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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375화 (375/389)

375화 그 두 눈으로 (1)

회복진의 기능이 대기의 마력을 끌어들여 더 빠른 마력 회복을 꾀하는 것이랬나.

마력은 쓰지 않지만 그래도 확실히 몸이 빨리 나아지는 것 같긴 하다. 인퀴지터는 회복진에 앉아 그런 생각을 잠시간 했다.

[으음, 아무래도 고는 죽어야 할 모양이다.]

주작이 뜬금없이 그런 말을 내뱉기 전까지만, 딱 그랬다.

“예?”

“잘 못 들었습니다?”

말의 함의를 이해 못 한 건 아니나, 아무리 곱씹어도 뇌가 받아들이지를 않는다. 결국 인퀴지터와 그 옆의 다니엘은 반문하기를 골랐다.

[뒤를 부탁하노라.]

하나 그들의 납득 여부는 주작의 선택에 그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으니. 주홍빛 불꽃을 몸에 두른 봉황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아득한 우주 저편으로 넘어갔다. 마치 유성을 보는 양했다.

* * *

죽는 건가? 나는 혼란에 빠져, 더는 도움이 되지 않는 분노를 뒤로한 채 생각에 잠겼다. 반대쪽으로 달리는 것도 정말 무리야? 일수유의 시간 동안 여러 개의 상념들은 생존을 위한 가지를 뻗고 또 뻗는다.

‘…답이 없는데.’

하나 아무리 골몰해도 탈출구 따윈 보이지 않았다. 늑대의 아가리는 정말 질릴 만큼 컸고, 자연히 내가 저것을 벗어나는 것보단 이것이 닫히는 게 더 빠를 수밖에 없는 탓이다.

거기에 되건 안 되건 일단 시도라도 해 볼라치니 혓바닥 대신 존재하는 촉수의 다발이 파도처럼 내게 몰려왔다. 늑대의 입속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이자 몰이사냥이었다.

이건 진짜 답이 없어. 움츠러드는 눈매와 배반되게 내 눈의 동공은 더욱 확장되어 홍채를 선처럼 만들었다. 세상의 모든 빛을 삼켜서라도 활로를 찾고자 하는 동공이었다.

「전, 전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

여기서 죽는대도 나는 살겠지만, 그래도 안 돼. 아이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죽음의 위기에 봉착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있는 마력 없는 마력 박박 긁어 봉 끝에 모았다.

“나를 삼키려면… 불 먼저 삼켜야지?”

섬격을 시도할 만한 마력량이 아니다. 그렇지만 전방위로 불씨를 퍼트리는 것 정돈 가능할 것 같다. 나는 그것을 이용해 불의 마력을 담은 봉으로 다가오던 촉수 다발을 때렸다.

촉수 다발을 뭉개는 데 성공한 봉이 그 와중에도 불티를 사방으로 퍼트렸다. 퍼진 불씨는 이제 한 점에서 점진적으로 확장되다가 다른 불씨와 촉발하며 크기를 거대하게 불릴 것이다.

이 망할 늑대 새끼의 입안이 바싹 구워질 정도로.

크우와아아아!

촉수들을 쫓아내기보다 입안을 굽는 데 좀 더 중점을 두었더니 확실히 효과가 온다.

나는 거의 닫혔던 입이 다시 벌려지는 걸 확인하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촉수에 붙잡히기 전 허공으로 뛰어오른 몸이 공중제비를 돌며 위에서 짓쳐들던 것을 발로 쳐 내고 봉으로 아래의 것을 견제하며 앞으로 전진했다.

그리고 끝내 내 몸이 입의 끝에 닿아 간다 싶을 때.

크우우우우.

빌어먹을 늑대가 고개를 살짝 트는 것으로 내 노력을 한 번에 무마시켜 버렸다. 쿠웅. 그 입이 온전히 닫히며, 조금의 빛도 없는 세계가 탄생되었다. 이젠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다. 완전히 먹혀 버렸다.

콱!

완전히… 먹힌다. 촉수들이 내 몸을 감싸고 그곳에 달린 입들이 옷부터 살갗까지 그 안쪽을 조금씩 조금씩 파먹으려 들기 시작했다.

화륵.

그러나 그것들이 내 옷 대부분을 먹고 살갗에 머리를 들이밀려던 그때, 칠흑 같은 세계를 뚫고 주홍빛 불꽃이 다가왔다. 마치 어둠이란 장막을 뚫고 온 화살 같았다. 한 점처럼 보였던 적색 화마가 내게 빛살처럼 다가와 내게 붙어 있던 촉수들을 전부 불태웠다.

[그대.]

물론 그 불은 내게도 상당히 적대적이었다. 내 몸까지 태우는 열기에 눈쌀이 찌푸려졌다가, 연이어 들려오는 부름에 겨우 펴졌다.

[그대가 살기 위해서는 고를 한 자루의 검 삼아 휘둘러야 하느니라.]

“…주작?”

[모두가 살 방도는 그뿐이 없느니. 부탁하노라.]

마법사의 조언 때문이긴 하나, 상성에 맞지 않는단 이유로 빠졌던 존재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다만 모두가 살 방도를 운운하며 날아온 것엔 내가 모르는 마땅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그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냥 휘두르면 되나.”

솔직히, 이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고.

[그대가 아까 행했던… 모조리 지워 내던 그 기술을 재현할 자신 있는가?]

“해야 한다면.”

그런데… 모조리 지워 내는 기술이라면 역시 섬격을 말하는 거겠지? 주작을, 그러니까 남의 힘을 멋대로 휘둘러 보는 건 처음이지만 섬격을 재현하는 것 자체는 썩 어렵지 않을 성싶다.

범위와 농도가 어떻건 간에 그건 그냥 휘두르기만 하면 되는 기술이니까.

[그럼 가자꾸나.]

당연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을 바로 후회했다. 내가 본인의 힘을 멋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주작이 권한을 허락하자마자 느껴지는 열기가 몇 배로 심화된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걸 허락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일방적으로 힘이 내게 들어온다. 마치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게 피가 아니라 용암인가 싶을 정도로 강렬하게, 뜨겁게, 치열하게.

[그레트헨, 미쳤어?! 살려고 노력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상극의 힘을 받아들이면─!]

커헉. 누군가가 피를 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것인가? 혹은 심상에서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이들의 것인가.

차마 분간할 정신머리는 없다. 단지 이것을 어서 배출하지 않는다면 위험할 거라는 본능적 경종밖에는.

“으윽.”

라텔로는 안 된다. 인퀴지터의 축복조차 견뎌 낸 라텔이지만, 이것마저 담은 채 휘둘렀다간 정말 라텔이 진짜 망가져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독한 작열통 속에서 어둠과 늑대, 나 자신을 불태우는 화염을 손에 그러쥐는 상상을 했다. 이 강대하고도 파괴적인 힘이 내 손아귀 안에 모여 한 점으로 응축되는 상상이었다.

콰아아아아!

그러자 내 몸을 살라 먹던 힘이 내 손끝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 흐름조차도 내겐 부담이었으나, 살기 위해선 어떻게든 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거대한 힘을 악착같이 뭉치고 응축하여 한 점으로 만들어 냈다.

태양과도 같은 열원이 내 손바닥 위에서 박동하기 시작했다.

“으으.”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점을 늘린다. 선으로, 아주 긴 선으로. 엇갈리는 손바닥을 따라서.

나는 내 손을 따라 검처럼 길게 뽑혀 나오는 화마를 두고 식은땀을 흘렸다. 물론 소용돌이치는 열기는 소금기만을 남기고 수분을 죄 증발시켜 버린다. 살갗이 약간 버스럭버스럭해졌다. 소금기와 재 가루가 같이 날리는 버스럭함이다.

[이, 미친.]

「허억.」

그리고 그 선이 내가 원하는 길이까지 자랐을 때, 나는 그것을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았다. 화륵. 손바닥이 녹아내리고 재생되기를 반복하며 기어이 뼛조각만을 남겼다.

“이젠, 제발─”

한데 뼛조각만 남았는데도 손이 움직여질 수 있을까?

“이걸로 끝내자!”

답은 ‘가능하다’였다. 내 손이 불꽃의 검을 휘둘렀다. 하나의 생을 통째로 바친 검이 우주의 한 조각을 멸몰시키는 순간이었다.

* * *

촤아아악!

균열 너머가 주광색 섬광으로 한번 가득 찼을까.

햇빛과 닮았으되 그보다 더 가혹한 빛이 그녀의 눈을 찌르며 강제로 감기게 만들었다. 눈을 감은 후에도 한참이나 잔상이 남아 눈물이 흐를 빛이었다.

“으…….”

결국 이도 저도 못 한 채 눈물을 좀 짜내 버리고. 그녀는 이제 괜찮다 싶을 즈음 게슴츠레 눈을 떴다. 빛은 없어졌다. 그것을 가장 먼저 인지한 눈이 두어 번 눈꺼풀을 깜빡이며 남은 잔상을 털어 냈다.

“주작, 께서는…….”

“힘이 남았다면 준비해라.”

“에……?”

“온다.”

한데 그녀가 뒤의 전개를 완전히 파악하기도 전, 마법사가 툭하니 말했다. 그런 마법사의 몸은 이미 균열의 코앞까지 도착한 상태다.

저 사람은 가면 덕분에 눈부시지 않았던 건가? 인퀴지터는 그런 생각을 하며 허둥지둥 마법사의 곁으로 가려 했다.

촤아아악. 실타래에 묶인 새까만 형체가 균열을 뛰어넘어 이쪽 세상으로 튕겨져 나왔다.

“적……!?”

“아닙니다, 저건……!”

새까만 사람이다. 살갗은커녕 근육의 결만이 겨우 보일 정도로 바싹 타 버린 사람.

어찌된 영문인지 가장 먼저 탔어야 할 머리카락이 일부 남아 눌어붙은 게 보였지만,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머리카락이 남아 있든 아니든 이 존재가 소사체임은 명약관화했으므로.

털썩.

아무튼, 날아온 그 소사체는 정확히 마법사의 품에 안겼다. 어쩌면 마법사가 그것의 착탄 지점을 미리 계산하여 때마침 낚아챈 것일지도 몰랐다.

그만큼 인퀴지터의 시선 속 마법사는 신비하고 의뭉스러운 사람이었다.

“…잘도 살아 있구나. 차라리 죽는 게 편했을지 모르는데.”

각설하고, 그래서 정말 저건 뭐지? 인퀴지터는 어서 받아 가라는 듯 소사체를 내미는 마법사의 손짓에 얼떨떨히 다가갔다. 새까맣게 탄 사람의 모습이 그제야 좀 더 자세히 보였다.

“모, 모험가님?”

불에 타서 쪼그라든 상태임에도 넓직한 골격, 몸에 눌어붙어 있는 익숙한 형상의 가죽옷 몇 겹. 세 걸음 이내로 다가서야 겨우 들리는 얕은 호흡 소리.

상대의 정체를 드디어 파악한 인퀴지터의 심정이 격변했다.

“모험가님!”

“예? 모험가 경이요?”

인퀴지터는 다급히 그 존재를 마법사에게서 받아 들었다. 파스슥. 손에 닿은 부분에서 재 가루가 떨어져 내리는 바람에 기겁하는 마음도 들었으나, 그렇다고 가만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인퀴지터는 대충 둘러메듯 받아들였던 마법사와 달리, 그를 최대한 부드럽게 들어 안았다.

“다, 다니엘 경. 이, 이건 어, 어떻게 해야.”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건… 이건 저도…….”

보통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다. 그저 신성력만 불어넣으면 될 일이니까. 하나 모험가에게 있어 그 힘은 도리어 독이다. 여과기가 생긴 후로는 타격을 받지 않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료까지 받을 수 있게 된 몸은 아니란 거다.

하므로 그녀는 다니엘에게 매달렸다. 보유 신성력이 매우 적은 다니엘은 도리어 그렇기에 신성력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노련한 대처가 가능했다.

“일단 얼음에 닿아선 안 됩니다. 그리고 몸의 온도를 낮, 춰야만…….”

그러나 보통이라면 즉사했을 상처다. 그런 상처를 다니엘이라고 처치할 수 있을 리가 있나. 그가 아는 화상의 대처는 살갗이나 근육이 당한 정도이지, 내장까지 불탔을 때가 아니었다.

다니엘과 인퀴지터의 표정이 황망해졌다.

“어리석기는.”

다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던가. 반죽음 상태의 모험가를 건네줬던 마법사가 한숨과 함께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회복진에 넣어라. 마력만 되찾으면 자연히 스스로를 수복할 자이니.”

“아!”

정말, 냉정하지만 현명한 마법사였다.

인퀴지터는 서둘러 회복진 안으로 모험가를 이송했다. 얼음에 닿지 않도록 바닥에 먼저 깔리는 건 다니엘과 그녀의 망토 자락이다. 툭. 가죽 망토 위에 올려진 이가 가느다란 숨을 내쉬며 회복진에 의해 풍부해진 대기의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후.”

쿠궁.

동시에 그가 튀어나왔던 균열이 서서히 봉합되기 시작했다. 모험가를 바깥으로 끌고 왔던 실타래가 이번엔 봉합사가 되어 균열을 서로 잇고 연결하여 세계의 틈을 조이기 시작한 것이다.

쩌저적.

조여드는 틈에서는 주작이나 늑대를 포함해 감히 세계로 넘어오려 하는 자가 없으니.

닫히는 균열을 보며 마법사는 직감했다.

춥고 갑작스러웠던 싸움이 드디어 끝났노라고.

“모험가님, 제발…….”

“경, 부디…….”

모두가 미처 돌아오지 못했을지라도… 싸움만큼은 끝났노라고.

“제발 살아 주십시오…….”

균열이 사라진 자리 위로 간절한 기도가 조용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어, 어?”

“선, 선생님 불러. 의사 불러!”

“등신아, 너스 콜이 있잖아!”

“나,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시발 진짜.”

“전, 전화도 해야지. 아주, 아주머니한테…….”

“안, 안 보여? 아니, 안 들리는 건가?”

간절한 기도가, 울려 퍼졌다.

“제발 뭐라도 말 좀 해 봐…….”

아주 간절한 기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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