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우승을 바라는 사람들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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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말, 무사 만루 위기를 기적 같은 삼중살로 모면하긴 했지만, 챌린저스 타자들은 끊임없이 하스를 두드렸다.
하스는 매 이닝 주자를 내보내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주자가 어디에 있든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투구를 이어갔다.
심지어 선두타자에게 초구 홈런을 맞았음에도 개의치 않고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었다.
언제, 무슨 상황이든 자신의 공을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게 가능한 투수를 떠올려보면 허하준 말곤 없다.
근데 그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공 던지는 기계니까 빼고.
단지 그런 하스가 실점을 하는 이유는 결국 결정구의 부족이었다.
좌타자에겐 슬라이더를 던지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우타자 상대론 슬라이더가 안 통했다.
결국 원래 계획대로 헛스윙을 유도하기보단 승부를 해야 했다.
인플레이 타구가 전부 안타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반대로 전부 아웃 되는 건 아니다.
확률 싸움으로 가면 투수가 더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투수의 머릿속에서 안타를 맞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제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면에서 솔직히 다른 투수들에게 레타쿠를 믿으라고 권유하고 싶을 정도였다.
“레타쿠가 뭐래요?”
“음. 널 믿으라는군.”
그거 참 속 편한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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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중반에 접어들면서 5회 초 스코어 4 대 3.
리드 중이긴 하지만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하스의 피칭 스타일이나 우리 불펜을 생각했을 때 1점은 너무 불안했다.
추가점이 절실한 상황.
다행인 건 상대 선발 투수 박민준 역시 제구가 잡히지 않는지 계속 주자를 쌓았고, 내 타석에도 항상 주자가 가득했다.
그런 것 치고 타점은 고작 1점에 불과했다.
1회 1사 만루에서 희생 플라이, 그리고 3회 2사 1, 3루에서 삼진.
그리고 지금 6번 타자 채지훈이 볼넷을 얻어내면서 2사 만루.
타석에 서자 투수 코치와 포수가 마운드에 올라가서 무언가 얘기를 하는 게 보인다.
멀쩡한 불펜을 상대하는 것보단 흔들리고 있는 선발을 상대하는 게 좋긴 하지만, 불펜을 상대하는 것도 장점이 명확하니 그저 상대 팀의 결정을 기다렸다.
결국 교체 없이 투수 코치가 투수를 격려하고 그냥 내려왔다.
주자가 가득 찬 상황.
수비는 정위치를 지키고 있다.
“볼!”
초구는 완전히 빠지는 볼이었다.
초구를 흘려보내고 더그아웃을 보자 지켜보라는 사인이 나왔다.
“스트라이크!”
밋밋한 공이 존 한가운데를 통과했다.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까운 공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그 공을 그냥 보내자 더그아웃에서도 타격 사인이 나왔다.
“볼!”
다시 빠지는 볼.
2-1의 유리한 스코어.
포수가 공을 던져주기 전 진정하라는 듯 행동을 취하는 게 보였다.
3볼이 되면 투수는 쫓길 수밖에 없고, 특히 만루에 3볼은 레타쿠를 믿지 않는 이상 제 공을 던지기 어렵다.
이어지는 4구.
-따아악!
예상했던 대로 존에 들어온 공을 보고 강하게 휘둘렀다.
하지만 공은 내 생각보다 약간 높게 들어왔고, 방망이 윗부분에 맞은 타구는 끝도 없이 솟구쳐 올라갔다.
영락없는 플라이 아웃.
그래도 인플레이가 된 이상 포기하지 않고 1루로 뛰었다.
높게만 뜬 타구를 바라보면서 2루수가 외야로 천천히 걸으면서 자세를 잡았다.
그때, 2루수가 갑자기 당황해하면서 내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막 1루 베이스를 지난 내 옆에 공이 떨어졌다.
“2루! 2루!”
그 콜을 듣자마자 곧장 2루로 달렸다.
이미 2아웃인 상황에 발생한 일이라 주자들은 전부 스타트 한 상황.
“세이프!”
유격수가 공을 받아서 내게 태그 했지만, 발이 먼저 들어갔다.
“어떻게 된 거예요?”
보호대를 1루 코치에게 주면서 물었다.
“공이 천장에 닿았어.”
그 사이 비디오 판독이 진행됐고, 페어 지역 천장에 맞았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그냥 높이 뜬 공이 갑자기 2타점 2루타로 변했다.
이것도 레타쿠의 가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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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고척돔 진기명기]
(영상)
(영상)
역시 운에 스탯 몰빵한 하스 다운 결과 ㅋㅋㅋㅋ
ㄴ 저 정도는 해야 꼴찌 팀에서 9승 하는구나.
ㄴ ㅋㅋㅋㅋㅋ 1회 삼중살에 5회 김수호 2루타는 전설이다 진짜.
ㄴ 에휴 꼴린스 새끼들 이젠 하다 하다 삼중살을 당하냐 ㅡㅡ.
ㄴ 우리가 한 거야....
ㄴ ㅋㅋㅋㅋ 이젠 보지도 않고 욕하네. 하긴, 나 같아도 우리가 삼중살 잡았다고 하면 못 믿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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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2루타 이후 챌린저스 선발 박민준은 강판 됐다.
타선에선 삼중살, 수비에선 어처구니없는 안타를 허용한 챌린저스는 불합리한 상황에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7회 말, 챌린저스 공격.
스코어는 6 대 3 리드.
하스는 6회까지 3실점,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고 내려갔다.
3선발로서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지만 마린스 팬들은 불안한 심정을 숨길 수 없었다.
마린스의 약점이라면 손가락을 전부 써도 모자랄 만큼 많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문제는 불펜이었다.
3점의 리드에도 안심할 수 없는 필승조.
매 경기 1실점씩 하는 투수들을 필승조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래서 마린스 팬 중엔 선발투수가 일찍 내려가면(특히 허하준의 경기일 때) 경기를 끄는 팬들이 많았다.
괜히 봐서 역전 당하면 기분만 나쁘고, 이겨도 마음 졸일바엔 차라리 하이라이트를 보는게 나았으니까.
하지만 오늘 경기, 선발인 하스가 내려갔음에도 경기를 끄는 팬들은 평소보다 적었다.
며칠 전 치열했던 돌핀스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루키 듀오, 이호민과 김수호가 호흡을 맞추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볼!”
물론 이호민이 던진 어처구니없는 초구에 경기를 끄는 팬도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수호는 이호민이 초구부터 한참 빠지는 볼을 던지자 마운드로 올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호민의 손짓에 멈칫하고 다시 홈플레이트 뒤로 돌아갔다.
김수호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호민이 손에 로진을 묻혔다.
‘후. 힘이 너무 들어갔어.’
몸 상태 문제는 아니었다.
직전 등판이 4일 전이었으니까.
그 날, 기적 같은 강주호의 동점 홈런 이후 마운드에 올라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제발 하늘이 무너지길 바랐다.
겁쟁이라 욕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경기를 망쳤을 때 쏟아질 팬들의 질타를 감당하기엔 이호민은 너무 어렸다.
하지만 결국 등판은 피할 수 없었고, 심지어 포수는 김수호였다.
한 달 전 호흡을 맞춰보긴 했지만, 종종 하던 연락을 통해 김수호가 1루수로 출장한다는 걸 들었다.
즉, 한 달 전 그 호흡이 마지막이었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던진 초구.
그건 이호민 본인이 보기에도 너무 형편없었다.
그러자 바로 올라온 동기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김수호는 이호민을 질타하는 대신, 그냥 시원하게 맞더라도 가운데를 꽂자고 했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알겠다고 한지 모르겠다.
그냥, 그가 해준 말처럼 아무 생각 안 하고 냅다 가운데에 꽂았다.
그렇게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다음 날, 첫 승 공을 받을 때 아무런 고민 없이 김수호에게 양보했다.
공에 담긴 의미가 김수호에게 더 의미 있기도 했고, 애초에 김수호가 아니었다면 승리를 거두지도 못했을 거다.
그리고 그놈이 자신의 우상인 허하준과 함께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경기를 보는 내내 심장이 뛰었다.
허하준이 아니라, 김수호 때문에.
언젠가 허하준 같은 투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하지만 허하준과 김수호가 보여준 완벽한 호흡은 그 날 보였던 철 없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다음번엔 꼭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 탓일까? 몸에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면서 초구가 완전히 빠졌다.
마운드로 오려는 김수호를 저지하고 다시 사인을 교환했다.
사인은, 엄지로 일직선을 긋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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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쟤 뭐냐?”
“... 죄송합니다.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챌린저스의 4번 타자, 김민주의 날카로운 말에 불똥이 튀기 전 곧바로 사과했다.
가뜩이나 절호의 찬스에서 삼중살을 친 장본인이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쟨 갑자기 왜 저래?’
저따위로 사인을 내는 투수가 어딨어.
당연히 투수도 사인을 낼 수 있다.
근데 저렇게 대놓고 내진 않는다.
보통 포수가 여러 사인을 내주고 투수가 손가락으로 어떤 구종을 던지겠다 표시하는 정도였다.
근데 저놈은 갑자기 타자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표현했다.
그것도 충분히 오해 살 만한 사인을.
만약 이호민의 손이 조금만 더 올라갔다면 아마 김민주는 참지 않았을 거다.
뭐, 그래도 초구를 그따위로 던진 것 치곤 자신감이 살아있는 듯하다.
원하는 대로 변화구 사인을 내주고 자세를 잡았다.
구종은 슬라이더, 코스는 우타자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도록.
이호민의 다리가 올라가고, 손에서 빠져나온 공은 내가 원하는 곳보다 더 멀리 빠졌다.
“스트라이크!”
하지만 140 중반의 슬라이더는 김민주의 방망이를 끌어내기 충분했다.
슬쩍 타자를 쳐다보자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있다.
다시 한번 미트를 바깥쪽에 댔다.
“스트라이크!”
이번 공은 빠른 포심.
완벽하게 제구된 건 아니라서 아슬아슬했지만, 고속 슬라이더를 한 번 본 타자의 방망이는 굳은 채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볼카운트 1-2
한 번 돌아가도 됐지만, 이 정도 공이라면 곧바로 승부하고 싶었다.
‘몸쪽 높은 포심.’
이번에도 이호민은 고개 한 번 젓지 않고 곧바로 투구에 들어갔다.
마치 본인의 우상, 허하준처럼 말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결과 역시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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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 지옥의 원정 9연전 첫 경기 승리 거둬, 기분 좋은 출발! 6 대 4 신승!]
[행운의 여신은 마린스 편! 박민준을 강판시키는 김수호의 행운의 안타!]
[찾았다 주전 포수! 김수호, 이번에도 결정적 활약하며 승리, 4경기 연속 타점]
[허하준 이후 마린스의 신인 잔혹사, 드디어 끊기나?]
[챌린저스 감독, ‘오늘 경기는 세상이 우리의 패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수상할 정도로 운이 좋은 요그 하스, 그 비법은?]
ㄴ 레타쿠님 로또 1등 제발.
ㄴ 수능 만점 제발.
ㄴ 여자친구 생기게 해주세요 ㅠㅠ
ㄴ 그건 좀.
ㄴ 마린스 우승 제발.
ㄴ 이젠 하다 하다 원시신앙까지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마린스는 야구 접고 개그나 해라.
[마린스에 치는 젊은 파도! 이호민과 김수호 배터리, 마치 강기호와 허하준을 연상케 하다!]
ㄴ 솔직히 이호민 초구 보고 글렀구나 싶었는데 2구 슬라이더 보고 바로 지림
ㄴ 하, 오랜만에 신인 유니폼 팔 생각에 행복하네
ㄴ 다음 달에 유니폼 찢은 거 인증할 듯 ㅋㅋㅋㅋㅋ
ㄴ 올해 부산 쪽 신인 미쳤네. 황인재부터 김수호, 이호민까지 ㄷㄷ
ㄴ 그래서 유망주 풀 좋은 부산 연고지 팀은 성적이 좋나요? (진짜 모름)
ㄴ 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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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의 첫 경기부터 좋은 출발이었다.
물론 이호민이 첫 삼진 이후 볼넷을 내주면서 흔들렸지만, 결국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이후 8회에 1점을 내주면서 찝찝한 게 없진 않았지만 결국 이기면 장땡이다.
이렇게 이길 때도 있는 거고, 반대로 어이없게 지는 날 역시 있을 거다.
이런 예측하기 힘든 요소 때문에 야구가 더 재밌는 거 아닐까?
물론 지면 그만큼 열 받겠지만, 우리는 승리 팀이었고 어제 경기의 여운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수호야. 너도 레타쿤가 그 신 믿는 거냐?”
“예?”
“하스한테 물어보니까 너한테 물어보라던데?”
어제 경기에서 나와 반대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 이준이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아뇨. 저도 경기 전날에 처음 들었어요.”
“그래? 알겠다. 고생해.”
무뚝뚝하게만 보였던 이준이 저런 거에 관심이 있다니.
그만큼 절실하다는 거겠지.
최근 4경기에서 3승을 거뒀지만 그래도 9위 서울 호프즈와 3경기나 차이 난다.
당연히 선수들의 성적은 좋을래야 좋을 수 없었다.
그나마 허하준의 복귀와 든든히 버텨주는 강주호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 성적도 유지하기 쉽지 않았을 거다.
3할이 넘는 타자는 강주호와 외국인 타자 잭 미켈, 그리고 지명타자인 김민석이 전부.
투수도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믿을 만한 투수가 허하준을 제외하고 없는 게 현실이니까.
그래서일까?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는 마인드로 오늘 분위기가 더 좋아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팬들이 됐든, 선수가 됐든 말이다.
그렇게 다음 경기 직전,
"저번에 얘기해준 값, 안 잊었지?"
빚쟁이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