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화 그 두 눈으로 (3)
“사, 사, 살아 계셨습니까?!”
‘아무래도 죽어야 할 모양이다’라는 발언도 그렇고, 모험가와 다르게 균열이 닫힐 때까지 돌아오지 못한 것도 그렇고.
그래서 당연히 죽었다고만 생각했다. 방법이랄 게 없으니 그저 온몸을 불살라 늑대를 막아 냈다고, 마냥 그렇게 여겨 버리고 만 것이다.
[너 말이야… ‘나’에 대해서 정말 모르는구나.]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아니지만.]
한데 설마 살아 있었을 줄이야.
인퀴지터는 뽀그르르르 나는 조그만 주작을 보며 본인도 모르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자 참새만 한 주작이 그녀의 손가락을 받침 삼아 앉았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뿌듯함과 미묘한 감격이 청년의 입술을 쿡 찔렀다.
[나를 칭하는 이명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중 아주 직관적인 이름이 하나 있지. 불사조不死鳥. 죽지 않는 새.]
“죽지… 않는…….”
[물론 진짜 죽지 않는단 소리는 아니야. 단지 내 본질… 불꽃의 불씨만 남아 있으면 언제든 살아날 수 있단 점에서 재생의 폭이 다른 놈들보다 훨씬 클 뿐이지.]
“그건 뭐… 신체 일부라도 남아만 있으면 부활 가능하단 소리입니까요?”
그사이 주작이 희생했다고 알고 있던─다니엘이 그리 전달했으므로─데스브링거가 침착함을 되찾은 채 질문을 던졌다. 인퀴지터도 묻고 싶던 바였다.
[대충 그런 식으로 알아들으면 돼.]
“그, 그렇습니까요. 근데 말투는 왜……?”
[아… 이건… 일종의, 울타리 같은 거야. 타락을 막기 위한 울타리?]
“예?”
[타락한 태곳적 짐승을 몇 목격해 봤다면 너희도 알 텐데? 불멸은 타락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란 걸.]
“그건, 그랬죠?”
[어지간하면 죽지 않고 부활하는 나는 그만큼 타락과 가까워. 자칫하면 불멸이 가능한 성질이니까. 하니 뭐 어쩌겠어? 적당한 때마다 인격을 교체하는 식으로라도 대안을 마련하는 수밖에.]
“그걸로… 괜찮은 겁니까?”
[그럼, 걱정하지 마! 지난 수천 년간 아무 문제 없었으니까.]
그러나 설명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그들은 숙연함을 먼저 느꼈다.
인격의 교체. 말은 쉽게 하지만 그런 대안을 준비하기까지 주작은 필히 오랜 고민에 시달렸으리라. 헌 인격에 종언을 고하고 새 인격을 탄생시킨단 건 결국 스스로를 죽여 새로운 이를 만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는 본래라면 영원한 불멸을 누릴 수도 있는 존재다. 타락을 방지하겠단 이유 하나만으로 스스로의 불멸을 포기했을 그의 선택은 실로 거룩하단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깝지 않으십니까? 그래도 반불멸인데.”
[에이, 어차피 오래 살아 봤자 얻는 건 스트레스밖에 없는걸. 무엇보다 교체 트리거가 ‘죽음에 준하는 부상을 입었을 때’ 혹은 ‘300년’ 이상 생존했을 때, 이 두 개뿐이라 자주 교체하지도 않아. 300년이면 이것저것 다 누리고 갈 수 있는 시간이고.]
그 어떤 인격이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는커녕 아주 당연하게 여길 주작임이 보여서 더욱 그랬다. 두 사람은 우물쭈물 파닥거리는 작은 새를 지켜보았다.
[아무튼… 너무 어색하면 그냥 전 불사조가 자식과 세대교체 했구나, 대충 그 정도로 여겨도 돼.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그로 인해 약간의 오해도 일긴 했으나 덕분에 분위기는 좀 풀렸다. 그들은 작은 주작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이제 남쪽으로 다시 갈 수 있겠습니다요.”
그보다, 주작의 죽음이 애달픈 것과 별개로 그 부분이 참 걱정이었는데 살아 있다니 다행이다. 그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 까마득한 바다와 산맥을 걸어서 횡단해야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부활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어… 그거 말인데.]
하나 안도는 이르다는 듯 주작이 제 날개를 펼쳐 얼굴을 긁었다. 날개가 저렇게 꺾이는 것이 가능한지는 둘째 치더라도 뻘쭘하기 짝이 없는 말투에 두 사람은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부활이랑 힘의 회복은 또 별도라서 말이야. 너흴 태울 정도로 몸이 커지려면 사흘 정도 걸릴 것 같은데…….]
“예?”
[식량… 충분하지?]
* * *
“‘나’와 다르지만 ‘나’와 동일한?”
거꾸로 자란 가지의 열매들은 진정 무엇일까. 눈알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름답고 천상의 과실이라 여기기엔 꺼림칙한 저것들을 정말 뭐라 불러야 할까.
나는 그것들을 차차 뜯어보며 게스타스의 말 한 부분을 짚었다. 게스타스가 흐린 얼굴로 본인의 양손을 깍지 꼈다.
[그걸 설명하려면 먼저 이걸 이야기 해야 하는데… 일단 영원이나 불멸, 그것들이 타락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 그 정돈 너도 알고 있지?]
“알죠.”
설마 모를 리가 있겠나. 그로 인해 죽이게 된 태곳적 짐승만 둘인데.
용은 자의로 타락한 게 아니니 셈하지 않더라도, 비류호나 육귀의 반쪽인 흑사만큼은 저 명제가 참임을 증명했다. 영원한 것들은 언젠가 타락한다.
[그건 세계 자체도 예외가 아니야.]
“…지금 설마 신이 타락했다고 말하는 건가요?”
어쩐지 일을 더럽게 안 하더라니, 그 새끼도 타락했던 건가? 분노 섞인 의문이 머리를 장악하려던 차, 게스타스가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 그랬다면 이렇게 못 있지.]
혹시 하며 빡쳤던 마음이 다행히 잠재워졌다. 진짜였다면 나는 신의 대가리를 깨기 위해 망치를 들었을 것이다.
[다만 그런 거야… 신은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 ‘자기의지’라 부를 만한 걸 전부 제거해 버렸어. 그 자신을 오롯이 순환과 질서로만 기능하게 만들었단 거지.]
“…순환과 질서로만 기능한다고요.”
[그래. 정해진 규칙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은 타락할 여지가 없으니까.]
“타락은 없겠죠. 그래도 오류는 날 수 있지 않나?”
그러나 잠깐이라도 화가 났던 마음은 여전히 그 잔재가 남아 있으니. 나는 그 아니꼬움을 담아 말을 살짝 비꼬았다. 게스타스에게 미안했으나 이쪽 신을 향한 나의 앙금은 너무 많고 깊었다.
[맞아… 차원벽이 찢어져 외적들이 침입해 오거나 인간이 변절하여 악마를 소환하는 등 오류는 얼마든지 났지. 이미 시스템화 된 신은 그것을 고치려 들지언정 즉각적으로 방법을 고안해 내지는 못하게 됐고 말이야.]
그래도 게스타스는 내 비꼼에 반발하는 대신 흐리게 웃으며 동조해 주었다. 용사라더니, 인퀴지터와는 어째 넉살의 정도가 차원이 다른 듯했다.
[그래서 나는… 생전의 나와 내 동족들은 ‘용사’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
[신은 분명 이 세계를 위한 선택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즉각적인 결단을 내려 가며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세계는 도로 위험에 빠졌으니까. 신을 대신해 판단하고 또 행동할 존재도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단 이야기야.]
“…그게 용사란 겁니까?”
[결론만 내린다면.]
이건, 좀 이해가 잘 안 가는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으나 그게 왜 용사의 존재로 이어지는지, 그 연결 고리가 도통 납득 가지 않는다.
나는 눈살을 모은 채 팔짱을 꼈다.
[아, 역시 바로 와닿진 않는 모양이네. 하긴… 좀 터무니없긴 하지? 뜬금없기도 하고…….]
“뭘 말하고자 하는진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 하필 용사인 겁니까?”
[으음, 후대의 사람들이 그걸 용사라 불렀으니까?]
“……?”
[말이 좀 꼬이네. 그러니까… 내가, 우리가 원했던 건 정확히 말하면 용사가 아니야. 살아 있을 땐 신의 힘을 받아 행동하고, 죽어서는 신의 곁에 선 채 신이 못 하는 판단을 대신 내려 주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타락을 면할 그런 존재들을 바랐던 거지.]
“영원한 시간은 반드시 타락을 불러온다면서요.”
[우리는 영원을 사는 게 아니야. 쪼개진 찰나를 살 뿐.]
…뭔 소리야.
나는 게스타스의 말에 결국 참지 못하고 얼굴을 구겼다. 게스타스의 말이 사이비의 그것이 아님은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소리 같단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였다.
그만큼 게스타스의 말은 머리를 굴리고 굴려도 따라잡을 수 없는 그런 게 있었다. 너무 뜬구름 같다.
[으…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 게 낫겠다.]
결국 내 표정에 게스타스가 손을 번쩍 들었다. 처음부터. 이야기가 길어질 조짐이 느껴졌으나 차라리 달가웠다. 이건 요약판으로 수강할 수 있는 지식이 아니었다. 더 긴 설명이 필요하다.
[아까 내가 ‘생전의 나와 내 동족들은 용사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판단했다’라고 했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내가 태곳적 짐승의 피를 이은 존재고, 또 그러한 이유로 인간이 모르는 사실 몇 가지를 알았기 때문이야.]
“…그, 신이 자기의지 없이 존재하는 시스템이란 사실 말이죠.”
[그래. 처음엔 별생각 없었는데, 하필이면 내가 성인이 될 때쯤 네가 말한 그 ‘오류’ 중 하나가 나 버려서 말이야.]
숭고한 용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외적 일부가 남쪽으로 내려와 버렸다. 당시엔 태곳적 짐승들의 수가 많아, 인간들이 알기도 전에 일이 해결되었지만 만일 추후에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땐 또 어떻게 될까. 살아생전의 게스타스는 그 걱정에 도무지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그런 말로 자신의 심리를 해명했다. 역시 처음부터 단계를 밟아 가며 설명을 받으니 그의 심리가 드디어 와닿았다.
[그래서였어. 우리는 그 일로 하여금 급변하는 일에 한해서는 시스템화 된 신을 대신해 판단할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체계적인 규칙은 안정과 유지에 유리할지언정 새로운 것에 대처하는 능력이 한없이 떨어지니까.]
“그건 그렇죠.”
[동의 고마워. 그래서… 우리는 그 대처 능력을 보완하는 무언갈 만들려 했어. 그 과정에서 우리가 제물로 바쳐져도 상관없을 정도로 열중했지. 그런데 막상 연구를 하다 보니 떠오른 건데, 신조차 영겁의 세월이 불러올 타락을 경계하여 자아를 포기한 상태잖아. 그런 주제에 한낱 피조물인 우리가 영원을 버텨 낼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생각만 하면 도무지 방법이랄 만한 게 없어지고 마는 거야.]
이어지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당시의 게스타스가 했을 고민 따위를 가늠해 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때 내게 아이디어를 준 게 바로 주작님과 북쪽의 용님이었어. 인격의 교체. 그것을 따라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상상하는 대체 판단 시스템도 썩 무리는 아닐 것 같았거든.]
“잠깐, 잠깐만요. 그 말은…….”
[그래서 내 동족은 살아생전엔 신탁의 날조를, 사후엔 그들의 영혼을 바쳐 저 세계수를 빚었지. 아, 현존하는 태곳적 짐승의 후예가 적은 건 그 때문이야. 당시 살아 있던 후예들은 대부분 자청해서 목숨을 내놓았던지라… 그때 대부분 멸종했거든. 후예뿐 아니라 태곳적 짐승 몇 명도 손을 보탰었고.]
“……!”
[여하튼, 그렇게 빚은 나무는 신과 연결되었고… 날조된 신탁의 용사로서의 모든 임무를 마친 나는 그 나무의 첫 번째 열매─ 판단을 대신할 영혼이 되었어.]
세상에 태곳적 짐승이 얼마 남지 않은 건 그 때문이었구나. 나는 상상치도 못한 진실을 접함에 따라 괜스레 숨이 턱 막혔다. 그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이 사항을 대했는지, 당시의 그들이 얼마나 이것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이제야 알 것 같은 까닭이었다.
예컨대 수십의 죽음에는 안타까움이 먼저 들 수 있어도 수천의 죽음은 압도적임이 먼저 다가오는 것처럼.
[참고로 열매와 나무를 분리해서 만든 건, 영혼이 자칫하면 신에게 흡수되어 자아를 상실했기 때문이야. 그 때문에 나무라는 중간고리로 신과 영혼의 합일을 최대한 늦췄지. 겸사겸사 자아를 갖춘 영혼이 타락할 전조를 보이면 바로 떨어트려, 신의 타락을 막기 위해서기도 했고.]
하나 그 턱 막히는 중압감에서 좀 벗어났을 때, 나는 ‘열매’라는 단어에 시선이 닿았다.
첫 번째 열매가 된 게스타스. 지금은 수천 개로 불어난 열매들. 하면 그 열매들의 출처는 그럼……?
[타락의 대비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아. 아까 말했지? 우리는 영원을 살지 않고 쪼개진 찰나를 산다고. 그 의미는 간단해. 우리는 우리의 판단이 필요할 때가 아니면 반드시 잠들어 있어. 우리가 존재한다는 느낌조차 느낄 수 없도록.]
나는 이어지는 말보다 퍼뜩 떠오른 열매의 출처를 두고 입술을 떨었다.
[나는 특히 그런 편이야. 내 자랑 같아서 말하긴 뭐하지만… 열매 중에서도 특히 자아를 지켜 줘야 하는 순위가 따로 있거든. 그건 영혼의 크기와 직결된 건데─]
“그 열매라는 거.”
신은 자체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는 존재다. 그리고 게스타스는 방금 ‘신탁의 날조’와 ‘날조된 신탁의 용사’라는 발언을 했다. 앞서 신을 대신해 신의 힘을 사용하여 행동할 사람이 필요하단 얘기도 했고.
“설마 역대 용사들입니까?”
그렇다는 건… 용사라는 개념조차 그가 탄생시켰다는 건 아닐까?
“역대 용사들이 전부 열매가 된 겁니까?”
[…대체 인격을 나 하나로 끝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리 나라도 영원 앞에서 타락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말이야.]
“그럼 정말……!”
[그래. 네 생각이 맞아. 세간엔 신이 선택하여 세상에 내려 준다고 알려진 용사는… 실상은 내가 골라 냈고, 또 뒤이어 열매가 된 이들이 선출해 냈을 뿐인 존재야. 즉, 다음 열매가 될 수 있는 자격을 판단하여 뽑힌 게 용사란 거야.]
순간, 내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가득 찼다. 인퀴지터. 환하게 웃던 붉은 머리카락의 청년이 떠오른 순간, 속에서 격한 감정이 몰려왔다.
“…인퀴지터도, 그 애도 죽으면 저 열매인지 뭔지가 되는 겁니까?”
다양한 문화를 접한다는 명목으로 매번 새로운 음식을 시켜 보고, 맛있으면 더없이 기뻐하며 양 볼을 가득 채우던 그 애가. 무언갈 항상 배워 나가고 있음에도 순수함과 우직함만은 지켜 내어 어디서든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 있는 그 아이가.
[죽은 그 아이의 영혼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아마 그렇게 되겠지.]
타인을 위해 고난과 고초를 마다하지 않을 그 어린애가.
“……!!”
[…내가 나쁘다고 생각해?]
화가 났다. 무엇에 화가 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부디 용서해 줘.]
그리고 슬펐다. 그저 슬펐다. 인퀴지터는 절대 거절하지 않을 걸 알아서, 그래서 너무 슬펐다.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보다 나은 모습으로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이것을 악이라고 부르기에는 오롯이 대의를 위한 행위일 뿐임을 알아서, 그래서 더욱 슬플 수밖에 없었다.
내 얼굴이 끝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