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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4화 (14/203)

14화 리틀 강주호? 리틀 강기호?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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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으로 리드를 허락받은 상황.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리드하는 게 아니라, 강기호가 내 생각을 바탕으로 볼 배합을 짜겠다는 거였다.

추가로 아까처럼 변칙적인 리드를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불만은 없다.

나한테 돌핀스 타자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당연한 거였다.

쉬는 동안 풀어놓은 장비의 끈을 조이면서 살짝 느슨해진 마음가짐을 같이 조였다.

마스크를 쓰자 이제는 익숙해진 선 너머의 세상이 보인다.

10회 말 우리 공격은 2사 주자 없는 상황.

3번 타자 오준혁이 끝내주길 바라는 마음 반, 11회가 왔으면 하는 마음 반을 뒤로 하고 이호민을 찾았다.

“호민아.”

“어, 벌써 준비했네?”

11회 역시 우리 둘이 배터리를 이룬다.

몸을 푸는 이호민의 공을 받아주던 불펜 포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이호민을 데려왔다.

“왜, 무슨 일인데.”

“너 오늘 변화구 제구 구린 거 알고 있지?”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자 이호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뭐라 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존나 쌔게 던져보자.”

“뭐?”

“어차피 제구 신경 써봤자 타자들이 속지도 않잖아. 그럴 바에 그냥 온 힘을 다해서 던지자고. 우리 연습할 때 몇 번 던져봤잖아. 기억 안 나?”

“아니. 할 수는 있지. 근데 너도 알잖아. 나도 공이 어디로 갈지 몰라.”

“타자 몸으로만 안 가면 돼. 그 정도는 가능하지?”

“... 어. 근데 괜찮겠어?”

제구가 안 되는 공은 투수, 타자에게도 끔찍한 일이지만 포수 역시 마찬가지다.

2군에서 이호민의 공을 받아줄 때 궁금해서 몇 번 전력투구를 받아본 적이 있었다.

그때 휘어진 슬라이더의 각을 잊을 수 없다.

제구가 아예 안돼서 못 잡았지만, 운이 좋아 존 근처를 지나간다면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다.

“계속 그렇게 던지자는 건 아니야. 이번 이닝에 한두 번, 딱 그 정도만 던질 거야.”

내 생각에 이호민의 변화구가 안 먹히는 이유는 제구도 있지만 포심을 던질 때와 약간 다른 릴리스 포인트가 문제다.

이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방법은 없다.

이걸 알았으면 메이저로 가서 투수 코치를 했겠지.

지난 이닝엔 하위 타선이라 포심의 구위로 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이닝엔 상위 타선부터 시작한다.

포심만 던지다간 냅다 뚜드려 맞기 십상이다.

“그 정도면 뭐, 알겠어. 한 번 던져볼게.”

“사인은 이거야.”

엄지 하나를 펴서 일직선으로 그었다.

“다 죽여버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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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혁이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풀카운트까지 끌어갔지만, 결국 땅볼로 아웃 됐다.

하긴, 강주호한테 홈런을 맞긴 했지만 쉽게 칠 수 있는 공이었으면 1등 팀의 마무리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연습 투구를 마치자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원래라면 쉬어갈 수 있는 9번 타자였지만 대타로 무의미해진 타순.

만약 출루를 허용하면 그다음은 상위 타선이다.

반드시 잡고 가야 한다.

‘벤치 사인은 몸 쪽 포심.’

하지만 공이 오는 순간 타자가 기다렸다는 듯 바로 휘둘렀다.

다행히 타이밍이 늦어 파울이 됐지만, 만약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왔으면 장타가 될 뻔했다.

‘역시 변화구 없으면 힘든 걸까?’

마운드를 보니 이호민 역시 엄청난 기세로 날아간 타구에 표정이 약간 굳은 게 보였다.

하지만 그게 무섭다고 공을 빼버리는 순간, 타자는 오히려 잡아먹기 위해 입을 더 크게 벌릴 거다.

이번엔 바깥쪽으로 빠지는 포심.

‘이크.’

예상했던 곳보다 존에 바짝 붙어 들어왔다.

다행히 타자의 방망이는 나오지 않았고, 심판의 콜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제발.’

공을 잡은 뒤 콜이 나올 때까지 미트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스트라이크!”

잠깐 머뭇거린 심판이 결국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렸다.

해냈다.

목표했던 2스트라이크 까지 별 위기 없이 도착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진짜 승부였다.

결국 위닝샷으로 쓸 수 있는 건 포심 뿐.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타자는 약간 빠지는 코스라도 전부 휘두르고 있다.

“파울!”

“볼!”

“파울!”

중간에 변화구를 요구했지만, 얄밉게 그것만 쏙 골라내는 걸 보고 울화통이 터진다.

이호민의 변화구에 대한 정보가 확실한 것 같다.

“볼!”

아예 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 정도일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아껴둔 그걸 꺼내야 하나 싶었지만, 벤치 사인은 다시 한번 포심으로 승부를 보자고 나왔다.

-따악!

깔끔한 소리와 함께 공은 유격수와 2루수 사이를 뚫고 외야로 빠져나갔다.

유리한 카운트를 점했지만 결국 허용한 안타.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호민의 표정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다음 타자는 돌핀스가 자랑하는 상위 타선.

“안녕?”

“예. 안녕하세요.”

“너 공 잘 잡는다. 포수 출신이야?”

“아닙니다. 그냥 조금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 아무튼 잘 부탁해.”

친절한 말과 다르게 실력으로 악명 높은 타자.

빠른 발과 정확한 컨택.

1번 타자에게 요구되는 완벽한 조건을 가진 이규영은 명성답게 존 안에 오는 모든 공을 걷어냈다.

“파울!”

“파울!”

“볼!”

“파울!”

“볼!”

“파울!”

“파울!”

안으로 던지면 쳐내고 밖으로 던지면 안친다.

말이 쉽지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어쩔 수 없어.’

가능하면 최대한 아끼고 싶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잘되고 있는 포심의 제구마저 흔들릴 판이다.

엄지를 피고 직선으로 그었다.

뒤이어 체인지업 사인도 같이 보냈다.

사인을 확인한 이호민이 고개를 끄덕이고 힘차게 공을 뿌렸다.

마치 포심처럼 정 가운데를 향해 오는 공.

이규영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탁!

빗맞은 소리와 함께 공은 2루수를 향해 날아갔다.

“아웃!”

“세이프!”

“아···!”

이호민이 아쉬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이건 중계플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이규영의 발이 너무 빨랐다.

아웃을 잡아내긴 했지만 1루 주자가 까다로운 주자로 바뀌었다.

투수를 괴롭힐 목적인지 이규영이 노골적으로 리드폭을 늘린다.

이호민 역시 계속 견제를 했지만, 리드폭은 줄어들 생각을 안 했다.

‘너무 신경 쓰이는데.’

하지만 계속 견제만 할 순 없는 노릇.

결국 벤치에서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하라는 사인이 나왔다.

그리고 이호민의 공이 1루가 아닌 나를 향해 날아오는 순간, 이규영의 발은 2루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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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의 젊은 배터리의 가장 큰 고비입니다.]

[이규영 선수가 1루에 있으면 베테랑들도 큰 부담을 느끼거든요. 차라리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자, 이호민 선수의 초구! 주자 뜁니다! 이루에서 승부! 아웃입니다!]

[허허허.]

[정말 대단합니다. 김수호 선수. 이규영 선수를 2루에서 잡아냅니다!]

[지금 보시면 투수의 공이 던지기 좋게 어깨 높이로 들어오긴 했습니다만, 이규영 선수는 도루의 귀재거든요! 이번 시즌 실패가 2번밖에 없는데 이걸 잡아내네요.]

[송구가 정말 정확하게 들어갔습니다. 자연 태그였는데요?]

[정말 임시 포수가 맞는 건가요? 사실 지금 마린스가 비밀리에 키운 포수라는 게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이네요.]

[이걸 보시는 마린스 팬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지금 송구하는 자세 보세요. 정석 그 자체입니다. 포구부터 송구까지 이뤄지는 동작에서 단 한 치의 오차가 없었어요. 송구 스피드와 위치 역시 완벽했고요.]

[김수호 선수의 엄청난 송구로 1사 주자 1루에서 2사 주자 없는 상황으로 바뀝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김수호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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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루심의 손이 직각으로 세워지는 순간 1루 응원석에서 들리는 엄청난 함성.

“김수호! 김수호! 김수호! 김수호!”

‘진짜 감독님 말이 맞았네.’

블로킹과 도루저지.

포수가 팬들을 미치게 하는 걸 선보이자 고요했던 사직구장은 다시 한번 들썩이기 시작했다.

팬들이 목 놓아 내 이름을 부르는 꿈 꾸던 상황이었지만 냉정을 유지해야 했다.

아직 이닝은 끝나지 않았고 2번 타자 역시 만만히 볼 타자는 아니었다.

이젠 마무리가 필요할 때.

이미 카운트는 유리해졌다.

급해진 타자는 빠지는 포심에도 방망이를 냈고, 0 – 2의 유리한 상황.

마무리 구종은 아까부터 정해놨다.

‘전력을 다한 슬라이더.’

표정이 한결 풀어졌던 이호민이 날카롭게 공을 던졌다.

‘미친!’

“스트라이크 아웃!”

한 가운데로 올 듯이 날아오다 갑자기 좌타자 쪽으로 방향이 완전히 꺾였다.

타자의 방망이는 헛돌았고, 이제 남은 건 내가 잡는가의 여부.

‘잡았다!’

겨우 볼집 끝으로 잡아냈다.

공은 미트에 박힌 이후에도 뛰쳐나갈 듯이 살아 움직였다.

그야말로 미쳐버린 공.

“와아아아!”

그리고 팬들은 그 미친 공에 대한 감정을 환호로 표현했다.

이호민은 아직 이 공을 던진 게 믿기지 않는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향해 엄지를 올려주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나한테 다가왔다.

“미친 새끼.”

“너도.”

우리가 들어가자 선수들은 내 머리가 샌드백이라도 된 듯 미칠 듯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마치 꿈 같이 얼떨떨했던 기분이 단번에 현실로 돌아왔다.

“이호민! 그런 공 던질 줄 알면서 왜 지금까지 숨긴 거야!?”

벌써 투수 코치님한테 잡힌 이호민을 뒤로하고 나 역시 기다리고 있는 강기호에게 다가갔다.

“코치님, 제 송구 어땠습니까.”

“너 진짜 오 일차 맞냐? 사실 회귀 오 일차인 거 아니야?”

“저도 가끔 제 재능이 무섭습니다.”

이번에도 강기호는 손수 내 장비를 풀어줬다.

부담되긴 했지만 그래도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볼까.

“이번 이닝 정말 최고였다. 마지막 그 공 포구도 잘했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공에 대한 히스토리를 듣자 강기호가 중얼거렸다.

“두 번은 기대하기 힘들겠네.”

방금 건 사실 요행이었다.

하지만 이호민은 그런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평가가 높아질 거다.

그걸 잡아낸 나도 그렇고.

그렇게 강기호와 얘기하고 있는데, 거대한 그림자가 빛을 가렸다.

“코치님. 이번엔 저한테 양보하시죠.”

“예예.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그림자의 주인은 강주호.

강기호는 마지막으로 정말 잘했다고 하면서 자리를 비켜줬다.

“얌마. 넌 리틀 강주호라면서 포수를 잘하면 어떡해.”

“저 1루도 잘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스읍. 아무리 생각해도 저놈이 침 바르러 올 거 같은데···.”

그나저나 궁금한 게 생겼다.

“근데 왜 두 분이 서로 존댓말 하시는 거예요?”

강주호와 강기호.

이름부터 알겠지만 둘은 형제 사이다.

연년생으로 강주호가 형, 강기호가 동생.

만약 강기호의 부상만 아니었으면 마린스 포수 자리의 주인은 아직까지 강기호였을 것이다.

두 형제가 서로 무릎 때문에 고생하는 걸 보면 유전인가 싶기도 하다.

둘 다 야구 잘하는 걸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도가니를 대가로 야구 실력을 받은 건가?

“여긴 더그아웃이니까 그러지. 리스펙트 모르냐?”

“아, 그렇죠.”

“아무튼 잘했다. 여기 앉아봐.”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보면 알겠지만 다음에 나올 만한 투수들 정리한 거다.”

“어? 행님! 그거 비밀 노트 아닙니까! 아니, 제가 보여 달라고 해도 평생을 안 보여주던 걸 갸한텐 바로 보여주십니까?”

지나가던 채지훈이 그걸 보더니 흥분해서 달려들었지만, 곧바로 제지당했다.

“넌 나이가 몇 갠데 이런 거 없어도 혼자 잘해야지.”

채지훈이 흥분할 정도라니, 이게 그렇게 엄청난 물건인가?

“와, 진짜 너무하네. 마, 너 사실 김수호가 아니라 강수호 아니가? 이름도 비슷하니 솔직히 말해봐라.”

“쟨 그냥 무시하고, 내 생각엔 네가 타석에 서면 이놈 아니면 이놈이 올라 올 것 같다.”

강주호가 종이에 쓰여 있는 선수 두 명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사실 채지훈이 호들갑을 떨 만큼 고급 정보가 적혀있진 않았다.

다만 오늘 막 1군에 들어온 나로선 침이 뚝뚝 떨어질 만한 정보였다.

상대 팀에는 나에 대한 정보가 그다지 많지 않을 거다.

끽해야 기본 스탯 정도?

이것만 해도 내가 이기고 들어가는 승부였다.

“얘는 보통 초구에 슬라이더나 투심을 던진다. 그리고 몰리면 흔들리는 경향이···.”

거기에 대한민국 1등 족집게 강사까지 함께하자 이미 이긴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요약하면, 만약 네가 타석에 서면 투수가 누구든지 초구에 무작정 휘둘러라.”

“예?”

“결과는 신경 쓰지마. 승부는 3구째에 보는 거니까.”

강주호의 말을 요약하면 상대에게 방심을 끌어내고, 그걸 이용한 노림수를 가져라 였다.

충분히 이해했고,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 얘기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야구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잭 미켈! 잭 미켈!”

“김민석! 김민석!”

잭 미켈과 김민석의 연속 안타.

“이거 쓸 일이 없겠는데요?”

“그럼 그런대로 좋지. 나중에 써먹을 기회가 오는 거잖아.”

하지만 입이 방정인지, 채지훈의 치명적인 병살타가 나왔다.

이제 대기 타석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 됐다.

“내 말 기억하지?”

“예. 걱정 마세요.”

마무리 투수는 10회를 마치고 내려갔지만, 그렇다고 지금 있는 투수가 만만한 건 아니었다.

내 앞 타자는 이준.

“볼!”

병살을 잡긴 했지만 3루 주자가 부담이었는지 결국 볼넷을 내줬다.

이준이 천천히 1루롤 걸어가고, 드디어 프로 데뷔 첫 1군 타석에 섰다.

‘후. 기억하자. 초구는 무작정 휘두른다.’

긴장을 덜기 위해 강주호가 했던 말을 계속 되새기며 타석에 들어섰다.

투수의 굳은 표정을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평소라면 어떤 공을 던질지, 어떻게 칠지 고민했을 테지만 강주호의 조언 덕분에 머리속이 개운하다.

사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계속 고개를 젓던 투수는 결국 자세를 잡았고, 손에서 떠난 공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한테만 아름다운.

-따아악!

“우와아아아!”

공이 방망이에 맞는 순간 승리를 직감하고 손을 번쩍 들며 1루로 뛰었다.

언젠가 상상했던 그 장면.

끊김 없는 파도 소리처럼 계속 들려오는 내 이름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그 순간.

그 순간이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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