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화 걸음을 낱낱이 아는 (4)
──!
별을 삼키는 구멍은 소리 없이 탄생했다.
연결된 마력의 선이 단번에 소멸하고, 내 체내에 있는 마력마저 강제된 흐름을 따라 한곳에 뭉쳤을 때. 점은 선으로, 선은 면으로 변하며 무음의 팽창을 꾀한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제 근처의 모든 것을 삼켰다. 대상이 행성 하나분의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건 조금도 문제 되지 않는다는 양, 무애하고 왕성한 활동이었다.
온몸을 흡수당하게 생긴 우주의 늑대가 발악에 가까운 포호를 내질렀다.
‘효과… 엄청 좋네.’
[금기에 속하는 마법이니까.]
‘위력이 강해서?’
[위력이 세면 좋은 거지, 설마 그걸로 금기 선고를 받았을까. 저 마법이 금기에 속하는 건 단지…….]
한편, 있는 힘껏 달리던 분노는 슬슬 몸을 멈추었다. 분노를, 정확힌 이 육신을 노리던 공격이 단숨에 끊겨 버린 상태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촤륵! 사슬이 힘없이 남아 스멀거리던 촉수들을 전부 쳐 냈다. 주변이 완전히 깔끔해졌다.
[말해 달라고 부탁하면 말해 줄게, 그레트헨.]
‘어, 꺼져. 마법사한테 물어보면 돼.’
[너무하네. 이런 놀이도 안 어울려 주고.]
키득키득 웃던 분노는 자신이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내 입장에선 정면이 아닌 후면만 보였기에 기분은 다소 이상했다.
[금기인 이유는 두 가지야. 첫 번째는 마법을 완성시키는 순간 조절 및 통제가 아예 불가능하단 점. 그리고 두 번째는… 저렇게 삼켜 낸 질량이 허무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무작위로 생성되는 화이트홀을 통해 뱉어진다는 점이지.]
‘…화이트홀?’
[참고로 무작위 생성이란 건 위치 이야기야. 화이트홀이 생겨나는 곳이 이 세상일 수도 있고 다른 세상일 수도 있으며 우주 어딘가일 수도 있다는 거지. 아예 안 생기는 경우는 절대 없고.]
‘잠깐, 그거 자칫했다간─’
[그래! 세계 단위 민폐지! 물론 악마들이 이 마법을 비선호하는 이유는 첫 번째 이유 때문이지만 말이야. 자칫했다간 본인도 삼켜지거든.]
누가 악마 아니랄까 봐 남들이 피해 입는 건 조금도 신경 안 쓰는구만. 나는 질린 눈을 했다가 이어지는 목소리에 다시 집중했다.
[뭐어, 그래도 쓸 놈은 쓰긴 해. 동귀어진의 수법으론 제법 쓸 만하거든. 애초에 이 마법을 아는 존재 자체가 많지 않아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지만. 당장 나만 해도 주문을 몰라 쓸 줄 모르는 편이고.]
그 정도인가. 오래된 마법인지도 뭔지도 희귀한 지식이랬고, 그걸 알고 있을 수준이면 분명 분노가 무지한 편에 속하진 않을 텐데.
그런 그녀조차 모른다는 건 얼마나 희귀한 지식인 걸까? 그리고 그걸 알고 있는 에루탤크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나는 마땅한 추론을 늘어놓은 끝에 입을 열었다.
‘됐고, 일단 나와. 지적 안 하니까 계속 엉덩이 붙이고 있는 게, 양심 있냐? 아, 없으니까 그러고 있는 건가?’
마법이 끝났으면 몸 돌려줘야지, 어딜.
[오, 그대. 나는 그대를 배려한 거였는데.]
‘배려는 지랄.’
내가 지적하자마자 세계가 천천히 반전되었다. 어딘가 불분명하던 감각은 무언가로 꽉 채워지는 중이다.
가볍되 어딘가 불안정하던 몸이 무겁지만 아늑한 것으로 조여졌다.
[하지만 그대.]
그리고 붕 떠 있던 발이 땅에 온전히 닿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나는 눈을 떴다.
[그 전까지 이어 오던 계산으로 머리 아파했잖아. 거기서 바로 배턴터치를 했었으면 그대로 넘어졌을걸?]
비틀. 감각의 괴리로 인해 찰나간 다리가 균형을 상실했다. 바로 힘을 싣어서 망정이지, 그러지 못했다면 거하게 굴렀을 것이다.
[봐 봐, 지금도.]
‘…….’
마음 같아선 들어왔다 나갈 때의 충격일 뿐이라고 하고 싶지만… 그게 원인이 아님은 나도 알고 분노도 안다. 나는 반박하는 대신 그냥 침묵하기로 했다.
크아아아아!!
그보다 늑대는 이걸로 끝인가? 나는 별을 삼키는 구멍, 블랙홀의 존재를 다시금 눈에 담았다. 주변 공간마저 왜곡시키는 그것은 여전히 늑대를 잡아먹는 중이다.
“…이봐, 마법사.”
그쯤 돼서 불안함 하나가 싹을 틔웠다. 내 몸이 훌쩍 뒤로 물러나, 뭉쳐 있는 세 명에게로 다가갔다.
“모험가님! 돌아오신─!”
“저것, 정녕 문제없는 건가?”
저 괴물에게 타격을 준 건 좋은데 말이야. 위력 조절이 안 돼서 금기라던 분노의 말도 그렇고 저 살벌한 풍경도 그렇고. 저거 괴물 타격한 뒤에도 남아서 주변에 있는 거 다 부수고 삼키는 거 아니야??
나는 수고한 인퀴지터의 머리를 복복 쓰다듬어 주며 마법사를 응시했다. 에루탤크가 깨진 가면 사이로 목소리를 내었다.
“…계산한 것이 맞다면.”
어디서 들어 본 듯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내 시선이 가면의 안쪽으로 물끄러미 흘러 들어갔다.
“확실히.”
“왜곡의 소용돌이가 제한된 질량을 삼키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여 마법에 투입되는 마력의 양을 결정했다. 계산이 맞다면, 저 괴수가 삼켜짐과 동시에 사라지거나 괴수가 빈사 상태에 빠졌을 때 사라질 거다.”
그게 정말이라면 다행인데…….
나는 블랙홀에 빨려가지 않고자 바르작거리는 괴수를 보았다. 그것의 수많은 눈동자는 이쪽과 블랙홀을 연신 번갈아 살피는 중이다. 원망과 증오가 넘실거리는 게, 저기서 풀려나기라도 했다간 내 모가지 걱정 좀 해야 할 듯싶다.
“하면 다음 문제로 넘어가도 되겠군.”
“……?”
그렇지만 당장 할 수 없는 게 없으니까. 저기에 추가 공격을 가하려고 해도 블랙홀에 휩쓸릴까 무섭단 말이지.
“내게 할 말 없나, 마법사?”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어리석게 굴지 마라.”
거기에… 여기에도 할 일은 있었다. 나는 드디어 확신이 든 에루탤크의 정체를 두고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더 이상의 부정은 무가치함을 그대도 알 텐데.”
익숙함 검형, 고압적인 말투, 낯익은 목소리, 드러난 하관과 그 안쪽으로 언뜻 비치는 청록빛. 더 볼 것도 없다.
뮌문트의 배신자, 청록의 기사는 살아 있었다.
“…….”
나는 입을 다문 이를 응시한 채 잠깐의 기다림을 발휘해 주었다. 망할 분노 새끼. 누군가를 향한 심증과 그로 인한 짜증을 억누르는 건 덤이었다.
캐물어 봤자 내뺄 게 분명하고, 증거도 없으니 뭐라 하진 않겠지만… 역시 관여했겠지. 망할 놈.
“그래, 그대 말이 맞다.”
내가 속으로 화를 삭이는 사이, 에루탤크가, 아니 청록의 기사가 기어이 인정의 말을 뱉었다. 본인도 이 상황을 예상 안 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실로 담담한 말투였다.
“하나, 그대. 그대가 진정 현명함을 논할 것이라면, 이 순간 나를 채근하는 것보다 다른 곳에 주목함이 더 옳으리라.”
또한 그녀는 손을 뻗어 한 곳을 가리켰다. 우리가 상대한 괴수 쪽은 아니었다.
캬아아악!
주작과 괴물의 사투가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에게 안 좋은 쪽으로.
“…이 일이 끝난 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설명할 시간을 줄 마음은 있는가?”
“당연히.”
범죄자에게도 스스로를 변호할 권리는 있다. 그 변호를 들어 줄지 말지는 절대로 별개지만.
“인퀴지터, 너는 이곳에…….”
나는 에루탤크와의 대화를 끝낸 후 인퀴지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인퀴지터의 정수리에 내 손이 얹혀 있음을 확인한 건 바로 그때였다.
…왜 내 손이 여기 가있지? 반겨 주는 목소리나 얼굴이 너무 강아지 같아서 본능적으로 손이 가 버린 건가? 아니, 그보다 언제부터 쓰다듬은 거야? 그리고 얜 왜 그걸 지금껏 말 안 했는데!?
멘탈이 퐁 튀어 오르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시, 실수해 버린 것 같은데 나?
“그, 쓰다듬은 게 불쾌했다면 미─”
“괜찮습니다!”
세상엔 머리 쓰다듬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 그에 따라 사과를 하려니 우렁찬 목소리가 한발 빠르게 내 말을 잘라먹었다.
“…정말 괜찮나.”
“네!!”
괘, 괜찮다니 안심이네. 근데 그걸 고려해도 표정이 너무 밝은데. 혹시 쓰다듬는 거 좋아하는 타입이었나?
나는 고생과 노력의 흔적이 엿보이는 얼굴과 그럼에도 해맑은 인퀴지터의 표정을 보며 마지막으로 손을 쓱쓱 움직였다.
“내가 널 남겨 두려는 건, 만일을 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부탁한다.”
“…네!”
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자주 쓰다듬어 줘도 되려나.
나는 손을 떼어 낸 후 주작을 향해 발을 움직였다. 마력은 동난 상태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중이다.
[다가가지 않는 게 좋아.]
‘……?!’
그러다 분노의 목소리가 내 발목을 붙들었다.
[내가 저 늑대 두 마리의 이름을 아는 이유는 그만큼 저들의 악명이 높아서이고… 저들의 악명이 높은 이유는─]
콰직!
그와 함께 하늘이 부서졌다.
[빌어먹게도 위험해진다 싶으면 둘이 합체해 버리거든.]
원인은 주작이 상대하던 괴물이었다. 순간적으로 모든 힘을 폭발시키며 주작을 밀어낸 괴물이 우주 뒤로 후퇴해 버렸다. 그러곤 자신과 똑닮은 존재가 있는 자리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콰지지직!
블랙홀이 그 이빨에 씹히고 세상의 벽이 부서지며 두 존재가 합일되었다. 와드드득! 균열이 더욱 커지고, 커지고, 커졌다. 마치 세월의 흐름에 따라 더욱 더 넓게 벌려지는 크레바스처럼.
저들을 막는 유일한 것은 아직 남아 있는 블랙홀의 잔재다.
[해와 달을 먹는 바르그Vargr, 스콜하티. 나도 직접 보기는 처음이네. 저건 사탄도 상대하기 싫다며 접근조차 못 하게 벽을 쳤거든.]
사탄조차 그랬다고? 그럼 저 마법이 끝장나는 때에 우리 다 죽는 거 아니야? 선득한 불안감이 목 뒤쪽을 타고 흘러내렸다. 몸이 싸늘해지는 기분이다.
[사과하겠노라. 고의 힘으론 역부족이었도다.]
그런 우리의 체온을 데워 주는 건 근처로 날아온 주작이었다. 힘을 상당량 소비했는지 목소리에서 힘이 덜 느껴졌다.
[뭐, 그럴 만도 해. 아까 보니까, 해를 먹는 늑대가 모든 물리력을 무시하는 쪽이라면 달을 먹는 늑대는 모든 걸 얼려서 정지시키는 쪽 같던데. 격의 차이에 상성 차까지 있으면 아무래도 질 수밖에 없지.]
‘넌 그걸 알면서 입 다문 거냐?’
[안 물어봤잖아 그대? 그리고… 나도 주작이 상대하는 걸 토대로 파악한 거지, 처음부터 알고 있던 건 아니거든?]
‘다른 쪽은 알고 있었잖아.’
[그거야 저쪽은 유명하니까 알지. 원래 형제가 있으면 인지도 높은 건 형 쪽인 거 몰라?]
안 믿기는데. 이 새끼, 중간에 제약 좀 풀어내려고 일부러 말 안 한 거 아니야?
[이건 진짠데…….]
나는 분노가 애석해하건 말건, 주작의 아래에 서서 라텔의 형태를 바꾸었다. 본다고 해서 문제가 생길 정도의 혐오감은 아니지만, 역시 사슬을 쓰는 건 싫었다.
익숙한 검이 손에 잡혔다.
‘스콜하티에 대해 아는 거나 더 토해 내 봐.’
[드디어 내게 물어봐 주는 거야?]
“마법사, 주작. 저것에 대해 아는 것 있나?”
쌉소리 하는 건 안 받아 줄 거다. 나는 바로 질문 던질 대상을 바꿨다. 「너는 답만 하면 돼, 버러지 새끼. 쓸데없는 질문으로 그레첸의 기분을 망치지 말란 말이야.」 속에선 왜인지 소년이 분노를 사슬로 옥죄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으음. 이미 말한 것 외에는 고도 아는 바가 없노라. 세계의 밖을 떠도는 것과 고가 엮일 일은 없음이니.]
“저 우주 너머로 밀어내야 한다.”
그래도 분노를 통해야만 꼭 정보가 모이는 건 아니었다. 청록의 기사가 조용히 상대의 특징을 뇌까렸다.
“탐식을 상대해 본 그대라면 쉽게 이해할 테지. 저것은 먹은 행성을 자신의 질량으로 삼는다.”
진짜 주옥 같은 특징이었다. 난 이런 상대가 제일 싫은데.
“…아까 그 마법진을 또 만들어야 하나?”
“한번 당한 것을 두고 볼 정도로 어리석은 생물은 아니다.”
“하면.”
“스콜하티는 물리력이 먹힌다. 모든 걸 정지시키는 동생의 능력이 운무 형태의 형마저 정지시키기 때문이지. 그러니…….”
에루탤크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대가 저것을 상대해라. 내가 그대를 보조할 테니.”
그녀가 가진 얼마 없는 마력이 특정 형태의 마법진을 형상화시켰다. 그간 고생하며 힘이 좀 빠졌던 몸에 새로운 활력이 부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작, 그대의 힘은 저것과 상성이 맞지 않다. 하니 내가 지정한 마법진을 따라 하여 그의 무기에 가호를 걸어라.”
[…고는 이 외의 방법을 고안할 수 없으니, 그대들의 말을 따르겠노라.]
거기에 주작의 능력이 라텔에 겹겹이 깃들기 시작했다. 정화의 힘 탓에 밀착한 손바닥에서 열기가 느껴지다 못해 지글지글 타기 시작했지만 못 버틸 수준은 아니었다.
솔직히, 베뮈르헨에서 전기 통구이가 될 때가 더 아팠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거기에 블랙홀이 힘을 다해 가며 스러지는 게 보이는 상황이니, 아파도 뭐 어쩌겠나?
“신이시여, 부디 저항하는 자에게 힘을!!”
마지막으로 없는 힘 있는 힘 박박 긁어 온 인퀴지터까지 내게 축복을 내렸을 때, 나는 새빨간 홍염의 검을 들고 우주를 향해 내달렸다.
목표는 단 하나.
저 늑대 새끼의 머리통이다.
콰아아아앙─!
야호, 공짜 우주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