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화 오른눈이 보이지 않아도 (6)
땅, 땅!
“좋아.”
마이스터는 제 손끝에서 막 완성된 작품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나쁘진 않나…….”
베뮈르헨의 그것 그대로 재현해 낸 배터리와 그 배터리를 이용한 무기…….
시제품이라서 결점도 많고 조악하기도 조악하지만 급조한 것치곤 꽤 괜찮았다. 여기서 개선해 나간다면 그땐 정말 쓸 만해질 테고.
“그게 뭔가요?”
“뭐냐, 그건?”
한데 그가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자니, 옆에 있던 떨거지들이 관심을 가졌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놈들이 아무리 멍청하대도 최소한의 눈은 있는 법 아니겠나.
“테이저 건, 이란 거다.”
“테이저 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모험가 녀석의 고향에서 쓰는 무기 중 한 분야를 총칭하는 단어가 되겠지만…….
뭐. 그거까진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저런 녀석들에게 중요한 건 탄생 배경과 그 역사가 아니라 물건의 용도 및 사용법이니까.
“엄청 못생겼다.”
“닥쳐.”
“그… 뭐에 쓰는 물건인가요?”
배터리를 포함시키는 바람에 몸체가 참 밋밋하고 투박해졌다는 건 인정한다. 양손으로 쥐어야만 겨우 지탱이 가능할 만큼 커다래졌다는 것도 나중에 개선해야 할 부분이고.
“이거? 이렇게 쓰는 건데.”
그렇지만 중요한 건 성능이다.
마이스터는 다른 이들의 물음에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테이저 건이란 물건을 아무도 없는 벽 쪽으로 겨누었다. 탕! 방아쇠를 당긴 순간, 총구로부터 두 개의 쇠침이 발사되었다.
“읏.”
발사된 쇠침은 전방으로 그대로 날아가, 벽에 박혔다. 지지지직! 쇠침과 연결된 실로부터 배터리 내부의 에너지가 전달된 건 그 직후의 일이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거센 전류가 오두막 벽 표면을 태웠다.
“아, 진동이 생각보다 센데…….”
“벼, 벽에서 전격이.”
“마법, 마법입니까?!”
충격을 덜어 줄 보조 마법을 겹겹이 새겨 놓았는데도 손목이 울리네. 마이스터는 묵직한 손목을 쥐락 펴락 하며 무기를 책상에 올려 두었다. 무거워서 오래 들고 있을 만한 건 못 됐다.
“정확힌, 마법을 발사하는 아이템이지.”
하나 장점보단 개선점이 더 많을지라도 위력만큼은 확실히 쓸 만했다. 총신을 흔들기만 해도 배터리가 충전돼서, 쇠침만 갈아 끼우면 된다는 것도 제법 효율적이고.
“연사력이나 배터리 효율이나, 무게, 반동 그런 건 차차 해결하면 될 거고.”
이 정도면 긴급한 상황에 쓰긴 딱 좋다. 마이스터는 남길 잘했다며 어질러져 있던 공구를 정리했다.
“저, 마법사님.”
한데 그런 그의 앞에 두꺼운 옷자락이 팔락거렸다.
“혹시… 그걸 빌려 달라고 하면, 너무 과한 부탁일까요?”
베르세르크가 데리고 왔던 소녀의 옷깃이었다.
마이스터의 안경알이 빛을 하얗게 반사했다.
“알면서 묻는 저의는?”
마이스터는 막 정리하던 공구 중 하나를 어깨에 걸쳤다. 위협을 느낀 소녀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건.”
“남에게 설명조차 못 할 이유면 하지 마라. 기분 나쁘니까.”
웃긴 꼬맹이네. 보는 눈이 있다고 해야 할지, 염치가 기가 막히게 없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이스터는 그리 중얼거리며 장도리를 주머니에 넣었다. “…가고 싶은데.” 하얗게 껍질이 인 소녀의 입술이 자그마니 달싹거렸다.
“……?”
“대전사 님을 따라가고 싶은데, 지금의 저로선 방법이 없어서. 그래서…….”
스스로도 과한 부탁임은 자각하고 있는지, 소녀의 손가락이 옷자락을 꾸욱 쥐었다. 갈라지고 부르튼 손끝은 금방이라도 핏방울이 불거질 것만 같다.
“그녀는 너보고 부족으로 돌아가라 했던 것 같은데?”
“돌아가도 의미 없어요!”
하나 그 흉터에서 진실로 피가 흘러나오는 일은 없다. 당연하다. 그것은 이미 아물어 버린, 지나간 세월의 상흔일 뿐이니까.
“돌아가도… 의미 없어요.”
“왜?”
“쓸모가 없으니까요, 저는.”
함에도 흔적은 남는다. 절대 잊히지 않도록, 혹여 망각하더라도 잔흔을 발견하는 순간 다시 되새겨지도록.
“돌아가 봤자 언제 버려질지 몰라서 전전긍긍해하는 미래밖에 없어요. 하니 그럴 바에야…….”
“식량난이 심하다 심하다 소리는 들었는데, 아이를 버릴 정도로 심한가 보지?”
“…제 목숨은 다친 사냥꾼을 보조할 사람이 필요해서 잠시 유예된 것에 불과해요. 사냥꾼이 다 나은 지금, 언제 내쳐져도 이상할 게 없죠.”
그러므로 흉터를 가진 자들은 비틀릴 수밖에 없다. 다른 무엇도 아닌 육신에 잊고 싶은 순간을 기록해 버렸기에, 그것을 영원히 마주하고 살아가야 하기에 뒤틀려 버리는 미래뿐이 남지 않는다.
“그러니까… 저는 차라리 대전사님을 따라가고 싶어요.”
“네가 가 봤자 할 수 있는 건 없을 텐데. 애시당초 따라가는 것 자체도 불가능할 거고.”
“상관없어요.”
“그러다 죽어도?”
“부족으로 돌아가도 죽는 건 똑같아요.”
“그렇다와 그럴 수 있다는 천지 차이야.”
“안타깝게도, 제겐 별 차이 없어요.”
다만 그 어긋남 뒤에는 무엇이 찾아올까.
“이해할 수 없네. 너 그 사람이랑 친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의 가치가 그 사람에게 있어? 걜 따라가면 네 인생이 엄청 바뀌어?”
“아뇨. 아마도 안 바뀌겠죠. 그분이 있다고 해서 제 처지가 달라지진 않을 테니까.”
강렬한 생존 욕구? 어리석은 맹목? 그도 아니면 치열한 집착? 안타까운 결핍?
“그냥, 제가 따라가고 싶은 것뿐이에요.”
『나랑 갈까.』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이끌림?
마이스터는 소녀의 발언을 들으며 팔짱을 끼었다.
가족을 향한 베르세르크의 집념이, 부모에게 마땅한 애정을 받지 못한 소녀의 결핍을 자극했다든가. 소녀의 무의식이 그 짙은 애정을 본인도 모른 채 갈구하게 됐다든가.
두 사람의 사정을 모르는 만큼 그런 이면의 진실 같은 건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와닿는 것이 하나 있던 까닭이다.
“…빌려주기 싫으시다면 괜찮아요. 그런 귀한 물건, 정말 내주실 걸 바라고 부탁한 건 아니니까.”
어떤 순간에 찾아오는 모종의 선택지들은 지능의 고하에 상관없이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 그것이 흉터와 그럴싸한 관련성을 보인다면 더욱 그렇다.
“주제넘은 부탁해서 죄송해요.”
그가 배터리 개발이라는 비효율적인 짓에 몰두하고, 소녀가 목숨을 걸고 누군가를 쫓아가려 하는 것처럼.
“…사용 가능한 카트리지는 세 발이다.”
“……?”
“한 번 쏘면 다시 장전해야 해. 그리고 장전 기회는 단 세 번뿐이야. 알아들었어? 카트리지 세 개 다 쓰면 이건 그냥 쓰레기가 된다고.”
아, 시발. 이게 다 그 호구 놈들 때문이야. 그 놈들 때문에 머저리병이 옮아 버렸잖아.
마이스터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소녀 쪽으로 밀어 준 테이저 건을 회수하지 않았다. 책상 내에 불과할지라도, 제 쪽으로 밀어진 테이저 건에 소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참고로 중간에 고장 나거나 네 생각과 달랐다고 해도 내 탓은 마라. 네가 원해서 가져간 거니까.”
“저, 정말로 빌려주시는…….”
“뭔 소리야. 프로토타입 따위 가지고 있어 봐야 의미 없으니까 너를 통해 처분하려는 것뿐이거든?”
“…….”
아니지. 소녀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후기를 기대하면 되고, 소녀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깔끔하게 처분했노라 여기면 그만인데 이게 왜 머저리 짓이야. 완전 효율적이고 내게 이득인 전개지.
마이스터는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주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소녀를 제한 세 머저리의 눈길이 어째 불순해진 것 같지만 구태여 뭐라 하진 않았다. 저들을 손봐 주는 건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충분했다.
“그래서, 어떻게 갈 건데?”
“네?”
“따라잡을 자신이 없는데 그냥 무턱대고 따라가겠다 한 건 설마 아닐 거 아냐.”
콕 집어 테이저 건을 바란 건, 무력을 보충할 방법만 생기면 따라갈 수 있으리란 판단이 섰기 때문이겠다 싶었는데. 혹시 그게 아니었나?
“그, 그건 아니에요.”
“그래, 그래서 방법이 뭔데?
마이스터가 내주겠단 말을 철회할까 말까 고민하려던 그 찰나, 소녀가 긴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나. 마이스터의 표정이 조금은 심드렁해졌다.
“그게…….”
뭐, 소녀에게 방법을 모두 전해 들은 후에는 ‘머리가 돈 꼬맹이었군’이란 심정으로 변해 버렸지만 말이다.
“나도 모르겠다. 너 알아서 해라.”
“감, 감사합니다!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그땐 정말 은혜 갚을게요!”
“그러든가.”
그래도 그는 끝내 테이저 건을 돌려받지 않았다. 소녀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밤하늘에 조그만 자갈 하나가 던져졌다.
* * *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
‘꺼져.’
나는 긴 고민 없이 단칼에 거절을 뱉었다. 솔직히 뇌를 거친 것 같지도 않았다. 척수반사적으로 말이 먼저 튀어나오고, 뒤늦게 분노의 말이 이해됐다.
‘네 도움 안 받아.’
물론 반 박자 늦은 이해라고 해서 답의 종류가 달라지진 않았다. [후후.] 분노의 웃음소리가 골 안쪽에서 징징 울렸다.
[너무 날 세우지 마, 그대. 나도 원해서 개입하려는 게 아니니까. 단지 자칫했다간 이 몸도 죽을 판이니 의심을 무릅쓰고 손 뻗어 볼 뿐.]
그렇겠지. 나는 녀석의 말을 흘려 들으며 주변에 집중했다.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에루탤크와 이 추위에도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다니엘, 악착같이 틀어막는데도 한계에 봉착한 인퀴지터. 눈 돌리는 모든 곳이 위기뿐이었다.
[정말 도움이 필요 없어?]
「시끄러워, 그레트헨께서 꺼지라잖아!」
[너한테 말하지 않았어, 애송아.]
솔직한 심정으로는, 파우스트를 말리고 싶지 않다. 악마랑 말을 섞어 봤자 좋은 꼴을 볼 리는 없으니까. 저 녀석이 진심으로 이 상황을 위협이라 받아들였다면 목소리가 저리 태연할 리도 없고.
‘어떻게 도와줄 건지, 그 대가로 뭘 바라는 건지 일단 말해 봐.’
「그, 그레트헨……!」
하지만 급한 건 이쪽이었다.
나는 건강 상품 판매원(사기꾼)과 통화하는 기분으로 대담을 수락했다. 정신머리를 쪼개 가며 이야기를 나눈 가치가 이 대화의 끝에 부디 있기를. 진짜 진심이었다.
[내가 꼭 조건을 요구할 것처럼 그러네.]
‘대화하기 싫음 말아.’
안 그래도 사고 쪼개기 힘겨운 마당인데 어디서 개수작이야. 나는 녀석의 약한 척을 단번에 쳐 낸 후 마력을 움직였다. 흐트러진 것 없겠지? 없다고 해, 없어야만 한다고.
[도와주는 방식은… 그래, 쉽게 말해서, 마법을 완성하는 동안 내가 육체를 대신 움직여 줄게. 지금 네가 곤욕을 겪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마력을 제어하는 데만도 바빠 몸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인 거잖아?]
‘…줄여서, 분업하자?’
[정확해.]
와중에 분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먼저 듣기로 한 거긴 한데, 사고를 분산하려니 진짜 머리 빠개질 것 같았다. 저게 이득인지 아닌지 재 봐야 하는 상황인지라 더 그랬다.
“집중해라!”
하지만 한쪽으로 생각이 쏠리면 마력의 선이 흐트러지기 일쑤라. 나는 왼손으로 동그라미, 오른손으로 별을 그리는 마인드로 어떻게든 되물었다.
‘네가 몸을 대신 움직인다고 해서 크게 나아질 것 같진 않은데.’
[과연 그럴까? 장담하건대, 지금보단 훨 나아질걸? 이 육체의 성능은 널 둘러업고 뛰는 인간보다 배는 우월하고, 난 그걸 한계까지 써먹을 자신 있으니까.]
「…그런 조건이라면 차라리 제게 맡기세요! 저도 할 수 있어요!」
[그 대가로 수명 몇 년어치는 날려 먹겠지만, 그렇지?]
…숨겨져 있을 음험함을 고려해도 과연 내게 이득인 제안인가?
만일 위험성보다 이익이 더 크다면, 혹시 모를 위험성을 배제하고자 소년의 수명 몇 년어치를 날려 먹는 것이 더 합리적인가?
사고의 여유는 없고, 급박한 정신으로는 정답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다. 머리가 아프다.
‘…조건, 조건도 말해.’
나는 결론을 헤아리는 걸 잠시 미뤘다. 주르륵. 코피가 좀 더 많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도 큰 걸 바라진 않아. 바라는 건 그저 단 하나, 지금처럼 이 몸의 안위가 흔들리는 일이 발생할 경우에 한해… 내게 약간의 재량권을 나눠 주는 거야. 마력을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든, 육신의 조종권을 잠깐 내어주든 간에 내가 상황을 조금 바꿀 수 있도록.]
‘아, 괜히 들었네. 꺼져.’
[너무 그러지 마. 그대에게도 손해인 조건은 아니잖아? 그대가 사지에 계속 걸어가니까 나도 이런 조건을 거는 거지, 아니었다면 안 했어.]
뭐라는 거야. 하여간 이래서 사기꾼이랑은 대화도 트면 안 되는 건데.
나는 안구의 핏줄이 터지는 걸 실시간으로 감상하며, 한쪽 손을 들었다. 다니엘에게 방해되지 않는 방향으로 올라간 손끝에는 불티가 확 튀어 오른다.
[주변인들의 안전이 걱정되는 거라면, 조건으로 명시해도 좋아. 오직 이 몸의 안전에만 개입하며, 주변인을 죽일 목적으로 건드리는 순간 해당 거래가 파기될 수 있다. 주변인의 생존을 100% 보장할 수는 없으나, 그들의 죽음을 막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한다. 뭐 그렇게 말이야.]
화르륵!
하나가 불타며 길이 열렸다. “윽!” 딱 한 걸음만을 허락하는 길이었다.
샤악, 샤악!
“자아조차 가지지 못한 미천한 놈들이……!”
그뿐만 아니라, 내게 마법진의 길을 알려 줘야 할 사람은 지금 정신 없이 달리기만 하는 중이다. 티끌에게 당하지 않는 건 그나마 다행이나, 티끌을 베며 시간 끄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점에선 절망이다. 출구가 없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싫어?]
“커헉!”
“대리자시여!”
출구가, 없었다.
“…이래서 물딜 마딜 밸런스를 챙겨야 하는 건데.”
“……?!”
아크메이지님,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빠지셨던 겁니까. 물론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아크메이지님이 계셨어도 상황은 크게 안 바뀌었을 것 같지만, 그래도.
‘너와 나, 각자가 생각하는 재량권의 한도가 크게 차이 날 경우, 추후 그 권한의 크기는 대화와 타협으로 다시 정한다. 그 조건까지 걸어. 그리고 다른 애들 목숨 제대로 지켜 줘라. 은근슬쩍 방관하면 바로 철회야.’
[아, 그대. 참 철저하기도 하지. 좋아, 이 이상 시간을 끌면 그대가 화낼 것 같으니, 이번은 내가 양보해 주겠어. 하니 그대… 모두에게 베푸는 다정함으로 내 진심도 알아주길 바라.]
‘뭐래.’
[나중을 기대해도 되는 거지, 그대?]
‘진짜 뭐라는 거야.’
언제나 말하지만, 양심 하난 제대로 뒈진 새끼.
나는 후후후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끝내 눈을 감았다. 세계가 뒤집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