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리틀 강주호? 리틀 강기호?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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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과 면담 이후, 곧바로 훈련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스카우팅 리포트를 읽었다.
오늘 경기는 어제보다 더 중요하다.
각 팀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1선발의 대결.
마린스는 이 경기를 잡고 위닝 시리즈를 확보하고 싶을 테고, 돌핀스는 균형을 맞추고 싶어 한다.
선발 투수 무게감으론 허하준이 있는 마린스 쪽에 무게감이 실리는 게 사실이다.
팀을 넘어 리그 에이스라고 불러도 될 허하준은 당장 메이저리그에서도 군침을 흘리고 있는 선수.
돌핀스의 1선발 존 그레이 역시 좋은 투수지만, 허하준과 비교하면 떨어진다.
하지만 괜히 마린스가 10등, 돌핀스가 1등인 것이 아니다.
마린스는 곳곳에 구멍이 산재해있다.
반면 돌핀스는 구멍이라 칭할 곳이 없다.
이런 점까지 고려해보면 오늘 경기의 승자가 누가 될지 예상하기 힘들었다.
내가 중점적으로 읽은 부분은 선발 투수가 아닌 불펜 투수.
감독님과의 면담에서 내린 결론은 1루수든 포수든 3옵션이라는 거였다.
결국 선발이 아닌 불펜 투수와 상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어제 강주호가 찝어줬던 선수들과 필승조에 대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하지만 이런 내 노력이 딱히 쓸모가 없어졌다.
“김수호!”
“예!”
“받아라.”
마린스에는 훈련 전, 어제 기록을 세웠던 선수들의 공을 전달해주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어제 기록을 세운 선수는 나와 이호민.
나의 프로 데뷔 첫 안타이자 홈런, 그리고 첫 끝내기 공이자 첫 끝내기 홈런볼.
그리고 이호민의 프로 데뷔 첫 승 공이었다.
경기를 끝낸 게 내 홈런이었기 때문에 이호민의 첫 승과 의미가 겹친 공이지만, 이호민은 흔쾌히 양보해줬다.
“너 아니었으면 승리도 못 했어. 나중에 100승 공이나 챙겨줘.”
“고맙다.”
2군에서 쳤던 만루 홈런볼은 집에 보관해뒀다.
그리고 그 옆에 이 공이 추가될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감독님은 공을 건네주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오늘 훈련은 포수조에서 받아라.”
“아, 예! 알겠습니다.”
어쩐지 언짢아 보이는 강주호의 표정을 애써 무시하고 포수조 훈련장으로 향했다.
“잘 잡더라, 어제. 홈런도 멋졌고.”
“감사합니다. 선배님도 멋지셨습니다.”
“너도 오민기랑도 맞춰봤어?”
“예. 한 번 했습니다.”
“그래? 그럼 너도 들었겠네?”
“... 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야. 네가 더 고생 많았지. 후. 그 새끼는 임시로 들어온 애한테까지 그 지랄이냐.”
낯선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법.
그건 공통의 적을 뒷담 까는 거였다.
오민기가 도움이 될 때가 있다니.
음주 운전을 한 포수 덕에 내가 포수에 대한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던 것처럼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였다.
이재익과 주동훈에게 오민기의 숨겨진 얘기를 듣다 보니 강기호가 다가왔다.
“뭐야, 그새 친해졌네?”
“2군에 있던 얘기 좀 했습니다.”
“그래? 무슨 얘긴데.”
“그, 오민기 얘기했습니다.”
“음. 그래. 자자, 오늘 선발은 재익인 거 알지? 오늘도 열심히 해보자.”
강기호도 그 얘기를 아는지 빠르게 주제를 돌렸다.
무려 레전드 포수라 불리는 강기호.
그의 코칭은 2군 감독님과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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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이 있다.
천재는 좋은 선생이 될 수 없다.
애초에 천재와 범재는 보는 시야부터 달라서 천재는 범재가 왜 못하는지 이해를 못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건 강기호에게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공을 봤으면 몸이 먼저 갔어야지!”
어제 10회가 끝난 후, 나한테 약간 두루뭉술하게 말할 때부터 알았어야 했다.
강기호는 코치에 재능이 없다.
정확히 설명하면 강기호의 코칭에는 왜라는 단어가 안 좋게 쓰였다.
“이걸 왜 못하지?”는 기본이고 “왜 자세를 그렇게 잡는거야! 내가 이렇게 하라고 했지!” 같은 본인의 기준에서 설명하니 따라 하기도 어려웠고,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좀 난해하지?”
이재익이 훈련을 하는 동안 주동훈과 같이 훈련을 보고 있었다.
“음. 확실히 2군 훈련과 다르네요.”
2군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특별히 나한테만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하나하나 천천히 알려주신 덕에 손쉽게 배울 수 있었다.
반대로 강기호는 심화학습을, 그것도 실전 압축해서 알려주는 느낌.
이재익의 차례가 끝나자 주동훈이 나섰다.
하지만 결국 주동훈도 강기호의 잔소리만 잔뜩 듣고 끝이 났다.
이제 내 차례.
“처음이라고 살살해 줄 생각은 없다. 준비되면 말해라.”
“예. 준비됐습니다.”
훈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앞서 두 사람을 봤으니 따로 듣지 않아도 됐다.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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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거 뭐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포수는 훈련부터 힘들다.
항상 앉아있어 허벅지는 불이 나는 것 같고 무릎이 시린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2군 훈련도 그랬지만, 강기호 코치가 있는 1군에 오니 더 심해졌다.
하지만 강기호 코치의 ‘라떼는 말이야’를 들으면 반박할 수가 없다.
그래도 강기호 코치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지만, 이재익과 주동훈 모두 실력이 늘었다고 체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1군에 온 지 이틀 된, 심지어 포수 경력은 5경기가 채 안 되는 놈이 강기호 코치의 훈련을 군말 없이 따라가고 있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력해온 것이 하루 만에 따라잡힌다.
그걸 실제로 보고 나자 이재익의 가슴속에 불쾌한 감정이 꿈틀거렸다.
그때, 주동훈이 이재익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야. 표정 풀어.”
“아···.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주동훈의 표정도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았다.
“너도 알잖아. 원래 야구는 재능빨인거.”
“... 예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수준이 떨어진다는 마린스 1군 포수였지만, 그 역시 동네에서 꽤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들었던 선수.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제친 선수만 한둘이 아니었다.
“오히려 좋게 생각해.”
“... 어떻게요?”
“이제 팬들한테 욕먹을 일이 줄었잖아.”
자학이 섞인 주동훈의 말.
물론 그게 진심인지는 그 밖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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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은 대략 한 시간 정도 진행됐다.
하지만 포수의 일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분석팀과 함께 오늘 상대 선발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듣고 볼 배합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수비 시프트를 어떻게 가져갈지 등에 대한 얘기를 해야 했다.
물론 여기서 나오는 정보만 가지고 볼 배합을 짜면 안 된다.
볼 배합이란 어차피 투수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투수가 원하는 곳에 공을 못 던지면 전부 의미 없는 작업이 되기도 한다.
그걸 조율해야 하는 것이 당일 공을 받는 포수가 해야 하는 일이었고, 어제 강기호가 내게 말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걱정 없이 볼 배합을 짜면 됐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오늘 선발 투수인데, 뭐가 걱정일까.
“응? 왜 그렇게 봐?”
긴장도 안 되는지 항상 짓는 미소를 입에 머금으며 나를 바라봤다.
“선배님은 긴장 안 되시나요?”
“벌써 긴장해서 뭐 해. 그리고 긴장한다고 해서 달라지나? 어차피 던지는 건 똑같지.”
말이 쉽지, 저런 강심장을 가진 사람은 얼마 없다.
어제 경기가 중요한 만큼 오늘 경기도 중요하다.
돌핀스 역시 총력전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기에서 저런 여유라니, 저러니까 에이스지.
허하준의 주도하에 회의는 계속됐지만 사실 결론은 처음부터 나 있었다.
포심과 스플리터.
이 두 가지만 가지고 게임을 운영할 수 있는 선수가 있는데 다른 얘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신은 정말 존재하는지 허하준에게 최고의 공을 줬지만, 그 공을 잡을 수 있는 포수를 주진 않았다.
허하준은 주자가 3루에 있어도, 만루에서도 주저 없이 스플리터를 던질 선수다.
하지만 포수는 경기 당 최소 한 번은 빠트리는 선수였다.
주자가 3루에 있을 때 포일은 결국 실점으로 연결되는 만큼 치명적인 실책이다.
결국 분석팀에서 돌려 말하긴 했지만, 포수가 잡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음. 그렇죠. 근데 이젠 잡을 수 있는 포수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러면서 나를 보며 싱긋 웃고 있다.
“... 왜 저를 보세요?”
허하준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말했지만, 허하준이 나를 보고 있는 이상 누가 봐도 나를 칭하는 말이었다.
“김수호 선수, 2군에서 허하준 선수와 합을 맞췄다는 건 알고 있는데 스플리터 잡는 데 문제가 없었나요?”
“예. 경기 내내 흘린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기록은 고작 3이닝뿐이었다.
표본이라고 하기엔 너무 적은 이닝.
분석 팀장도 역시 그걸 걸고넘어졌다.
“기록을 보니까 고작 3이닝, 그리고 스플리터는 채 5구도 안 던졌네요? 이걸로 판단하기엔 표본이 너무 적습니다.”
“음. 괜찮습니다. 표본은 늘리면 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의 말에 허하준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아직 경기 시간도 남았으니까 한번 보고 판단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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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
“예. 한 달도 더 됐네요.”
허하준의 공을 받았던 날.
그날을 기점으로 내 야구 인생이 변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허하준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1군에 있는 건 한참 후의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런 만큼 다시 공을 잡을 이 기회가 기꺼웠다.
저번처럼 둘이 있을 때 던지는 게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이 많았지만 상관없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허하준과 사인을 정했다.
“사인은 저번처럼 하시는 거죠?”
“좋지. 제대로 리드 해보라고.”
허하준이 글러브를 낀 손으로 내 어깨를 툭툭치고 불펜 투구 판 위로 향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감독님과 모르는 남자가 들어왔다.
누구지?
“자, 시작하겠습니다.”
하지만 분석팀장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세를 잡았다.
첫 번째 공은 포심.
날카롭게 날아온 공이 찰진 소리와 함께 미트로 들어갔다.
“나이스 볼!”
분석 팀장이 무언가 체크하면서 소리쳤다.
어제 이호민의 포심도 좋았지만, 역시 허하준의 포심은 미트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부터 다르다.
포심을 몇 번 더 받은 뒤, 변화구를 차례로 받았다.
변화구 역시 포심에 비하면 아쉽다였지 다른 선수들은 결정구로 쓸 만한 구종이다.
어제 이호민이 이 변화구 중 하나라도 구사할 수 있었다면 좀 더 수월한 운영이 가능했을 텐데.
결과적으로 좋은 공을 던졌지만, 그 공을 다음 경기에서도 던질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다.
대망의 스플리터 차례가 되자 잡생각을 그만뒀다.
잡생각을 하면서 잡을 만큼 스플리터는 만만한 구종이 아니다.
사인을 교환하고 존 하단을 지나가는 곳에 미트를 댔다.
허하준이 보자마자 주저 없이 투구를 이어갔다.
‘어?’
하지만 예전에 봤던 각을 생각하면 미트보다 위로 들어 올 만한 궤적을 그리며 들어왔다.
그리고 공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변화가 되는 순간.
예전에 봤던 스플리터는 장난이었다는 듯이 그야말로 완전히 꺾여서 들어왔다.
포구에 성공하긴 했지만, 만약 방심했다면 놓쳤을 만한 변화였다.
“오···. 나이스 캐치!”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돌아보자 분석 팀장이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었다.
그렇게 허하준이 스플리터를 몇 번 더 던지고 내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역시 잘 잡네?”
“하. 선배님, 2군에선 너무 힘을 빼셨던 거 아닙니까?”
“그땐 부상에서 바로 복귀했을 때잖아. 조절해야지. 원래 1군에선 이 정도로 던져.”
그게 전력이 아니었다니.
2군 타자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런 자신감인가?
새삼 허하준의 실력에 놀라고 있을 때, 아까 감독과 같이 들어왔던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야, 역시 허하준 선수 정말 공이 좋네요. 그걸 잡아내는 김수호 선수도 정말 대단하고요.”
“누구시죠?”
“반갑습니다. 마린스 운영팀장 이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