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걸음을 낱낱이 아는 (6)
“모험가님……!”
우주 저편에서 모험가가 수세에 몰리는 것이 보였다. 그 전까지는 그래도 공방이 오갔었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오롯이 괴수만이 공격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가벼운 잽 수준의 공격도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묵직한 공격들이 모험가를 몰이 하듯 그를 궁지로 떠밀었다. 마치 짐승의 사냥 과정을 보는 듯했다.
“당장 도와야… 크읏.”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어느새 깨어난 다니엘이 인퀴지터를 부축했다. 그런 그녀의 인중에서는 코피가 주르륵 떨어지고 있다.
“열이 나고 계시잖습니까.”
“하지만… 모험가님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힘을 쓴 결과 열이 오르고 코 안쪽 점막이 터졌지만, 고작 그뿐이다. 목숨을 걸고 대항하는 모험가에 비한다면 고통이라 말할 수도 없다.
인퀴지터는 계속 일어나고자 고집을 부렸다.
“정녕 그분께 도움이 되고 싶다면, 지금 급한 건 무리하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 다니엘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인퀴지터는 제 망집을 철회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틀거리던 다리가 기어이 앉아서 쉬기 시작했다.
“주작 님, 방도가 없습니까?”
[…안타깝게도, 고에게조차 이 이상의 방법이 없노라. 그를 믿는 수밖에는.]
한편, 힘을 다 사용했음에도 본인의 체질과 체급만을 이용해 안개를 깔아뭉개고 있던 주작이 대답했다. 썩 달가운 이야긴 아니었다. 결국 모험가는 혼자 싸워야 한단 이야기므로.
“…마법사님, 마법사님께선 알고 계신 게 없으십니까?”
“이 상황 자체를 바꿀 마법이라면, 알고 있다.”
“정말입니까? 그럼 그것이 무엇인지……!”
지친 인퀴지터를 대신해 질문한 다니엘이 반색했다. 듣고 있던 인퀴지터도 화색이 만연하려는 중이다.
“균열을 강제로 봉합하면 된다.”
“…그게 됩니까?”
“그가 지금처럼 계속 시간을 끌어 준다면.”
그러나 말이란 건 대개 끝까지 들어 봐야 하는 법이라.
시간을 끈다. 미묘하게만 들리는 에루탤크의 발언에 다니엘의 눈썹이 살풋 내려갔다. 화상으로 인해 얼굴 반신의 근육이 제 일을 못 하는데도 확연히 티가 나는 움직임이었다.
“…그럼 모두가 살 수 있습니까?”
그리고 마법사가 고개를 돌렸다. 철가면에 얼굴 태반이 가려진 상태임에도 어째서인지 마법사가 짓고 있을 표정이 시야에 그려졌다.
“아니.”
“그럼……!”
“분명 말했을 텐데. 그가 시간을 끌어 준다면 봉합할 수 있을 거라고.”
“잠깐만, 설마 정말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한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세계를 위협하는 것을 제거하는 것. 효율적이란 말에는 과연 틀림이 없지만…….
“그건 안 됩니다.”
다니엘이 분개하며 무어라 말을 토하기도 전에 서릿발과도 같은 음성이 단호히 마법사의 말을 잘랐다. 인퀴지터의 목소리였다.
“그건 옳지 않습니다.”
“가장 적은 대가로 가장 우선되는 것을 구하는 것이?”
“과정은 결코 결과로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어리석어.”
“효율은 옳음을 따라가지 않고, 따라서 어리석다는 표현도 맞지 않습니다.”
“아니, 비합리는 그 자체로 어리석은 것이다.”
검은 옷자락과 철로 스스로를 가린 자와 새빨간 머리카락을 흩트리고 녹음의 눈동자를 빛내는 이가 서로를 응시했다.
“그럼 당신은 왜 이곳에 오셨습니까?”
“…무슨 의미지?”
“모험가님께선 당신을 아시는 듯했고,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습니다. 즉, 당신은 아마 모험가님과 안 좋은 인연을 가지고 있을 터. 그럼에도 이곳에 따라온 것은 왜입니까? 발각될 가능성이 없다고 여겼습니까? 한데 그런 오만이야말로 비합리 아닙니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몸이 조금 추슬러졌나 보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인퀴지터가 몸을 일으켰다.
“다시 한번 말하죠. 합리와 효율은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맞습니까?”
“…….”
멎은 피 대신 젊은 총기가 그 눈에서 흘러내렸다.
“…여전히 납득할 수는 없다. 하나 그대들의 조력이 없다면 처음부터 시도할 수 없는 일. 강행을 요구하지도 않겠다.”
결국 한발 물러난 건 마법사였다. 조소하는 듯한 어투로 인해 패배자의 무름으로는 느껴지지 않았으나, 적어도 희생을 당연시하게 여길 일만은 면했다.
인퀴지터가 헛기침을 했다.
“그럼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인신 공양.”
“…사제 앞에서 그 단어를 입에 담으시는 겁니까?”
“해결할 방안을 묻기에, 그를 충족하는 유일한 답을 했을 뿐이다. 아니면, 마법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 여기는가?”
“…금기를 범해야만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라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것뿐입니까?”
“그래.”
크읏. 정말 방도가 없는 건가. 인퀴지터는 저도 모르게 장갑으로 입가를 가렸다. 다섯 손가락에 머물던 냉기가 뺨에 닿는 순간 정신이 부르르 떨렸다.
“그렇지. 주작, 용께선… 용께선 아직입니까?”
[아직이다. 그가 깨어났다면 진즉 균열에 신호가 왔을 것이니.]
“그, 혹시 말입니다.”
또한 부르르 떨리는 그 자리로 어떤 생각 한 줄기가 흘러 들어왔다.
“심장 조각이 부족하여 눈을 뜨지 못하신다거나, 제 힘이 없어 깨어나지 못하시는 것은……?”
주작은 분명 말했다. 모든 심장 조각을 모으진 않았다고. 조각을 가진 것들이 아직 남아 있으나 그것들이 생존해 있는 관계로 회수를 멈추었다고.
한데, 그로 인해 심장 조각이 부족해졌다면? 그렇다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걸까? 또 그녀가 없다는 이유로 조각을 이어 붙일 수 없게 됐다면? 그것이 용을 깨우지 못하는 결정적 사유가 됐다면?
[그건 걱정할 필요 없노라. 고가 남은 조각의 주인들을 내버려 둔 것은 비단 그것들의 생사를 정할 권한이 고에게 없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저 그것들을 죽이지 않아도 용을 깨우는 데 모자람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죽은 자에게서 캐낸 조각이 부족했다면, 고는 망설임 없이 그것들을 죽여 조각을 강탈했을 것이니라. 주작이 여상한 말투로 서늘한 말을 뱉었다.
용의 부재가 이 사태를 만들어 낸 만큼 그의 비정함을 비난할 수는 없겠으나, 그런 일이 없게 되어서 참 다행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그래. 또한 본래라면 그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나, 없다 해서 부활이 막히는 일은 없으리니. 정상적으로 반환만 이뤄진다면 최소한 저것을 막는 데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으리라.]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정상적으로 반환이 되고 있는가’인가. 인퀴지터는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그 녀석이라면 해낼 겁니다.”
그녀에게 데스브링거의 위치와 그가 하고 있는 일을 알려 줬던 이가 또 한 번 듣고 싶은 말을 해 주었다. 참 노련한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네!”
그래, 망종 녀석이라면 잘 해낼 거다. 뺀질거리면서도 할 땐 하는, 무른 듯 심지가 굳은 녀석이니까.
“그런데… 마법사님, 지금 그리시는 건……?”
“회복진. 차후 뭘 시도할 예정이든 힘이 없다면 그 무엇도 해낼 수 없으니.”
“아…….”
하면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하며 꾸준히 힘을 회복하는 것뿐이다. 콰앙! 우주 저편에서 들려오는 폭음을 배경으로 인퀴지터의 이가 스스로의 입술을 지르물었다.
* * *
“어린 사냥꾼!!”
베르세르크가 버럭 외쳤다. 그 부름 속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는 글쎄. 배신감? 절망감? 무엇이든 그가 말을 얹을 만한 것은 못 되었다.
그녀가 그런 심정을 느낄 걸 알면서도 검을 잡은 건 데스브링거 본인의 선택이었으니까.
“제발, 제발 부탁합니다요, 나리.”
싸워서 이길 자신은 없다. 죽이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하지만 그 조각만은 필요해.
데스브링거의 몸이 어느 순간 땅바닥으로 꺼꾸러졌다. 무언가의 공격에 얻어맞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미끄러지듯 바닥에 납작 엎드린 이가 절을 하듯 모양새를 갖췄다. 누가 보아도 간절함과 절박함을 느낄 자세였다.
“제발, 제발요.”
시체의 손상 없이 깔끔하게 척추만 도려낼 자신이 있다든가, 그래도 시신은 남을 거라든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따위의 말이 위안이 될 수 없음은 그도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향한 맹목은 결코 이성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니!”
콰앙!
“포기해야 할 건 너다!
순간 뺨 옆쪽에서 바람이 휘몰아쳤다. 바닥 정가운데에 집중한 시야 가장자리로 어렴풋이 보이는 것은 분명 금속의 단면이다. 꿀꺽. 데스브링거의 목울대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나리, 제발요.”
“난, 허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쾅! 이번엔 반대쪽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그를 베지 못한 도끼날이 땅을 움푹 파고 돌 파편을 그에게로 우스스 튕겨 냈다. 일부 돌조각은 그의 옷을 뚫고 그의 살갗에 생채기를 긋고 만다.
“투사 나리.”
“어떻게 만난 언니인데!!!”
그렇지만 여기서 정말 아파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심장이 갈라지고 심장이 찢기는 사람은 정말로.
“모험가 나리가 죽을지도 몰라요.”
“내가, 내가 어떻게 언니를……!”
“샌님도, 이단심문관 나리도 마찬가지예요.”
콰앙!
이번엔 주먹이 내리꽂혔다. 그의 고개 앞이었다. 대지를 부수고 피를 터트린 주먹이 그의 멱을 다시금 움켜쥐었다.
“내 언니는 더 이상 고통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
“그건 모험가 나리도, 샌님도 똑같아요.”
“비드르가 무엇을 해냈는지 모르는 주제에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런 당신이야말로 그 사람들이 무엇을 해냈는지 잊고 있잖아요!”
“너……!”
움켜쥔 멱으로 인해 강제로 일어서게 되었지만 상관없다. 아니, 도리어 그는 뻣뻣하게 목을 치켜세웠다.
마주한 시선이 각자의 슬픔을 빼곡하게 노래했다.
“조각만, 조각만 가져가면 돼요. 절대로 괴롭게 안 할게요. 조각만… 조각만 가져갈 수 있게 해 주십쇼.”
“…….”
아, 이곳에 차라리 모험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혹은 샌님이 있었다면. 약한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노련한 다니엘 이단심문관이 대신 존재했다면.
그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보단 좀 나았을까.
“허락할 수 없다.”
우득! 베르세르크의 다른 손이 그의 팔을 부러트렸다. 어떤 순간에도 그녀의 소중한 이에게 손을 댈 수 없도록.
털썩.
“으윽…….”
“…날 원망해라.”
양팔을 모조리 부러트린 베르세르크가 그대로 그를 내동댕이쳤다. 어쩌면 멱살을 그저 놓아 준 쪽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바닥으로 힘없이 추락한 데스브링거의 입에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크으으.”
이거, 팔은 아무래도 못 쓰겠는데.
그는 새어 나오는 비명을 억누른 채 자신의 상황을 확인했다. 그다지 좋진 않았다. 베르세르크가 솜씨 좋게도 부러트린 통에, 억지로라도 양팔의 사용은 불가능했다. 인퀴지터가 와서 회복시켜 준다거나 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말이다.
“…원망하지 않습니다요.”
그렇지만 그런 당신의 선택조차도 이해해. 나였어도 에밋의 시체를 갈라야 한다 말하는 인간이 나오면 그 목을 부러트리려 들었을 테니까.
“중요한 사람이 죽어 버렸는데… 세상 같은 게 알게 뭡니까.”
그 사람이 살아 있다면 세상도 의미가 있다. 하나 그 사람이 없다면 그땐 세상도 무용하다.
그러니까… 그 심정을 아니까… 데스브링거는 식은땀이 뚝뚝 새어 나오는 와중에도 희게 웃었다.
“근데요, 투사 나리. 세상에서 유일할 것만 같던 무언가도, 결국엔 새롭게 덧씌워지덥니다.”
자신은 이제 그것마저 잃게 생겼지만, 그건 감내해야만 할 일이다. 헤어지기 싫다고 아무리 어리광을 부려도, 발악하듯 미뤄도… 결국 끝은 다가오기 마련이니까.
“인정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죽음도 인정하게 되고,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던 이별도 받아들여지게 되면서, 그렇게 다시 새 인연이 오덥니다.”
여전히 이게 끝임을 인정하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이미 알고 있다. 이것이 마지막임을. 이것이 진정 우리의 종점임을.
“그러니까 투사 나리… 저는 여기서 포기할 수 없어요.”
그렇기에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며 발악할 수밖에 없는 거다. 이게 끝이니까. 마지막마저 글러 먹은 존재로 남기는 싫으니까.
“흐, 암살자의 덕목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싸우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거죠.”
그러므로 데스브링거는 억지로 상체를 세워 앉고, 한쪽 다리를 들었다. 콱. 그의 이빨이 지저분한 장화의 고정 장치를 깨물며 그대로 풀어냈다. 몇 개의 가죽끈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너.”
“이젠 진심으로 갈 겁니다요. 제가 투사 나리를 봐주면서 싸울 깜냥은 아니니까.”
그리고 마침내 이에 붙잡힌 신이 벗겨졌을 때, 동상으로 인해 부종과 괴사가 진행된 발이 드러났다. 의사에게 보였다간 바로 발가락을, 아니 다리를 잘라 내야 할 것이라 말할 발이었다.
“그럴 상황도 못 되고요.”
하나 그는 그런 발가락으로 옷 안쪽의 단검을 붙잡는 기예를 보였다. 부정검보다도 작고 가벼운 그것은 엄지와 둘째 발가락 사이에 단단히 끼워진 채 앞으로 겨누어진다.
“어린 사냥꾼아…….”
“그러니 나리도 정 저를 막고 싶으면 모가지를 꺾어 버리십쇼. 전 그 전까진 절대 포기 안 할 거니까요.”
한 발로 몸을 세우고, 양팔을 대신해 한 발로 단검을 든다. 그 곡예와 같은 움직임에 베르세르크는 감탄하기보다 탄식에 먼저 잠겼다. 일그러진 얼굴에서 묻어나는 건 오직 괴로움뿐이 없다.
“어째서, 넌……!”
“모험가 나리가 부탁한다고 했으니까요.”
반면 청년의 얼굴 위로는 상황에 맞지 않은 해사한 웃음만이 떠올랐다.
“그걸 어떻게 포기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