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33화 (33/203)

33화 vs 국가대표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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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초 공격, 2사 주자 1루.

1회 내 낫아웃과 3회 박은성의 빠른 발로 만든 내야 안타 이후 처음으로 김민석한테 볼넷을 허용했다.

대기타석에서 김민석이 볼넷을 골라내는 걸 보면서 한 가지 느낀 게 있다.

확실히 스플리터 비중이 줄었다.

특히 2스트라이크 이후에 말이다.

나와 배터리를 이뤘을 때 포심과 스플리터, 다른 변화구 비율이

5 : 3.5 : 1.5 정도라면 오늘은

6 : 2 : 2 정도.

무슨 이유에서 볼 배합이 이렇게 변했는지는 모르지만, 스플리터를 덜 신경 쓸 수 있다는 점만 해도 한결 편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허하준의 구위가 줄어드는 건 아니지만.

“스트라이크!”

초구는 몸쪽 꽉 차게 들어온 공을 그냥 보내서 스트라이크.

어차피 쳐도 유격수 땅볼이라 금방 잊었다.

“볼!”

다시 한번 몸쪽에 포심이 들어왔지만, 이번엔 좀 더 깊었다.

솔직히 허하준의 공에 몸을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무서웠지만, 허하준을 믿었다.

잠깐 타석을 이탈했다가 다시 들어왔다.

지금 이 배터리는 2스트라이크 이후에 스플리터를 안 쓰고 있다.

그럼 지금이 스플리터를 던지기 가장 적합한 카운트.

알고도 치기 쉽지 않다는 허하준의 스플리터였지만, 그 공을 수백 번 받은 기억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허하준의 손에서 빠져나와 존 아래로 향하는 스플리터를 가볍게 끌어올려서 유격수 키를 넘기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스플리터로 투 스트라이크 만들고 포심이나 다른 변화구로 승부하고 있어요.”

알아낸 정보를 주루 코치에게 말하자, 코치님이 더그아웃으로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채지훈을 상대로 스플리터로 삼진을 잡아내면서 이닝을 끝냈다.

“그냥 네가 잘 친 거 같다.”

코치님의 말을 위안 삼으며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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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강기호와 했던 커브 잡는 훈련이 도움이 됐다.

커브로 확실한 카운트를 잡고 가니 다른 공의 위력도 덩달아 살아났다.

중간에 강주호한테 커브를 통타당하면서 2루타를 허용했지만, 다른 타자들을 범타로 처리하며 4이닝 무실점.

이렇게 분위기를 다시 마린스 쪽으로 가져오나 했지만.

“악!”

삼자범퇴로 5회 초 공격이 끝나고 5회 말 수비에서 채지훈이 이민상의 송구를 잡으려다가 8번 타자 서도하와 엉키면서 부상을 당했다.

서도하는 금방 털고 일어났지만, 채지훈은 계속 누워있는 상황.

결국 털고 일어나긴 했지만, 선수 보호 차원에서 교체가 됐다.

그리고 이재익이 급하게 포수 마스크를 쓰는 게 보였다.

이게 마린스의 문제였다.

얇은 뎁스.

원래라면 강주호가 1루, 백업이 채지훈이다.

하지만 강주호는 국가대표, 채지훈이 부상 당한 시점에서 남은 1루수가 나밖에 없었다.

급하게 장비를 벗고 1루 베이스로 향했다.

“여기서 보네?”

“잘 부탁드립니다.”

이재익이 포수 마스크를 쓰고 마운드에 올라가 있는 동안 서도하가 말을 걸었다.

경기 전 강주호가 국가대표 더그아웃에 데려갔을 때 인사를 했었다.

“쟤도 참 물건이야.”

“황인재요?”

“어. 근데 애가 표정 관리를 참 못해. 머리 만질 때마다 부들거리는 게 귀여워.”

알면서도 하는 거였구나.

서도하가 나를 힐끔 보더니 말을 이었다.

“근데 너도 표정 관리 못 한다. 그냥 친구끼리 똑같네 아주.”

“그런가요?”

친구는 아니지만, 굳이 부정하진 않았다.

아무튼 얘기 좀 나누다 보니 이재익이 다시 홈플레이트로 돌아갔다.

그리고 웰릭스는 무너졌다.

커브가 볼 판정을 받자 화를 내더니 제구가 흔들렸다.

결국 황인재에게 홈런을 맞았다.

나를 지나가면서 툭 치면서 노려보길래 뒤통수를 때리고 싶었지만,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도는 타자에게 그런 짓을 했다간 곧바로 퇴장이다.

팽팽했던 점수 차가 2점으로 벌어졌다.

다음 타자 이규영에게 안타, 최강우와 김규완에게 볼넷.

그리고 강주호의 타석.

-따아아악!

소리만 들어도 타구가 어디까지 날아갈지 알 수 있었다.

스코어 6대0.

웰릭스는 강판 됐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내려가는 투수를 보는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다음에 올라온 김호기가 급한 불은 껐지만, 이미 거대한 화마가 마운드를 휩쓸고 지나간 후였다.

이후 6회 말 공격에서 다시 2점을 내주면서 스코어 8대0.

국가대표팀 마운드에 누가 있는지 생각하면 사실상 역전하기 힘든 점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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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꼴린스 멸망 ㅊㅊㅊㅊㅊㅊㅊㅊㅊ]

ㄴ 오늘 7이닝 무실점한 허하준은 마린스 선수가 아님?

ㄴ 응~ 상대 타선도 마린스잖아~

ㄴ 솔직히 중간에 심판이 웰릭스 커브 안 잡아 준 게 너무 컸다. 그때부터 제대로 무너짐

ㄴ 그거 포수 실력임. ㄹㅇ. 김수호였으면 스트라이크임

ㄴ 네~ 그러시겠죠~

ㄴ 하. 중반까진 해볼 만했는데, 어디부터 꼬인 거냐?

ㄴ 채지훈 부상, 이재익 포수, 김수호 1루부터 완전히 꼬임

ㄴ 아쉽다. 이길만 했는데.

ㄴ 나도 꼴린스 팬인데 이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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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아웃에서 웰릭스의 우울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그다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포수 입장에서 웰릭스는 이번 경기에서 충분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5회에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6실점.

상대가 국가대표라지만,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결정은 단장님이 하겠지만, 부디 남기를 바라면서 웰릭스의 추욱 처진 뒷모습을 바라봤다.

나는 7회 허하준 상대로 땅볼, 9회 마지막 타석에 나와 안타를 쳤다.

4타수 2안타 1낫아웃.

8, 9회에 주자가 두 명씩 나가면서 마지막 희망을 불태웠지만, 결국 무득점이었다.

그야말로 완패.

뭐, 마린스 소속의 강주호는 만루 홈런에 허하준은 7이닝 무실점했으니 할 말은 있지만.

경기가 끝나도 아쉬운 것 투성이였다.

강주호가 우리 팀에 있었다면, 아니, 채지훈이 안 다쳐서 포수가 바뀌지 않았다면.

물론 경기 전부터 우리가 지는 건 상수였다.

그리고 대패를 경험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건 맞는데....

그냥 좀 분했다.

고작 평가전일 뿐이지만, 그냥, 그냥.

-짝!

“마. 여기서 뭐하노.”

“선배님, 몸은 괜찮으세요?”

등에서 따끔하더니 뒤를 돌아보니까 채지훈이 웃으면서 서 있었다.

위아래로 훑어봤지만, 다행히 흔한 붕대도 없었다.

“니 혼자 궁상떠는 기가? 혼자 야구했나.”

“그냥 아쉬워서요.”

나도 사투리 억양이 없는 건 아니지만, 채지훈은 좀 심했다.

채지훈이 내 옆자리에 앉고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후. 수호야, 니 고등학교 때 우승 많이 했지?”

“예. 그렇죠.”

청룡기, 황금사자기, 마린스의 모 구단에서 개최한 대회 등 나가는 대회마다 족족 우승했다.

뭐, 우승한 대회에서 mvp는 항상 황인재긴 했지만.

“내는, 지금까지 집에 그 흔한 트로피 하나 없다.”

“....”

“트로피는 무슨, 흐, 주호 행님 미국 갔을 때 꼴지 하면서 내가 먹은 욕 만해도 한 트럭은 될끼다.”

잘 알고 있다.

사실 누구를 데려와도 강주호의 빈자리를 메꾸기 쉽지 않다.

심지어 강기호까지 미국으로 간 상황.

절대 채지훈의 잘못이 아니다.

그냥 마린스라는 팀이 문제였지.

그때 보면서 하도 욕을 해서 잘 알고 있다.

아, 채지훈한테 욕했다는 건 아니다.

진짜로.

“내가 그렇게 욕 처먹어가면서 딱 하나 배운 게 있는데, 뭔지 아나?”

“아니요. 모르겠습니다.”

“패배는,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

“패배에 찌들었다고, 이길 생각이 없냐고 하는 새끼들한테 큰소리 뻥뻥 치고 싶었는데, 안되더라.”

어쩐지 채지훈의 말이 또렷하게 들렸다.

“내가 야구 하면서 이런 경기 졌다고 화내는 사람 딱 한 명 봤다.”

“누군데요?”

“허하준이.”

“강주호 선배는요?”

“그 양반은 그냥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라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안 쓴다. 왜, 니 처음 온 날 그 사인 카드. 아마 집에 가서 억수로 좋아했을걸.”

“그런가요?”

확실히 그때 이후로 반응이 달라지긴 했다.

“그래. 아무튼 그 양반도 나이 먹고 미국 갔다 오니까 이제 눈에 밟혀서 우승, 우승 그러는 거지. 그리고···. 아니다. 됐다.”

“왜 그러세요?”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

“아무튼, 그냥 니 보니까 옛날 생각나서 한 번 말해봤다. 너무 오래 궁상떨지 말고, 그냥 후, 한번 한숨 쉬고 털어버려라.”

“감사합니다.”

채지훈이 내 머리를 헝클이고 돌아갔다.

사실 아직도 내 감정이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는데 막상 허무하게 지니 분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아까 황인재가 툭 치고 간 게 열받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아, 다시 생각하니까 화나네.

아무튼, 채지훈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제 들어 가보려고 일어났는데, 또다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겼으니까 놀리려고 온 거에요?”

“내가 마린스 이겨서 뭐 하냐.”

뒤를 돌자 허하준이 웃으면서 있었다.

“그래서 나한테 말도 안 해주고 기어이 안타 치니까 좋냐?”

“무슨 말이요?”

“그거, 네가 무슨 타자인지 뭔지.”

아, 맞다.

어제까지만 해도 신경 쓰이긴 했는데, 경기 하다 보니 금방 잊어버렸다.

“그냥 한 소리죠.”

“그래? 그럼 한번 말해봐.”

“음....”

허하준이 옆에 와서 앉자 나도 다시 앉았다.

“저는 사실 야구 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

“예. 어렸을 때부터 마린스 팬이라서 자연스럽게 야구부에 들어갔고, 그땐 그냥 즐기면서 했죠. 그러다 중학교 가고, 그때부터 성적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되더라고요.”

허하준은 묵묵히 내 얘기를 들어줬다.

“그래도 중학생 때까진 나름 즐기면서 한다곤 했는데, 고등학교에 가니까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죠. 그리고 황인재, 걔를 보니까 딱 알겠더라고요. 아, 쟤는 내가 넘을 수 없구나.”

사실 허하준이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할까 싶긴 하다.

이 사람은 항상 천재였을 테니까.

“그다음부터 황인재가 뭘 시키더라고요? 처음엔 지가 뭔데 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 말하는 대로 되더라고요. 저 투수는 뭘 던지니까 어떻게 쳐라, 이다음엔 어떻게 쳐라. 이런 식으로. 근데 이상하게 성적은 잘 나오는데 마음이 점점 꺾이더라고요.”

“왜?”

“내가 지금까지 노력한 건 뭐였나, 시키는 대로 해서 되는 거였으면 의미 없는 게 아닌가, 같은 거요.”

지금 허하준의 얼굴을 보고 있진 않았지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그려졌다.

뭐, 한심하게 보지 않을까?

“그렇게 관성으로 프로에 오고 나니 딱 벽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거 해보고, 한 타석이라도 더 들어가려고 포수 마스크까지 끼고. 그러다 이렇게 된 거죠.”

“....”

“그냥 좀 그렇죠? 사실 지금도 황인재....”

“잠깐만.”

“예?”

고개를 들어보니 허하준의 한심한 표정이 보였다.

역시 그렇....

“그러니까 고등학교 때 황인재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성적이 잘 나와서 프로까지 왔다고?”

“예. 그렇죠.”

“뭐라고 시켰는데?”

“그냥 뭐, 오늘 공이 가벼우니까 툭 치면 된다, 스윙할 때 히팅 포인트를 앞쪽에 둬라 이런 것들이죠.”

어, 말하고 보니 강기호가 수비 훈련할 때 알려주던 방식이랑 비슷한 것 같다.

뭐지?

“너, 바보냐?”

“네?”

“세상에 어떤 선수가 저런 조언을 듣고 잘 쳤다고 생각하겠어.”

“2군에서도 저런 식으로 말을 많이 하던데요?”

“2군은 프로 아니야? 그리고 저 말을 듣는다고 바로 할 수 있으면 그게 문제야.”

“왜요?”

쉽던데요?

하지만 본능적으로 뒷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조용히 했다.

“저런 말이 도움 되는 선수는 아마 프로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걸?”

“네?”

“그것도 고등학생이 바로 적용할 정도면 더 적어질 거고.”

어, 뭔가 이상한데?

“역시 바보가 아니라 천재였네. 아니, 그냥 바보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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