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신께 고하리라 (1)
“왜 여기로 다시 온 거냐? 새 일행을 꾸리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면서.”
프레드릭을 살살 달래며 나아가고 있자니, 마이스터가 옆으로 슬 다가왔다. 방금 전 갑자기 뒤로 빠지길래 왜 그러나 했었는데 이쪽으로 돌아오고자 그리했던 모양이다.
“모르는 사람이지 않나.”
“너한텐 그게 차라리 낫지 않아?”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지.”
내 말에 마이스터가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대열상 내 옆에 위치한 다니엘은 아직 이해를 못 한 듯 알쏭달쏭한 얼굴이다. 대화에 참여하려 참여한 게 아니라, 옆이라서 얼떨결에 듣게 된 쪽이라 더욱 그렇다.
“…경께서 손해를 볼 게 있습니까?”
결국 의문을 참지 못한 그가 끼어들었다.
“그들은 내 정체나 사정을 모른다.”
“…예?”
마이스터의 말을 능란하게 해석해 내길래, 문맥의 건너뛰기 정도는 통달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내 덧붙임에도 다니엘의 눈동자는 애매한 빛깔을 유지했다.
“내가 모험가답지 못한 모습을 보였을 때, 그들은 분명 의문을 품으리란 이야기다.”
나는 그런 그를 배려해 말을 한 번 더 풀어 주었다. 다니엘이 그제야 고개를 주억였다.
“그런 문제라면 확실히 신경 쓸 수밖에 없겠습니다.”
“걔네도 생각 있으면 의문은 목 뒤로 삼킬 텐데. 그리고 그게 퍼져서 네 처지가 나빠질 건 없잖아.”
“나는 나의 불행이 힘겹고 괴롭지만, 그것이 부끄럽지는 않다.”
“…아, 그래.”
“……?”
“…이 불행의 깊이와 무게가 어찌 되었든 나는 최선을 다해 왔으니. 나를 모르고 내가 걸어온 길을 모르는 인물이 감히 날 동정하거나 가여워하는 걸 보고 싶진 않단 의미다.”
“아.”
내 슬픔에 공감하고 대신 슬퍼해 주는 건 좋다. 그렇지만 내 일이 누군가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건 딱 질색이다. 그런 경험은 다리 작살났을 때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더불어 신전이 나를 인정해 주었다곤 하나, 그건 뮌문트에 국한된 일이다. 내 신원을 보증할 수 있을 만한 권위가 돈으로 고용되는 모험가 중에 있을 것 같진 않군.”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하물며 북쪽은 배타적이기로 유명한 지방이니, 설사 대신전의 보증이 있더래도 경께서 자유로이 움직이긴 어렵겠지요.”
그래. 그것도.
나는 내가 북쪽으로 가야겠다 말했을 때, 소성주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북쪽은 당신이 겪었던 그 어떤 곳보다 험할 겁니다. 그곳은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인간도 악마가 된 땅이니까요.』
담담하게 뇌까리던 경고는 분명 걱정을 담고 있었다.
“안 그래도 그에 대해 묻고 싶던 게 있다.”
“무엇입니까?”
“뭐.”
“북쪽이 그렇게 위험한가?”
북쪽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몇 개 없다. 전선 중 가장 치열한 곳, 마왕성과 가장 가까운 전선, 대악마 둘이 버티고 있는 전장.
그런 만큼 가장 위험한 곳이라는 건 인지하고 있다. 적어도 머리로는 그렇다.
그렇지만 소성주의 반응이나 몇 사람들이 보이던 표정을 떠올리거든, 북쪽은 그것보다 더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 나는 그게 의문이었다.
북쪽은 그렇게까지 위험한 장소인가?
“…일단, 저는 북쪽에 직접 가 본 적이 없어 제대로 된 조언을 드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나 북쪽 신전에서 이쪽 지부로 인사이동 하신 사제님께서 말씀하시길, 북쪽은… 조금 각박한 곳이라 하시더군요.”
“각박은 무슨, 그냥 미친놈들의 땅인 거지.”
“…경험한 것처럼 말하는군.”
“어렸을 땐 거기서 살았거든.”
마이스터가 말을 잇다 말고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가슴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건 담배다.
“그놈의 담배는 대체 어디서 공수해 오시는 겁니까?”
“안 그래도 이게 마지막이야.”
그는 흐트러진 담배를 조금이라도 수습한 후, 내게 살짝 뻗었다. 주겠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었다.
“불.”
“쯧.”
내가 라이터냐?
나는 의도가 뻔한 요구를 두고 혀를 찼다. 라이터 취급 받을 줄 알았으면 불 피울 수 있다는 걸 안 보여 줬을 텐데.
너무 늦은 후회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건 곤란한데.”
마지막 담배면 곤란할 것도 없을 텐데. 역시 뻥이었구만.
나는 혀를 또 한 번 차고는 마력을 일으켰다. 화륵. 담배 끄트머리에 불이 붙었다.
“…마기가 섞인 불이다. 꺼림칙하지도 않나?”
“이걸로 마기 침식이 일어날 것도 아닌데, 굳이?”
그건 그냥 마기 섞인 불로 담배 피우는 인간이 없어서 사례가 안 생긴 것뿐이지 않을까? 정말 그런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는 일 같은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마이스터가 그걸 몰라서 저렇게 말했을 리 없다. 그런 믿음이 마음 한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담배 좀 줄이십시오. 건강에 안 좋습니다.”
“누가 신전 소속 아니랄까 봐 잔소리가 아주…….”
다니엘 또한 그랬다. 그는 마기로 피운 불에 대해 운운하는 대신, 담배 자체에 집중했다. 전부 나를 위한 배려였다.
“그래서, 왜 미친 인간들의 땅인 거지?”
나는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나는 위험하지 않아. 일상적인 부분에서 명시되는 전제가 기꺼웠다.
“왜… 라고 물으면 설명이 좀 복잡한데.”
그사이 담배를 빨던 마이스터가 미간을 좁혔다.
“북쪽에 출현하던 대악마는 색욕이랑 탐식, 이 둘이야. 물론 후자는 뒈져서 더 이상 출현 못 하겠지만, 당장 중요한 건 아니고.”
색욕의 대악마가 사람을 괴롭히는 법이 뭔지 알아? 마이스터가 내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괴롭히지?”
“사람을, 사랑을 의심하게 만들어. 그 악마는.”
“……?”
다소 뜬구름 잡는 듯한 말에 내 눈썹이 구부러졌다. 아닌 척 이쪽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앞줄도 마찬가지다. 드문드문 오가던 말소리마저 사라진 걸로 보아, 저쪽도 마이스터의 발언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정확히.”
“이걸 뭐라 해야 하지. 놈의 추종자들은 육체적 쾌락보다는 정신적 쾌락에 더 커다란 가치를 둬. 그러니까… 하루 만나고 헤어지는 사이보다 영원히 함께하는 사이를 선호하는 쪽?”
아무튼, 중요한 건 이어지는 설명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손가락으로 안장의 끄트머리를 두드렸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 도통 감이 안 잡히는군. 그래서, 녀석들은 연애… 같은 걸 하고 싶어 한단 소린가?”
“정확해.”
“…그게 왜 색욕입니까? 연애는… 죄악의 범주에 드는 행위가 아닌데……?”
“보통의 연애는 그렇지. 근데 이쪽은 사랑을 이용해 상대를 맹목적이게 만들고 싶은 쪽이라.”
“맹목……?”
“역사를 봐. 사랑에 미쳐서 해선 안 될 짓까지 범해 버린 인간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의미였나.”
“…악질이군요.”
“악질이지.”
만남으로 연을 맺고, 대화를 나누며 상대를 알아 가고, 그 과정에서 상대의 매력에 이끌리고, 그렇게 깊은 관계로 이어진다.
그것은 흔한 연애와 닮았고, 그래서 더욱 잔인했다. 보통 사람은 연애와 악마의 수작을 구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북부인들은 사랑을 경계해. 타인에게 의지하거나 마음을 주는 일도 좀처럼 없지. 누가 악마 숭배자일지 모르니까.”
“그럼… 결혼은 어떻게 합니까?”
“사람 마음이란 게 조심한다고 되는 건 아니니까. 도무지 연심을 주체할 수가 없다 싶어지면 일단 사제한테 가지.”
“사제한테……?”
“악마인지 인간인지 알아보는 건 사제들이 제일 잘하잖아.”
“…맙소사.”
이단심문이 연애 전 필수 행위라니. 그건 그거대로 끔찍한데. 나는 마이스터의 ‘미친놈들의 땅’이란 발언을 이해했다. 누군들 저런 땅에서 살다 보면 미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각설하고 그런 이유에서 다들 머리가 좀 돌아 있어. 전선에서 떨어진 마을이면 그래도 좀 괜찮은데, 전선을 맡고 있는 곳에선 한 달에 한 번씩 일이 터지는 편이라.”
“…사제님께서 말해 주신 것보다 더 끔찍하군요.”
“적응하면 의외로 살 만해. 아무에게도 정 주지 않고 살면 별 사고 없거든.”
“…그게 어떻게 살 만한 겁니까.”
다니엘의 말에 마이스터는 어깨만 으쓱였다. 그다지 좋게 보이진 않았다.
“됐고, 북쪽에 가게 되면 함부로 친절을 베풀지 마. 듣기에 달콤한 말도, 누군가를 위로할 말도 절대 뱉지 말고.”
“…내게 하는 말인가?”
“그럼 여기서 당부할 사람이 너 말고 더 있냐? 저 녹색귀는 단 말을 할 성정이 못 되고, 아크메이지도 북부의 상황을 알고, 용사님도 상냥한 말이 입에 익지 못한 사람인데. 결정적으로 신관이 하는 단 말은 아무도 의심 안 한다고.”
나는 그 말에 무어라 부정하지 못했다. 컨셉이야 저 조언이 필요 없을 수 있어도, 컨셉을 때려치운 이후는 또 다르기 때문이다. 뭐, 그걸 마이스터가 알고 조언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러지.”
그래도 나는 그의 경고를 마음 깊이 새겼다. 베르세르크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언젠가 우리들이 갈라질 것만은 확실했던 까닭이다.
“뭐. 내가 옆에 붙어 있는 한 어지간하면 큰 문제로 번지는 일은 없겠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거니까.”
“……?”
“편집적인 놈이 있으면 내 보증으로도 믿음이 안 서서 지랄할 확률이 높고.”
“용사가 있는데 설마 그러겠나.”
“용사가 떠난 후를 말하는 건데, 나는.”
“……?”
“…왜?”
“…아니, 용사가 떠나도 내 곁에 있을 것처럼 말하는군?”
“그럼 네 옆에 있지 어디 있는데 내가?”
“……??”
내 말에 마이스터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그 사이에 시선이 두어 번 얽혔다가, 기어이 서로의 속내를 읽어 냈다.
“너 용사랑 같이 안 다닐 건가?”
“내가 쟤네랑 왜 다니는데? 얻을 게 뭐 있다고.”
“…나랑 다녀도 얻을 건 없을 텐데.”
“뭔 개소리야. 네 세상 얘기 해 주기로 했잖아.”
“고작 그런 이유로 날 따라다니겠다고?”
“고작? 고자아악? 야, 다른 세상에서 사는 존재를 만나는 게 어디 보통 일인 줄 아냐? 심지어 그 존재가 악마처럼 우리를 적대하지 않고, 이쪽 언어에 능통하며, 대화를 나눌 만큼의 지성을 가지고 있을 확률은?”
“그건… 그런데. 같이 다니는 기간에 들으면 될 것 아닌가.”
“평생 동부에서만 살아온 사람이 서부의 문화를 한 달 만에 익힐 가능성이 얼마나 될 거라 생각하는 거냐?”
“…그래. 내가 잘못 말했군.”
하긴, 마이스터의 무력을 고려하면 용사 파티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지. 악마를 잡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악마사냥에 집착하는 성정도 아니니까.
“그대는?”
그럼 마이스터는 계속 내 쪽으로 따라오는 건가…….
나는 여행이 심심하진 않겠다 생각하며 다니엘 쪽으로도 고개를 돌렸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 저는… 경이 헤어질 때 같이 헤어질 것 같습니다.”
본래는 자신을 찾을 때까지만 동행하는 것이었는데, 상황이 상황이라 조금만 더 함께하기로 한 거라며 다니엘이 설명했다.
“대신전에서 일이 터진 게 그대가 본 소속으로 돌아가지 않을 이유가 되진 않는 것 같은데.”
“…하하.”
다만 그 ‘상황이 상황’이란 말에는 끝까지 얼버무렸다. 눈길이 계속 앞열을 향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인퀴지터를 걱정해서 남은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모두 준비하게! 고요한 침략자가 보이니!”
그때, 아크메이지가 뒷열인 우리에게까지 말이 들리도록 크게 외쳤다. 고요한 침략자. 그건 우리가 1차로 잡은 목적지의 이름이다.
“저게 그 유명한 버섯숲이군요. 악마조차 범접할 수 없다던…….”
“감탄은 그만하고 마스크 써. 기도에서 버섯이 자라는 경험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곧 자체적으로 마기를 정화하는 능력이 있되, 퍼지는 포자로 인해 인간조차 살 수 없는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직 버섯으로만 구성된 숲이었다.
* * *
“역시, 돌아왔구나.”
현명한 비르기르는 살아 있었다. 설마 죽은 자가 두 팔 벌려 그녀를 환영하고 있을 리는 없으므로.
“한데 대전사여, 그 뒤의 인간은 누구냐?”
“마법사에게 구류되어 있던 것들이다.”
“설마 부족에서 저것들을 받아 주길 바라는가? 하나 대전사여, 그대도 오면서 보았을 텐데. 이 땅은 그대가 떠날 때보다 더 메마르게 변했다.”
“안다.”
하나 그의 생존은 그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탈출하는 그녀를 따르고, 얼어붙은 땅을 맨발로 건너면서까지 쫓아온 이들 또한 알 바 아니었다.
“산다면 사는 것이고, 죽는다면 죽는 것이다.”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베르세르크는 오면서 잡은 단 한 마리의 여우를 바닥에 내던졌다. 비쩍 말라 먹을 살도 별로 없어보이는 여우였다.
“오오…….”
“대전사가 식량을 가져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만으로 환호했고, 고작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베르세르크는 그것이 새삼스럽게 환멸 났다. 그녀의 고향은 끝없이 죽어 간다.
“어딜 가나, 대전사야?”
하여 그녀는 발을 떼었다.
“나의 자매가 묻힌 곳.”
하아. 하얀 숨이 하늘로 올라갔다. 그녀를, 그녀의 자매를 위한 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