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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344화 (344/389)

344화 신께 고하리라 (2)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잘 지은 것 같습니다.”

다니엘은 날아온 포자를 손바닥으로 잡으며 말했다. 그의 입에는 미리 준비해 온 두건이 꼼꼼하게 둘러져 있다.

“정말로 고요한 침략이군요.”

“홀씨 날리는 것에 커다란 소리가 날 이유는 없으니까.”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이스터도, 아크메이지도, 인퀴지터도, 데스브링거도, 하다못해 말들마저도 똑같이 복면을 입가에 두르고 있다. 전부 포자의 흡입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혹시 들이켜더라도 내부에서 불태우면 돼요. 너무 걱정 마세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동안 조용했던 소년이 속삭여 왔다. 겁주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아크메이지가 신신당부했던 게 걸렸던 모양이다. 조심 안 해도 된다는 의미보단, 너무 걱정 말라는 의미의 말이 두어 번 반복됐다.

‘해 봤어?’

다만 말하는 어투가 꼭 경험담 같아서, 나는 소년의 말이 끝나자 마자 되물어 보았다. 아이가 잠시 침묵했다.

「…추적자를 따돌리기 좋아서요.」

‘…추적자.’

「계약을 맺었던 초기엔, 마기를 제대로 갈무리 못 했던 적이 많아서…….」

‘그래서 여기로 온 거야?’

「이 숲이 무서운 이유는 악마조차 살아 나갈 수 없기 때문인 거니까요. 상성이 맞지 않으면 대악마조차 위험할 정도로.」

‘그렇구나…….’

나는 가장자리를 따라감에 따라 왼편에 항시 위치하게 된 버섯숲을 보았다. 뚜렷한 경계를 두고도 오십여 미터는 떨어져서 걷는 중인데, 포자는 잘도 여기까지 날아왔다. 좀 더 거리를 벌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한데 이렇게 되면 버섯숲이 더 커지는 게 아닙니까?”

“응?”

“포자가 날아온 자리에 새로운 버섯이 자랄 것 아닙니까.”

“아, 그건 괜찮네. 버섯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이 나무들은 숲의 확장을 막기 위해 태곳적 짐승이 직접 손을 쓴 것들이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다니엘의 질문을 두고 아크메이지가 베일 위를 슬 긁었다.

“이건 직접 보여 주는 게 낫겠군.”

그러곤 지팡이로 나무 하나를 두드려 보았다. 통통통. 속이 꽉 찬 소리가 났다. 그녀는 그제야 지팡이로 껍질 사이의 틈에 지팡이를 박았다. 아무래도 껍질 하나를 벗겨 내려는 것 같다.

“제가 하겠습니다.”

뭔진 모르겠지만, 껍질만 벗기면 되는 거지? 나는 프레드릭의 고삐를 잠깐 놓고 아크메이지 옆에 섰다. 참고로 이게 가능한 이유는, 마스크로 인해 호흡이 불편해진 만큼 말의 부담을 덜어 주고자 모두 하차했기 때문이다.

존댓말이 아직도 귀에 안 익은 것인지 아크메이지가 귀와 꼬리를 쫑긋 세웠다.

콰드득.

그사이 나는 아귀힘으로 껍질 하나를 뜯어냈다. 그 과정에서 나무껍질이 좀 부러지긴 했는데, 그래도 손바닥만 한 크기는 남았다.

“…강철 도끼로 찍어도 생채기만 좀 남기로 유명한 나무인데, 이게 부러지네.”

“그, 그러게 말일세…….”

“예?”

“강철이요?”

이게 강철보다 단단하다고? 나는 내가 뜯어낸 나무 껍질을 만져 보았다. 단단하긴 하지만, 결이 있어서 으스러트리기는 쉬웠다.

결과 수직되게 부러트리는 것도 비슷했다. 힘이 좀 들지만, 역시 어렵진 않다.

“아무튼 이게 엄청 단단해서 말일세, 포자가 안으로 파고들기가 어렵네. 그래서 버틸 수 있는 거고.”

“정말 단단하군요…….”

“신기합니다…….”

나는 결과 수직 되도록 찢은 나무껍질을 인퀴지터와 다니엘에게 넘겨주었다. 내게 받으러 다가온 사람이 그 둘뿐이라 선택지가 없었다.

굳이 분류하면 힘쓰는 쪽의 두 사람이 나처럼 나무껍질을 조물거렸다. 결대로 찢는 건 쉬우니, 결에 반대되게 찢어 보려고 노력하는 모양새다.

뽀각.

“앗, 부러졌다.”

“…용사님도 힘이 세네요.”

곧 인퀴지터가 들고 있던 나무를 뽀갰다. 그러자 끙끙거리던 다니엘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부르르 떨리는 팔뚝은 어떻게든 쪼개 보려 노력하는 사람의 것이다.

뿌직. 근성이 나무를 기어이 이겼다.

“이거 힘깨나 드네.”

뚜각. 마이스터도 어떻게든 껍질을 조각내는 데 성공했다. 마이스터랑 비슷하게 걸린 것 같은데, 딱히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한쪽은 검을 휘두르는 사람이고, 한쪽은 쇠를 접는 사람이니까. 둘 다 악력이 약하면 도리어 이상했을 것이다.

“미친 인간들…….”

“…….”

반면 마법사와 도적은 처음부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실패할 걸 아는 사람들의 주제 파악이었다.

“이 정도 강도면 무기에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 그건 안 돼. 강도는 좋지만 탄성이 강철보다도 안 좋거든. 강철과 달리, 결따라 힘주면 잘 부서진다는 것도 단점이고. 그러니까 얘넨 버섯 막이로 쓰는 게 최선이야.

“아…….”

각설하고,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털에 엉겨붙는 포자가 간지러운지 말들이 연신 꼬리를 파닥거렸다.

“그, 아크메이지님.”

“왜 그러십니까?”

“아까… 버섯의 확장을 막기 위해 태곳적 짐승께서 힘을 쓰셨다 하셨잖습니까.”

“그랬지요?”

“그 태곳적 짐승은 혹시……?”

“아, 아아. 제가 이에 대해 말씀을 안 드렸군요.”

아크메이지 역시 털 사이로 숨어든 포자를 털어 내며 말의 고삐를 이끌었다.

“북부 전선은 태곳적 짐승이 인간과 함께 싸우는 유일한 전장입니다.”

* * *

[신성력이 갑자기 증폭됐다라.]

대신전의 비극을 전해 들은 지 2주. 도시의 사제들이 입을 모아 전하는 말에 한 존재가 얼굴을 일렁였다. 정해진 형상이랄 것이 없으되 고밀도의 에너지만 존재하여 꼭 불꽃처럼 보이는 얼굴이었다.

[고에겐 짐작 가는 바가 없다. 하나 원인 없는 결과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으리니, 갑작스러운 변화는 그 이유를 수색함이 옳다.]

손도 마찬가지였다. 규정되지 않은 신체는 멋대로 흩날리되 그가 두르고 있는 옷에 가두어져 틀을 형성했다.

남부에서 데려온 열정 넘치는 예술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싼 실로 옷이 아닌 예술을 마른다던 재단사, 청산호의 직제자였으며 사물에 마법을 담는 데 능통한 마법사. 그 모든 이가 모여 만들어 낸 비단옷은 그 자체로 찬란하게 빛났다.

“공께서도 가늠하시지 못하다니, 곤란하군요.”

[천고의 세월을 거친 것과 진리에 통달함이 동치되지는 않음이라. 다만 고가 무언가의 일부마저 견주지 못함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마치 삿된 것들이 이 땅을 처음 밟았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악마의 수작이라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고가 헤아리지 못하는 개념은 보통 세계의 지평선 너머의 것이었을 따름이다.]

불꽃을 닮은 존재는 카우치에서 발을 내렸다. 또각. 한쪽은 검고 한쪽은 붉은 구두가 드디어 대지 위에 섰다.

허리춤에서부터 내려온 오색 천은 백금과 금, 구슬보다 작은 보석을 알알이 꿰어 둬, 마치 은하수가 펄럭이는 것처럼 보인다.

[대비하라. 이 기복이 실로 의도된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너희를 위함이 아니리라.]

하나 어지간한 성주조차 엄두 내지 못할 그 화려함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더 샅샅히 조사하겠습니다, 오래된 존재시여.”

그것을 걸친 존재가 창세기부터 존재해 왔다던 태곳적 짐승 중 하나였으므로, 영원히 사치가 되지 못할 것이다.

주작, 그는 북녘의 수호자이자 단신으로 대악마 둘의 북상을 막아 온 날개였다.

[고는 그대를 믿는다.]

“…출타하십니까?”

[변고가 생긴 것은 아닌지 전선을 둘러보며 확인할 것이니라.]

주작은 방과 연결된 테라스로 나아갔다. 촤르르. 산호와 호박으로 만든 주렴이 손짓을 따라 밀려나고, 탁 트인 하늘이 펼쳐졌다. 그 아래엔 도시 정경이 낮게 펼쳐져 있다.

[또한 그대는 고를 기다리지 말라. 이번 밤은 다른 도시에서 보낼 것이다.]

“알겠나이다.”

주작은 그 풍경을 일별한 후, 테라스의 난간을 밟았다. 또각. 구둣발이 맑은 소리를 낸 순간 그의 몸이 불꽃에 휩싸였다.

“저것 봐!”

“주작 님이 가신다!”

“아… 좀 더 머물러 주셨다면…….”

틀을 잡아 주던 옷가지는 이면의 공간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 억압에서 해방된 주작의 육신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펄럭. 펼쳐진 두 쌍의 날개는 성채 하나를 덮을 만큼 거대하다.

화르르르륵!

그렇게 날개를 펼친 주작은 제 몸에 탑이 부서지기 전, 서둘러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홍색, 금색, 자색, 옥색, 백색 등 여러 빛깔로 빛나는 꼬리가 허공에 궤적을 남겼다. 마치 오로라와 같았다.

[흐음.]

하나 인간들이 그것에 환호하든 아쉬워하든 주작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탐탁지 않도다.]

그는 전선을 둘러보는 한편, 북쪽에 위치한 산줄기를 보며 언짢은 감상을 품었다. 그곳에 위치한 용이 근 오백 년간 소식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도, 북쪽의 인간들이 남침하여 약탈하는 빈도가 늘었다는 것도 그의 불안을 심화시켰다.

저 얼음의 땅에는 인간들이 모르는 위협이 하나 더 있다.

[쯧.]

지금까지는 자리를 비울 틈이 없어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넘겨 왔다. 그렇지만 탐식이 죽고 약간의 여유가 난 지금마저 그래서는 안 될 것 것 같다.

주작은 목표한 대로 이틀의 시간을 소모하여 전선을 한번 훑어본 후, 적당한 위치의 도시에 내려앉았다. 북부 전선에 한하여, 모든 도시에는 그의 둥지가 마련되어 있기에 방을 따로 잡을 필요는 없었다.

“오래된 존재시여, 제가 무엇을 하면─”

성주에게 방문을 알릴 필요 또한 없다. 거대한 불꽃의 새가 도시에서 가장 높은 탑 안으로 스며드는 모습은 눈만 트여 있다면 누구든지 확인 가능한 소식이었으니까.

[앞으로 일주일간, 전선 어느 곳에서도 고를 볼 수 없으리라.]

하므로 주작은 방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성주가 도착하는 즉시 선언했다.

“어디로 출타하실 것이옵니까?”

[숭고한 용을 보러 간다.]

* * *

“드디어 마스크를 벗는군요.”

필요한 일이었다곤 하나, 천 한 장이 가져오는 불편함이 어찌나 크던지. 다니엘이 푸우 하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천에 걸러지지 않은 공기가 참으로 시원했다.

“정말 괜찮은 것입니까? 이곳에도 버섯이 많이 보이는데…….”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인퀴지터. 고요한 침략자가 퍼트리는 포자도, 숲과 일정 이상 거리가 벌어지면 평범한 버섯 포자로 돌아가니까요.”

“그렇습니까?”

“예. 그렇지 않았다면 태곳적 짐승께선 여기 이 나무들까지 손을 쓰셨을 겁니다.”

나도 다니엘을 따라 복면을 내렸다. 암살자처럼 코까지 끌어 올렸던 복면이 내려가자 서늘한 공기가 뺨에 닿아 왔다. 한국에선 겨울 초입이 되어야 겪을 수 있는 온도의 공기였다.

“공기가 많이 차가워졌군.”

“경계를 넘었으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동장군이 칼을 치켜들 거야.”

“그렇군.”

나는 방한복을 준비해야 한다는 마이스터의 말을 흘려 들었다. 딱히 듣기 싫어서는 아니고, 뒤편에서 의기소침해 있는 데스브링거가 마음에 걸려서였다.

“도와주겠나?”

“……?”

“싫은가?”

“예? 저, 저 말입니까요??”

처음엔 심정이 복잡해 보여서 내버려 두었다. 내게 무언갈 말하고 싶어 하는 표정임을 확인한 후에는 먼저 용기 내라고 기다려 줬고.

그렇지만 저 숲을 돌아올 때까지 입 하나 벙긋 않는 걸 보니, 이대로 두면 끝까지 말 안 하고 살 것 같다. 별로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그럼 내가 다른 이에게 말한 것 같나?”

우리가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긴 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당장 연을 끊을 정도로 얄팍한 정도 아니었다 생각한다.

“…그, 저보단 명장 나리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하다못해 이렇게 흐지부지 멀어질 정도는 아니라고, 첫 단추는 잘못 끼워도 한 칸을 건너뛰는 것으로 마지막 단추는 제대로 잠글 수 있을 거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여겼다.

그런데 쟤가 갑자기 왜 저러지?

“장비를 확인하는 안목에선 그럴 수 있겠지. 하나 그것을 현장에 적용했을 때의 느낌은 네가 제일 잘 알 것 아닌가.”

“그건… 그런데…….”

“불편하다면 사양해도 괜찮다.”

쟤가 나를 꺼리게 될 만한 사건은 달리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면 지난 며칠간의 일이 영향을 크게 끼쳤나? 아니,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던데…….

“이단심문관, 그대는 월동 경험이 있나?”

“아뇨… 저는 주로 남부와 동부 사이에서만 일을 한지라.”

“그런가… 그럼 마이스터, 네게 대부분 맡겨야겠군.”

나는 이것에 대해 끝까지 캐물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끝내 후자로 결정을 내렸다.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해 장벽을 부수고 관계의 개선을 노리기엔 기력도 그럴 당위성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렴, 우린 곧 헤어질 사이고, 그 후엔 볼 일도 없을 예정이었다. 굳이 개선할 필요가 없다.

“근데 넌 솔직히 장비를 준비할 필요가 없지 않아?”

“……?”

“그 검, 원하는 대로 변하잖아.”

“…그렇긴 하지.”

별개로 마이스터가 제시한 질문은 제법 고민할 만한 것이었다. 나는 허리에 걸친 검 자루를 만지작거렸다. 마이스터는 모르지만, 형태를 멋대로 지정할 수 있는 건 옷가지도 마찬가지다. 그쪽은 심지어 재질까지 조절이 가능했고.

“한데 변형은 내가 구조를 이해한 것에만 가능하다. 사진 않더라도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런 거라면 뭐, 우리가 장비 살 때 옆에서 구경하면 되겠네.”

“어, 음. 저는 따로 구매하기보다 신전에 부탁하게 될 것 같습니다만.”

“아, 이단심문관은 신전에서 장비를 제공해 줬지?”

“예, 뭐.”

“그럼 용사님도 거기서 받겠네요?”

“예? 저, 저는…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해룡의 갑옷이 더위는 막아 줬지만 추위는 딱히 그러지 않아서…….”

“그럼 아크메이지님은?”

“나는 월동을 위한 옷이 따로 있네. 걱정할 필요 없네.”

“뭐야, 그럼 쟤랑 나만 사면 되는 거잖아?”

이래서 뒷배 없으면 서럽다니까. 마탑주를 할아버지로 두고 있고, 본인 능력도 뛰어난 사람이 혀를 찼다. 진짜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들었다면 눈이 희어졌을 소리였다.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군.”

“당장 뒷배가 없는 건 맞잖아?”

“대신 뒷배 없이 본신의 힘만으로도 우뚝 설 수 있잖나. 양심 없는 소리는 거기까지 해라.”

“…….”

나는 짐짓 혀를 차곤 저 멀리 보이는 성을 보며 프레드릭을 재촉했다. 양심 없는 마이스터는 뒤로하고, 북부 도시에 첫발을 들일 준비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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