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걸음을 낱낱이 아는 (2)
“후우.”
관은 성주에게 전달을 부탁받았던 것이고, 수습조차 되지 않은 시신은 주작을 타고 오던 길에 새로 발견한 것이라.
“…심장 조각이면 심장을 꺼내 주면 되나?”
다만 여기서도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다.
설마 사람 시신을 통째로 갖다 바쳐야 할 리는 없고, 아마 용의 심장조각이란 걸 찾아 분리해서 반환해야 할 가능성이 큰데… 그놈의 용심 조각은 대체 어느 부위에 위치해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아니면 뭐. 용의 ‘심장 조각’이니 심장 부분을 도려내면 되는 것일까? 그런데 정말 그렇게 간단하기만 할까?
“시도했는데 아니면 그냥 시체 훼손 아니냐고…….”
그는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일단 관부터 뜯기로 했다. 그가 기억하기로 관 안에 이미 분리해 둔 조각이 있던 까닭이다.
덜컹.
“…나리도 참.”
다만 관 뚜껑을 열자 천에 꽁꽁 싸인 송장과 그 주변에 살포시 얹어진 꽃이 보였다. 추운 지방이라 꽃 구하기가 생선 구하기보다 더 어려웠을진대 잘도 구했다 싶다.
“…….”
하지만 그 다정함이야말로 모험가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데스브링거는 불에 데인 사람처럼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가 받은 친절도 아닐진대 이상하게 눈가가 시큰거렸다.
스르르륵.
그래도 이런 감상에 오래 젖어 있을 시간은 없다. 그는 보안 마법에 당하지 않도록 반지까지 꼭꼭 착용한 후 천을 풀렀다. 마음 같아선 단검으로 북북 찢고 싶으나 그랬다간 전기에 튀겨질 듯하여 그것만은 참았다.
풀어지는 천 사이로 얼어붙은 백금색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
이 사람…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데스브링거는 어딘가 낯익은 백금색 머리카락와 짙은 피부색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베르세르크… 랑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죽기 전 얻어터지기라도 했는지 상처가 심해서 확정 내리기가 좀 어렵다. 백금발이라면 몰라, 짙은 피부색은 북부에서 제법 흔한 편이라 더 그랬다.
“…아니겠지.”
둘 다 슬랜드족이고 백금발이긴 하지만… 베르세르크에게 실제 언니가 있단 소리는 들어 본 적 없다. 고작해야 언니와 동생이 각각의 인격으로서 한 몸에 존재한다는 걸 알 뿐이지.
그러니 아마 아니리라. 데스브링거는 그렇게 생각하며 드는 찝찝함을 대충 얼버무렸다. 어차피 당장은 이 시체의 정체가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부스럭.
“이건가.”
그래, 작금 필요한 건 시체의 정체가 아니라… 이 시신이 품에 안고 있는 조각의 주머니다. 데스브링거의 손이 주머니를 움켜쥐고 시신의 품에서 쏙 빼냈다. 잘그락. 안쪽에서 금속 뭉치가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진짜 어쩌냐. 갖다 대기만 하면 되는 거냐고?”
그는 빛에 어떤 각도로 닿느냐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금속조각들을 살펴보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온기를 되찾음에 따라 부들거림이 줄어든 다리는 태산처럼 존재하는 용에게로 천천히 다가가는 중이다.
“제발, 이거면 된다고 해 주십쇼…….”
데스브링거의 손이 뻥 뚫린 용의 심장께에 조각들을 떨어트렸다. 둥글게 도려내진 살점 사이로 조각들이 팅팅 굴러떨어져 갔다.
번뜩!
그리고 용의 눈이 뜨였다. “왁!” 기겁한 데스브링거가 뒤로 넘어졌으나 용은 그를 배려해 주지 않았다. 거대한 머리가 먼지를 일으키며 세워지고 뒤쪽의 꼬리가 함께 퍼덕였다.
끼에에에에!
“으윽!”
용의 울음소리가 동굴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성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고통과 비탄만이 가득한 우짖음이었다.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에 데스브링거의 몸이 둥글게 말렸다.
촤아악!
다행스럽게도 용의 포효는 그리 길지 않았다. 피가 솟구치며 용의 기도를 막은 탓이었다.
거대한 비명 대신 검은 피가 역류하며 용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용의 머리가 바닥으로 철퍽 다시 떨어졌다.
“무, 뭐야?”
뭐야. 죽은 거야? 죽어 버린 거야? 겨우 정신 차린 데스브링거는 보이는 광경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용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그 심정은 더욱 혼란했다.
쉐엑, 쉐엑. 뒤늦게 용의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이, 이봐요. 괜찮은 겁니까요?”
살아난 건가? 근데 왜 이렇게 빈약하게 숨만 쉬지? 데스브링거는 당혹감을 금치 못한 채 용의 가슴께를 다시 살폈다. 심장에 문제가 생겼는지 확인코자 함이었다.
“…아.”
도려낸 살점 너머로 복구된 심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빛과 청동빛을 섞어 낸 듯한 그것은 깨진 도자기처럼 금이 쫙쫙 가 있는 상태다.
거기에 크기도 전체의 절반밖에 없다. 쿵. 쿵. 느껴지는 박동조차 미약하기 그지없어, 제대로 눈여겨보지 않으면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였다.
이걸론 부족한 거구나. 세상 이면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알 수 있는 진실에 데스브링거는 침음을 삼키고 말았다.
그러면 이제 어쩌지? 나머지 반은 어디서 구해야 해? 상황을 어찌 헤쳐 나가야 하는가에 따른 절망은 덤이었다.
“조각을 이제 어디서 더 구하는데…….”
그는 죄 없는 입술을 짓뭉개다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조각을 새로 구하는 건 무리겠으나, 아직 반환 가능한 조각이 두 개 남아 있음을 깨달은 덕이었다.
“제발… 이거면 된다고 해 주십쇼…….”
그는 확신도 없는 심장 분리를 시도하는 대신 시신을 통째로 끌고 오는 걸 택했다. 관에 있는 시신은 천을 다 풀지 못했으니 제치고, 중도에 주워 왔던 시신이 그 대상이었다.
질질 끌려온 시신이 억지로 용의 심장 구멍에 박혔다.
“…된 건가?”
그러나 시체를 박아 둔 채로 몇 분을 기다려도 달라지는 건 딱히 없었다. 데스브링거는 긴가민가하며 시신을 빼 보았다.
“된 거야 안 된 거야…….”
반쪽짜리 심장의 형태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으니 아마도 안 된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 시신을 해부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놈의 조각이란 걸 찾아야 하는 건가?
그도 아니면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주작과 일행이 있는 그곳으로 다시 달려가야 하는 건가? 정녕 그것밖에 답이 없나?
“젠장,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거냐고!”
빌어먹을, 나는 왜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건데! 데스브링거는 차오르는 분함에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얼어 버린 피부와 강한 힘, 울퉁불퉁한 바닥의 조합이 기어이 그의 살갗을 찢었으나 아픔 따윈 느껴지지도 않았다. 데스브링거의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졌다.
“역시 나 같은 건… 나 같은 건…….”
이런 중요한 일을 맡아선 안 됐어. 전부 내가 망친 거야. 나리는 날 믿어 주셨는데, 내가 무능해서…….
“빌어먹을.”
여기서 거기까지 다시 돌아가려면 얼마나 걸릴까. 이번에는 뼈상어를 타는 요행 같은 건 기대할 수도 없을 텐데, 그걸 고려하면 애초에 도착할 수는 있을까.
“…가자.”
그렇지만 이대로 시간을 낭비하며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 이 순간마저 그들은 목숨을 건 채 싸우고 있을 테니까.
댕그랑.
“……?”
데스브링거는 그런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다가, 울려 퍼지는 금속음에 고개를 살짝 내렸다. 그러자 허리춤에서 떨어져 나간 부정검이 보였다. 그 근처에 두 동강 난 고리가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추위를 이기지 못한 고정 장치가 부서져 버린 듯했다.
“하다 하다 이것까지 망가지냐.”
그는 붉어진 눈가로 거칠게, 그렇지만 주의해서 부정검을 잡아 들었다. 모험가가 선물했던 것인 만큼 막 대할 수는 없다는 마인드였다.
“……?”
한데 그렇게 부정검을 집어 든 직후, 그는 이상한 것을 보게 되었다.
시신의 명치 부분에서 청동 같은 색채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 * *
그그극!
메피스토펠레스는 방패째로 자신을 밀어내는 힘 앞에서 씨익 웃었다. 방패의 가장자리로 거머리가 질척이기 시작했지만 그건 괜찮았다.
콰앙!
어차피 밀어낼 예정이었다.
그녀의 방패가 삽처럼, 또는 야구방망이처럼 거머리 늑대의 대가리를 날려 버렸다. 촤악! 날아간 머리통이 되감기는 영상처럼 순식간에 제 형태를 되찾았다.
[후.]
그러나 좀 더 빠른 건 메피스토펠레스의 행동이었다.
옆으로 치워졌던 방패가 원을 그리듯 접히더니 꼭 쥘부채의 형상으로 변했다. 철, 혹은 그와 비슷한 재질의 접선은 그녀의 손에 힘입어 앞으로 바람을 쏘아 보내려는 중이다.
화악!
한 손으로 휘둘렀음에도 강풍이 일며 거머리 늑대의 움직임을 찰나간 봉했다. 철퍽! 다른 방향에서 날아온 촉수 다발도 비슷했다. 그것은 뺨 맞은 고개처럼 저편으로 휙 날아갔다.
다발은 그렇다 쳐도 분신에조차 질량이 없는가. 멍청한 자식. 역시 무리해서 만드느라 질량을 못 챙겼군.
메피스토펠레스의 머리가 팽팽히 굴러갔다.
휘이익!
다만 그 시점에도 그녀의 몸은 회전하며 부채 바람을 계속 쏘아 보내는 걸 멈추지 않았으니.
그녀는 거리를 벌리는 행위와 바람을 부치는 행위를 동시에 이루기 위해, 꼭 춤을 추는 사람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그녀의 발이 한 발자국 밀려날 때마다 발목은 뒤틀리듯 회전하며 그녀의 온몸과 부채를 휘두른다.
하나 바람으로 밀어내고 부채로 쳐 내는 것에도 한계는 있었다.
더 많은 촉수 다발이 그녀를 노리고 거머리 늑대는 녹아내리듯 바닥에 흡착한 상태로 그녀에게로 기어왔다.
바닥에 밀착한 거머리들은 바람을 흘려 보내는 보리처럼 후들후들 떨기만 할 뿐 더 이상 밀려날 낌새가 없다.
콱!
그것을 확인한 순간, 메피스토는 쥘부채를 원형으로 완전히 펴 낸 후, 미련 없이 바닥에 막았다. 후욱. 뒤로 뛴 육신은 부채 고리와 연결된 명주 끈을 단단히 쥐고 있다.
퍼억! 부채에 막힌 거머리 더미가 부채를 꿈지럭꿈지럭 삼키기 시작했다.
휘익휘익!
동시에 촉수 다발은 부채 방패를 지나쳐 그녀에게로 날아왔다. 땅에 막 닿은 메피스토의 손이 쥐고 있던 명주 끈을 강하게 당겼다.
[후, 그대. 아직 멀었어?]
날아오던 방패가 공중에서 완전히 접히며 갓대만을 남긴 채 그녀에게로 날아왔다. 그 과정에서 촉수 다발 몇 개가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의도한 바니 동정 주지는 않았다.
푹, 푸푹. 그녀의 유려한 회피에 따라 바닥에 헛손질을 한 촉수들이 스르륵 뒤로 머리를 물렸다.
[저것과 노는 것도 슬슬 질리는데.]
그동안 그녀는 접힌 부채 방패를 잡아 끝까지 펼쳤다. 촤라락. 이윽고 원형으로 펼쳐진 방패가 마치 놀이용 원반처럼 다시 날아갔다.
촉수 다발들이 잘리고 거머리 늑대의 머리가 잠깐 터져 나갔다.
‘나도 빨리 됐으면 하는 심정이니까 재촉은 말지……?!’
[재촉이라니, 그대. 내가 그대의 노력을 모르는 게 아닌데 어찌 채근하겠어?]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끔찍할 정도로 빠른 수복력이 모든 걸 원상복귀시켰다. 그 어떤 순간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아 가며 촉수를 피해도 온갖 공격으로 상대의 속도를 지체시켜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안타깝게도…….]
샤악!
기어이 촉수 중 하나가 그녀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촉수의 겉면에 달린 미세한 입들은 그 찰나에도 피부를 갉아먹고 독을 주입하여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만다.
검은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나 역시 한계란 것을 가지고 있을 뿐이야.]
메피스토펠레스는 그것을 닦아 내는 대신 부채를 들지 않은 손으로 털 망토의 고정 핀을 풀었다. 꼭 덜어 내야만 하는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펄럭!
그녀는 그것이 풀어지자마자 지체 없이 던졌다. 그녀가 커버할 수 없는 구획에 던져진 거대한 털 망토가 곧 촉수에 꿰뚫리며 너덜너덜하게 변했다. 딱 바라던 쓰임새였다.
촤악!
망토의 희생 덕에 이번엔 상처 없이 넘어갔다. 그녀는 튕겨져 오른 방패를 발로 내려찍어 거머리 늑대의 몸통을 후려갈겼다. 질척거리는 소리와 함께 뭉개진 늑대가 가장자리를 타고 다시 복원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위로 쏟아지는 공격, 공격, 공격. 메피스토의 바람에 따라 회수된 털 망토가 제대로 복원조차 되지 못한 상태에서 위로 휘둘러졌다.
거리낌 없이 옷을 희생양으로 던져 준 그녀의 몸은 공중제비를 돌아 뒤편으로 몸을 물리는 중이다. 두어 개의 촉수가 땅을 짚은 그녀의 손목과 팔을 스쳤지만 움직이지 않았을 때보단 훨 적게 다친 몸이 공중제비를 연속적으로 돌았다.
탕! 어느새 끌어온 원형 방패도 그녀의 생존에 한 손을 더하는 중이다.
[그대─!]
‘거의 다 됐어!’
그녀는 방패를 빠르게 접고 그 갓대를 땅에 박았다. 퍼억! 그를 축 삼아 떠오른 몸이 날아오는 촉수 다발을 발로 걷어찼다. 그 반동으로 더 빨리 착지한 건 덤이었다.
촤륵─ 터엉!
그리고 그녀가 착지했을 때, 거머리 늑대가 입을 쩍 벌린 채 날아왔다. 다급히 펼친 원형 부채가 늑대를 막아섰다. 푸욱! 몸을 최대한 뒤틀었음에도 기어이 옆구리엔 촉수 하나가 박히고 만다.
그녀는 그것을 잡아 뜯으며 다른 방향으로 마구 내달렸다. 관절이 분리된 것처럼, 뼈가 물렁물렁해진 것처럼 최대한의 유연성을 발휘한 몸은 뛰는 찰나에조차 촉수를 다채롭게 회피한다.
“끝이다, 빌어먹을 괴물.”
그리고 그런 발악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따라잡히기 직전이 되었을 때, 가면의 마법사가 속삭였다.
피 토해 가며 유지해 온 모든 마력의 선이 연결된 것도 그와 함께였다.
별을 삼키는 구멍이 괴물의 몸통을 가르며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