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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32화 (32/203)

32화 vs 국가대표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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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같은 팀일 때 감탄하면서 보는 것과 그 감탄하던 걸 실제로 경험하게 될 때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1루에 나갔지만 쉽게 리드폭을 넓힐 수 없었다.

도루할 마음은 없지만, 2아웃인 이상 장타 비슷한 것만 나와도 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래서 리드폭을 넓힌 건데 한 발 더 나갔다고 생각하면 어김없이 견제가 들어왔다.

결국 채지훈이 무난하게 아웃 되면서 뛸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허하준의 견제 능력에 대해 직접 경험할 수 있어 나쁘지 않았다.

결국 이것들이 모여 실점을 막는 거니까.

더그아웃에 들어오면서 생각해보니 이제 강주호를 상대해야 한다.

‘산 넘어 산이네.’

오늘따라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진짜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

허하준 넘어 강주호.

그 이름이 갖는 무게감만큼이나 어마어마한 등치를 가진 강주호가 타석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타석이 꽉 찼다.

저런 덩치에 존에 오는 모든 공을 안타로 만들 수 있고, 홈런왕을 할 만큼의 파워도 있다.

“마. 그런 공에 냅다 휘두르면 내가 뭐가 되냐.”

타석에 들어온 강주호가 나를 보며 낮게 말했다.

허하준의 스플리터가 그런 공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있어 억울했지만, 낫아웃 삼진도 삼진이니까.

근데 내가 삼진당한 게 강주호랑 무슨 상관이지?

“선배님이 왜요?”

“그런 게 있다. 아, 니 황인재 금마랑 고등학교 동기라 했지?”

“예. 맞습니다.”

“흠. 그래.”

“자자. 그런 얘기는 이따 경기 끝나고 해.”

왜 물어봤는지 묻고 싶었지만, 심판의 말에 마운드를 바라봤다.

사실 강주호 공략법이라고 해야 할까, 워낙 유명한 방법이 있다.

강주호는 좋은 타자일지는 몰라도 좋은 주자는 아니다.

걸음이 느린 것도 느린 거지만 이번에 부상까지 당하면서 주력에 굉장한 마이너스가 붙었다.

우스갯소리로 강주호가 1루에서 홈으로 들어오려면 최소 3개의 안타는 나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 만큼 정면 승부는 지양하고 땅볼을 유도할 수 있는 바깥쪽 낮은 공을 위주로 볼 배합을 짜왔다.

여차하면 볼넷으로 그냥 1루로 보낼 생각까지 있다.

이건 웰릭스도 동의한 거라 초구 바깥쪽 사인을 보냈다.

-퍽!

바깥쪽으로 날카롭게 들어오는 포심에 강주호는 반응하지 않았다.

“... 볼.”

공이 들어왔음에도 콜이 없는 심판에게 어필하듯 미트를 닫고 가만히 있었지만, 아쉽게도 볼 판정을 받았다.

볼 카운트 1-0.

이때 강주호의 타율은 3할 8푼이 넘는다.

그 말은 카운트를 잡으려고 들어오는 공을 노리고 있다는 뜻.

그런 만큼 존에 살짝 걸치는 정교한 제구가 필요했다.

코스는 다시 한번 바깥쪽.

-따악!

살벌한 타구음과 함께 1루수 채지훈이 점프했지만 잡지 못했다.

“파울!”

그나마 다행인 건 타구가 마지막에 휘면서 아슬아슬하게 파울이 됐다.

“선배님. 너무 진심이신 거 아닙니까?”

“바깥쪽만 주구장창 던지는 네가 할 말은 아닌데?”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어찌 됐든 스트라이크 하나를 잡았으니 카운트는 우리가 유리해졌다.

하지만 강주호가 바깥쪽만 던진다는 걸 알아차린 이상 계속 고수하긴 힘들다.

물론 바깥쪽 낮은 곳에 완벽하게 제구가 된다면 상관없겠지만, 그런 걸 할 수 있는 투수는 세상에 거의 없다.

이럴 때 몸쪽에 하나 찔러주면 좋긴 한데.

하지만 몸쪽 공은 조금만 가운데로 몰리면 곧장 장타가 나오는 코스.

심지어 강주호의 몸쪽 가운데 타율은 4할 5푼에 달한다.

결국 내 선택은 또다시 바깥쪽이었다.

웰릭스도 몸쪽은 부담스러운지 곧바로 투구에 들어갔다.

“볼!”

하지만 강주호는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그냥 지켜봤다.

다시 불리해진 볼카운트.

이거 바깥쪽은 아예 지켜볼 생각인 거 같은데....

답답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몸쪽에 넣기엔 부담이 너무 심했다.

혹시 몰라 몸쪽 사인을 보내니 웰릭스가 고개를 저었다.

후.

이번엔 바깥쪽 높은 포심을 요구했고, 그제야 웰릭스가 투구를 시작했다.

“스트라이크!”

오히려 요구한 것보다 높게 들어온 게 헛스윙을 끌어냈다.

강주호가 아깝다는 듯 방망이를 잡고 갸우뚱거렸다.

볼 카운트 2-2.

이게 마지막이길 바라며 낮은 포심을 요구했고, 웰릭스가 공을 뿌렸다.

공이 중간쯤 왔을 때 느낌이 왔다.

오늘 주심의 존을 생각했을 때, 약간 빠지는 볼이다.

공이 오는 타이밍에 맞춰 미트를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힘을 이용해 공을 끌어올렸다.

“스트라이크 아웃!”

“허, 이건 또 언제 배웠냐?”

강주호의 방망이는 나오지 않았고, 내 미트는 정확하게 존의 아랫부분에 놓여있었다.

“저기 좋아하고 계시는 분이 알려주셨어요.”

마린스 더그아웃에서 행복해하는 강기호의 모습을 본 강주호가 고개를 저었다.

“다음 타석엔 안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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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킹 삼진은 오랜만 아니에요?”

“그러게. 내가 완전히 졌어.”

치려면 칠 수 있는 코스였다.

하지만 김수호가 강주호에 대해 아는 만큼, 강주호도 김수호에 대해 잘 안다.

특히 동생인 강기호가 만날 때마다 자랑을 해대서 어떤 훈련을 했는지 전부 꿰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 프레이밍에 ㅍ자도 못 들은 강주호로선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마지막 낮은 공을 그냥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경기 전 확인했던 스카우팅 리포트에도 정보가 없었고.

더그아웃에서 강기호의 모습을 생각하면 의도적으로 숨겼나 싶었지만, 그렇다기엔 말이 안 된다.

김수호와 강주호가 언제 상대할 줄 알고 이걸 숨긴단 말인가.

마린스와 평가전이 잡힌 건 며칠 전.

차라리 그사이에 프레이밍을 익혔다고 보는 게 맞았다.

실전에서 저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프레이밍을 고작 며칠 만에 익히는 게 가능한가 싶었지만, 첫날부터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니 이젠 그러려니 했다.

“선배님. 감독님이 부르십니다.”

“아, 그래. 고맙다.”

잠깐 생각에 빠졌던 강주호가 김규완의 말에 깨어났다.

“부르셨습니까?”

“주호야. 마지막 공, 왜 그냥 지켜봤나?”

흐음.

프로 선수를 20년 가까이 하면서 미국도 갔다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감독이나 코치도 그가 삼진을 당한 것에 대해 뭐라 했던 사람은 없었다.

그건 이전 올림픽을 함께했던 김목근 감독도 마찬가지.

이건 강주호의 삼진에 관한 질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웰릭스에 관한 질문도 아닐 것이다.

올림픽 국가대표 감독인 김목근이 출전도 안 하는 외국인 선수에 관심을 가질 리가.

투수와 타자를 제외했으니 남은 선수는 포수 한 명뿐.

자신의 대답이 김수호에게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생각을 정리한 강주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김수호 저놈이 그새 프레이밍을 익혔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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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브릭 웰릭스의 공이 상당히 좋은데요?]

[원래 하드웨어는 좋은 선수였어요. 2m가 넘는 키에 오버핸드, 타자 입장에선 정말 높게 느껴지거든요.]

[하지만 시즌 성적은 5점대 평균자책점으로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 생각엔 웰릭스 선수는 그다지 바뀐 게 없습니다.]

[아, 그런가요?]

[예. 역시 김수호 선수가 포수를 보기 시작하면서 제구에 안정감을 찾았습니다.]

[포수와 제구력에 연관이 있을까요?]

[정확히 말하면 제구라기보단 원래 볼이 될 공을 스트라이크로 잡아주면서 제구가 좋아 보이는 것처럼 된 거죠.]

[프레이밍 말씀이시군요.]

[프레이밍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죠.]

[스트라이크 아웃! 타자가 꼼짝 못 하고 당합니다!]

[바로 저 공이에요. 아래쪽으로 빠지는 커븐데, 기존 마린스 포수였다면 분명히 볼 판정을 받았을 겁니다.]

[김수호 선수의 합류가 마린스 투수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경기가 끝나고 베이스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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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의 3회 말 공격.

2회에 김민주에게 안타를 하나 내줘서 3회는 8번 타자 서도하부터 시작이다.

국가대표의 공격에서 가장 무서운 건 어디 하나 쉬어갈 타순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 하위 타선을 이루고 있는 최필주, 서도하, 황인재는 전부 각자 팀에서 중심 선수다.

물론 상위 타선과 비교하면 비교적 약한 건 맞다.

하지만 평소에 상대하던 대로 약간 힘을 빼고 상대하면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그래도 오늘 웰릭스의 공은 정말 좋았다.

“스트라이크!”

어제 불안해하던 모습이 생각도 안 날 정도로 공격적이고,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결국 서도하를 우익수 뜬공으로 잡아냈다.

그리고 다음 타자, 황인재가 타석에 들어왔다.

황인재와 눈이 마주쳤지만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누군가 나한테 황인재와 친하냐고 물으면 단번에 부정할 거다.

솔직히 말하면 고등학교의 나는, 그냥 황인재의 꼭두각시 같은 느낌이었다.

타석에 들어갈 땐 항상 황인재가 하라는 대로만 했고, 대부분 결과가 좋았다.

그걸로 U-18 국가대표까지 갔으니, 솔직히 도움이 안 됐다면 거짓이다.

근데 그때부터 야구가 재미 없어졌다.

그냥 황인재라는 사람을 내가 이길 수 없구나, 난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그런 선수구나 싶었다.

‘너 같은 재능은 널리고 널렸어.’

지금 들으면 중2병인가 싶은 오그라드는 말이지만, 1차 1번에 뽑힌 걸 축하한다고 했던 말에 대한 대답이 저런 말이었을 때 얼마나 열 받던지.

덕분에 프로에 와서 안 하던 노력을 하게 됐고, 한 타석이라도 더 나가기 위해 포수 마스크까지 쓴 게 여기까지 이어졌다.

이런 재회는 생각도 해본 적 없지만, 만나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파워는 여전하던데.'

타고난 힘은 역대 신인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게 내가 황인재를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결정적 이유였고 피닉스가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면서 황인재를 잡은 이유이기도 했다.

근 10년간 고교생 최다 홈런과 올 시즌에도 벌써 20개가 넘는 홈런을 때렸다.

올 시즌 웰릭스한테도 홈런을 친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 황인재가 상대였지만, 어쩐지 마음이 가벼웠다.

뭐, 황인재는 국가대표고 나는 평가전 상대니 아직 격차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던 고등학교와 비교하면 이 정도 격차는 우스웠다.

“왜 웃냐?”

“그냥.”

내가 웃는 걸 본 황인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의외였지만 대충 대답하고 웰릭스에게 초구 사인을 보냈다.

‘몸쪽으로 완전히 붙인 포심.’

...그래 뭐, 아직 그때 그 기억의 잔재가 조금 남아있는 것 같지만.

이 정도는 인사치레다.

“볼!”

황인재가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물러났다.

“미쳤냐?”

“반갑다. 인재야.”

“뭐?”

“인사야 인사.”

“이 새끼가···.”

“싸울 거면 집에 가서 싸워.”

심판의 말에 황인재한테 씨익 한 번 웃어주고 다시 사인을 보냈다.

그래, 이래야 황인재지.

선배들한테 개기고, 제보다 실력이 없으면 죄다 무시하는 그런 싸가지 없는 놈.

국가대표 선배들한테 아무 말 못 하는 것도 신선하고 좋았지만, 이 모습이 반가웠다.

이제 수없이 많이 만날 운명이니 인사는 이쯤 하기로 하고.

“스트라이크!”

이제 한번 붙어보자고.

다시 몸쪽에 들어온 포심에 황인재가 움찔거렸지만, 방망이는 나오지 않았다.

“쫄았냐?”

“하. 진짜 뒤질래?”

“포수, 그만 자극해. 한 번만 더하면 퇴장이야.”

“예. 죄송합니다.”

심판의 경고가 있었지만, 어차피 목표는 달성해서 상관없다.

제 잘난 맛에 사는 놈이 천재들만 있는 곳에 있으려니 얼마나 답답할까.

조금 자극하니 곧바로 내가 알던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볼 카운트 1-1.

황인재를 자극하긴 했지만, 나도 같이 흥분해버리면 안 된다.

흥분하지만 않으면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다.

고등학생 때 몰래 3년 내내 따라 하고, 연구하던 게 지금 와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아는 황인재라면 지금 이 공에 무조건 방망이가 나올 수밖에 없다.

“스트라이크!”

바깥쪽 높은 포심에 그대로 헛스윙.

맞으면 순식간에 담장을 넘겨버릴 힘이 느껴졌지만, 안 맞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할 코스를 웰릭스에게 전달했다.

웰릭스의 ‘진짜로? 미친 거야?’ 라는 표정이 보였지만, 이거라면 된다.

결국 웰릭스가 투구에 들어갔다.

공을 받기 전에 살짝 몸을 일으켰다.

1사에 주자가 없고 몰린 카운트에서 황인재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

어깨 정도 오는 높은 공.

그리고 내가 요구한 공은 그보다 더 높은 공이다.

방망이는 바로 내 눈 앞을 지나갔고,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아까 최필주가 나한테 한 말이 진짜였네.

고척이라 춥다.

“스트라이크 아웃!”

몸을 일으켰더니 심판의 목소리가 더 잘 들렸다.

“반가웠다.”

그럼 내 목소리도 잘 들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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