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9화 (9/203)

9화 포수 데뷔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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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을 잡은 것도 아니고 고작 스트라이크 한 번 던졌다고 너무 호들갑이었을까.

날 노려보는 타자의 눈초리가 매섭다.

1회 허하준이 투수일 땐 잔뜩 굳어있더니, 20살 듀오가 배터리를 이루니까 만만한가?

순간 울컥 했지만 이호민이 기껏 영점을 잡았는데 괜히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게 더 골치다.

저런 건 그냥 실력으로 이기면 된다.

시선을 무시하고 사인을 보냈다.

‘자. 변화구도 영점이 잡혔는지 한 번 볼까?’

더그아웃에서 나온 사인은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

사인을 확인한 이호민이 곧바로 투구에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빠른 속도로 바깥쪽으로 휘는 슬라이더.

타자의 방망이가 내 시야를 가렸지만 어려움 없이 공을 잡아내고 1루 주자를 슬쩍 쳐다봤다.

이전에 나한테 당한 거 때문에 신중한 모습이 보인다.

그나저나 이호민의 공도 영점이 잡히니 꽤 좋았다.

허하준의 스플리터 같은 날카로움은 없지만, 타자들을 속이기에 충분한 공이었다.

이호민도 자신감을 찾았는지 사인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투구를 이어갔다.

코너에 몰린 건 상대였고, 더그아웃에선 그런 상대에게 굳이 치기 좋은 공을 요구하지 않았다.

3구는 볼이 됐지만, 4구 때 타자의 방망이를 이끌어냈다.

-딱.

“아웃!”

“아웃!”

소리만 들어도 빗맞은 타구는 유격수 이주학에게 흘러 들어갔고, 부드럽게 병살을 완성했다.

“나이스 투 아웃!”

타자가 날 노려봤지만, 그래봤자 오늘 기록이 삼진 – 병살인 타자.

쪼는 게 이상하지.

이후 타자마저 삼진으로 마무리한 이호민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이제 좀 긴장이 풀리냐?”

“진짜 네 덕분에 살았어. 고맙다 수호야.”

“야 병살 잡은 건 난데?”

“너도 고맙지.”

이주학이 끼어들면서 자기 지분을 어필하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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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경기가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이호민은 4회부터 7회까지 깔끔하게 막았다.

마지막에 위기가 있긴 했지만, 슬라이더 각이 더 살아나고 중요한 순간 아껴온 체인지업을 활용하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나도 안타를 추가하면서 3타수 2안타로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8회였다.

후속타 불발로 2 대 0의 아슬아슬한 리드.

8회를 막기 위해 등판한 오민기의 제구가 처음부터 심하게 흔들리면서 선두 타자를 내보냈다.

결국 이호민 때와 마찬가지로 올라가라는 신호를 받고 마운드로 향했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야. 공 좀 제대로 잡아.”

“예?”

“네가 그따위로 잡으니까 스트라이크 될 공이 볼 판정을 받는 거 아니야. 시발, 뭔 이딴 새끼를 포수라고 앉혀 놓은 거야.”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등판해서 지금까지 던진 공 5개 중에 존 안에 정확히 들어간 공은 하나도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왔다.

“....”

“야, 대답 안 해?”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걸까?

인정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근데 그렇다고 공이 정확하게 존 안에 들어올까?

“... 죄송합니다.”

그냥 질러버릴까 했지만, 그 말을 했다가 이 새끼가 어떻게 나올지 감이 안 잡혔다.

내 사과를 듣고도 기분이 안 풀렸는지 몇 번 더 뭐라 하더니 제 맘대로 나보고 꺼지라고 한다.

화가 난다기보단 어이가 없다.

저딴 공을 던지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야 하지 않나?

겨우 화를 삭이고 자리로 돌아올 때, 타석에 있던 타자와 눈이 마주쳤다.

“좆같지?”

“예?”

내가 타자를 스쳐 갈 때, 나지막히 들린 목소리에 놀라서 타자를 쳐다봤다.

“저 새끼 원래 지가 못 던지는 걸 포수 탓하는 게 취미야. 그냥 똥 밟았다 하고 넘겨.”

얼굴을 보고 전광판을 보니 타자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됐다.

“김성준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김수호라고 합니다.”

“어, 나 알아? 반갑다.”

2군을 책임지던 마린스 포수 4인방 중 입대로 빠진 한 명이 바로 김성준이었다.

마운드에 있던 사이 교체가 됐나 보다.

계속 서서 얘기할 순 없으니 자리를 잡고 사인을 기다렸다.

그동안 김성준은 쌓인 게 많았는지 심판이 말릴 때까지 험담을 늘어놨다.

“감사합니다.”

아무튼 결론은 내 잘못이 아니니 기죽지 말라는 거였고, 그에 대한 보답은 오민기가 대신 줬다.

몸 쪽을 요구했지만 한 가운데로 몰린 뭉툭한 투심을 그대로 호쾌하게 밀어 쳐 우익수와 중견수 사이에 떨어지는 2루타를 만들었다.

1루 주자는 곧바로 스타트를 끊는 모습이 보였고, 멈출 기색 없이 그대로 3루를 지나 홈으로 파고든다.

그사이 중계 플레이 중인 수비는 2루수에게 도착했고 한 번 더듬었지만, 홈으로 던졌다.

하지만 더듬은 탓에 송구가 흔들렸는지 코앞에서 땅에 닿고 튀어 올랐다.

어제 했던 훈련엔 없던 상황.

하지만 그간 1루 수비를 했던 경험이 헛된 건 아니었는지 미트를 낀 손은 자연스럽게 바운드를 맞췄고, 곧바로 주자를 태그했다.

“아웃!”

“2루!”

그때 더그아웃에 들린 소리에 곧장 2루로 공을 뿌렸다.

“세이프!”

아쉽게 김성준이 먼저 2루에 돌아갔지만, 점수는 막았다.

그때 내 뒤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발. 그것도 못 잡냐.”

목소리의 주인은 당연히 오민기였고, 난 굳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뭘 봐.”

“... 아닙니다.”

좋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

개 같은 야구의 선배 문화.

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이 문화를 깬 사람은 황인재 밖에 못 봤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오직 하나.

실력.

그에 비하면 아직 나는 보여준 게 없었다.

하지만 꼭 직접적으로 복수할 필요는 없다.

이번 경기가 끝날 때까지만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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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 그거지!”

“박대리! 오늘 자꾸 왜 그러나!”

“조, 죄송합니다. 팀장님.”

오늘만 벌써 두 번째 듣는 호통.

하지만 마린스 팬 박민수는 호통을 듣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처음엔 허하준 때문에 보기 시작했다.

2군 무대였고, 점검 차 등판이기 때문에 허하준이 내려가면 그대로 끄려고 했다.

하지만 1회, 김수호가 허하준이 흔들릴 때 완벽한 견제로 1루 주자를 잡아내더니 타석에선 깔끔한 안타로 타점까지 올렸다.

수비도 나무랄 게 없었다.

1군 포수들도 한 경기에 최소 한 번은 놓치는 허하준의 스플리터를 전부 잡아낼 정도의 실력.

‘조금만 더 볼까?’

그리고 김수호는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줬다.

같은 유망주인 이호민과도 환상의 호흡을 선보이며 7회까지 마린스 포수라고 믿기지 않는 안정감을 보여줬다.

정점은 8회.

김성준의 깔끔한 안타에 1루 주자가 들어오나 싶었는데 바운드 된 송구를 완벽하게 포구를 해냈다.

거기에 이어진 후속 플레이까지.

아쉽게 세이프가 되긴 했지만, 김수호가 보여준 2루 송구는 김성준도 서늘해질 정도로 날카로웠다.

이런 모습을 보여줬던 포수가 대체 얼마만 인지.

‘마무리만 잘하자.’

이후 오민기가 다시 안타를 맞고 1점을 헌납했지만, 어찌 됐든 막아냈다.

그리고 9회에 올라온 마무리와 좋은 호흡을 보여주면서 2 대 1 신승.

만약 김수호가 그 공을 제대로 포구하지 못했다면 승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기쁜일은 당연히 모두와 나눠야 하는 법.

[오늘 2군 경기 포수 활약 미쳤다.]

안 본 사람 후회할만한 경기였음. 허하준 스플리터 한 개도 안 놓치고 심지어 8회 리바운드 포구도 완벽하더라.

진짜 포수 조무사들이랑 급이 달랐음.

ㄴ 1루 걔?

ㄴ 나도 아까 허하준 던질 때 봤는데 잘 하더라 ㅇㅇ. 재능 있는 듯.

ㄴ 고작 한 경기로 평가하네 ㅋㅋㅋㅋㅋ 진짜 꼴린스 유망주 올려치기 지겹지도 않냐?

ㄴ 그치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ㄴ 기사에서 봤는데 하루 배웠다며? 그런 포수한테 발리는 마린스 포수들 클라스 ㅋㅋㅋㅋㅋ

댓글을 보고 기사를 확인해보니 정말 배운 지 하루 됐다고 나와 있다.

‘그 실력이 하루라고?’

물론 초심자의 행운 같은 우연일 수도 있다.

그래도 당장은 좋은 모습을 보여준 김수호를 굳이 내려칠 필요는 없다.

못하면 그때 가서 욕하면 되고, 애초에 1루수 아닌가.

아무튼 그건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경기를 보느라 업무에 집중을 못 해서 오늘은 야근해야 한다.

‘보자, 오늘 마린스 선발이....’

물론 마린스 1군 경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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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 1 승리.

허하준이 나오긴 했지만, 고작 3이닝에 포수가 나라는 것 치고 아주 좋은 결과였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결과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 포수 새끼 때문에 괜히 자책점만 올랐네.”

아까부터 근처에 지나갈 때마다 들으라는 식으로 살살 긁어내는 놈이 하나 있다.

처음엔 이유를 몰랐지만, 김성준에게 경기가 끝나고 오민기에 관해 묻자 이해가 됐다.

아니, 이해 됐다기보단, 그냥 원래 그런 새끼인 걸 알았다.

‘그 새끼 내가 신인일 때부터 그랬어. 지금 마린스에 포수 봤던 사람 치고 그놈한테 욕 한번 안 들어본 사람 없을걸?’

본인의 잘못을, 실력이 부족한 이유를 포수에게 덮어 씌우는 악질 중의 악질.

2개월 간 같은 팀이었지만 전혀 모르고 있었다.

‘미안하다.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그놈이 투수들이나 코치님한텐 잘하거든.’

결국 지금까지 몰래 포수들에게 가스라이팅과 폭언, 욕설을 이어왔고 그게 나한테까지 이어진 거였다.

포수 중 가장 일찍 입단한 김성준조차 24살이다.

곧 서른을 바라보는 오민기는 1군을 왔다 갔다 하는 선수.

함부로 덤빌 수도 없을뿐더러 입단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랬다면 벌써 4년 동안 그런 고통을 받은 것이다.

“야. 가만히 서서 뭐 해? 안가?”

“아, 호민아.”

샤워를 마치고 오민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날 발견하고 온 모양이다.

“빨리 가서 오늘 경기 다시 봐야지. 너도 볼래? 주학이랑 치킨 먹으면서 볼 건데.”

정확히는 본인 활약상일 거다.

아까 첫 타자에게 볼넷을 주고 얼어있던 건 기억도 안 나는지 벌써 다시 돌려 볼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 이따가 갈게. 허하준 선배랑 얘기 좀 하기로 했거든.”

“오키. 올 때 연락해라. 맞춰서 시켜 놓을 게.”

“어. 야 잠깐만,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되냐?”

“뭔데?”

“네 생각에 나 오늘 어땠냐?”

“너? 오그라들게 굳이 내 입으로 듣고 싶어?”

“뭐?”

"내가 말 하는 건 오그라들어서 싫고, 이거나 봐라."

[위기의 마린스 2군, 혜성 같이 등장한 안방마님.]

이호민의 핸드폰에 오늘 경기에 대한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됐지?"

“고맙다. 그럼 오민기 선배는 어때?”

“갑자기?”

이호민이 잠깐 고민했다.

“음. 좋고 나쁨으로 따지면 잘 모르겠네? 그냥 평범해. 평소엔 데면데면하다가 챙겨줄 땐 잘 챙겨주고 그 정도?”

“알겠어. 고맙다.”

“왜? 아까 오민기 선배랑 마운드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별거 아냐. 신경쓰지마.”

“오키. 아무튼 올 때 연락해. 먼저 간다.”

그리고 이후에 만난 허하준에게 똑같이 물었다.

“수호야. 내가 리드를 맡긴 사람이 지금껏 두 명밖에 없던 거 아냐?”

“정말요?”

언젠가 들었던 레파토리와 비슷했다.

“어. 기호 선배랑 양준 선배. 둘 빼곤 내가 리드하거나 더그아웃에서 밖에 안 받았어. 그런데 내가 왜 너한테 리드를 맡겼겠냐.”

“제가 잘해서요?”

“정확해. 아니, 좀 틀렸다.”

“예?”

“너 오늘 진짜 잘했어. 그러니까 네 실력에 의심 갖지마.”

그런 이유로 물어본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웠다.

하지만 오민기에 대해 물어보니 얘기 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른다고 했다.

오늘 내가 공을 받은 두 명의 투수가 공인해주니 자신감이 생겼다.

내일도 잘할 자신은 있었지만, 지금이 내 주가가 가장 높을 때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숙소에 가기 전 잠깐 다른 곳으로 향했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감독님과 수비 코치님이 한자리에 계셨다.

“그래, 수호야. 무슨 일이니?”

날 바라보는 두 분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주전 포수가 빠진 상황.

상대는 2군 여포 상주 상무였다.

2군 경기에 승패가 중요하지 않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교적 중요하지 않다지 결국 사람들이 보는 건 성적이다.

마치 감독님이 말했던 포수의 수비 능력이 블로킹과 도루저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처럼 말이다.

패배가 유력한 상황에서 내가 불을 끈 셈이 됐으니 두 분의 반응이 이해됐다.

하지만 내가 할 말에 두 분의 미소가 사라질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왜 그래? 무슨 할 말 있어서 온 거 아니니?”

“감독님, 수비 코치님.”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기회가 없다.

두 분과 천천히 눈을 맞췄다.

그리고 냅다 구십 도로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 포수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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