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5화 (15/203)

15화 리틀 강주호? 리틀 강기호? - 2

#

경기를 마치고 핸드폰을 확인하자 카톡이며 문자, 심지어 부재중 전화까지 핸드폰이 터질 듯 연락이 왔다.

일단 일일이 확인하기 전에 급한 연락부터 했다.

“예, 아뇨 오늘 막 1군 왔는데 출장할지 몰랐어요. 네네. 죄송해요. 내일은 모르겠어요. 예. 선발 출장하게 되면 표 꼭 구해볼게요. 예. 집에 가서 봬요.”

평소 연락 한 번 안 드려도 서운하신 티 내신 적 없으셨던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서운한 기색을 내보이셨다.

아들이 주인공이 된 경기.

심지어 그게 프로 데뷔 경기였으니 아쉬운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나름 변명하자면 나도 오늘 갑자기 1군에 온 거였고, 출장할 확률보다 안 할 확률이 높은 경기를 부모님께 연락드리기 조금 그랬다.

그래도 이해해주신 덕분에 무사히 넘어갔다.

그 외에도 초, 중, 고등학교 감독님, 동기들, 2군 감독님, 코치님들, 그리고 이주학에게 축하한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갈 때까지 거기서 딱 기다려라.]

이걸 축하라고 보긴 뭐 했지만, 그때까지 1군에 있으라는 말이니까 축하겠지?

사실 아직도 얼떨떨하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축하해주니 나쁘게 산 것 같진 않아서 다행이다.

하나하나 전부 답장을 보내고 나자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나, 정말 1군에 데뷔 했구나.

그때 입가를 실룩이면서 나한테 다가오는 이호민이 보였다.

“뭐냐, 그 재수 없는 표정은.”

“어허. 재수 없다니. 팬들의 사랑을 잔뜩 받고 온 MVP의 표정이지.”

“MVP는 나도 받았거든.”

이호민이 본인만 받은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번 경기 수훈 선수로 나와 이호민 그리고 강주호가 선정됐다.

“아무튼 다 씻었으면 얼른 나와. 죄다 널 기다리고 있어.”

“그래?”

아무래도 가장 늦게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제일 늦어졌다.

아마 이호민이 경기 전에 구장 소개를 해준 것처럼 데리러 온 모양이다.

잘 됐다.

오늘 워낙 많은 일이 있어서 아까 설명해준 거 다 까먹었다.

“빨리 가자.”

#

“김수호! 김수호! 김수호! 김수호!”

프로 야구 선수의 퇴근길.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많은 팬이 사인을 받거나 선수들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선수단의 퇴근길에 모인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치열했던 탓에 시간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상황.

심지어 평일 경기인데 이렇게 많은 팬이 있을 줄은 몰랐다.

“짐 내놔.”

나름 1군에 오래 있었다고 얼어붙은 나와 달리 이호민은 태연하게 손을 흔들며 내 짐을 뺏었다.

마운드에서나 그렇게 하지.

“강주호 선배가 전해 달래. 늦어도 상관없으니까 전부 사인해주고 오라고.”

“어.... 고맙다.”

이호민은 내 짐을 챙기고 중간중간 자신을 잡는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면서 버스로 향했고, 나머지 팬들은 전부 나를 보고 있었다.

날 기다린다는 게 선수단이 아니라 팬들이었구나.

지금 남아있는 팬들은 사실 그냥 팬들이 아니다.

10등으로 쳐지고, 강주호도 부상 당하고, 심지어 9회 말 4점 차에 병살까지 보고 끝까지 남아서 응원해준 고마운 팬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사인이라면, 몇백 장이든 해줄 수 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고마운 마음을 담아 사인을 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내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내밀었다.

“어?”

“김수호 선수! 정말 팬입니다.”

“제 유니폼이네요?”

“예. 제가 2군 경기 보고 팬이 돼서 구매했습니다. 사인 하나만 부탁드려요.”

지금까지 사인하면서 전부 공이나 다른 선수 유니폼에 했지 내 유니폼에 하는 사인은 처음이라 뭔가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성함이요?”

“박민숩니다.”

#

[오피셜) 김수호 유니폼에 처음 사인 받은 사람.]

(사진)

그건 바로 나.

ㄴ 와 뭐냐? 김수호 유니폼이 있다고?

ㄴ 미쳤네 ㅋㅋㅋㅋㅋ 심지어 오늘 경기 직관하고 첫 사인이래. 돌았다.

ㄴ 아니 어케 알고 샀냐? 김수호 지인임?

ㄴ ㄴㄴ 한 달 전에 허하준 2군 경기 나올 때 김수호 하는 거 보고 바로 팜 ㅋㅋㅋㅋ 개꿀

ㄴ 와, 선구안 지리네.

ㄴ 오늘 직관 개부럽다.

ㄴ 김수호 사인 잘해줌? 나도 하나 팔까.

ㄴ ㅇㅇ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주고 감. 인성도 좋더라.

ㄴ 근데 이겨서 다행이지 오늘 경기 솔직히 졸전 아님? ㅋㅋㅋㅋ

ㄴ 네 다음 졸전에서 진 돌핀스 팬.

[한 달 전 허하준-김수호 배터리 모음]

(영상)

참고로 저 날이 포수 배운지 하루 차임 ㅋㅋㅋㅋㅋ

ㄴ 허하준 스플리터 각이 구려진 거냐 김수호가 잘 잡는 거냐?

ㄴ 와, 그냥 재능충인데?

ㄴ 진지하게 걍 포수 박고 키우자.

ㄴ 허하준 스플리터를 안 빠트린다? 이건 그냥 포수 하라는 얘기거든요.

#

[부산 마린스 16 : 13 창원 돌핀스]

[강주호와 리틀 강주호의 홈런! 마린스, 돌핀스에 연장 대역전승!]

[경기를 지배한 20살 배터리, 마린스의 새로운 희망으로 우뚝 서다!]

[깜짝 포수 데뷔! 마린스의 도박수, 돌핀스를 무너트리다!]

[김수호, 끝내기는 강주호의 조언대로 했을 뿐, 2군에서 포수 경험이 있었다.]

[역대 데뷔 타석 홈런 선수는 누구? 데뷔 타석 끝내기 홈런은 2번째, 데뷔 타석 홈런은 24번째!]

[포수 데뷔, 도루저지, 끝내기까지. 완벽했던 하루!]

[황인재의 독주였던 신인왕 경쟁, 마린스의 두 루키가 도전장을 내밀다!]

[마린스 코치진이 20살 루키를 홈플레이트에 앉힌 까닭은!?]

[마린스 감독, ‘김수호는 포수가 아닌 1루수’]

ㄴ ㅋㅋㅋ 그러니까 블로킹도 잘하고, 포구도 좋고, 타격도 좋고 이규영을 2루에서 잡는 선수가 포수가 아니라고요?

ㄴ ㄷㄷ 그러면 마린스 포수는 얼마나 대단할까. 타율 4할에 ops는 1.0이 넘겠지?

ㄴ 이재익 주동훈 쓸 바에 걍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김수호 쓰자.

ㄴ 아니, 감독 미쳤음?

ㄴ ㅋㅋㅋㅋ 이제 한 경기 나온 선수한테 기대하는 꼴린스 수준

ㄴ 남의 잔치에 초치지 말고 ㄲㅈ

#

이정훈 감독은 어제 경기만으로 김수호를 판단할 생각이 없었다.

다른 것보다 표본이 너무 적다.

아직 7월 초, 남은 경기가 반 이상 남아있는 시점에 경험도 없는 포수를 당장 선발로 내세우는 건 말도 안 된다.

물론 김수호가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것도 맞다.

루키가 나와서 혼자 경기를 이끌고, 경기를 끝냈다.

사실대로 말하면 누구보다 김수호를 선발로 쓰고 싶은 건 이정훈 감독이다.

하지만 섣부른 결정으로 마린스의 미래를 책임질 수도 있는 선수를 망가트리고 싶지 않았다.

-똑똑.

“들어와.”

계속 고민하던 중 누군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감독님. 접니다.”

배터리 코치 강기호가 인사를 했다.

“그래. 앉아라.”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예상이 됐다.

어제 10회가 끝나고 김수호를 직접 데려가서 뭔가를 열심히 알려주고, 도루저지에 성공했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던 강기호였으니까.

“김수호,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뭘 어떡해. 언제부터 선수 미래를 우리가 결정했냐?”

“그래도 설득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 너나 많이 해라.”

“감독님!”

강기호가 뭐라 하든 말든 감독은 느긋하게 커피를 내렸다.

“자. 마시고 진정 좀 해.”

“후우. 죄송합니다. 아무튼 수호 그놈은 포수 해야 하는 앱니다. 어제 하는 거 보지 않았습니까.”

“강코치. 네 맘은 잘 알지. 나도 그놈 깡이랑 재능은 인정해. 어딜 갖다 놓아도 제 몫은 할 놈이야. 근데, 아무리 우리가 꼴찌라지만 절차란 게 있어. 우리는 설득을 할 뿐, 강요하면 안 돼. 지금 자네를 봐봐. 당장이라도 그놈 1루 미트를 뺏을 기세 아닌가. 그럼 윗선에서 뭐라고 생각하겠어.”

“... 예. 죄송합니다.”

“그래 그래. 나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이따 다 같이 얘기하자고. 그럼 할 말은 다 끝났나?”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강기호가 인사를 하고 나가자 이정훈 감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아주 눈이 돌아갔네, 돌아갔어.”

사실 강기호는 좋은 코치가 아니다.

은퇴한 지 고작 4년.

팀에 배터리 코치로 온 게 벌써 2년이 됐다.

코치로서 연수받은 기간이 채 2년밖에 되지 않는다.

‘조금만 더 공부하고 왔으면 했는데.’

개인적으로 강기호가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코치로서 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마린스 수뇌부는 반대였다.

강기호 은퇴 이후 시작된 포수난.

지난 몇 년간 강기호를 보면서 눈이 높아 질대로 높아진 팬들은 포수가 무슨 짓을 하든 욕하기 일쑤였다.

결국 팬심을 진정시키기 위해 쓴 방법이 바로 강기호의 코치 선임.

그걸로 잠잠해지긴 했지만, 결국 원인인 포수난은 해결하지 못했다.

명포수가 코치로 온다고 명포수가 나오는 건 아니다.

‘그것도 모르고. 후, 멍청한 놈들.’

심지어 강주호의 후계자도 이제 막 뽑지 않는가.

왜 이런 팀을 맡았을까 후회도 잠시, 다시 한 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이번엔 형이 왔네.’

“후, 앉아.”

“예.”

-끼이익

강주호의 덩치를 힘겨워하는 의자 소리를 무시한 채 감독이 물었다.

“곧 훈련인데 왜 왔어.”

“김수호, 설마 포수로 키우실 건 아니죠?”

‘하아.’

설마 했더니 진짜였다.

결국 조금 전 동생에게 했던 말을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 돌려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똑똑.

“... 들어와.”

문이 열리고 허하준이 특유의 선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

“그래. 하준아. 무슨 일 있니?”

부상 복귀 이후 완벽한 모습으로 부활을 선언한 팀의 에이스.

하지만 그의 입이 열리자 감독은 드디어 폭발했다.

“김수호···.”

“으아악! 당장 나가!”

“옙!”

눈치 빠른 허하준이 탁자 위에 놓인 커피를 보고 대충 짐작하면서 사라졌다.

“후, 김수호 이 자식은 뭔 짓을 했길래 저 세 놈이 찾아와서 그러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없었다.

하루, 고작 2이닝의 수비, 그리고 한 타석.

프로에서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는 선수들은 쌔고 쌨다.

당장 이정훈 감독도 마찬가지.

하지만 찾아온 세 명을 무시하기엔 팀에 끼치는 영향력이 너무 강했다.

결국 감독은 고민 끝에 김수호를 호출했다.

#

솔직히 말하면 어제 잠을 좀 설쳤다.

뉴스부터 sns, 유튜브까지 내 이름이 언급되는 거의 모든 걸 다 본 것 같다.

어제 하루 정도는 이래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뭐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린스 팬들이 알아서 처리해 주겠지.

어제 내가 생각해도 워낙 극적이었던 터라 평소보다 더 큰 관심을 받은 것 같아 걱정이었다.

나는 이제 고작 수비 2이닝, 그리고 한 타석을 소화한 신인에 불과했는데, 사람들의 기대감은 거의 강기호를 방불케 했으니까.

심지어 이런 기사도 있었다.

[리틀 강주호냐 리틀 강기호냐, 마린스의 행복한 고민.]

아무튼 그런 열기가 인터넷상으로만 존재하는 건 아닌지 오늘은 출근길부터 많은 팬이 미리 와서 사인을 요청했다.

정신없는 출근길을 보내고, 감독님이 날 찾는다는 소리에 곧장 감독님이 계신 곳으로 향했다.

“감독님, 부르셨나요?”

“어, 수호야. 앉으렴.”

하루 만에 다시 찾은 감독실이었지만 느낌이 달랐다.

어쩐지 감독님의 태도도 달라진 것 같다.

“뭐 마시겠니? 커피? 차?”

“물 마시겠습니다.”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어제 한 일이 그만큼 가치 있던 일인 거니까 즐기기로 했다.

잠시 물을 마시는 동안 정적이 흘렀다.

“크흠. 수호야. 널 부른 이유는 네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다.”

“예.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래. 2군 감독이랑 얘기해보니까 올 시즌이 끝나고 전향을 생각 중이라고 했지?”

“예. 정확히는 고민 중입니다.”

“그래? 어떤 부분에서 고민 중이니?”

포수는 매력적이다.

공을 받을 때나 내가 원하는 곳으로 투수의 공이 날아와서 삼진을 잡을 때 느끼는 쾌감은 1루수를 할 땐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1루수 역시 포기하기 쉽지 않았다.

내가 1루 수비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곧 강주호가 은퇴하면 그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다.

마린스의 심장인 강주호, 그를 잇는다는 게 부담이기도 했지만, 야구 선수라면, 마린스 팬이라면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리고 10년 넘게 했던 포지션을 한순간에 바꿔버리기엔 두려움도 있다.

그래도 둘 중 하나 고르라면 포수가 끌리긴 했다.

이걸 잘 포장해서 말씀드리니 감독님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잠시 고민 중인 것 같아 물을 마시면서 기다렸다.

잠시 후, 감독님의 눈이 떠지고 입이 열렸다.

“네 얘기는 잘 알았다. 그럼 제안 하나 하마.”

무려 감독님의 입에서 나온 제안이라는 말.

침을 꿀꺽 삼키고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렸다.

“우리는 네 선택을 온전히 네게 맡길 생각이다. 하지만 네 스스로 판단하기에 확신이 안 서니까 고민하는 거겠지. 맞니?”

“예. 맞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주기로 했다.”

감독님의 입에서 내가 듣고 싶어 했던 얘기가 나왔다.

기회.

“먼저 당장 팀에 1루수가 필요한 만큼 주호가 나을 때까지 네 포지션은 1루수다. 이거에 대해서 불만은 없지?”

“예. 원래 그것 때문에 콜업 된 건데요.”

“좋아. 그리고 또 다른 보직이 있다. 넌 팀의 세 번째 1루수이자 세 번째 포수다.”

1루와 포수의 겸직.

어차피 세 번째라면 체력적으로 문제 될 건 없었다.

“어제 같은 상황을 생각하면 되는 거죠?”

“그래. 물론 어제같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기회는 자주 줄 생각이다.”

나야 거부할 이유가 없다.

1루수로 한정되면 후반 강주호 대수비가 전부인데, 포수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면 내가 출전할 기회가 늘어나는 거니까.

아직 내가 채지훈을 제칠만큼 무언가를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거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강기호랑 강주호가 너한테 붙을 예정이야.”

그렇게 말하는 감독님의 입가엔 어쩐지 불안한 미소가 띠어져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