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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351화 (351/389)

351화 신께 고하리라 (9)

“갈가리 찢긴 시체도 아니고, 들고 가기 좋게 제대로 습렴해서 싸 줬는데 왜 그리 유난이야?”

“…….”

저기, 무슨 소리 안 들려? 내 글래스하트에 금 가는 소리 같은 거?

“…고인 앞에서 싸서 주다라는 표현의 사용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군.”

물론 시대와 세계, 그의 출신 및 성장 과정 등을 고려하면 저건 결코 악의를 담아 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 그걸 알고 있으니까 나도 봐줬다.

내 눈이 마이스터를 한번 흘긴 후, 내 앞에 있는 관으로 돌아갔다. 천으로만 감싼 상태로는 도저히 넣고 싶지 않아서 급하게 준비한 관이었다.

뭐, 제작 완성 상태의 관이 몇 개 없고, 규격 문제로 졸지에 제일 비싼 소나무 관을 맞추게 되긴 했는데… 돈은 좀 나갔지만 마음은 편했다.

이 사람의 사정은 잘 몰라도… 죽은 이후에 짐짝 취급받는 건 도리에 맞지 않다.

“그으래…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 사기당한 것 같다니까? 그 자식 오동나무 관이 있는데도 일부러 비싼 소나무 관만 있다고 한 게 분명하다고.”

“상관없다.”

“참 나…….”

나는 시신의 안치 상황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후 관 뚜껑을 덮었다. 넣어 둔 꽃의 향기가 온전히 가두어지고, 비워 두었던 인벤토리는 꽉 찼다.

시신이 인벤토리에 들어갔다는 미묘한 찝찝함과 인벤 테트리스에 성공했다는 뿌듯함이 교차했다.

“이제 나가지.”

아무튼 이걸로 해야 할 모든 일이 끝났다. 약속한 시간도 거의 다 됐고.

“그러든가.”

나 하는 꼴을 지켜보던 마이스터가 느긋하게 나를 따랐다. 하품을 쩍쩍 해 대는 꼴이 썩 피로해 보였으나, 그게 안타깝진 않았다.

아무렴, 따라오지 말라 했음에도 재료 삥 뜯겠다고 꾸역꾸역 쫓아온 건 그였다. 실제로도 말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40만 갈가량의 재룟값을 내게 청구하는 데 성공했고.

역시 걱정받을 만한 녀석은 아니다.

“오셨습니까!”

“내가 제일 늦었나. 미안하군.”

“아, 아닙니다. 아직 음식도 다 안 나왔는걸요.”

식당으로 내려가니,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일행이 보였다. 테이블에는 전채 느낌으로 나오는 샐러드와 소시지, 빵뿐이 없다.

“표적은 챙겼나?”

“예.”

별개로 북쪽이면 따뜻한 음식만 먹을 것 같은데, 의외로 찬 음식이 더 흔하단 말이지. 매번 데워 먹기 힘들어서 그런 건가?

나는 잡념을 곱씹으며 빵에 수즈마Suzma를 발랐다. 그릭 요거트와 흡사한 그것은 내가 그나마 편안히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많이… 차갑긴 하지만.

“이것 좀 들게.”

“저 놈팽… 아니, 저 친구가 새벽부터 발품 팔아 구해 온 겁니다.”

그때, 아크메이지가 막 나온 그릇을 내 쪽에 밀어 주었다. 눈 아래에 피곤을 바른 다니엘은 그녀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이다.

“그, 그걸 왜 말합니까요?!”

“숨길 만한 일은 아니잖습니까.”

“알뜰도 하셔라.”

아무튼 그들이 내게 밀어 준 건 생선 살에 향신료를 묻혀 찐 요리였다. 북부인이 선호하지 않고, 따라서 이 식당 또한 취급하지 않던 요리기도 했다.

“그, 그래도…….”

그래서 이걸 누가 준비했다고? 나는 창피함에 목덜미가 붉어진 데스브링거를 일별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좀 많이 감동이었다.

“고맙다. 잘 먹으마.”

“벼, 별말씀을…….”

“그대에게도 감사를 전하지.”

“전 한 게 없습니다만…….”

“같이 갔을 거 아닌가.”

“어서 드셔 보십시오!”

잠이 부족해 보이는 그 얼굴이 증거다. 나는 그들의 배려에 희미하게나마 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그래도 더 이상 악마 소리 듣는 일은 없었다.

실로 온기가 가득한 식사였다.

“딱 맞게 오셨군요.”

그러나 마탑은 그다지 온기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만남 장소를 마탑 외부 뜰로 잡았음에도 창백해진 마이스터의 얼굴이 그를 증명했다.

“신께선 우리의 영혼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니…….”

인퀴지터도 마이스터의 상태가 마음에 걸렸는지, 옆에서 계속 축복의 기도문을 외웠다. 마이스터의 어깨에 닿은 손에 은은한 금빛이 흘렀다.

“흐음……?”

다만 그 과정을 누군가가 유심히 지켜보았다. 어깨가 하얀색 털에 감싸여 있고 새의 발처럼 생긴 손을 가진, 언제 보았던 것 같은 큐어티족이었다.

“네가 이곳에 다시 올 줄은 몰랐는데.”

“하얀 까마귀.”

팔뚝에 로브가 걸쳐져 있는 걸로 보아 마법사. 값비싸 보이는 시스 드레스와 화려한 문양의 로브 차림으로 보아 아마도 고위직. 어째서인지 본 적 있는 것 같은 외형. 마지막으로 마이스터를 알고 있으며, 아크메이지가 그를 칭한 이름.

그 모든 사실을 종합하자, 나는 그의 정체를 알 것도 같았다.

“클레베흐의 마탑주인가?”

“음? 아, 당신이 그…….”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마탑주의 주목을 끌어왔다. 별로 어렵지 않았다. 내가 가진 특성은 마법사들의 관심을 끄는 데 아주 주요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클레베흐 마탑 지부를 도맡고 있는 하얀 까마귀입니다. 이름은 오래전에 분실하였으니, 부디 하얀 까마귀라 불러 주시길.”

“모험가. 다른 호칭은 필요 없다.”

뭐, 따지고 보면 이건 나보다 인퀴지터가 해야 할 일이긴 한데… 인퀴지터는 지금 마이스터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중이다. 이번 한 번은 내가 나서도 될 것이다.

“쓸데없는 말은 말고, 사람이나 소개해 주시오. 그러기 위해 모인 자리지 않소.”

아크메이지도 비슷한 판단을 내린 듯, 두 사람을 가리는 위치에 섰다. 이쪽의 통성명은 생략하겠단 의지가 아주 한가득이었다.

“성질도 급하셔라. 그 유명한 악마기사를 만났는데, 가벼운 대화 정돈 괜찮지 않겠어요?”

“하얀 까마귀.”

“예, 예.”

하얀 까마귀는 어깨를 으쓱이며 들고 있던 부리 가면을 입에 얹었다. 스으으. 부리 틈새로 연기가 살짝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겠지만, 꼭 약 하는 것처럼 보여서 좀 불길했다.

“자, 앞으로 나오세요.”

각설하고, 아까보다 톤이 다운된 목소리가 빈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그의 뒤편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늘에서 걸어 나왔고, 옷차림이 검정색 일색이어서 꼭 그림자가 튀어나온 것 같았다.

“……!”

아크메이지가 몸을 흠칫 떨었다. 아무래도 상대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지간하면 차림새에 말을 얹지 않는 편이오만, 하얀 까마귀 당신이 소개해 준 이에겐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군.”

그래도 그녀는 오래 당황하지 않았다. 상대의 의복을 지적한 것만 봐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뭐어, 얼굴을 전부 가리는 철가면과 암살자 느낌 낭낭한 옷 같은 걸 보면 지적을 안 하기가 더 어렵겠지만서도.

“정말 이런 복장으로 환영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소?”

“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혜로운 금풍, 저는 머저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가면이 문제지 나머진 나름 허용선 아닌가? 말이 암살자 느낌이지, 실제론 흔한 모험가1 차림이니까. 추위를 피하기 위해 망토가 두껍고, 일부 부위에 철갑을 둘렀으며, 지향색이 리얼블랙인 것만 빼면.

“하면?”

“수상할 걸 앎에도 이 친구가 이런 차림인 건 단지─”

“난 절박한 자가 아니다.”

내가 딴생각을 하던 사이, 하얀 까마귀의 말을 끊고 가면인이 한마디 툭 뱉었다. 하얀 까마귀도 어지간한 동굴 저음이었는데, 이쪽은 스크래치까지 더해지며 한층 더한 느낌이었다.

“내 복장이 불쾌한가? 하면 거절하라. 나는 요청을 받아 이 자리에 나왔을 뿐, 그대들을 위해 나의 익숙함을 꺾어야 할 이유가 없다.”

체구는 마이스터와 비슷하지만 목소리와 말투, 옷차림의 조합 덕에 만만히 느껴지진 않는다. 까칠한 대답에 아크메이지가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그대 말이 옳소. 성향이 맞지 않다면, 억지로 어울릴 필요가 없지.”

상대의 말에는 수긍하고 있으나 여전히 탐탁지 않은 눈치였다.

“너무 그러지 마시지요. 꽁꽁 가린 게 그렇게 문제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단순히 가리기만 한 게 아니지 않소.”

“아아. 혹시 전부 마법 아이템인 게 걸리셨던 겁니까? 하지만 금풍, 마법사가 마법 아이템을 두르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텐데요.”

“마법사가 마법 아이템을 소지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마법 아이템인 건 특별한 일이 맞지 않겠소?”

별개로, 내가 지금 아크메이지의 이명을 알게 된 것 같은데, 대화가 너무 심각해서 안중에 두기가 힘들다.

아크메이지가 신경 쓰던 건 의복의 디자인이 아니라 그것들이 품은 특성이었다.

“제가 아끼는 친구라, 이것저것 내줬지요.”

“그 정도로 아끼는 친구였소? 내 그걸 몰랐구려.”

하여튼, 아크메이지와 하얀 까마귀가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마이스터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얼굴엔 여전히 핏기가 없지만, 적어도 움직일 정신머리는 생긴 듯했다.

“됐고, 실력이나 봅시다.”

“괜찮겠나.”

“수상하다고 실력까지 안 볼 거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건 내 소관이 아닌데.

내 시선이 자연히 인퀴지터에게로 향하고, 동그란 눈이 꿈뻑거렸다. “아!” 얘는 다 좋은데, 지가 리더인 걸 종종 까먹는다.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실력이 좋다면 고민할 여지가 생기지만, 안 좋다면 답이 바로 나올 테니까요.”

하얀 까마귀에게서 정보를 캐내는 건 아크메이지가 해 주고 있다. 하니 우리는 그동안 마법사의 실력을 확인하자.

인퀴지터는 그렇게도 축약할 수 있는 말을 꺼낸 후 나를 보며 눈을 반짝 빛냈다. 나는 말없이 사탕을 꺼내서 손에 올려 주었다.

“개 키우냐?”

“…악의 없이 하는 말임은 안다만, 단어 선택에 보다 신중을 기울이는 게 좋겠군.”

우리 애가 강아지처럼 귀여운 건 맞지만, 면전에다 대고 개라 말하는 건 너무하잖아.

내가 무언으로 탓하는 사이, 헤실거리던 인퀴지터가 표정을 고쳤다. 가면에 가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사의 시선이 이쪽에 닿아 있음을 느꼈기 때문 같다.

“그럼, 엄…….”

“에루탤크. 이하 경칭은 필요없다.”

“아, 예! 에루탤크 마법사─”

“경칭은, 필요 없다.”

“옙. 그럼 에루탤크,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인퀴지터가 에루탤크와 마이스터를 차례로 돌아보며 부탁했다. 둘 다 초면이고 공적인 일이라서 그런가, 작업은 의외로 수월하게 진행됐다.

“이상한데…….”

“실력이 별로인가?”

“아니, 별로진 않아. 다만…….”

마이스터가 눈살을 찌푸렸다. 미묘한 불쾌감과 공포, 미약한 짜증이 보랏빛 눈동자 이면에서 넘실거렸다.

“마력으로 일으킨 불과 실제 불의 차이점. 그리고 불에 마력을 오래도록 담는 방법에 대해 말해 봐요.”

“무엇을 촉매로 요구하는가가 결정적 차이겠지. 또한 불에 마력이 담기려면…….”

하나 마이스터는 그것을 표출하는 대신, 그가 맡은 일에 집중했다. 중간중간 이어지는 대화는 마치 외계어 같았으나, 문외한이 보기에도 누구 하나 말문 막히는 일 없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잠깐, 거긴 그렇게 가면 안 되죠. 그건 그렇게 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게…….”

“마력을 다루는 실력이 처참한 자들에겐, 그렇겠지. 평균을 상회하는 실력의 소유자에겐 이쪽이 더 효율적…….”

아니, 과연 부드럽다고 할 수 있을까? 갑작스레 치열해지기 시작한 대담을 두고 나와 인퀴지터는 떨떠름해졌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두 마법사가 지식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건 알겠다.

“집약된 마력은…….”

“편협적인 시각이군. 그건 그렇게만 할 게 아니라…….”

다행히 그들의 담화는 감정적 싸움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지식 수준이 맞는 상대를 두고 흥분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만은 명백했지만서도.

“마이스터.”

평상시였다면 즐거운 대화 되세요, 하면서 버리고 갔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 우리의 목적은 마이스터의 지식 토론장 마련이 아니라 영입 대상의 실력 확인이니까.

“마이스터.”

나는 처음보다 강한 어조로 그를 불렀다. 대화에 몰두해 있던 마이스터가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아, 그래.” 이렇게 부르고 나서야 그가 일하러 온 상황임이 기억난 모양이다. 바로 떠올리기라도 한 게 어디냐마는.

“어떻습니까, 마이스터?”

“크흠, 실력만 놓고 보자면 최상위권이에요. 마법적 지식도, 마법을 다룰 때의 숙련도도, 마력의 움직임도 어느 하나 떨어지는 게 없어요. 쓸 수 있는 게 정말 기본 마법에 한정된 것만 빼면.”

평가가 엄청 후한데. 나는 마이스터의 평가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에루탤크를 보며 검 자루에 올라간 손을 톡톡 움직였다. 두드릴 게 없어서 차선으로 고른 물건이었다.

“어떻게 할 거지?”

“으으음…….”

차라리 실력이 안 좋았다면 선택이 쉬웠을 텐데 말이지.

나는 인퀴지터의 머리통이 터지는 걸 구경했다. “샌님.” 그즈음, 타이밍 좋게도 소문을 수집하고자 따로 행동했던 이들이 돌아왔다.

“어땠습니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던데요?”

“……??”

“기껏해야 수석 마법사 정도가 최근 마탑주가 천거했다는 걸 알 뿐이고… 나머진 되레 제게 묻던데요? 그런 사람이 마탑에 있었냐고.”

“그렇습니까?”

“네.”

안타깝게도 그들이 물어 온 정보 역시 답을 주진 못했다.

“이건 좀 이야길 더 나눠 봐야 할 부분 같소만?”

도리어 은근히 이쪽을 의식하고 있던 하얀 까마귀와 아크메이지의 설전을 심화시켰으면 심화시켰지.

새 파티원 영입의 행방은 그렇게 점차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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