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20화 (20/203)

20화 우승을 바라는 사람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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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재밌는 얘기를 했더라?”

“안녕하세요. 선배님.”

출근 하자마자 만난 강주호의 말에 일단 인사부터 하고 어제 일을 떠올렸다.

무슨 얘기를 했더라?

인터뷰에서 많은 얘기를 하기도 했고, 어제 경기가 끝나고 맨정신이 아니어서 기억이 잘 안 났다.

끝내기를 쳤던 그제보다 더 많은 축하와 머리 위로 떨어지는 손바닥들을 본 것 같다.

그만큼 노히트노런은 나오기 힘든 기록이었고, 특히나 허하준의 기록이라 더욱 가치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MVP로 나와 허하준이 선정됐다.

경기를 지배한 두 배터리.

이런 제목으로 기사가 쓰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틀 연속으로 마이크를 잡고 헤드셋을 썼었다.

[안녕하세요. 김수호 선수.]

“예. 안녕하세요.”

[오늘 승리 정말 축하드립니다. 첫 선발 출전부터 허하준 선수와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는데 소감 부탁드려요.]

“솔직히 아직 얼떨떨합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 2군에서 경기하던 게 생생한데 이틀 연속으로 마이크를 잡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포수로서 말이다.

“오늘 허하준 선배의 공이라면 포수가 누구든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선배님과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정말 기쁘고, 선배님께 정말 축하드린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생각엔 조금 다른데요. 오늘 보여줬던 블로킹과 안정감은 정말 남달랐습니다. 은퇴한 강기호 선수가 돌아온 줄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강기호 선수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오늘 신기한 기록을 세운 거 아시나요?]

“어떤 기록이요?”

[강기호 선수 이후 허하준 선수와 합을 맞췄던 마린스 포수 중에 유일하게 경기 중 포일이 없는 선수입니다. 이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기록이 있다고?

지난 마린스의 포수진들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었다.

근데 또 이해는 됐다.

오늘 경기를 떠올리면 사실 공을 한두 개 빠트렸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에 가슴팍으로 막아낸 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하지만 그걸 막아내면서 한층 성장한 기분이 든다.

“앞으로 자주 달성할 기록이라 별생각은 안 듭니다.”

굳이 이런 말을 한 건 팬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지금, 좀 더 내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팬들의 이목을 끌어 야구 외적으로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오, 그 말씀은 이제 포수로 노선을 정한 건가요?]

“팀이 필요로 하면 어느 포지션이든 출전할 준비가 됐습니다. 그래도 당장은 포수가 좀 더 끌리긴 합니다.”

오늘 허하준의 마지막 공을 받을 때, 결정했다.

언제가 됐든 나는 공을 받을 운명이다.

[그러면 이제 리틀 강주호가 아니라 리틀 강기호라고 불러야겠는데요?]

“솔직히 마린스의 전설이신 두 분과 비교하기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본인이 생각할 때, 리틀 강주호와 강기호. 어느 별명이 더 좋은가요?]

“저는···.”

언젠가 이 질문이 올 거라고 예상했다.

1루수의 전설을 이을 것이냐, 포수의 전설을 이을 것이냐.

게임도 아니고 오그라드는 말이었지만, 팬들은 항상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새로운 얼굴을 통해 누군가를 떠올리곤 한다.

그런 만큼 나 역시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결국 허하준의 공을 받으면서 포지션을 결정했지만, 포지션을 결정하는 것과 이 별명을 결정하는 건 조금 달랐다.

그렇게 내린 내 결론은.

“두 별명 다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강주호.

허하준과 더불어 고작 이틀 본 나에게 정성을 쏟고, 도와준 고마운 선배였다.

감히 내가 먼저 말이나 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포스를 내뿜었지만, 나를 생각해주는 모습은 그것과 다르게 너무 감사했다.

강기호.

어제 첫 출전 당시 내가 선을 넘는 행동을 했어도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자신감을 심어준 건 평생 잊지 못할 거다.

그래서 패기를 넘어 신인 주제 건방지다는 욕을 먹더라도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저는 그 두 분의 뒤를 따라가기보단, 두 분에게 마린스의 우승을 선물하는 김수호가 되고 싶습니다.”

2년.

강주호가 은퇴하기까지 남은 시간.

그리고 허하준이 메이저리그에 가기까지 남은 시간.

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우승하고 싶다.

항상 중계로만 봐왔던 그런 선수들과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고, 선물하고 싶다.

그런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그걸 위해 원래 계획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었다.

시즌이 끝나고 준비하는 게 아닌, 오늘처럼 선발 포수로 나설 기회.

감독님이 내일도 선발로 출장시켜줬으면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그래서 그걸 위해 생각해둔 것이 있다.

[허허.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시고 끝내시죠.]

“절 믿고 맡겨주신 감독님한테 먼저 감사드립니다. 고작 포수 흉내만 낼 수 있는 제게 자신감을 주셨고, 제가 허하준 선배와 이런 기록을 달성할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빨리 인터뷰할지 몰랐지만, 기회가 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먼저 운영팀장과 선을 그었다.

야구 선수에게 중요한 건 야구를 잘하는 것과 팬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뿐.

정치질은 그 안에 들어가 있지 않다.

“그리고 부모님께 정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어제 아들이 활약한 걸 TV로 보게 돼서 서운하다고 연락을 주셨는데, 오늘도 그렇게 된 것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이젠 항상 사직에 오실 때마다 이런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팬, 허하준, 강주호, 강기호 등에 대해 말을 남겼다.

[승리 정말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걸로 인터뷰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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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말해 놓은 것이 많아서 강주호가 뭘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머뭇거리자 강주호가 먼저 답을 말해줬다.

“나한테 우승을 선물하고 싶다고?”

정확히는 강주호를 포함한 강기호, 허하준 등 모두에게였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선배님이 은퇴하기 전에 꼭 우승하고 싶습니다.”

“후. 그래?”

강주호의 반응에 살짝 당황했다.

지난 강주호와 대화를 떠올려보면 건방지다는 말을 하면서 웃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강주호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쓸쓸해 보였다.

“그래서 리틀 강주호란 별명도 싫다고?”

그래도 금방 다시 평소의 강주호로 돌아왔다.

“그건···. 솔직히 탐이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인데, 그래도 포수로 출전하면 그 별명을 달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건 맞지.”

“그렇다고 리틀 강기호라는 별명을 받기에도 조금 그래서 그냥 그렇게 말한 겁니다.”

차라리 어제 본 주호-기호-수호로 이어지는 호 라인으로 부르자는 댓글이 그나마 나았다.

“그래. 넌 그냥 김수호 해라. 리틀 강주호라고 해봤자, 우승도 못 할 텐데.”

“제가 꼭 우승시켜 드리겠습니다.”

“됐다. 오늘도 훈련 끝나면 어제 봤던 곳으로 와. 알려줄 테니까.”

“예. 감사합니다.”

“간다. 아, 하준이가 너 찾더라.”

그 말을 남기고 강주호가 절뚝거리면서 사라졌다.

허하준이 나를 찾는다는 말에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이 찍혀 있었다.

급하게 전화를 걸었고, 허하준이 있다는 곳으로 갔다.

“자 받아.”

“뭐에요?”

만나자마자 허하준이 무언갈 내게 건넸다.

“사인 볼. 부모님 드린다며.”

그런 것치고 새 공이 아니었다.

심지어 사인 외에 뭐라고 적혀 있었다.

“노히트노런?”

잠깐 생각이 멈췄다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이거 어제 노히트 공 아니에요?”

“맞아.”

드디어 깨달았다.

허하준 이 사람은 사실 사람이 아니다.

그냥 공 던지는 기계일 뿐이다.

“미쳤어요?”

나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왔다.

근데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거다.

“뭐?”

“아니, 죄송해요. 근데 누가 사인볼을 노히트 공으로 줘요.”

“뭐 어때. 이 정도는 돼야 소장할 맛이 나지.”

“아무튼 됐습니다. 애초에 부담스러워서 안 받으실 거예요.”

“괜찮아. 이런 공보다 그냥 내가 기록을 세웠다는 게 중요해. 그리고 네 목표가 우승이라며.”

“예. 그렇죠.”

“그럼 다음에 이거 말고 한국시리즈 마지막 공을 던지게 만들어줘. 난 그거면 돼.”

그렇게 말하는 허하준의 눈에서 처음으로 깊은 감정을 느꼈다.

마치 방금 전 강주호처럼.

하지만 그 감정은 금방 사라졌고, 이내 다시 미소를 띤 평소의 허하준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이건 못 받으니까 평범한 공에 해주세요.”

“그래? 뭐, 싫으면 말고.”

잠깐 지나가는 헤프닝이었지만, 이 팀에서 우승을 원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알았다.

“그거보다 뭐 하나 부탁해도 돼요?”

“뭔데?”

“외국인 투수 있잖아요. 소개해 줄 수 있을까요?”

“웰이랑 하스?”

브릭 웰릭스과 요그 하스.

우리 팀의 두 용병 투수다.

내가 계속 기회를 얻기 위한 계획, 그건 바로 선발들이 먼저 나를 찾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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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하준과 같이 한창 훈련이 진행 중인 투수조로 향했다.

어제 선발투수였던 허하준은 오늘 훈련이 없지만, 내 부탁에 여기까지 왔다.

내가 들어가자 투수들이 흥미로운 눈으로 날 바라봤지만, 훈련이 진행 중이라 딱히 말을 걸진 않았다.

그 가운데 벤치에 몸을 살짝 걸친 채 투수들이 공을 던지고 있는 걸 보고 있는 두 명의 외국인이 보였다.

“웰, 하스. 인사해. 여긴 김수호.”

“헤이. 반가워 슈퍼 루키. 난 브릭 웰릭스야. 웰이라 불러.”

“요그 하스.”

오늘 선발로 예고된 브릭 웰릭스와 내일 선발인 요그 하스.

스쳐 가면서 보긴 했지만 이렇게 대화하는 건 처음이었다.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키자 180이 넘는 나도 올려다볼 정도로 웰릭스의 키는 컸다.

하스는 나랑 비슷한 정도.

특이한 건 몸에 규칙적인 문양처럼 보이는 문신이 있었다.

차례로 악수하자 웰이 허하준에게 물었다.

“근데 허, 루키랑 무슨 일이야?”

“얘가 너희를 만나고 싶다 해서. 한 번 얘기해봐. 너희에게 안 좋은 일은 아닐 거야. 난 먼저 가볼게.”

“고맙습니다. 선배님.”

허하준은 그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다행히 허하준이 사라져도 근처에 통역이 있어서 도움을 받아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서 슈퍼 루키가 우리한테 무슨 일이야?”

“어제 제가 하준 선배랑 노히트노런 만든 거 봤죠?”

“그럼. 일등석에서 직관했지.”

“그래서 두 사람한테 제안 하나 하려고요.”

“뭔데?”

하스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웰은 흥미롭게 쳐다봤다.

“두 사람도 노히트노런 하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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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 웰릭스.

내가 알기론 트리플 에이 수준으로 평가받는 선수다.

마린스 경기야 자주 챙겨봤으니 어떤 스타일인지 알고 있다.

2미터 가까이 되는 키와 정통 오버핸드 투구폼에서 나오는 찍어 내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빠른 포심과 커브가 강점이다.

하지만 그 공을 마음대로 던질 수 있었다면 KBO리그가 아니라 메이저리그에 있을 거다.

웰은 오버핸드 투수의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후반으로 갈수록 제구가 일정치 않다는 큰 단점.

오직 구위와 구속만 보고 데려온 투수가 웰릭스인 것이다.

“준비됐어? 루키?”

내 말에 웰이 웃으면서 ‘그럼 당연하지. 근데 그런 말을 하기 전에 한 번 공으로 대화해야 하지 않을까?’라면서 피칭을 제안했다.

하스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두 명 중 한 명밖에 꼬시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내가 공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면 어차피 웰과도 안녕이다.

그리고 공을 잘 받는 것만 해선 안 된다.

내가 원하는 건 투수들이 직접 감독님에게 먼저 말을 꺼내는 것.

그러기 위해선 무언가 특별한 걸 어필해야 한다.

사실 나란 포수를 객관적으로 보면 물음표투성이다.

프레이밍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표본이 많은 것도 아니다.

블로킹이나 강심장 같은 건 어제 경기로 증명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그걸로 당장 주전을 꿰차는 건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주전이 될 거라는 허하준의 말이 있었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감독님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

“전 준비 됐어요.”

허하준과 이호민을 꼬셨던 것처럼, 내 포구가 웰의 마음을 움직이기를 바라면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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