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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341화 (341/389)

341화 내 이 손으로 (5)

따지고 보면, 대신전의 몰락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도시에 도착하기도 전에 위기를 인지한 자들이 있는 것만 봐도 그러했다.

대신전의 멸망은 돌발적인 재해가 아니라 예고된 재앙이고, 예정된 비극이었다.

“인퀴지터…….”

하므로 그들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 인퀴지터는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희망 같은 건 가지고 있지도 않은 참이었다. 대신전이 노려질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시점부터,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기대를 품는 대신 절망이 유예됐을 뿐이노라 사고했기 때문이다.

아무렴, 낙관만을 점치다 실망하는 것보단 부정적으로 판단하다 의외의 행운에 감사하는 것이 더 낫다. 그 희망의 가능성이 작으면 작을수록 더 그렇다.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최소한 최악의 경우에도 그럼 그렇지 하며 넘길 수 있다.

하니 결국 예상한 대로 현실이 흘러갔대도 괜찮다. 그저 예측했던 결과만이 왔을 뿐이다. 상실은 이미 각오한 바다……. 청년은 끝없이 자기 자신을 설득했고, 드디어 직감한 헤어짐 앞에 섰다.

“출발은 이틀 뒤로 하겠습니다.”

그 모든 준비에도 불구하고 가슴은 참으로 아팠다.

더 이상 용사도 아니게 됐겠다, 용사의 모든 의무를 도외시한 채 그곳으로 달려가면 안 되나 싶어질 만큼의 고통이었다.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인퀴지터. 좀 더 쉬어도…….”

“아크메이지님.”

하지만, 동시에 그러고 싶지 않다.

그래. 청년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저는 대신전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아직도 눈을 감고 떠올리면 기억나는 순간이 많다.

어린 그녀를 안아 주던 품, 조는 그녀를 안고 조곤조곤 책을 읽어 주던 목소리, 고된 훈련을 마치고 나면 몰래 군것질거리를 밀어 주던 손…….

“형제자매들의 사랑, 세상의 넓음, 악마의 악독함… 제게 예비된 사명 같은 것을.”

매양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만 있던 건 당연히 아니다. 용사란 직함은 그녀에게 권리보다 더 많은 의무를 부여하는 꼬리표였다.

“괴롭던 나날도 있었습니다. 왜 하필 나인가 싶던 생각도 종종 했습니다.”

다 큰 이단심문관들 옆에 서서 토할 때까지 몸을 몰아붙이고, 어린 형제자매들이 자유로이 놀 때 악마에 대해 공부하고, 신성력의 그릇을 키우기 위해 열이 오를 때까지 그것을 다루고…….

다시 하라고 하면 솔직히 다시 할 자신도 없다. 정말 해야 한다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어질 정도로.

“함에도 제가 그 고된 시간을 이겨 낸 이유는, 제가 무너지려 할 때마다 제 곁을 지켜 주고 지지해 주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그것은 너무 가혹했다고. 아무리 예정된 운명이 있다지만 아이가 견뎌 내기엔 혹독한 시간이었다고.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사랑이 얕아지는가? 그들이 그녀에게 엄격했다 해서 그녀를 위했던 마음까지 거짓이 되는가?

“저는 그들을 기억합니다.”

전투 훈련에서 실수한 그녀에게 회초리를 든 교관은 그녀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울었다. 지금은 회초리지만 실전에서 실수하면 그 앤 다치거나 죽겠지. 끝없이 합리화하면서도 끝끝내 스스로를 용서 못 하던 교관은 이전에도 수많은 제자를 악마에게 잃었던 사람이었다.

“그들이 가르쳤던 모든 것을 기억합니다.”

실습을 위해 나갔던 자리에서 그녀를 지키다 다친 이단심문관은 그녀에게 냉혹해질 것을 요구했다. 당신에겐 이런 일이 자주, 많이 벌어질 것이고 그때마다 우는 건 도리어 당신을 고통스럽게 할 겁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된 이단심문관은 동료의 은퇴를 열댓 번도 넘게 지켜본 베테랑이었다.

“제가 가장 동경하던 우상이 한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했던 과거였으므로.

그녀는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남긴 모든 것을 귀애했다. 그들의 상실이 그녀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을 만큼 소중했다.

“그렇기에 저는… 그만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서쪽으로 가지 않는다.

“전 이 연쇄의 고리를 끊을 겁니다. 저를 위해서, 후대의 사람들을 위해서, 그를 위해 노력했던 선대의 분들을 위해서.”

그들은,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그녀는 비통함에 매몰되는 것보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방법을 분명히 알고 있으니까.

“…….”

“애도할 시간은 이틀이면 충분합니다. 괜찮아지진 않겠지만, 나빠지지도 않을 겁니다. 약속드립니다.”

하니 각오를 다졌다면 남은 건 그저 믿음을 따라 직진하는 일뿐이다.

인퀴지터는 내린 결정을 재고하는 대신 그녀의 의지에 따라 행동에 나섰다. 이틀간 사라진 고향과 죽었을 이들을 애도하고, 그러면서도 떠날 채비를 꾸렸단 이야기다.

“너는 떠나도 좋다.”

“…가, 갑자기 무슨 말을.”

“네겐 이 여정을 함께할 이유가 없지 않나.”

그 과정에서 그녀는 그녀가 진작 해결했어야 할 일들을 처리했다.

“너는 그분을… 모험가를 따라 이 여정에 합류했지. 하지만 난 더 이상 그분을 이 여정에 끌어들이지 않을 거다. 이미 그분께선 내 어리광을 많이도 받아 주셨으니까 말이다. 하니 너도 더 이상 내 눈치를 보며 이곳에 머무를 필요 없다. 가라, 네가 바라는 곳으로.”

오래 묵었지만, 더는 외면해선 안 되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힘들어했잖아요. 그동안 혼자 해내는 것에 엄청 힘겨워했잖아요. 여기서 나까지 떠나면…….”

다만 인퀴지터는 횡설수설하듯 움츠린 채 말하는 이 앞에서 조용히 고민했다.

“물론 나는 나리처럼 커다란 힘도 없고 법사 나리처럼 똑똑하지도 못하니까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는 없겠지만…….”

아. 사람의 관계는 무엇으로 구성되는 걸까.

한 사람을 지탱하고 살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실질적 무력이 약하다 하여 네 존재 자체가 무가치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린 그녀는 잘 몰랐으나, 이 순간을 맞이한 그녀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아무렴 내가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도 못했을진대, 어떻게 네가 무의미한 사람이 되겠나?”

사람의 인연을 만드는 건, 한 사람의 인생을 유지시키는 근간은. 사실 그때까지 쌓아 온 삶 그 자체가 아닐까?

“네가 알려 주었기에 모든 죄가 악한 마음에서 태어나는 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네가 보여 준 모습이 있었기에 위기의 상황에서 감정을 배제한 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네가 함께했기에 다양한 위협을 마주하기 전 정보를 먼저 얻고 행동하는 요령을 얻었다.”

타인을 만나며 벌어지는 사건 사고와 그 과정에서 습득하는 모든 지식들이야말로 한 사람을 만들고 인연을 쌓도록 하는 게 아닐까?

“전부 네가 가르쳐 준 것들이다.”

“…그건, 그냥 당신 혼자서 깨달은 거잖아요.”

“아니, 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들이다. 나 혼자만 있었다면 영원히 몰랐을 테지.”

“그으건…….”

신은 어느 곳에도 존재한다. 인퀴지터는 경전에 적혀 있던 글귀를 곱씹었다. 그녀는 이제 그 글귀로부터 두 가지의 뜻을 읽을 수 있다.

“뺀질이.”

“…왜요.”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네가 계속 함께해 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

“하지만 네가 떠난다고 해서 붙잡지도 않을 거다. 네가 필요 없는 사람이라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난 이미 네게 너무 많은 걸 받았기 때문이다.”

“…….”

“네가 떠나도 네가 내게 준 가르침은 영원히 남아 있겠지. 대신전의 사제들에게 배운 지식들이 아직도 내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또한 그 문장이 두 개의 뜻으로 나뉜 시점부터, 그녀는 헤어짐이 더는 무섭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괜찮다. 나는 네가 없어도 네가 알려 준 것들을 나침반 삼아 나아갈 거다. 모험가께서 떠나며 생길 빈자리 역시 그분이 내게 지금껏 나누어 준 지혜와 온기로 채워 견뎌 낼 것이다.”

물론 난 자리가 괴롭고 사라진 온기가 서럽기는 하겠지. 자신의 실수를 돌아볼 때마다 느껴지는 고통도 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잃어버린 것도 살점이 저며진 것처럼 아플 거다.

“망종아.”

함에도 남아 있는 것들은 분명 있다. 상실조차 결국 그것의 흔적인 것처럼.

“나는 앞으로도 끝없이 선택의 때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어리석음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을 것이며, 무지로 인한 방황을 오래도록 이어 갈지도 모른다.”

문득, 인퀴지터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모험가를 뒤쫓고, 그와 대립하던 순간의 기억이었다.

“하나 괜찮다.”

그 끔찍한 처지 속에서도 그는 그녀를 위해 기회를 청했던가. 그러나 말이 기회를 청한 것이지, 정말 기회를 받은 건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 순간에도 나는 한때의 나를 지켜 주었던 당신들의 온기를 기억할 것이니.”

사죄할 기회,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 이 모든 걸 깨닫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

그녀가 저지른 짓에 비하면 과분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기억에 의지하여 나아갈 것이다. 후회가 겹겹이 쌓이고 절망이 내 목을 옥죄며 슬픔이 나의 발목을 붙든대도, 내가 나아갈 수 있는 곳까진 최대한 헤엄쳐 갈 것이다.”

하니 어쩔 수 있나? 가장 거대한 비극 앞에서도 그녀를 위하고 위했던 사람들이 이토록 많으니, 다시 일어서는 수밖에.

당신들을 경애하고 당신들의 부재에 비통해하며 당신들이 그렇게 내준 기회를 붙들고 미래를 향해 가는 수밖에…….

“그것이 내가 결정한 나의 미래다.”

청년은 그렇게 용사가 아닌 자신의 삶을 정했다. 엉망진창이되 누군가의 도움으로써 겨우 홀로 선 자신의 인생에 방향을 새겼다.

그러자 정말 서럽도록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정말 무너지면 어쩌려고요? 정말 이길 수 없는 게 찾아오면……!”

“상관없다.”

그녀는 더 이상 용사가 아니다.

“내가 실패한다고 해서 설마 세상이 망하겠나?”

결코 용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청년은 부서진 족쇄를 드넓은 세상에 던졌다. 그녀의 어깨에 올려져 있던 중압감이 비로소 지워졌다.

자유였다.

“…샌님.”

“나는 곧 모험가를 뵈러 갈 것이다.”

“……!”

또한 그 자유로 하여금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아마 용서받지는 못하겠지. 인연이 계속 이어지리란 기대도 버렸다. 그건 내 욕망이고 과한 바람임을 아니까.”

“…….”

“그래도 나는 그분을 뵙고 사과드리려 한다. 끝의 끝까지 어리석고 추잡한 존재로 남아 있기 싫으니까.”

“…….”

“너도 갈 건가?”

“…아뇨, 같이 가면… 각자의 진심이 제대로 전달 못 될 수 있으니까… 따로 갈게요.”

“그래.”

그녀는 그녀의 인생에 가장 큰 굴곡을 가져다주고 또 해결해 주었던 영웅을 만나러 갈 것이다.

당신의 배려로 성장한 지금마저 당신의 등에 업히려 들지 않기 위해.

* * *

“오셨습니까, 모험가.”

외출을 마치고 방에 돌아왔을까. 예상치 못한 방문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퀴지터.”

붉은 머리카락의 청년은 내 단어 선택을 두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싫지는 않으나 어색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이상한 기분입니다. 당신께서 저를 제대로 호칭하는 날이 있기를 소망했지만… 그런 날이 진짜로 올 줄이야.”

그렇지만 그 어색함은 눈에 띄게 당황하거나 이상하게 느끼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냥 말 그대로 어색해할 뿐이지.

하여 나는 그 사실에 안도했다. 내 태도 변화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눈치였다면 나는 좀 불안해졌을 것이다.

“이보단 머저리가 좋나?”

“으음… 고르기 어렵습니다.”

“…머저리라고 불리는 게 고민할 만한 사안인가?”

“아니, 멸칭으로 불리는 게 좋은 것이 아니라…….”

별개로 어제 봤을 때와 얼굴이 좀 달라진 것 같은데.

“…당신께서 그리 불러 주실 적이면, 마치 제가 세계의 명운을 짊어진 용사가 아니라 한낱 사제 나부랭이인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전 그게 좋았습니다.”

하긴 고향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셈이다. 얼굴이 반쪽이 돼도 이상하지 않을 게 없다. 나는 그렇게 나를 납득시켰다.

“…그랬나.”

“…그렇다고 지금이 싫은 건 아닙니다. 편한대로 불러 주십시오.”

잘되진 않았다. 무언가가, 아주 자그만 무언가가 마음 한편에 좁쌀처럼 걸렸다.

“…모험가, 당신에게 있어 저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뺨이 야위었는데 이상하게 안타깝지가 않아.

“…너 말인가?”

“그냥, 대충이라도 좋습니다. 부정적인 감상 평도 감내하겠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만 답해 주십시오.”

정이 떨어졌다기엔 글쎄. 나는 그녀의 처지를 분명 동정하고 가엽게 여기고 있다. 정이 떨어진 것 같진 않다.

단지 마른 뺨, 더는 동그랗지 않은 그 볼에 대해서만 안타까움이 들지 않는다. 마음 자체는 움직이는데, 그것의 색이 푸르지가 않았다.

“너는…….”

따지자면 이것은 뭉클함의 노란색.

“경험 부족으로 답답할 정도로 올곧지만 스스로의 단점을 인정할 줄 알고 끝없이 배우려 하는…….”

마치 첫 비행을 성공하여 날아가는 아기 새를 봤을 때와 같은 파스텔 톤의 찬란함.

“…다만 너무 무거운 사명을 짊어지고 있어 걱정되는, 한 명의 사람이지.”

“그렇군요.”

붉은 머리 청년이 일순 화사하게 웃었다. 단단한 뺨과 시원하게 휘는 눈매는 더 이상 청년이란 단어에 위화감을 없도록 만든다.

“저는 당신에게 그저 한 명의 사람이었군요.”

아, 그제야 깨달음이 찾아왔다.

“모험가님.”

넌, 뺨이 마른 게 아니라 젖살이 빠진 거였구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키만 다 자란 아이를 벗어나, 비로소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이구나.

“그간 진 목숨 빚도, 당신의 헌신으로 제가 겪지 않게 된 많은 불행과 비극도… 마지막으로 당신께서 베푼 많은 기회에 대해서도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는 꾸벅 숙여지는 허리를 가만 내려다보았다.

헤어지기 전만 해도 목을 덮지 못했던 머리카락은 이제 꽁지머리가 가능할 정도의 기장이 됐다. 그만큼 우리가 오래 떨어져 있었단 증거다.

“당신을 만나지 않은 채로 이 순간에 도달했다면, 저는 필히 이번 소식 앞에서 불신하고, 절망하고, 좌절하며 엉망인 모습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은 건 순전히 당신께서 주신 가르침 덕분이었고요.”

동시에 세월이란 것은 사람의 성장을 가져온다. 봉오리졌던 장미꽃이 개화를 준비했다.

“…난 네게 알려 준 것이 없다.”

“아니요, 당신께선 행동으로 제게 알려 주셨습니다. 비참한 절망에도 굴복하지 않는 법을, 거대한 고통의 굴레 속에서도 타인에게 손 뻗는 방법을, 체념과 포기 대신 마지막까지 용기 내는 방법을.”

극단적인 변화였고, 아주 당연한 흐름이었다. 아이를 어른으로 만드는 건 더 많은 시간이나, 그 시간은 밀도 높은 경험으로 대체될 수 있다.

“전부 당신이 기회를 베풀지 않았다면 제가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난 기회를 준 적 없다.”

“아니요, 많이 주셨습니다.”

아, 지독히도 섧은 찬란함이다.

“지금껏 제 아집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민폐를 인내해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당신이 감당할 필요도 없던 제 어리석음을 참아 주신 것도, 제가 당신께 지독한 고통이 되었음에도 끝까지 제게 손 뻗어 주신 것도 정말 감사합니다.”

왜 아이들은 상실로만 크는 거지?

“동시에 죄송합니다.”

아이의 성장을 끝까지 지켜볼 의지는 없었다. 아끼긴 하지만, 그 정도까지 헌신하기엔 나도 너무 힘이 든 상황이니까. 한 사람의 성장에 엄청난 품이 든다는 것도 알고.

“감사한 이유와 동일하게,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겪고, 일부와는 싸워도 보고 친해져도 보고, 친해졌다 한순간의 일로 어긋나도 보며 그렇게 크길 바랐지, 이렇게 거대한 걸 잃음으로써 성장하길 바라진 않았다.

“감히 용서를 바라진 않습니다. 당신께서 인연을 끝내자 하시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

“다만 모험가님, 당신께선 제 영웅이셨고 영원한 동경일 것이니.”

함에도 차마 동정할 수가 없다. 상실로써 어른이 된 아이의 눈이 너무 올곧고 단단해서. 이미 슬픔을 딛고 일어날 준비가 다 된 사람의 것이라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설령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일지라도, 저는 당신께 평생을 감사하고 송구해하며 당신이 남긴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나아가겠습니다.”

어떤 동정은 그 자체로 모욕이 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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