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포수 데뷔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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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시작하기 전, 기본적으로 상대 선발 투수의 정보는 숙지한다.

적으면 2번, 많으면 4번까지도 만날 수 있는 선발 투수에 대한 정보는 두말할 것 없이 필수다.

오늘 역시 상대 투수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타석에 들어서자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 든 생각에 놀라 초구는 그냥 흘려보냈다.

“스트라이크!”

몸 쪽으로 꽉 차게 들어온 포심.

상대 투수가 적극적으로 승부하는 타입인 만큼 초구부터 존 안에 넣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그냥 흘려보낼 만큼 머리가 띵한 느낌이 든다.

“잠시만요.”

심판에게 타임을 외치고 시간을 끌기 위해 엄한 장갑을 풀었다 다시 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지?’

그동안 나는 내 입장에서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생각했다.

예를 들면 내가 빠른 공에 강점이 있고, 변화구 대처 능력이 부족하니 존 안에 들어오는 빠른 공을 노리자 같은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방금 한 생각은 투수 입장에서 타자 김수호를 상대할 때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 차이는 꽤나 크다.

그동안 왜 이런 생각을 안 했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머릿속이 트이는 기분이다.

애초에 내 입장에서 투수를 생각하면 안 됐다.

내가 투수를 분석한 만큼 상대 배터리도 나에 대해 분석하고 들어온다.

즉, 내 강점과 약점을 알고 있을 텐데 실투가 아니라면 내가 기다리는 공을 던질 이유가 없다.

만약 내가 1사 주자 1, 2루 볼 카운트 0-1 상황에서 타자 김수호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무슨 공을 던질까.

생각을 정리한 뒤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그렇게 맞은 2구째.

‘왔다.’

거짓말처럼 내가 예상한 공이 정확하게 들어왔다.

포심처럼 보이지만 포심보다 속도가 느리다.

존에서 살짝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그대로 밀어서 2루수 키를 넘기는 깔끔한 안타를 만들었다.

예상하지 못했으면 헛스윙이나 땅볼이 될뻔했다.

안타를 확신한 2루 주자가 전속력으로 홈으로 들어와 1사 주자 1, 3루가 됐다.

“이야. 잘 쳤는데?”

1루 코치님의 칭찬보다 더 기쁜 건, 내 예상대로 정확하게 들어맞았다는 것이었다.

이번 한 번으로 속단하긴 이르다.

하지만 나에겐 이번 주 내내 선발 출장이라는 기회가 있다.

‘이걸 내 거로 만든다면.’

2군 주전이 아니라 올해 1군으로 올라갈 희망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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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데? 원래 저렇게 잘 쳤어?”

“예. 황인재라고 아십니까? 걔랑 같이 중심타선이었는데 저희 학교 애들이 매번 상대하기 싫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김수호가 타격하러 간 사이, 허하준의 옆자리를 차지한 건 이호민이었다.

김수호야 배터리기도 했고, 허하준이 워낙 친근하게 대해서 뭐라 말은 못 했지만, 이호민까지 그럴 줄은 몰랐던 주변 선수들이 괜히 주변을 알짱거렸다.

하지만 허하준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얘기를 이어갔다.

“황인재? 아, 그 피닉스 걔?”

“예. 솔직히 황인재보다 수호가 상대하기 쉬운 건 맞으니까 저도 수호한텐 적극적으로 승부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타격 성적이 꽤 괜찮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2군 성적은 2할 5푼. 평범하네?”

“음.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타자가 아니라서···.”

허하준이 보기에 방금 타격은 본능으로 친 게 아니라 노리고 친 타격이었다.

상대 볼 배합을 정확하게 읽어냈다는 의미였고, 이전에 보여줬던 볼 배합이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거까지 잘하면 진짜 탐 나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김수호와 다시 재회할 날은 적어도 확장 로테이션 이후라고 생각했다.

현재 마린스 포수야 워낙 유명하니 김수호 정도 되는 재능이 몇 달 노력하면 금방 따라잡고 9월 즈음엔 1군 데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오늘 볼 배합을 하는 걸 보고 그 기간이 한 달 정도 앞당겨졌다.

볼 배합을 잘한 여부를 떠나 자신 있게 볼 배합을 하겠다는 것도 그렇고 그걸 정말 실전에 바로 적용한다는 건 어지간한 멘탈로 하기 힘든 일이다.

그리고 방금 타격으로 그 기간이 또 한 달 앞당겨졌다.

‘방금 게 우연이 아니라면?’

타격 능력이 있는 포수는 없어서 문제지, 모든 팀이 환영한다.

‘늦어도 7월 안엔 보겠네.’

뜨거운 햇빛만큼 치열한 5강 경쟁이 시작되는 시기, 그때 김수호가 깜작 등장한다면?

마린스는 치고 나갈 동력을 얻게 될 거다.

그때 이주학 타구에 야수 선택으로 2루에서 아웃 당한 김수호가 홈으로 들어온 3루 주자와 함께 돌아왔다.

“수호야. 너 깔끔하게 잘 치더라. 잘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혹시 질문 몇 가지 드려도 될까요?”

이젠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아서 포수 장비를 착용하며 자신에게 질문을 하려는 모습.

‘어쩌면 타고난 재능보다 이 모습에 더 끌리는 거일 수도 있겠네.’

언젠가 자신이 보였던 그 모습 말이다.

“그래 물어봐.”

“선배님은 제가 타자라면 어떤 공을 던지시겠어요?”

“네가? 글쎄, 모르겠는데.”

“예?”

“네 정보를 모르는데 어떻게 말해. 평범한 우타자라고 생각하면 포심 좀 던지다가 스플리터 던지면 아웃되던데?”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맞는 말이었다.

한국 타자 대다수는 허하준의 공을 치는 것도 어려워했다.

“그러니까 그걸 듣고 싶으면 네 정보를 말해봐.”

허하준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김수호를 쳐다봤다.

“제 타율 같은 거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니, 그런 눈으로 보이는 수치 같은 거 말고.”

“그럼 뭘···.”

“2회 때 첫 타자 초구, 기억나?”

김수호가 처음으로 리드한 공이자 꽤 센스가 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몸 쪽 포심이요?”

“그래. 그때 왜 그걸 요구한 거야?”

“그야 타자가 타석에 완전히 붙어 있어서 그랬죠.”

“그럼 그 타자는 왜 타석에 붙었을까?”

“바깥쪽 공을 치기 쉽게 하려고요.”

“그래. 그게 내가 말하는 정보야. 이 타자가 무슨 코스를 좋아하는지, 공을 보고 치는 타자인지 아니면 한 가지 구종을 정하고 타격하는 타자인지 같은 것들. 이런 걸 분석하고 항상 머릿속에 지녀야 하는 선수가 바로 포수인 거고.”

거기에 타격까지 해야 하니, 포수는 역시 쉽지 않았다.

그걸 매일같이 했던 포수와 첫 해 배터리를 이룬 건 자신에게 있어 큰 행운이었다.

그만큼 눈이 높아져서 곤란한 일도 많았지만 말이다.

“뭐 요즘 분석 같은 경우엔 프런트에서 해주니까 괜찮아. 그래도 네가 어떤 타자인지 너 스스로 알아야 남을 분석하지 않겠어? 한 번 고민해봐.”

‘평생을 해도 모르는 타자가 태반이지만.’

허하준은 의도적으로 마지막 말을 삼켰다.

남이 나를 보는 것과 내가 나를 보는 것은 다르다.

객관적으로 나를 본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포수로서 김수호는 합격.

과연 타자로서, 야구 선수로서 김수호는 어떨까.

‘이것도 기대하는 재미가 있네.’

내가 신인 때 강기호 선배가 이런 생각이었을까.

아무튼 고민에 빠진 김수호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슬슬 나가야 했다.

“네 친구 들어온다. 슬슬 가자.”

허하준이 가리킨 손끝엔 이주학이 터덜터덜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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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타자인지 알아야 한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오기 전까지 머릿속엔 그 생각 뿐이었다.

첫 타석엔 투수 입장에서 생각해 좋은 타구를 만들어 냈지만, 당시 땅볼을 유도하려는 상황과 구종에 대해 생각했다.

허하준이 말한 것처럼 내가 어떤 타자인지 하나 하나 따져보고 낸 결과가 아니었다.

한참 생각해보니 결론이 났다.

‘모르겠다.’

다행인 건 내 옆에 아직 참고할 수 있는 자료들이 잔뜩 있었다.

긴장한 듯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 들어오는 타자가 보인다.

방금 까지만 해도 2군에서 상대가 허하준이라고 하면 타자들이 기뻐할 줄 알았다.

내가 생각은 로우리스크 하이리턴이었으니까.

하지만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난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나와 허하준의 실력 차이는 월등하다.

그러니까 내가 져도 당연한 거고, 이긴다면 그건 코치진에게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내가 포수를 맡은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허하준? 내가 허하준 공을 어떻게 쳐.’

시작도 전에 패배를 직감하고 좌절하는 사람.

그런 타자와 대결은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었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존에 들어오는 포심을 연속으로 던지고 슬라이더로 마무리.

그렇게 허무하게 삼진을 당한 타자 대신 다음 타자가 들어왔다.

눈빛이 꽤 날카로운 타자.

팬들이 본다면 근성 있다 좋아할 눈빛이다.

그렇게 내 타자 데이터 베이스에 또 다른 유형 하나가 추가됐다.

근성이 있다고 딱히 잘 치는 것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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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타자를 분석하기엔 허하준의 공이 너무 좋았다.

결국 스스로가 어떤 타자인지 답을 내진 못했지만, 오늘 목표로 했던 2이닝 퍼펙트는 달성했다.

거기까진 별 문제 없었다.

마린스의 3회 말 공격은 득점 없이 종료.

문제는 4회였다.

허하준이 오늘 맡기로 한 3회가 끝나자 더그아웃 분위기가 묘해졌다.

허하준과 상무 타자 간의 실력 차이는 결과로 증명됐다.

중간에 김수호의 견제가 있었지만, 결국 9명의 타자 중 1루를 밟은 건 한 명뿐이었다.

아마 허하준이 남은 6이닝을 전부 던진다면 지금 결과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허하준은 계획대로 3회를 끝으로 내려갔다.

그렇다면 다음에 올라올 투수는 허하준의 공을 보고 독이 바짝 오른 상무 타자들을 상대해야 했다.

허하준과 상무 타자들의 차이보다 허하준과 마린스 2군 투수들의 차이가 더 심했다.

‘누구지?’

‘제발 나만 아니어라···!’

‘감독님! 제발요!’

당연히 투수들은 그런 타자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 했고, 감독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지 않기를 바랐다.

결국 호명된 투수는 탈락이 예고된 시험을 치러가는 수험생과 같은 마음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투수는 이호민.

그리고 포수는 여전히 김수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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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난데···.”

이호민이 선두타자 볼넷을 내주고 그다음 타자에게 역시 볼을 던지자, 한 번 올라가라는 사인을 받고 마운드에 방문했다.

“그렇게 싫냐?”

내가 아는 이호민은 항상 자신감이 넘쳤고, 여유가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지금 투수 이호민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안 돼서 생떼 부리는 어린애랑 진배없었다.

“왜 하필 감독님이 날 선택한 거지? 나는 허하준 선배랑 투구폼도 비슷하고 구종도 거의 똑같잖아! 이건 그냥 나보고 망하라고 하는 거야.”

사실 나도 이해가 가는 투수 교체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사실을 과연 감독님이 모르실까?

내심 이 상황이 아까 상대했던 상무 타자들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하지만 이걸 얘한테 주입 시키는 건 다른 일이었다.

뒤를 슬쩍 쳐다보니 심판이 살짝 눈치를 줬다.

젠장, 시간이 없다.

“호민아, 네가 전에 나한테 왜 포수에 지원했냐고 물었지?”

“어? 그랬지.”

“과연 감독님이 맡기실 때 나한테 지금 이 모습을 기대했을까?”

오늘 나는 임시 포수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호민도 공감하는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래. 난 못해도 그만이라는 거야.”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하는 거야? 자랑 하려고?”

“네가 지금 말한 걸 감독님이 모르고 계실까? 네 투구 폼이랑 구종이 허하준 선배랑 비슷한 걸?”

“...그건 아니지.”

“내 생각엔 네 상황이 나랑 비슷해. 네가 못한다고 해도 별 문제 없을 거야. 심지어 네가 여기서 점수를 내주던, 홈런을 맞던 감독님은 별 신경도 안 쓰실걸?”

내 말이 긴가민가한지 더그아웃을 힐끗 쳐다봤다.

“포수!”

좀 더 말하면 될 것 같은데, 이제 진짜 가봐야 한다.

“그리고 네가 나보다 한참 먼저 뽑혔잖아. 자신감을 가져라. 좀.”

마지막으로 어깨를 두드려주고 뛰면서 자리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심판과 타자 모두에게 먼저 사과하자 별일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이호민이 자신의 공을 던질 수 있느냐 뿐이다.

이호민이 심호흡 몇 번 하더니 나를 쳐다봤다.

더그아웃에서 나온 사인은 몸쪽 포심.

흔들리는 투수에게 요구하기엔 가혹한 공이다.

정말 이호민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듯한 모습에 내가 다 떨렸다.

하지만 사인은 전해졌고, 이호민 역시 사인을 뚫어져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힘차게 와인드업을 시작하고 손끝에서 빠져나온 공이 순식간에 미트에 도달한다.

“스트라이크!”

“나이스 볼!”

거봐. 할 수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