐다.
하지만 결승전에 허하준이 등판하면 김수호가 포수다.
그렇다면 그 전에 토너먼트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게 맞았다.
심지어 김수호는 대표팀에서도 평가전 직전까지 생각도 안 하던 선수.
그 짧은 시간 안에 다른 팀이 김수호를 분석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만큼 변수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는 선수였고, 실력으로 증명했다.
대표팀의 백업이지만 어느 정도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는 최필주냐, 아니면 변수로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 수 있는 김수호냐.
김목근 감독의 고민은 8강, 호주전 전날까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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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이 돌아왔다.
부상에서 나았다는 게 아니라, 본인 말에 의하면.
“몸이 근질거려서 도저히 못 있겠더라.”
라고 한다.
마지막 경기를 크게 이기기도 했고, 1등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분위기는 이루 말할 것 없이 좋았다.
거기에 양준까지 합류하니 솔직히 하루의 휴식일이 오히려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쉬는 바람에 좋은 흐름이 살짝 끊어진 느낌이랄까.
그래도 호주전 선발로 내정된 최정윤은 아주 기뻐했다.
양준의 부상 이후 경기중에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아 보였는데 다행히 제 컨디션을 찾은 것 같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양준이 아직 절뚝거리면서도 굳이 돌아온 건 아마 최정윤 때문이 아닐까?
나도 허하준이 부상 당했다면 경기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을 거 같으니 말이다.
양준이 선수단과 얘기를 나누더니 나한테 다가왔다.
“TV로 봤는데, 이야 네덜란드전 홈런 장난 아니던데?”
“감사합니다.”
“너 아니었으면 위험했더라. 원래 이런 단기전은 흐름이 중요한데, 거기서 네가 딱! 홈런을 치니까 우리가 완전히 흐름을 탄 거지. 좋은 흐름으로 도미니카전까지 콜드로 이기고. 진짜 좋은 홈런이었어.”
양준의 별명은 양줌마.
포수로서 투수를 자식처럼 아끼는 모습에 생긴 별명이라는데, 사실 말이 많아서 그렇다는 게 정설이었다.
“선배님이셨으면 이전에 이미 홈런을 치시지 않았을까요?”
“어이구. 우리 감독님이 퍽도. 나한테도 무조건 번트시켰을걸? 흠. 그래도 한두 타석은 아니었으려나?”
아직 타자로서 경쟁력이 충분한 강주호와 다르게 양준의 성적이 점점 떨어지는 건 맞다.
그래도 이뤄낸 업적이 있지, 3연 번트는 아니었을 거다.
아무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최정윤도 와서 같이 얘기하게 됐다.
“그때 챌린저스랑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었나? 초구부터 똥볼을 던지길래 난 네가 바지에 똥 싼 줄 알았다.”
“선배님, 요즘에 그런 농담 하면 욕먹습니다.”
“누가 욕해? 수호, 너야?”
“전 아닙니다.”
“그럼 너네. 최정윤, 이리 와. 신인 때 홈런 맞고 울던 놈이 많이 컸다?”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나이가 무색하게 편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양줌마라는 별명이 이해됐다.
사람들이 별명을 참 잘 짓는단 말이지.
“양준 선수, 감독님이 찾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그때 스텝 중 한 명이 다가와 양준을 데려갔다.
아직 완벽하게 나은 게 아니라 목발을 짚으면서 절뚝거리는 모습.
최정윤은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양준이 사라지고 잠깐의 정적 이후, 최정윤의 입이 열렸다.
“잠깐 앉을래?”
“예.”
“으챠. 어제 홈런 멋지더라. 1루 수비도 잘하던데?”
“감사합니다. 선배님도 1차전 등판 멋졌습니다.”
“그냥 형이라 불러. 말도 편하게 하고. 솔직히 너랑 국가대표에서 만날 줄을 몰랐는데.”
“저도 그래요.”
만나도 한참 후라고 생각했겠지.
“수호야, 우승하면 양준 선배도 금메달 받을까?”
“그렇지 않을까요?”
“그치? 주겠지? 그러려면 내가 내일 꼭 잘 던져야 하고.”
“그건 그렇죠.”
선발이 무너지면 아무리 우리가 더 강한 팀이라고 해도 경기 운영이 힘들 수밖에 없다.
타자는 쫓기듯 타격하게 되고, 보통 그러면 결과가 좋지 않으니까.
“내가 프로 와서 양준 선배한테 진짜 많이 배웠거든?”
“그런가요?”
나도 고작 한 달이었지만, 강주호, 강기호, 그리고 허하준한테 많은 걸 배웠다.
올해까지 3년간 같이 한 배터리, 최정윤은 당연히 많은 걸 배웠을 거다.
“그래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이 뛰는 올림픽인데 고작 8강따리는 그렇지?”
“그죠.”
“은퇴식에 금메달 하나는 있어야지.”
우리나라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금메달을 목에 건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강주호도 금메달이 없네.
“그렇지. 그래야지.”
혼자 되새기듯 한 말 이후 아까 양준을 데려갔던 그 스텝이 우리를 찾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생각에 빠졌고.
최정윤이 나한테 한 말들은 전부 스스로 다짐하기 위해 한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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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을 따라간 곳에는 감독님, 양준, 그리고 허하준이 있었다.
양준이야 아까 가는 걸 봤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허하준도 있을 줄은 몰랐다.
“앉아라.”
감독님의 말에 나란히 앉았다.
“너희를 부른 이유는, 내일 둘이 배터리를 이루게 돼서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기쁨을 삼켰다.
배터리, 즉 내일 내가 선발 포수라는 말이다.
최정윤의 파트너는 원래 양준이었다.
하지만 부상으로 출전을 못 하는 양준 대신 최필주와 나 사이에서 고민하다 나를 골랐다는 뜻이니 가슴이 뛰었다.
“수호랑요?”
최정윤도 놀랐는지 되물었다.
“그래. 만약 필주랑 하고 싶으면 말해라.”
아무래도 선발 투수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최정윤의 답을 기다렸다.
“전 좋습니다. 수호가 종종 공을 받아줬을 때 좋았거든요.”
최정윤의 답을 듣자 그간 했던 노력이 헛된 게 아닌 걸 느꼈다.
“좋아. 하지만 걱정되는 게 한 가지 있다.”
감독님의 말을 듣자마자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지 눈치챘다.
최정윤과 내 나이를 합치면 42살이다.
국제전 경험이든, 그게 아니면 그냥 경험 자체의 부족이든 부족했다.
감독님의 말 역시 이것과 비슷했다.
“그래서 너희와 가장 많이 합을 맞췄던 이 두 명이랑 같이 경기 운영에 대해서 짜보라고 불렀다.”
양준은 두말할 것 없고, 허하준은 신인 때 올림픽을 시작으로 WBC 등 각종 국제전에 나왔던 선수였다.
“그럼 편하게 얘기하고 준이가 나중에 나한테 알려줘라.”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감독님은 떠나고, 넷이 남았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양준의 말과 함께 호주전에 대비한 긴급 스터디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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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전 파격 선발! 22세, 20세 배터리!]
ㄴ 둘이 합치면 42살인데 이게 맞냐?
ㄴ 아니 ㅋㅋㅋㅋ 감독 뭔 생각임? 8강에서 지려고?
ㄴ 아무리 김수호가 잘 쳤다 해도 오늘은 최필주가 맞지 않음?
ㄴ 근데 김수호 타격이 아깝긴 해. 올림픽 2경기에서 7타석 4타수 2홈런 2루타 1개임. 그냥 쳤다 하면 장타라.
ㄴ 왜 7타석인데 4타수야?
ㄴ 원래 희생 번트는 타수에서 뺌.
ㄴ 솔직히 수비도 잘함. 블로킹, 송구에 저번에 1루 수비도 잘하던데. 딱 한 가지 부족한 게 경험이지.
ㄴ 하. 근데 이기면 대박 아니냐? 국대 주전 포수가 20살이면 몇 번을 더 나오는 거야 ㅋㅋㅋㅋㅋ
ㄴ 진짜 국대 세대교체 하는 거지.
이 결정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의 생각처럼 김목근 감독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그 둘을 가장 가까이서 본 양준과 허하준에게 김수호 선발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그걸 바탕으로 결정한 것이다.
사실 8강이긴 하지만 호주는 A조 4위 팀.
예선에서 고작 1승밖에 거두지 못한 팀이었다.
4강이나 결승에 무작정 선발로 내보낼 수 없으니 사실상 김수호에게 토너먼트 경험을 쌓게 해줄 마지막 기회였던 셈이다.
물론 만약에 대비해 최필주가 항상 나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은 상황.
“플레이 볼!”
심판의 사인과 함께 8강, 대한민국 대 호주 경기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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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까지 초, 말 공격을 정하는 건 예선 순위로 진행한다.
4강부턴 코인토스로 정해지고.
우리가 1위, 호주가 4위였으니 진영 선택권이 우리한테 있었다.
당연히 말 공격을 선택했다.
야구에서 끝내기는 그저 짜릿하기만 한 게 아니다.
1실점만 해도 올림픽에서 탈락한다는 부담감은 평범한 투수들이 견디기엔 버겁다.
호주의 홈이지만, 우리가 말 공격인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경기가 시작했다.
호주에 프로 리그가 있긴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은 물론, 한국과 비교해도 많이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마냥 방심할 순 없는 게,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왔다.
호주의 선두 타자는 올리버 브라운.
대표팀의 대다수가 오스트레일리아 프로 리그(ABL)에서 뛰는 선수로 이루어져 있었고, 올리버 브라운 역시 ABL 선수였다.
좌타에 빠른 발을 이용해 투수를 흔드는 게 장기인 타자였다.
하지만 최정윤은 지옥에서 데려온다는 좌완 150km 포심을 던지는 투수.
기선제압을 위해 초구 몸쪽으로 붙는 포심을 요구했다.
-딱!
올리버 브라운이 최정윤이 자세를 잡자마자 기습 번트를 시도했다.
공은 3루 쪽으로 흘렀다.
황인재가 급하게 내려오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내가 더 가까운 상황.
“마이!”
맨손으로 캐치 후 그대로 1루로 강하게 뿌렸다.
“세이프!”
공이 좀 더 빠르다고 느꼈는데, 판정은 세이프였다.
차라리 황인재한테 맡겼어야 했나?
하지만 벤치에서 곧바로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다.
잠깐의 기다림이 지나고.
“아웃!”
“나이스!”
“수호야, 침착했다! 좋았어!”
판정이 번복됐다.
세이프가 됐다면 기분 나쁜 출루를 허용할 뻔했지만, 결과적으로 공 하나로 아웃카운트를 잡은 셈이 됐다.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2번, 3번 타자 모두 삼진으로 처리했다.
이어진 1회 말 공격.
상대 선발 투수는 일본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의 선발 투수 윌리엄 킹.
호주의 에이스이자 예선에서 캐나다를 상대로 거둔 1승의 주인공이었다.
이규영이 공을 골라내나 싶었지만, 삼진.
최건우와 김규완 역시 맥없이 물러났다.
확실히 다른 호주 선수들과 수준이 달랐다.
그리고 타자 중에서도 수준이 다른 선수가 한 명 있었다.
2회 초 호주의 공격.
대부분이 ABL 소속인 호주 팀에서 타자 중 유일하게 메이저리그를 노크하고 있는 타자.
메이저리그 유망주 순위 19위에 랭크 된 앤서니 마틴.
조국에서 열린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구단에 찾아가 사정을 했다는 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