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털고 또 털어도 (1)
“그으… 게 정확히 무슨 말씀이신지.”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은 다니엘이 가장 먼저 말했다. 답변이 어렵지 않은 질문이었기에 나는 흔쾌히 답에 응했다.
“신이 말하길, 사탄을 죽이면 나를 즉각 집으로 보내 줄 수 있다 하더군. 거기에 이 몸의 주인까지 구원해 주겠다고 했다.”
“예?”
“정확힌 이 몸에 들어선 악마의 모가지를 자르고 마기로 더러워진 육신을 정화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게 해 줄 거라 했다.”
“에??”
「네??」
이번엔 대면하고 있는 이들뿐 아니라 심상에 거주하고 있던 소년까지 반문했다. [잠깐. 내 목을 뭐?] 분노의 비명은 덤이었다.
[잠깐. 너 영혼이 나갔던 사이 대체 뭘 하고 온─]
근데 생각해 보니까 빡치네. 비명 질러야 할 건 분노가 아니라 나 아닌가? 이번에 신을 안 만났으면 난 계약의 9년이 이쪽의 9년인 줄 알고 지내다 기어이 엿 먹었을 거 아냐. 이 개자식이 진짜.
“그 입을 다무는 게 좋을 거다, 악마. 안 그래도 신에게 네놈이 부린 수작을 다 듣고 온 길이니.”
나는 참지 못하고 분노에게 일갈했다. 나와 대화 중이었던 이들이 뜬금없는 발언에 당황할 것은 알았으나, 도무지 멈출 수 없었다.
억누르고 억누른 덕에 목에만 핏줄이 도드라지는 걸로 끝난 화가 그릇을 내려놓았다. 빡침으로 그릇 깨 먹는 건 한 번이면 족했다.
[…무슨 수작?]
“모르는 척하고 싶은가? 부정하고 싶은가? 원하다면 그리해라. 달라지는 건 없을 터이니.”
후, 그래도 신이 저 새낄 엿 먹일 방안을 새로 만들어 줬으니까… 아니 근데, 저 새끼가 먼저. 나는 한국인 특유의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라데이션 분노를 두어 번 더 체감하곤 미간을 짚었다.
골이 아파서 지압 마사지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악마가 뭘 했습니까?”
“조금. 그래도 좋게 해결됐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새낀 이제 끝났어. 내가 뒈지든 사탄이 뒈지든 그 새끼가 좆된다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까. 나는 그 사실만을 유일한 위안 삼으며 주먹을 죔죔했다.
실컷 울고 와서 그런지 다행히 이번 감정은 조절이 되었다. 꼿꼿이 자기 주장을 하던 혈관과 근육들이 힘을 풀고 살갗 아래로 숨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사탄을 잡아야 한다.”
“아니, 상황 전달은 확실히 됐는데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지 않습니까요?!”
“좀 더 세밀한 묘사가 필요한가?”
“그, 그런 것까진 필요 없는데……!”
“아니… 저는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신께서 당신께 신탁을 내리신 겁니까?”
속에서는 여전히 분노와 파우스트가 아우성─파우스트는 순수한 궁금증에 물어보고자 함이 좀 더 맞겠지만─을 쳤으나, 나는 능숙하게 그들의 소리를 외면했다.
내 시선은 대신 내게 기대하는 눈치인 다니엘과 인퀴지터에게로 잠깐 향하는 중이다.
“신탁… 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리 표현해도 틀리진 않겠군. 결국 신의 말인 것은 동일하니까.”
“그럼……!”
“하지만 그는 내게 강요하지 않았다. 당장 돌아가는 방법과 그런 식으로 둘 다 사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했을 뿐. 그중 내가 받아들인 게 후자일 뿐이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이제 그 부분은 이해가 됐나?”
“예.”
신의 말이란 단어가 그렇게 흥분할 무언가인가. 종교를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공감은 잘 안 간다.
뭐, 네가 신과 접촉했을 리 없어!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은 것만은 정말 다행이지만.
“저, 그럼… 모험가께서는, 계속… 계속 저와 함께해 주시는 겁니까?”
각설하고, 이번엔 인퀴지터가 조마조마한 얼굴로 물었다. 그녀의 최종 목적은 사탄을 처치하는 것이고, 이번에 내가 밝힌 새 목적이 사탄잡이라 하니 충분히 할 만한 질문이었다.
“네가 나를 동료로 받아 준다면, 그리되겠지.”
그리고 그건 사실, 내쪽에서도 달가운 물음이었다. 사탄을 꼭 잡아야 한다면 인퀴지터만 한 동료도 없었다.
“……! 무, 물론입니다!!”
화악 밝아진 청년의 얼굴이 행복으로 물들었다.
[저기, 진짜 신이 그래 주겠다고 했어?]
한편, 내게만 들릴 목소리로 주작이 소곤소곤 물었다. 그것을 확신한 것은 베르세르크조차 이쪽에 고개를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확인한 후에 입술을 뻐끔댔다.
“약속은 열매가 했다.”
[아아…….]
열매라고 표현해도 알아듣기는 하는구나. 그 이전에 주작도 그들의 존재를 확실히 아는 것 같고. 그렇다면 주작도 혹시 태곳적 짐승들이 희생하던 그 자리에 있었을가?
나는 그 사실에 미묘한 싱숭생숭함을 느끼며 마지막 스푼을 떴다. 이젠 완전히 식어 버린 수프였지만 그래도 맛은 있었다.
“악마기사, 아니 모험가.”
식사가 다 끝난 후, 널리고 널린 눈을 이용해 설거지를 뽀득뽀득 하고 있었을까. 소녀를 재우고 온 베르세르크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착 가라앉아 있어 꼭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다.
“…베르세르크.”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는 분위기가 판이하게 달라져서인가. 아니면 데스브링거의 팔을 부러트린 걸 알고 있어서인가. 나는 그녀를 조금 어색한 낯으로 받아 주었다.
물론 어색한 낯이라고 해 봤자 조금 더 굳은 말투만 나올 뿐,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오랜 컨셉 연기의 폐해였다. 이젠 무표정이 디폴트가 되어 버렸다.
“이야긴 들었다.”
근데 뭔 얘기? 시체 훼손을 명한 게 사실 데스브링거의 자의가 아니라 내 부탁 때문이었다는 거? 아니면 내가 이곳에 온 본래의 목적은 무기 뽀개 먹은 값을 돌려주기 위함이었다는 거?
“고맙다. 내 자매를 챙겨 주어서.”
아. 관 이야기였나.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이었다.”
사람으로서 당연히 챙겼어야 할 일을 두고 공치사를 들을 이유는 없다.
거기에 하릴없다는 사유가 있었다 한들, 나는 그녀의 가족을 훼손하는 데 찬동한 사람 중 하나다. 역시 감사받을 자격은 없다. 나는 그것을 분명히 하기로 했다.
“오히려 사과는 내 쪽에서 해야겠지. 가족의 일은 유감이다. 원망해도 이해하겠다.”
뽀드드득. 나는 들고 있던 그릇의 청결도를 확인한 후 그것을 내려놓았다. 음식에 기름기가 없다곤 하지만 눈만으로 깨끗하게 닦이는 건 역시 신기해. 별 볼 일 없는 상념은 덤이었다.
“…내가 그댈 원망할 거라 생각하는가?”
“소중한 존재가 사후조차 모독받은 일이다. 대의라는 이유가 있었다곤 하나, 그것이 화내지 못할 이유가 될 순 없으니. 그대의 분노는 정당하다.”
이게 마지막 그릇이네. 나는 마지막 그릇까지 눈으로 야무지게 문질렀다.
문득, 190 넘는 거구의 인간 둘이 설원에 쪼그려 앉아 있는 건 그림이 좀 이상하지 않나 싶어졌으나, 그마저도 곧 괜찮아졌다. 애초에 이 대화가 설거지하는 때에 이뤄진 시점에서 분위기는 쓰레기통에 처박힌 지 오래였다.
“다만 그대의 분노 앞에 약간의 이성이 아직 남아 있다면…….”
하니, 이왕 망한 분위기, 좀 더 망쳐 봐도 되지 않을까.
“그것으로 하여금, 데스브링거에게 난 화를 부디 내게로 돌려 주지 않겠나. 그는 나의 부탁을 받아 행동했을 따름이다.”
사과… 를 내 쪽에서 주선하는 것까진 역시 무리겠지. 양쪽 다 절실한 이유가 있었고, 거기다 대고 제3자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다만 그래도, 이 정도의 오지랖까지는 허용선이 아닐까. 딱히 틀린 말인 것도 아니고. 아니, 완전 사실에 기반한 말이고.
“…….”
아닌가. 선 넘은 말인가. 나는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다 닦은 그릇을 괜히 더 문질렀다. 언제 내려놔야 타이밍이 좋을까. 괜히 진땀이 다 났다.
“나는, 널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한참 만에 돌아온 대답은 조금 먹먹했다. 그리고 의외였다. 내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러니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너에게 들을 사과가 없다.”
“그런가.”
원망하지 않는다라… 나는 부러진 데스브링거의 팔과 그녀의 말을 재 보다가 끝내 수긍했다. 치솟은 화로 실수─실수라고 하기엔 양팔 건은 너무 무겁긴 하다마는─를 저지르더라도 곱씹고 나니 화낼 일이 아니었다, 같은 경우는 제법 흔한 까닭이다.
물론 데스브링거가 들으면 좀 억울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사과받을 수 있기를 기원해 주는 수밖에.
“오히려 감사하고 있다.”
“……?”
“너는 망자에게 주어지는 정갈한 관과 고운 꽃을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이라 말했지만… 우리에겐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런 당연한 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건…….”
“그러니 그건 감사한 일이다.”
아니이… 그건 진짜 별거 아닌 일이었는데. 망자의 예우도 예우지만, 시신 그냥 넣고 다니기 찝찝해서 관을 준비한 이유도 크고. 그러니까 정말로 이렇게 추켜세워질 일은 아닌데.
“…고작봐야 관과 꽃일 뿐이다.”
“그래. 그렇게 말할 거라 생각했다.”
“그대가 생각한 것처럼 제대로 된 존중과 존경을 갖추고 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니─”
“모험가. 네가 네 행동을 무어라 평가하든, 어떻다 말하든, 나의 감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어떤 일에 대하여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단 건 너도 알고 나도 알지 않나.”
“…….”
“네 사소한 호의는 나와 내 자매에게 거대한 위안으로 다가왔다. 그저 그런 일일 뿐이고, 무어라 말을 더 얹을 것도 없다. 나는 너에게 감사한다.”
나는 베르세르크의 진솔한 언어에 괜히 부끄러워졌다. 정말 별거 아니라 생각한 일인데, 그것에 과도한 감사가 쏟아지니 꼭 얼굴이 달아오를 것만 같았다. 쑥스럽다.
“…그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극구 부인하며 내팽개치는 것도 현명한 태도는 아니지. 그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는데 본인도 아닌 내가 부정해 봐야 뭐가 달라지겠어. 겸연쩍어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리고… 염치없지만 부탁이 하나 있다.”
“말해라.”
“자매의 시신이 든 관과 꽃을 가져가고 싶다. 그래도 되나?”
“……? 당연히 그대가 받아 가야 할 것들이다. 그걸 왜 묻지?”
별개로 이건 진짜 왜 묻는 거야. 내가 뭐, 내돈내산 한 관이랍시고 안에 든 시신 내팽개치면서까지 회수할 것 같았어? 내가 그렇게 안면몰수한 인간으로 보인 거야? 그런 거야?
“그래.”
어이가 하도 없어서 기막힌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니, 그녀가 설핏 웃었다.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어딘가 후련하면서도 끝이 씁쓸한, 애달픈 미소였다.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기를 그만두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눈이 없고 꽃이 피는 곳에서 언니의 장례를 치를까 한다.”
“그런가.”
“와 주겠나?”
“허락한다면, 반드시.”
대신 이곳의 장례법들을 몇 개 떠올리며, 그곳에 가져가야 할 무언가들을 가늠했다.
조의금… 제도는 없으니까 돈은 필요 없을 것 같고. 조화는 여기도 하얀 꽃을 주로 쓰는 듯 했으니 안개꽃이나 흰나리, 국화 비슷하게 생긴 꽃을 구해서 가면 되겠지. 단 과일이랑.
아니다. 설원에서 사시던 분이니 흰 꽃은 안 좋아하시려나? 지구 쪽 관념이 너무 강해서 색 있는 꽃은 영 찝찝한데.
“장례가 끝난 뒤에는… 너를 돕겠다.”
그래도 고인의 취향에 맞추는 것이 좀 더… 응?
“사탄을 잡으러 간댔지. 함께하겠다.”
“…그대가 함께한다면 든든하겠지만, 어째서?”
기껏 언니의 시신도 찾았는데 왜 사지로 오려는 거야. 보니까 소녀랑도 엄청 애틋해 보이던데.
“사탄을 잡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다.”
“알고 있다.”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그럴 확률이 크다.”
“각오했다.”
“그래도 따라오겠다는 건가? 그대에겐 챙겨야 할 이도 있지 않나?”
인퀴지터야 사명도 있고, 본인의 열망도 강인하니 차마 말릴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베르세르크는 다르다. 그녀는 사탄을 반드시 잡아야 할 이유가 없다. 빠져도 된다. 그런데 대체 왜?
“소녀가 그대를 퍽 따르는 듯 보이던데.”
“…그 아이도 이해해 줄 거다.”
“확신이 없다면 함부로 말하지 마라. 애당초 소녀의 의견도 아니고 그대의 추측일 뿐이지 않나. 저 나이대 아이들에게 애착 대상의 유무가 얼마나 중요한진 알고 말하는 건가?”
서로 아무것도 아닌 관계라면 몰라, 그렇지 않은 관계에서 어른이 일방적으로 떠나 버리는 것은 아이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사실 다 자란 어른에게도 그건 똑같이 힘겨운 일이고.
“동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건 사실이지만, 한 아이의 미래를 걸어서까지 동료를 영입하고픈 의향은 없다.”
그러니 소녀가 진짜 괜찮다고 하기 전까진 안 돼. 돌아가. 절대 안 받아 줄 거야.
“너는…….”
내 고집에 베르세르크가 희한한 걸 보는 사람처럼 표정을 떨떠름하게 바꾸었다. 그러나 내 의견이 변할 일은 없다.
보호자를 잃은 아이가 비틀려 가는 꼴? 그런 걸 내가 어떻게 봐. 차라리 나 혼자 고생하고 말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절대 금지다, 이 자식.
“대, 대전사!”
다만 내 생각이 전부 끝나기도 전, 동굴 쪽에서 아이가 후다닥 뛰쳐나왔다. 내가 아공간에 넣어 두었던 여분의 옷은 현재 소녀의 몸을 꽁꽁 휘감고 있는 채다.
“떠, 떠나신 줄 알고…….”
“내가 뭐랬습니까요. 그냥 산책 가셨던 거라니까요.”
뒤이어 나온 건 데스브링거였다. 아무래도 소녀가 걱정돼서 따라 나왔던 건지 그의 말투는 귀찮음으로 가득하다.
“자, 확인했으면 이제 돌아갑시다. 이러다 동상 또 걸리면 샌님이 화낼 거예요.”
…동상이 ‘또’?
“잠깐, 잘됐다. 피리꾼아, 하나만 질문해도 되겠나.”
내가 데스브링거의 말에 관심을 빼앗긴 사이, 몸을 일으킨 베르세르크가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질문이요?” 두 사람이 말을 뱉을 때면 그 입에선 하얀 입김이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나는 이이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일을 돕고자 한다.”
“네.”
“한데 그 일이 매우 위험하여, 내가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를 장담할 수 없다.”
“네.”
“내가 가도 괜찮겠나?”
말을 하던 베르세르크가 문득 현타 온 얼굴을 했지만─내가 왜 허락을 받고 있지? 따위의 표정이었다─중요한 건 소녀에게 윤허를 구하는 말을 했다는 것이라.
나는 소녀의 입에서 부정이 튀어나오길 기대했다.
“당연히 괜찮죠?”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