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화 신께 고하리라 (10)
“하얀 까마귀, 이쪽에서 바란 건 실력이 없어도 믿을 수 있는 적당한 마법사였지, 실력이 좋지만 미심쩍은 존재가 아니었소만. 정말 마법사를 붙여 줄 마음이 있긴 했던 거요?”
“오, 오해는 말아 주시길. 전 정말 저 친구가 최적이라 생각해서 추천해 준 것뿐이랍니다.”
“이쪽에서 특별한 대가나 무궁한 영광을 약속한 것이 아니니만큼 제대로 된 이가 아닌 사람을 추천했다 해도 딱히 나무라진 않았을 거요. 하나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알면서 이다지도 의문점이 많은 이를 추천한 건 그대의 의도를 미심쩍게 만드는구려.”
몸에 잔뜩 두르고 있는 마법 아이템이야, 용사 일행을 서포트 하기 위해 들려 준 거라고 하면 나름 납득이 가능한 선이다. 하나 에루탤크의 존재를 아는 이가 극소수라는 건 문제의 결이 다르다.
이건 명백히 수상했다.
“그냥 물건만 가져가죠?”
“으음, 아무래도 그러는 게…….”
“뭐? 안 데려간다고?”
인퀴지터도 편의를 위해 이 정도까지 모험하고 싶진 않은지, 거절로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왜?” 거기서 반발을 내놓은 건 의외로 마이스터였다.
“문제될 소지가 있어 보이니까요. 왜요.”
“아, 혹시 데려가야 하는 무언갈 떠올리신 겁니까?”
“아니…….”
아니, 의외까진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렴 방금 전까지 신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인 게 마이스터 아닌가.
인간 대부분을 머저리로 보는 입장에서 동등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오랜만일 터. 그러니 그와 오랫동안 어울리고 싶어 하는 욕구도 나름은 이해된다. 데려가야만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심정마저도. 그래, 나름은 이해해.
“대화는 나중에 해도 되잖나.”
그렇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아 씨, 사람 하나 보자고 여기에 다시 오긴 싫은데.”
“따지고 보면 저 사람도 이 도시의 마법사인데, 그건 괜찮나?”
“그때 있던 인간이 아니니까 괜찮아. 애초에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도시가 싫은 거지, 그 도시 인간들 전부가 무서운 건 아니거든?”
그렇구나… 무슨 원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애초에 감정적 영역은 정해진 법칙을 따르는 일이 더 드물다. 하니 마이스터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리라.
“입이 살아나셨군요.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표현이 좀 그렇다?”
“글쎄. 별로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오히려 정확하지 않아? 나는 다니엘의 표현에 긍정표를 던진 후 에루탤크를 슬그머니 관찰했다. 앞에서 노골적으로 불신을 입에 담든 말든, 그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태연히 서 있기만 하다.
진실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으나 본인의 말─절박하지 않다─은 참 제대로 지키는 모양새였다.
“항상 생각하지만, 금풍 당신은 너무 빡빡합니다. 적당히 유도리 있게 구시면 좀 좋나요?”
“세상엔 융통성 있는 게 좋은 문제와 있으면 안 되는 문제가 있는 법이오.”
“알았어요, 알았어. 항복하면 되잖아요.”
정말이지, 하얀 까마귀고 에루탤크고 무슨 생각인 걸까. 안 좋은 속셈을 품고 있다기엔, 또 너무 대놓고 수상한 게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실험 결과를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정말 이쪽을 엿 먹이기 위한 거라면 이렇게 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스파이를─
“마검사란 존재가 실존할 수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악마기사라는 사례도 나타났잖아요?”
내가 꿍꿍이속을 가늠하기도 전, 하얀 까마귀가 전말을 토설했다. 진실을 들었다는 기쁨보다 충격과 공포가 우선해서 찾아오는 답이었다.
마이스터가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떨구었다.
“잠, 깐. 사람을 대고 실험 결과라니……! 설마 인체 실험을 하신 겁니까?!”
당연하지만 다니엘이 가장 먼저 격분했다. 하얀 까마귀의 말을 단번에 이해할 만큼 세상도 잘 알고, 그러면서도 윤리적 문제에 엄격한 이단심문관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인체 실험……? 지금 제가 들은 게 정말입니까?”
때가 덜 묻어, 이해에 살짝 얼을 타던 인퀴지터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녀는 다니엘의 말로 하여금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메이스 자루에 손을 올리고 흰 눈을 했다. 이단심문 할 때나 짓던 매콤한 표정이었다.
“…이래서 말하기 싫었다니까.”
하나 그 모든 적의를 부담하는 중에도 하얀 까마귀는 태연했다. 갈라진 치마 자락 사이로는 짝다리를 짚은 다리가 보인다. 그가 이 대화에 얼마만큼의 무게를 부여하는지를 알려 주는 자세였다.
“저 친구는 스스로 자원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변명입니까?”
“변명이 아니라 변호죠. 북부는 자원한 자에 한해 인체 실험이 허용되는걸요?”
“그런 규칙은 듣도 보도 못했─!”
“일 년 전, 비밀리에 승인된 법이니까요. 못 들으셨어도 어쩔 수 없죠.”
“…대신전이 이것을 승인했을 리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용사님, 대신전이 승인했으니까 제가 당당하게 발언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대신전의 승인. 그 말에 인퀴지터와 다니엘의 표정이 무너졌다. ‘그럴 리 없다’라는 부정과 ‘대체 왜?’라는 혼란이 마구 교차했다.
“대신전이 미쳤다고 북부 전체에 그런 허락을 내렸을 것 같진 않은데.”
그때, 고개를 떨군 상태의 마이스터가 딴 곳에 시선을 둔 채로 한마디 했다. 혼잣말을 가장한 지원사격이었다. 다소 힘에 부쳐 보이긴 하지만서도.
“하얀 까마귀, 법에 대해 정확히 말해 주시오.”
“…마탑주가 추천한 이 중 대신전의 심사를 통과한 마법사만이 자격을 받을 수 있고, 피실험자의 의사를 주교 이상의 권위를 가진 자가 보증해야 하며, 그 모두를 충족하더라도 실험 내용이 대신전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실험을 진행할 수 없게 하는 법입니다. 중간중간 불시 검문도 감수해야 하고, 피실험자가 중단을 원하는 순간 바로 그만둬야 하며, 해당 법안을 외부에 알려선 안 된다는 맹세도 해야 하죠.”
그로 인해 설명을 떠맡은 하얀 까마귀의 눈이 대번에 귀찮음을 품었다. 후우. 중간중간 부리를 얹고 연기를 흡입하는 행태는 다소 약쟁이를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조건부 허락도 허락이잖아요? 이 정도면 납득이 됐습니까?”
“…납득했소.”
별개로 에루탤크가 그런 실험의 대상자였다라… 심지어 그 실험의 목표가 마검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라.
나는 팔짱을 꼈다. 아무렴, 법이 허용했다곤 하나, 인체 실험이 달가울 수는 없었다. 하물며 그런 마당에 마검사 실험의 구실로 내 존재를 끌어온다? 아니꼽지 않은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잠깐, 외부에 알려선 안 된다는 맹세는 뭡니까? 대신전에서 그런 조건을 걸 필요가 있습니까?”
“오… 용사님은 마법사를 잘 모르시는군요. 그건 단순히 별 잡것들이 꼬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불퉁한 자세를 취하는 동안, 인퀴지터가 짓씹듯 단어 하나하나를 이었다. 목소리에 형태가 부여된다면 그녀의 언어에선 고드름이 뚝뚝 떨어질 것이다.
“제가 말하긴 좀 그렇지만… 북쪽의 마법사들이 좀 더 각별하게 미쳤다는 건 유명하잖아요? 조건부일지언정 공식적인 허가가 떨어졌다는 걸 알면 눈이 훼까닥 뒤집어질 녀석들이 많아요. 자신들에게 자격이 있든 없든 공식적으로 허가했는데 나도 해도 되는 거 아님? 하며 굴 미친 놈들이요. 법안을 숨겨 둔 건 그 때문이죠.”
함에도 하얀 까마귀는 끝까지 유들유들한 반응을 고수했다. 빠득. 인퀴지터의 잇새에서 살벌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납득, 했습니다. 그래서… 저 마법사를 추천한 근거는 그게 다입니까? 결과 확인을 위해서?”
“네.”
“…….”
떳떳하기 짝이 없는 한 글자에, 인퀴지터가 두어 마디 중얼거렸다. 하얀 까마귀에겐 닿지 않을, 근처에 있는 나한테나 간신히 들릴 크기였다. 물론 인퀴지터가 나 들으라고 한 건 아니겠지만.
“시발 새끼가 지랄 염병을…….”
절대, 나 들으라고 한 건 아니겠지. 그냥 내가 청력이 좋아서 듣게 된 거겠지.
내 멘탈이 잠깐 갈렸다. 언제나 말랑말랑할 것 같던 인퀴지터의 욕에는 그만큼의 충격이 있었다.
“…마이스터.”
“왜?”
“욕 좀 줄여라. 애가 배웠잖나.”
“뭐라는 거야, 시발…….”
애 앞에선 찬물도 마시는 게 아니라더니! 나는 범인일 확률이 높은 마이스터를 바로 쪼았다. 마이스터가 어이없어했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저 새끼도 하는데.”
“…왜, 왜요. 저 아니에요.”
뭐만 하면 욕을 달고 다니는 놈이 뭐라는 거야. 쟤는 욕… 을 안 하진 않지만 진짜 개빡치거나 상황이 좆됐을 때가 아닌 일상에선 자제한다고.
나는 그런 의미로 타인에게 누명을 씌우는 마이스터를 흘겨보았다. 그는 환장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야,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쟤도 한 성─”
“아아아아아.”
데스브링거의 손이 마이스터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다고 해서 뒷말이 예상 가지 않느냐면 그건 아니지만, 뭐.
“…성질머리가 좋지는 않지요.”
“댁까지……!”
“그렇겠지.”
“……?!”
“…알고 계셨습니까?”
“모르는 게 어렵지 않나.”
아니이. 하하호호 하며 살 수 있는 귀족도 아니고, 사람이 손쉽게 죽어 나가는 뒷골목 출신이잖아. 심지어 사람 죽이는 게 쟤 직책이고.
그런 애가 정말 성격 좋기만 하겠어? 평상시엔 유순하고 할 땐 분명 한 성깔 하는 타입이겠지.
“시시때때로 사람이 죽는 세상이다. 독기 없이 사는 게 더 이상한 거겠지.”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다, 다물어요.”
…아니면 내가 잘못 생각했나? 내가 아는 것보다 성격이 더 더럽나?
나는 마이스터와 다니엘의 반응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애가 좀 미숙한 면이 있긴 해도 엄청 최악까진 아니라고 보는데… 혹시 나한테만 그런 거였을까?
“글쎄. 뭘 모르면 어떤가? 평생을 들여도 이해할 수 없는 게 타인이란 존재일진대.”
그렇지만 아무리 고찰해도 별문제 없지 않나라는 감상밖에 안 든다.
암, 서로의 팬티 색까지 아는 친구들과 달리, 사귀던 애나 존경하던 선배 앞에선 민낯 한번 보여 준 적이 없는 게 나인걸.
“하물며 세상엔 모든 걸 내보여도 좋은 관계가 있고, 좋은 면만 내보이고 싶은 관계도 있는 법이다.”
다만 그 태도의 차이가 사랑의 크기를 말하는가… 라면 나는 아니라고 본다.
경애하는 부모님에겐 말하지 않고, 친애하는 친구에겐 비밀을 토로하는 게 부모님보다 친구를 더 사랑한단 의미는 꼭 아닌 것처럼.
“그러니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너도 신경 쓰지 마라.”
그런 마당에 내숭은 오히려 귀엽지. 그만큼 잘 보이고 싶단 뜻이니까.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데스브링거의 손에 사탕을 미끄러트렸다. 나는 괜찮다. 돌려 전하는 마음에 데스브링거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마법 아이템은 활동하는 동안 일었던 신체 반응도 관찰할 겸, 육체의 안정성을 위해 둘러 준 겁니다. 투자한 게 얼만데, 애꿎은 병에 걸려서 죽으면 곤란하잖아요?”
아무튼, 우리가 딴 길로 샌 사이, 하얀 까마귀는 아크메이지와 끝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럼 이것까지만 답해 보시오. 왜 하필 우리에게 붙여 주려 하는 거요?”
“뭐긴요. 마검사를 만들려는 근본적 이유가 악마사냥에 있으니까죠.”
“…그건 꼭 우리가 아니어도 될 텐데?”
“네. 그렇지만 저 친구가 죽는 일 없이 실력을 확인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패가 당신들인 것도 사실이잖아요? 용사님 정도면 저 친구가 악마에게 당해도 즉각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 테니까.”
“순전히 안전성 때문이었다?”
“네. 물론 아크메이지님께서 말했다시피 꼭 여러분이 아니어도 확인은 가능하죠. 그래서 저도 굳이 몰아붙이지 않았던 겁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을 뿐인 문제니까요.”
이리 곡절을 들어도 마음에 걸리는 게 전부 없어지진 않는다. 그러나 하얀 까마귀의 변명은 최소한 그럴듯했고, 납득할 여지도 분명 있었다. 아크메이지의 표정이 보다 착잡해졌다.
“자,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죠. 제가 이렇게까지 패를 깠는데, 설마 안 된다고 하시진 않겠죠?”
“…하나만 더. 이게 무언가의 꿍꿍이속이 아님을 맹세할 수 있나?”
“저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으시군요. 좋아요. 제겐 실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함 이외, 당신들의 대업을 방해하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맹세합니다. 됐어요?”
하나 감정과 별도로 그의 말이 전부 사실일 경우, 우리가 거절할 명분은 더 이상 없다. 영입을 망설이던 건 툭 튀어나온 저 존재의 수상함 때문이지, 다른 것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이제 결정 좀 내려 주세요. 슬슬 저도 짜증이 나거든요?”
그럼 우리의 최종 결정권자는 어떤 선택을 내리려나. 나는 인퀴지터의 답을 기다렸다.
“…데려가겠습니다.”
이를 악문 답이었다.
* * *
“대, 대전사!”
그리고 북쪽 어딘가의 설원.
베르세르크는 소녀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무기를 단단히 붙들었다.
“시련이, 시련이……!”
그녀의 정면에는 허공에 새겨지는 균열이 있었다.
“진짜 빙하의 시련이에요!”
세계 끝 너머, 세계의 뒤편과 연결되는 균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