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내 이 손으로 (6)
“그가 길드에 지정 고용 의뢰를 했다고.”
귄터는 서류를 처리하던 도중 창가를 일별했다.
“예.”
“수수료가 꽤 나갔을 텐데, 대신 내 주지 그랬나.”
“지불하고자 했으나 길드 쪽에서 먼저 거절했습니다.”
“…그래?”
창밖에 드리워진 광경은 별것 없다. 시체를 태우는 연기 몇 줄기, 시내를 정화하는 빛, 군중을 통제하는 병사들.
“의외네. 저렴하게 해 주는 정도로 끝낼 줄 알았는데.”
“지부장의 자식이 그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답니다.”
“아하.”
“무엇보다… 의뢰 자체가 수수료를 책정하기 어려운 구조였던지라.”
“그래……?”
떠나려 하는 무리 조금.
“그거, 좀 궁금하네.”
귄터는 마지막 서류에 서명하며 일어섰다.
떠나는 이들을 배웅할 시간이었다.
* * *
“정말 가시는군요.”
사안의 시급성으로 인해 떠날 준비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올 때와 달리 수십 명의 병사를 이끌 필요가 없다는 것도 빠른 준비에 한몫했다. 인퀴지터가 데리고 온 병력들은 추가 지원이 없을 뮌문트를 위해 남을 것이다.
“정말 이것으로 되겠습니까?”
다만 순식간에 쪼그라든 인원을 두고 배웅 나온 기사 하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만하펠트 소속 지원군들을 지휘하는 사람이었다.
“충분합니다.”
하나 그의 걱정은 의미 없는 것이다. 그들은 본래 다섯 명 안팎으로 움직이는 것에 가장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뮌문트 성주님께 부탁하여 마차라도 하나 가져가시는 게…….”
“속도만 늦어질 뿐입니다.”
인퀴지터는 파티원 면면을 둘러보았다.
인퀴지터 자신과 아크메이지, 마이스터, 다니엘 이단심문관. 자리엔 없지만 잔류를 결정한 데스브링거까지.
마차를 몰 수 있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다들 노숙에 기겁하는 인사들도 아니다. 그녀는 마지막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말이 좋아서 괜찮습니다.”
대신 그녀는 옆에 서 있던 말을 톡톡 두드렸다. 어지간한 군마보다 덩치가 좋은 그 말은 오래전 멸종했다는 태고의 짐승, 유니콘의 핏줄을 이은 놈이었다.
“설마 이 녀석들을 세 마리나 내주실 줄은 몰랐지만…….”
물론 유니콘의 혈통이라고 해서 정말 특별한 능력이 있다거나 하진 않다. 세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유니콘의 능력을 대부분 상실한 까닭이다.
그 일례로 이 말들의 머리엔 뿔이 없다. 유니콘 하면 따라오는 정화의 힘도, 우레를 부르는 능력도, 하늘을 달리는 기적도 당연히 못 부렸다.
녀석들이 가진 건 오직 저주에 저항하는 능력과 보통 말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뿐이었다.
뭐, 이마저도 말을 부리는 사람들에겐 감지덕지한 능력이었지만.
“음? 그 말은 안 데려가십니까?”
“……? 무슨 말……?”
“용사님께서 본래 타고 다니시던 그 말 말입니다. 덩치도 능력도 유니콘의 혈통 못지않아 보이던데…….”
“아아… 그 아이는 본래 주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
“원래 다른 분이 선물받은 말인데, 모종의 이유로 제가 타고 다녔을 뿐입니다. 원주인을 만났으니 돌려드려야지요.”
인퀴지터는 기사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프레드릭이 여기에 있냐고 떨떠름하게 되묻다가 안내를 부탁했던 사람도, 원주인과 재회하자마자 성질을 있는 대로 부리던 말의 모습도 연속적으로 떠오른 까닭이다.
결과적으론 과일 여러 알과 무한 빗질 앞에서 화해했지만.
“아, 그런 거였군요.”
아무튼 이걸로 그 말의 부재는 해명이 되었다. 기사가 납득하며 물러섰다.
“그보다 뺀질이가 늦는데…….”
같이 가고 싶다던 마음이 바뀌었나? 그도 아니면, 설마 아직까지 대화를 나누는 중인가?
“잠시만.”
인퀴지터는 기사를 두고 아크메이지를 찾았다. 망종의 행방을 알까 싶어서였다.
“아크메이지님, 녀석이 안 오는데…….”
“저 왔습니다요.”
“아, 드디어 왔나.”
하나 악마도 얘기하면 나타난다고, 그들이 그의 행방을 찾아 헤매기도 전에 데스브링거가 나타났다. 그의 안색은 거무죽죽하여 빈말로도 괜찮아 보이지가 않다.
“…사과는 잘하고 왔나?”
“…….”
실패했나 보군. 인퀴지터는 뺀질이의 침묵에서 정답을 바로 읽어 냈다. 그녀가 아무리 눈치 없고 사회 경험이 부족해도 이런 것마저 놓치기는 어려웠다.
“…못 찾았어요.”
“…아.”
“음, 방에 없던가……?”
“예.”
별개로 녀석이 왜 실패했는가는 좀 의문이었는데, 애초에 만나지도 못한 거라면 이해가 간다.
“운이… 안 좋았나 보군.”
“…글쎄요.”
애써 건넨 위로에도 돌아오는 답이 시원찮다. 어제 오늘 모험가만 찾아다녔는데 계속 엇갈렸다 하나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비관적으로 사고하는 녀석 특성상, 저 자식은 지금 모험가가 자신을 피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출발은 좀 늦어도 되니, 다시 찾아보고 오겠나?”
“…….”
문제는 그 가능성이 마냥 없지만은 않다는 거다.
인퀴지터가 본 모험가야 그럴 사람 같지는 않았지만… 그건 결국 그녀의 판단이지 진실이 아니다. 인퀴지터는 더 이상 타인에 대해 자신하지 않기로 했다.
“…아뇨. 그분이 정말 저를 피하는 거라면, 그건 결극 사과조차 듣기 싫어서라는 의미일 거잖습니까요. 그러니까… 괜찮습니다요.”
“네가 그러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그래도 말은 하는 게 낫지 않겠나. 자네도 끝까지 마음에 걸릴 텐데…….”
“제 마음 편하자고 나리 불편하게 만들고 싶진 않아요.”
그렇지만, 정말 이게 맞을까? 인퀴지터는 도무지 정답을 알 수가 없었다.
“마이스터님, 아시는 것 없습니까?”
“뭐?”
“어제 만나셨다 그러셨잖습니까.”
“아… 그렇긴 했지.”
그사이, 다니엘 이단심문관이 마이스터를 찔렀다. 우연인지 의도된 것인진 알 수 없으나, 데스브링거가 허탕을 치는 동안 마이스터는 모험가와 대면했으므로 적절한 선택이었다.
여기서 모험가의 심정을 그나마 짐작해 볼 수 있는 사람은 마이스터뿐이다. 그가 맨 마지막으로 모험가를 본 사람이니까.
“근데 별생각 없어 보인던데, 걔는. 그냥 네가 운이 더럽게 없어서 못 만난 거 아냐?”
“…그치만.”
하나 그가 어디 친절하게 협력하는 사람이던가. 귀를 후비적거리며 하는 말에 네 사람은 그저 앓는 표정만을 했다.
저 사람은 정말 무슨 생각으로 잔류를 택한 건지 모르겠다.
“어!”
“……?”
그때, 배웅 나와 있던 일부 인물들이 웅성거리며 몸을 비켜 세웠다. 나온 건 곧 성주로 즉위할 소성주와 얼굴을 가린 모험가다. 푸르륵. 옆에 서 있는 프레드릭이 길게 투레질을 했다.
“소성주님.”
“신의 대리자시여, 무궁한 영광이 함께하기를.”
소성주는 허리춤에 못 보던 검을 찬 채 그들을 배웅했다. 예식적인 인사말과 축복이었으나 꼭 가볍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소성주가 말에 진심을 담았다기보다는, 앞서 보여 준 행동이 있어서 그랬다. 뮌문트에도 몇 없는 유니콘의 혈통을 세 마리나 내준 것이나, 성 내 보물 창고를 털어 장비를 맞춰 준 건 어지간한 도시에서도 보여 주지 않는 호의였다.
“인사는 끝났나?”
아무튼 그렇게 짧고 굵은 인사가 끝나고, 이번엔 모험가가 나섰다.
인퀴지터는 가슴이 살짝 떨렸다. 『사탄 사냥을 위한 여정은 끝이다.』 겸허히 받아들인다 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가슴 아프던 한마디가 여즉 생생했다.
“…모험가님.”
그는 사과를 받아 주었고, 그녀의 미래를 축복해 주었으며, 사탄을 잡기 위해 모였던 여정을 그만두겠노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하니 프레드릭이 옆에 있다고 해서 그가 그들에게 합류한다는 건 너무 과한 바람이리라. 인퀴지터는 그것으로 두근거리는 기대를 억눌렀다.
“하실 말씀이 남아 있습니까?”
그럼에도 새어 나가는 희망은 하릴없는 것이었다. 성장했지만, 그럼에도 앳됨이 남아 있는 청년은 그녀도 모르게 반짝이는 눈으로 상대를 보았다.
후드 사이로 얼핏 보이는 볼 근육이 살짝 움직였다.
“인퀴지터, 모험가 패는 여전히 가지고 있나?”
“예? 아, 예에.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만…….”
“하면 지정 고용을 받아들일 의향도 있나?”
“예?”
팔락. 그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근사한 글씨체로 글씨를 빼곡히 적어 넣은 종이였다.
“나는 베르세르크를 찾기 위해 북쪽으로 향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길을 안내하고 도움을 줄 인력이 필요하다.”
인퀴지터는 그것을 얼떨결에 받아 보았다.
의뢰 목표는 베르세르크란 특정 인물을 찾거나, 해당 인물을 찾아갈 수 있을 만큼의 정보를 입수하는 것. 이때 찾아갈 수 있을 만큼의 정보인지는 의뢰자 본인이 판단함.
정해진 기한은 딱히 없음. 단, 의뢰 수주자의 이동 경로가 보편적인 형태에 심각하게 어긋나거나, 의뢰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사건이 생기면 의뢰는 중도에 종료될 수 있음.
보수는 동행 기간 내 무력 제공 및 협력.
각 항목에 대한 자잘한 조항들도 있지만, 요점만 축약하면 대충 그러한 의뢰서였다. 옆에서 고개를 들이민 아크메이지와 다니엘이 머리 위로 의문부호를 띄웠다.
“이건 왜……?”
“방금 말했을 텐데. 베르세르크를 찾으려면 북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협력자가 필요하다고.”
“협력자라면…….”
“내가 야영에 재능이 없다는 건 그대들도 알고 있지 않나?”
모험가의 한마디에 그들은 합죽이가 되었다. 사실, 모험가는 야영에 정말 재능이 없긴 했다……. 못 하는 것보다는 안 하는 것에 더 가까울지라도, 어쨌든.
“…그런 거라면 다른 모험가도 있을 텐데.”
“낯선 자와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번거롭고 성가신 행위지. 해서 경로가 일치하는 그대들에게 제안하는 것뿐이다. 그대들이라면 최소한 안심할 수 있으니까. 물론 거절하고 싶다면 거절해도 좋다.”
“거, 거절하려는 건 아닙니다!”
사탄 사냥에 그 힘을 빌릴 수 없다는 건 이미 정해진 일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힘이 무가치해지는가? 그건 절대 아니다. 기한이 한정되어 있대도 마찬가지다.
인퀴지터의 목소리가 빼액 올라갔다.
“하, 하지만, 부, 불편하실까 봐…….”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들이, 그녀가 이다지도 쌓은 업보가 많은데 그는 정말 괜찮은 걸까? 인퀴지터는 겁내며 물었고, 모험가는 말없이 펜을 내밀었다.
“결정해라. 거절하면 난 새로 사람을 구하러 가야 하니.”
“…감사합니다.”
서명할 수밖에 없는 계약이었다. 인퀴지터는 염치 불고하고 계약에 사인했다. 길드의 인은 이미 찍혀 있었기에 이 사인이야말로 마지막이었다.
“계약 성립이다. 잘 부탁하지.”
이것으로 그들은 서로를 향한 감정과 구두 약속에 매달린 어정쩡한 동행인 관계가 아니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정확한 조건과 협약으로 구축된 기간제 동료였다. 협상으로 이루어진 관계기에 온전히 동등한, 더는 한쪽의 아량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 동료.
“네……!
인퀴지터의 눈이 이슬과 함께 반짝였다.
“…자네는 별로 당황하지 않는군?”
협상이 이뤄진 이상, 어정쩡하게 굴 필요는 없다. 나는 데려온 프레드릭을 대열에 맞춰 세우고, 소성주에게 묵례했다. 베른슈타인을 손에 쥐고 있는 그는 내 묵례에 다소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아, 어제 만났을 때 저 의뢰서를 작성하고 있었거든요. 애초에 일부 조항은 내가 조언해 주기도 했고. 그래서 알았죠.”
“…그걸 왜 지금 말합니까요?! 나는……!”
“내가 너한테 말해 줄 이유 없잖아?”
“이, 이 인성 터진……!!”
그래도 베르세르크를 만난 후에는 다시 여기로 올 건데. 대삼림에 들르기 위해서라도, 여긴 거쳐야 할 곳이니까.
“약속은 지킨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떠나는 건 꼭 베르세르크에게 사죄하고 싶어서만이 아니다.
“그러니 그대도 약속을 지켜라.”
여기에 계속 남아 있으면 도시의 사람들은 나를 끝없이 의식할 터. 그건 변장이란 비밀을 숨기고 있는 내게도, 언젠가 이 도시에 ‘파우스트’로서 돌아와야 할 아이에게도 좋지 않다.
아무렴 하다못해 내가 도시를 지켜 낸 영웅로서 실컷 지내다, 파우스트가 깨어났을 때 영웅은 사실 파우스트였습니다! 하며 뜬금없이 정체 변신을 할 순 없지 않은가.
하니 내가 이 도시에서 지내더라도 뮌문트의 영웅만큼은 사라져야 한다. 돌아온 파우스트가 그 영웅 행세를 할 필요가 없도록, 반드시.
“…걱정 마시죠.”
물론 소성주라면 잘할 거라 생각한다. 지켜본바 절대로 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출발하겠습니다!”
아무튼 이제 진짜 가야 할 때다. 나는 인퀴지터의 신호에 따라 말에 올랐다. “신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주변에 있던 이들이 하나둘 배웅의 말을 던졌다.
“…잠깐, 저 사람이 왜 여기에.”
한데 배웅하는 사람 중에 어째 아는 얼굴이 껴 있다.
만하펠트에 있어야 할 발터 경이 왜 여기 있어?
“…무슨 문제라도?”
대열상 내 옆에 위치한 다니엘이 물었으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랴!”
와, 후드를 써서 진짜 진짜 다행이다. 나는 발터 경이 날 눈치 못 챘단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프레드릭에게 신호를 주었다.
들통나기 전에 빨리 도망가야 할 때였다.
* * *
“수리는 아직도인가?”
하얀 까마귀는 박살 난 마탑 일부를 보며 눈을 설핏 찡그렸다. 한 달이 다 되어 가도록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흔적이 거슬렸던 탓이다.
“죄, 죄송합니다. 자재를 구하기가 어려워져서.”
“쯧.”
동남쪽에선 뮌문트가, 서쪽은 그 자체로 개박살이 났으니 어쩔 수 없나. 안 그래도 그리다나 상단이 망하며 유통망이 흐트러진 상태인데…….
하얀 까마귀는 변명하는 마법사에게서 시선을 돌린 후, 아직도 십자가에 걸려 있는 이를 보았다. 돌로 얻어맞고 까마귀에 쪼여 먹힌 시체는 이쯤 되면 거의 뼈밖에 남아 있지 않다.
“저건 슬슬 버리는 게 좋겠네요.”
“예.”
진짜는 어차피 용액에 절여져 각종 실험에 동원되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의 분풀이용으로 내세운 가짜는 이제 내려도 될 것이다.
“바보 같은…….”
허가되지 않은 실험을 할 거면 걸리지나 말든가. 하다못해 인간을 납치해서 연구에 동원할 거면 적당히 주제를 알고 골라야 하는데, 그마저도 못 해서 이 꼴이 났다.
하얀 까마귀는 납치 피해자가 부숴 먹은 마탑의 일부를 보며 그가 쓰고 있는 부리 가면을 만졌다. 얹힌 손이 숨겨진 버튼을 꾹 누르는 순간, 부리 안에 넣어 둔 향이 코와 입으로 들어왔다. “하아.” 부리의 틈새 사이로 연기가 새어 나왔다.
“두 번째 감사는 언제랬습니까?”
“내일입니다.”
“좋아요, 언제나 말했지만, 걸리는 놈들은 감싸 주지 않습니다.”
이 탑에 거주하는 마법사들이 규범에 맞춰 깨끗하게 연구해 왔을 거라는 기대는 조금도 없다. 그러나 일 하나 깔끔하게 못 해서 걸릴 새끼들을 안고 갈 의향 또한 없다.
그는 한층 나른해진 목소리로 아랫사람들에게 당부한 후 외출한 이유를 행하고자 걸음을 내디뎠다. 부하 하나 동원하지 않는 나들이는 오랜만이었기에 마법사들의 시선이 중간중간 그를 향했다.
“그래… 나를 찾았다고?”
하지만 그마저도 마법 몇 번이면 충분히 떼어 낼 수 있으니. 하얀 까마귀는 부리 속 연기를 탐닉하며 으슥한 뒷골목의 주점으로 들어섰다.
“죄송합니다. 탑주님의 호출 번호를 알고 있는 자가 나타나서…….”
“내 호출 번호를?”
“예.”
“이상하네… 내 호출 번호를 알고 있는 녀석 중 이 시기에 나를 찾을 애들이 없는데.”
뭐, 말이 주점이지, 실상은 불법적인 일을 할 때 쓰는 공간이었다. 마탑주를 알아본 이가 그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여기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맨 안쪽의 방문을 열었을 때. 하얀 까마귀는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너였구나. 나를 찾은 게.”
그 눈 속에서는 흥미와 희열, 재미난 것을 찾았다는 쾌감이 마구 교차하는 중이다.
“안녕, 73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