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화 그 두 눈으로 (6)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는 게스타스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사탄을 죽여 달라니. 신 본인조차 상대하질 못해 현상 유지하기 급급한 그놈을 죽여 달라니. 이게 말인가?
“내가 왜 그런 힘든 일을─”
[최악의 경우에도 너는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하나 내 반응을 예상한 듯 게스타스가 차분히 뇌까렸다. 최악의 경우. 돌려서 말했을지언정 의미만은 착실히 전해지는 단어였다.
[사탄을 죽이는 데 실패하여 죽어도, 너는 돌아갈 수 있어. 반면 사탄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면… 사탄을 막는 데 대부분의 힘을 할애하고 있는 신이 모든 힘을 되찾을 수 있지.]
“…되찾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너를 옭아매고 있는 악마를 죽여 널 돌려보내 줄 거야. 그 과정에서 네가 입은 피해도 어느 정도 배상할 수 있을 테고. 거기에 마지막으로… 네 육신의 본래 주인, 그 소년에게도 구원의 기회를 내려 주겠지.]
또한 이어지는 말도 나의 분노를 잠재우고 이성을 일깨우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 사람을 제외한 모두가 원하는 걸 얻는 가능성. 그건 정말 매혹적인 울림이었다.
“정확히.”
[그 소년의 죄는 악마와 계약하고, 악마에게 공물을 바쳤으며, 다른 차원의 영혼을 끌어들이기까지 했다는 것에 있지.]
글쎄, 그게 정말 그 아이만의 잘못인가? 나는 그렇게 시비 걸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내 앞에서 소년에게 모든 죄를 돌리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아이가 품은 죄목이 이렇다고 해서, 그 아이가 모든 죄의 원흉이라는 건 아니야. 우리가 아무리 인간성을 잃었대도 인과관계마저 파악 못 할 수준은 아니거든.]
실제로 그는 소년에게 모든 죄업을 묻지 않았다. 그저 얽히고설킨 사정을 잠깐 미뤄 둔 채, 명명백백한 죄부터 분류하는 사람처럼 굴었을 뿐.
기계적이고 건조한 그 분류에 미묘하게 들던 반감이 사라졌다.
[하지만 너도 알잖아? 어쩔 수 없었다, 라는 말로도 도저히 참작이 안 되는 죄가 세상엔 있다는 걸.]
아니, 어쩌면 그의 말에 공감해 버린 것이 원인일지도 몰랐다. 그가 하는 말을 가장 뼈저리게 통감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본래라면 그 아이는 죽어서도 그 죗값을 치를 수 없어. 그 아이가 죄를 짓게 된 원인이 무엇이건 간에, 바친 영혼의 수가 오천이 넘으니까. 그 대상이 설령 범죄자의 영혼이래도 마찬가지야.]
그렇지만.
[그들이 죄를 지었건 짓지 않았건 그래 봤자 최대 살인. 그리고 살인은… 생명을 끝낼지언정 영혼을 없애진 않지. 영혼을 바쳐 이 세상에서 아예 없애 버린 소년의 행동과 다르게.]
그렇지만…….
[인간에게는 별 차이 없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거 알아. 하나 ‘우리’, 혹은 세계의 입장에선 두 행동의 무게는 완전히 달라. 더 중한 죄는 분명 소년의 것이다.]
나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다. 할 말은 딱히 없었는데도 이상하게 목이 메어 혀끝이 달싹거렸다.
[거기에 그 소년은 너를… 다른 차원의 존재을 끌어들이기까지 했어. 네가 도의를 아는 자였기에 망정이지, 우리 세상에 호의적이지 못한 존재였다면 또 하나의 사탄이 등장했을 거다.]
아무리 중죄라도 그 애한텐 그 방법밖에 없었을 뿐인데, 그것밖에 걔가 할 수 있던 게 없었을 뿐인데. 그걸 그 애한테 모두 물으면 너무 억울하잖아.
내가 결코 외쳐선 안 될 말이었다.
[그러니 규칙대로라면 이제껏 그래 왔듯 영혼조차 태움으로써 만일을 방지했을 테지만… 네 덕분에 우리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어.]
그래도 외치고 싶은 말이었다.
[네가 그 아이의 다음을 바란다면, 우리는 너의 뜻을 존중하여 그 아이를 구원할 거야. 그 육신에 더는 마기가 머물지 못하도록, 흘러 나간 천수를 다시 담을 수 있도록 말이야.]
내 손이 아직도 얽혀 있는 게스타스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힘들 거라는 건 알아. 사탄은 실로 강력한 존재니까. 숭고한 용이 담당하던 차원벽이 수습됨으로써 우리도 개입할 여지가 좀 더 생겼지만… 그럼에도 그 존재를 죽이는 건 매우 고되고 힘겨운 일이 될 테지.]
하지만. 반전의 효시를 뱉으며 나를 직시하던 게스타스의 눈이 애달프게 흐려졌다.
[맹세해. 네가 그러고자 한다면, ‘우리’ 모두는 온 힘을 다하여 너의 의지를 받들 것임을.]
불지 않는 바람이 영혼의 나무를 흔들었다. 쏴아아아. 어쩌면 형체 없는 파도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해일처럼 몰려왔으나 잔잔하게 층진 투명함이 세상을 받쳤다.
“…이건 협박이에요.”
[미안해. 그럼 지금 돌려보내 줄까?]
“지금 인간성 잃었다고 시위합니까? 눈치 챙겨요.”
[아, 음. 그래. 미안.]
그리고 나는 그 투명한 바다를 딛고 선 채 결정을 내렸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9년을 이곳에서 지낼 것도 각오했던바, 그런 마당에 사탄 죽이는 것 하나 동참하지 못할 이유가 뭐 있겠나? 어느 쪽으로 가든, 무엇을 택하든 나는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아무런 손해도 없는 상황인데.
도리어 9년이나 기다려야만 돌아갈 수 있던 게, 싸움 한 번이면 되게 된 상황이라 더 좋을 수도 있다.
끝의 끝까지 싸우게 됐다는 건 유감이지만, 동시에 질리도록 해 왔던 일이니 마지막으로 또 한 번 한다 치면 그만이고.
“…사탄을 죽이기만 하면 되는 거죠.”
[응. 그거면 돼.]
“결말이 어찌 돼도 나는 반드시 돌아갈 수 있는 거고?”
[약속해. 우리가 손해 보는 한이 있더라도 너만큼은 제자리에 돌려 놓을 것을.]
“…내가 잘하면 파우스트도 사는 거고?”
[응.]
그러니, 그러므로.
이거면 되었다. 나는 마저 묻어나는 눈물을 온전히 닦아 냈다.
“…아, 이러다 사탄 죽이는 게 9년 넘도록 걸리면 망하는 건데.”
[하하, 그러진 않을걸? 그쪽도 이젠 시간이 없게 됐거든. 네가 해 준 일들 덕에.]
“…제가 뭘 했는데요?”
[…이번에 수습한 차원벽의 문제도 그렇지만, 네가 죽인 대악마 숫자만 봐도 딱 알 수 있지 않아?]
“아… 그거.”
근데 그건 솔직히 내가 잘한 게 아니라 여기 사람들이나 신이 무능한 거 아닐까? 진솔한 말로, 걔네들이 그렇게까지 죽이기 힘든 존재는 아니었잖아.
죽일 때 개고생해 놓고 할 소리는 아니긴 한데, 아무튼.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은데… 그건 오해야. 변명 같지만, 우린 숭고한 용이 쓰러지는 바람에 사탄을 견제하는 와중에도 차원벽을 지켜 내느라 힘을 엄청 소모하고 있었다고.]
“…그게 그렇게 위험했으면 미리 신탁을 내려 줘도 됐지 않았을까요?”
[신탁 내릴 힘조차 없었다고 하면 봐줄 거야……? 근데 진짜야. 용사를 간택하는 것 자체도 우리에겐 엄청난 부담이거든. 이번에 새로 신탁을 내렸던 것도 네가 대악마를 둘이나 죽여 줬기에 가능했던 거고…….]
“그럼 처음 신탁을 내렸을 때 북쪽으로 가라고 하면 됐지 않았을까 싶은데. 동료는 모으라는 말 뒤에.”
[아, 그거 우리가 내린 계시 아닌데?]
“……?”
[꿈에 강림해서 손등에 문양을 새겨 주는 것으로 이번 대 용사임을 알리는 신탁은 내렸지만, 계시는 아니야. 그건 교황이 꾸며 낸 거야. 애초에 우리가 직접 말했다면 신탁이라고 표현했겠지.]
“…신전은 뭐, 날조가 특징인가요?”
용사도 날조로 탄생해, 계시도 꾸며 낸 거야. 그럼 뭐가 진실이란 말인가.
[하하… 그렇지만 교황 입장에서도 엄청난 거짓을 꾸며 낸 건 아닌걸? 사탄 퇴치야 용사로 간택되면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임무일 뿐이고, 동료를 모아야 한다는 건… 그쪽 교황이 이번 대 용사를 불쌍히 여겨 세상 구경이라도 하란 의미로 지어낸 것뿐이니까.]
“그건 또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불경을 범해서 죄송하다고 우리한테 기도한 걸 들었거든.]
“…아.”
이걸 또 듣네. 나의 표정이 차게 식었다. 정말 쓸데없는 걸 알아 버린 기분이었다.
“…손등의 문장은 당신이 새겨 주는 거예요?”
또한 흘러가듯 지나간 말에 괜히 시선이 갔다. 인퀴지터의 손등에 새겨져 있을, 나조차 몇 번 본 적 없는 신의 문장. 시작은 거짓이었을 용사를 진실로 만든 증표. 그것이 새삼 밟힌 까닭이다.
[응. 나야 거짓말로 용사가 된 사람이지만, 그게 계속 반복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두 번째부터는 고르고 골라서 손등에 문양을 새겨 주고 있지.]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한데, 그 용사란 건 한 번에 여럿 만들 순 없어요?”
신탁을 잘 안 내리는 게 부담 때문이라니 일단은 넘긴다.
하나 신탁 자체가 부담된대도… 용사가 발휘하는 힘을 고려하면 한 번에 여럿 만드는 것이 더 이득이지 않을까? 용사 하나면 대악마에게 역으로 죽을 수도 있고 그렇잖아. 그럴 바에야 숫자로 밀어붙이는 전법을 쓸 순 없던 거야?
[그건 어려워.]
“문장을 새겨 주는 게 부담이라서?”
[그것도 이유긴 하지만, 애초에 용사의 자질을 가진 이가 정말 드물게 출현하거든. 이번 대 용사가 역대에서 손꼽히는 자질이었다면 대충 감이 잡히겠어?]
…인퀴지터가 그렇게 대단했어? 물론 걔 하는 거 보면 ‘용사가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데 왜 세상은 아직도 이따위지’ 싶긴 했는데.
“그… 자질은 개입해서 만들 수 없는 거예요?”
[당연하지. 영혼은 우리가 빚지 않아. 우연이 빚을 뿐.]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신이라고 만능은 아니구나. 나는 새삼스럽게 그 사실을 깨달았다가, 다른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럼 인퀴지터에 더해 대악마를 수용할 자질을 타고난 파우스트의 탄생이 겹친 건…….”
[정말, 이 세상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우연이자 기회였지.]
아. 그 애는 정말, 악마만 아니었으면 모두의 동경을 받는 삶을 살았겠구나.
[악마만 아니었다면…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도 용사와 영 인연이 안 닿는다 싶었으면. 그 애도 아마 신탁을 받았을 거야. 현 용사와 그 애 정도면 사탄을 잡는 것도 가능하다 우린 보았으니까.]
너는 정말 눈부신 삶을 살 수도 있었겠구나.
[뭐, 결국 이렇게 돼 버렸지만.]
내 일도 아닌데 박탈된 가능성에 괜한 아쉬움이 들었다. 선비가 재수하는 걸 보았던 그때와 다를 바 없는 안타까움이었다.
[더 궁금한 건 없어? 없으면 슬슬 보내 줄까 하는데.]
“…이런 자린, 다신 안 만들어지겠죠?”
[솔직히 그렇지? 지금 이 자리도 엄청난 우연과 조건이 겹쳐서 만들어진 자리거든.]
그렇지만 그것을 더는 티 내선 안 되겠지. 이미 벌어진 사건 앞에서 ‘사고가 없었다면, 그 일만 없었다면.’ 따위의 가정은 결코 위안이 못 되니까.
[아니면… 생각이 바뀌었어? 지금 돌아갈래?]
“아뇨. 그건 아니에요. 단지…….”
하므로 나는 쓸데없는 감상을 지우고 자세를 정갈히 했다.
“이런 말 해도 되는 건진 모르겠지만, 평안한 하루… 나날 되세요.”
나와는 좋은 인연이 아닐지라도, 객관적으로 그는 자기 자신 등을 희생하여 모두를 위하고자 하는 사람이니. 그런 사람에게 최소한의 존중을 보이고자 한다.
내 고개가 정중히 꺾였다.
[…응. 고마워.]
아, 그래도 생전의 저 사람을 만났으면 더 좋았을 것 같긴 하네. 인간성이 깎이지 않은 거짓말쟁이 용사는 어떤 사람일지, 역시 궁금하니까.
[잘 가.]
나를 지탱하던 바다가 사라지고, 부유하던 몸이 천천히 중력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먼저 부웅 뜨고 신체의 중심을 끌어당기는 힘이 초 세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3, 2, 1.
[오만의 마법진이 완성되었어. 조심해.]
우주가 나를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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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영혼을 살렸다가, ‘그 일’이 반복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 앤 그러지 않을 거야.]
게스타스는 안전하게 돌아간 대양의 별을 보며 가지에 걸터앉았다. 사고가 필요한 일을 마친 몸이 서서히 굳기 시작했다. 열매로 돌아갈 준비였다.
[그건 너의 판단에 불과해, 1번.]
[하지만 몇몇 애들도 동의하는 판단이지, 그렇지?]
다만 그런 그의 머릿속에는 화형 대신 추방형으로 그쳐 줬더니, 그대로 복수귀가 되어서 돌아온 영혼 하나 떠오르는 중이니.
[…난 여전히 만약을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도 동의하는 바야. 하지만… 그 애는 괜찮을 거야.]
세상을 팔아먹으려 했던 주제에,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며 돌아온 그 영혼, 그 악마.
[난 오히려, 그 애가 저세상까지 쫓아가겠다고 할까 봐 걱정인걸.]
앞으로 그와 같은 과오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건 너도 동의하지? 호박기사, 볼프강.]
그러기 위해 바친 사후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