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내 이 손으로 (3)
“…그건 왜 묻지?”
다니엘은 순식간에 가라앉은 목소리를 두고 직감했다. 그는 더 이상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더 이상 용사의 동료로서 존재할 의지가 없는 듯했다.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을 뿐입니다. 거슬렸다면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까진 아니다.”
모험가는 담담한 어조로 고개를 저었으나, 다니엘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암, 죄송할 일까진 아니라는 게 기분 좋게 받아들일 질문이란 의미가 되는 건 또 아니지 않은가.
그들과 함께 하는 건, 나아가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행위 자체가 그에겐 지독하게 피곤한 일이 돼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고민 중이다.”
“그렇습니까.”
하나 여기에 무언가 말을 얹을 자격은 다니엘 자신에게 없으리라. 모험가가 소년과 그 사이의 일에 함부로 말 얹으려 하지 않은 것처럼.
“…무엇을 택하든, 그것이 경께 평온과 행복을 가져다주었으면 합니다.”
하므로 그는 결국 말을 아꼈다. 혼자 모든 걸 짊어져야 할 용사님이야 걱정은 되지만… 그가 덜어 낼 수 없는 고됨이라고 하여 멋대로 남에게 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나.
치기 어린 놈도 뭐… 그놈이 알아서 할 거다. 어차피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은 다 했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군.”
“그러실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묻고 싶던 건 이걸로 끝이다. 다니엘은 많이 쉬었다 생각하며 삽을 다시 붙들었다. 아직 묻을 유해는 많았다.
“잠깐, 잠깐 비켜 주십시오.”
한데 몇 개의 구덩이를 파냈을까. 새로운 구경꾼이 추가되었다. 회색 머리카락과 삼각형 모양의 귀를 가진 큐어티족 병사였다.
“이런… 이젠 병사들마저 경을 보러 오는군요.”
사람들이 이 자리에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야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다.
어제까지의 유해 처리장이라면 몰라, 도시를 구한 영웅이 봉사하고 있는 상황의 유해 처리장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좋은 까닭이다.
뭐 자세히 파고들면 유해 처리장이 관심 받는 게 아니라, 닷새 만에 외출한 영웅을 보고자 몰려온 것에 가까울 것이지만서도.
“…저 사람은.”
하여튼 그런 사유로 이곳에 사람이 오는 건 특이하지 않다. 병사라고 해서 영웅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을 것이므로, 그중 하나가 병사인 것도 이상하지 않다.
“아는 사람입니까?”
굳이 특별한 일이 있다면, 그건 그 구경꾼 중 하나를 모험가가 알아보는 일 정도가 될 뿐이다.
“그래.”
침잠한 표정의 모험가가 땅에 삽을 살짝 박았다. 콱. 그렇게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은데 삽의 넙데데한 부분이 대부분 틀어박혔다. 가공할 힘이었다.
“잠깐 다녀오겠다.”
“조심하십시오.”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영웅이 그쪽으로 다가가면 어떻게 될까 싶냐마는…….
모험가의 표정을 확인한 다니엘은 구태여 그 사실을 거론하지 않았다.
모험가가 어리석은 사람도 아닐뿐더러, 이만한 힘을 가진 사람인데 무슨 일이라도 있겠어. 전부 굳건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방관이었다.
“무슨 일 있으면 절 부르시는 것 잊지 마십시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약간의 보험은 들어 두었다. 모험가는 다 좋은데 사람이 너무 착했다. 그게 모든 문제였다.
* * *
“저는 서부 전선으로 가지 않겠습니다.”
마이스터는 붉은 머리카락의 청년이 갈라진 목으로 언어를 뱉는 꼴을 지켜보았다.
“인퀴지터……?”
“샌님.”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이야기인지 주변에 서 있던 두 사람이 당황해 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귀결될 결론일 뿐인데 왜 저리 당황하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더 크게 말해야 들릴걸.”
별도로 인퀴지터가 그들에게만 알릴 생각이 아니라면, 그녀는 더 크게 말할 필요가 있다. 마법의 경계선 바깥에 서 있는 이상, 이 정도 성량으로는 회의 참여자들에겐 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는 서부 전선으로 가지 않겠습니다.”
그 조언을 확인했는지, 인퀴지터는 아까보다 더 또렷하고 커다란 목소리로 고했다. 요 며칠 빛이 돌아오나 싶었던 녹색 눈은 또다시 바짝바짝 말라 가는 중이다.
─음?
─방금 누가 말한 것 같은데……?
─발언한 사람 있나?
하나 그 정도로도 끝끝내 말이 닿지 못했다. 결국 인퀴지터가 손을 들어 마법을 유지하고 있던 마법사의 양해를 구했다. 그건 어찌 보면 소성주를 향한 신호이기도 했다.
“들어오시지요.”
신호를 확인한 소성주가 눈치 좋게 옆으로 조금 물러나 주었다. 의자 주변에 그려진 원으로부터 신체가 반쯤 벗어나는 건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였다.
하기사, 상대방의 영역에 비춰질 그의 모습이 반쯤 잘리는 건 그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겠지. 적어도 그가 보는 건 아니니까.
─요, 용사님.
─신의 대리자께서…….
“여러분의 지원 여부와 별개로, 저는 서부 전선으로 가지 않습니다. 이제 와 서부로 가는 건 시간 낭비일 테니까요.”
또한 그 생각은 인퀴지터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쪽은 아예 고려조차 못 하는 쪽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마이스터는 의외로 옳은 판단에 재능이 있는 용사를 지켜보며 팔짱을 꼈다.
─어째서 그런 말씀을…….
“서부 전선의 붕괴는 거대한 재해임과 동시에 저 혼자만의 힘으론 해결할 수 없는 재난입니다. 또한 이곳과 서부와의 거리는 참으로 머니, 제가 그곳에 도달할 즈음이면 사태는 종결되거나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흐음. 그렇긴 하죠.
물론 중간중간 흥미롭다는 얼굴로 쪼개는 인간의 존재는 좀 불쾌했다. 그가 자신에게 잘못한 것이라곤 부하 새끼 관리 잘못한 것뿐이지만, 그렇다고 그냥 밉고 싫은 걸 어쩌겠나? 서로 경시하며 넘기는 수밖에는.
뭐어, 지금이야 그만 일방적으로 상대의 존재를 발견했을 뿐이니 실상 괄시하는 시선은 하나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하니 저는 서부 전선으로 가기보다, 북부 전선에 합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자 합니다.”
─왜 하필 저희죠?
“…아까 마탑주께서 말하셨잖습니까. 탐식이 죽음으로써 북쪽에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이 달라졌다고.”
─그렇지요.
“하면, 제가 합류했을 때 마왕성을 치는 것도 고려해 봄 직하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최대 효율, 최대 합리, 최대 이익을 전부 추구한 발언이 계속 이어졌다. 발언자가 인퀴지터만 아니었다면 전략가 기질을 가진 성주들은 옳다구나 말을 덧붙였을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받쳐 줘야 하겠지만, 불가능하진 않겠지요.
“하면 북쪽의 성주들이 참여한 토론에 전해 주십시오.”
아니, 발언자가 인퀴지터가 아니었더래도 말은 못 붙였으려나? 자칫하면, 용사에게 대신전을 버리라 요구하는 꼴이 됐을 테니까.
“저는 북쪽에 합류합니다.”
그러므로 발안자가 인퀴지터인 건 모두에게 행운이다.
“서쪽이 아닌 북쪽에.”
인퀴지터 본인에게만 빼고.
* * *
“…이야기 좀 하지.”
나는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던 병사의 양해를 구하고, 한 명을 빼 왔다. 그 또한 병사의 복장을 하고 있던 덕에 주변 그 누구도 그 광경을 수상쩍게 여기진 않았다.
대충 내가 병사에게 시킨 것이 하나 있겠거니 납득하는 얼굴들이다.
“여기면 되겠군.”
그거면 됐다. 나는 인적 드문 장소를 찾아 멈춰 섰다. 내 기감에도 사람 한 명 걸리지 않는 완벽한 구석 자리였다.
“저…….”
그쯤 되어 내게 끌려올 때까지 한마디 않던 사람도 겨우 입을 열었다.
“혹시…….”
하지만 쉽사리 말을 잇지는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가 아는 ‘마법사’와 ‘나’의 행적은 동일시하기엔 너무 형태가 달랐으니까.
“리챠 씨.”
그러나 나는 그 간극을 친히 메워 주기로 했다. 보통 상황이라면 그 혼자 의문을 품도록 방치했겠으나, 그의 이름 앞에 붙는 호칭을 알고 있어서 차마 그리 할 수 없었다.
“빌린 물건, 돌려드리겠습니다.”
리챠, 그는 파우스트의 외삼촌이다.
“…이건?”
나는 인벤토리에 있던 무언갈 선택해 꺼냈다. 마이스터에게 돌려받은 온갖 잡동사니가 잠깐 눈을 가렸으나, 묘한 기분 속에서도 원하는 물건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복주머니가 리챠 씨에게 도로 돌아갔다.
“…정말 마법사님이셨군요.”
“진즉에 돌려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기억해 주신 것만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가… 나는 후드를 벗을까 말까 고민한 끝에 벗지 않기를 택했다. 대신 그를 발견한 이래 줄곧 고뇌하던 한마디를 혀에 담았다.
“파우스트는 살아 있습니다.”
“……!?”
“다른 이들은 악마에게 살해당했지만… 파우스트만큼은 살아남았어요.”
“파, 파샤가.”
“저주의 여파로 지금 당장 만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재회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사람이 비밀을 지켜 줄까? 하지만 조카의 생존 소식을 알려 주지 않은 채 침묵하기는 싫다. 죽음은 괴로운 것이나 기약할 수 없는 그리움은 처절한 것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어떤 희망은 없느니만 못하다.
“다, 당신이 어떻게 그걸─”
“이제야 말씀드리는 점은 사과드립니다. 당신이 파우스트의 혈육이 맞는지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비밀을 엄격히 지킬 생각을 버리고, 한 사람의 양심에 맡기기로 했다. 그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모든 걸 걸어 보는 도박이었다.
“리챠 씨, 제 발언이 의심스러울 수 있음은 압니다. 하나 신께 맹세하건대 제 말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패배는 내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본 리챠 씨를 믿었다.
“그, 럼…….”
“다만… 제가 마법사와 동일 인물임은 비밀이 되어야 합니다. 파우스트는 악마에게 저주받으며 아주 복잡한 문제에 얽혀 버렸고, 저 역시 그 아이를 돕는 과정에서 처지가 굉장히… 애매해졌거든요. 마법사 때와 모습이 달라진 것도, 바깥에 내보이는 태도가 바뀐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면.”
“…그 사실이 밝혀지면 저는 곤란해집니다. 파우스트도 그렇게 되겠죠.”
“…협박입니까?”
“협박이 아니라, 협조를 구하는 것입니다. 리챠 씨가 저에 대한 사실을 말하고 다닌다 해서 제가 막을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
하지만 내가 위험을 감수한 것과 별개로, 잘 모르는 사람의 말을 단번에 믿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겠지.
나는 리챠 씨의 망설임을 이해했다. 그렇기에 채근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인내야말로 최선의 행동이었다.
“…들키면 곤란해질 사항임에도, 이걸 제게 다 말해 준 것은 어째서입니까?”
한참 만에 혼란을 수습한 리챠 씨가 내게 물었다. 별로 어려운 물음도 아니었다.
“타인에게서 조카를 단번에 떠올릴 정도로 그리워하고 계셨으니까요.”
애시당초, 리챠 씨가 조카를 그리워하지 않았다면 내가 혈육이란 이유로 진실을 들려주는 일 따윈 없었을 거다. 그런 사람에겐 위험을 감수할 가치조차 없으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리챠 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고작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 부모님도 내가 깨어날 거란 확신이 있다면 기다림이 훨 편하실 텐데. 이 사람이라고 뭐가 다를까.
나는 그가 민망하지 않도록 시선을 살짝 피해 주며, 만약을 대비한 질문을 던졌다.
“혹, 저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누군가에게 말하신 적이 있습니까?”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마법사님과 만나고 이곳까지 오면서 겪은 일이 대해서는 보고했지만… 마법사님과 영웅님을 두고 얻은 미심쩍음은 그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보고? 아, 그는 병사였지. 신원 없는 마법사─오해지만─였던 나를 위해서라면 활약상을 소상히 전달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을 테고.
하면 그 정돈 괜찮다. 어차피 그 마법사의 존재야 사건이 터지며 죽은 것으로 소성주가 조작해 준다 했으니까. 중요한 건 마법사와 나… 악마기사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거다.
“정말입니다. 증거도 없는 추측을 믿어 줄 사람이 있을 리 없거니와, 애초에 저도 긴가민가하던 부분이어서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예, 믿습니다. 그러니 변명은 괜찮습니다.”
“다만 당신을 감시하던 병사들이 어찌 됐을지 모르는데…….”
“아, 그들도 괜찮습니다. 그들은 소성주께서 입단속 해 주신다 약속하셨거든요.”
“소성주께서……?”
“예. 그분도 저에 대해 알고 계시거든요.”
자기 혼자만 알고 침묵해야 한다면 온갖 불안함이 들 것이나, 도시의 최고 권력자(예정) 또한 은폐에 손을 더하고 있다는 걸 알면 안심될 거다. 내 말을 신뢰하기도 좋을 테고.
나는 그 지점을 이용해 리챠 씨에게 내가 수상한 사람이 아니고, 그저 파우스트를 도우려는 사람일 뿐이며, 그 과정에서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렸을 뿐임을 피력했다.
“…그래서 그때 그리 물으셨던 건가.”
“……?”
“아닙니다. 당신의 말을 믿어도 될 것 같단 확신이 잠시 들었을 뿐입니다.”
한데 그것이 너무 잘 먹혔다. 리챠 씨의 표정이 훨 좋아졌다. 불신은 온전히 걷히고, ‘정말 파우스트가 살아 있구나’ 하는 마음만 가득 차기 시작한 거다.
“…파샤를 정말 다시 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이걸 파우스트가 보았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아직도 잠에 빠진 소년을 상기하며 후드의 끄트머리를 매만졌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리챠 씨께서 봤던 마법사와 저는 다른 사람인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
이제 돌아가서 마저 일만 하면 되겠지. 나는 미뤄 둔 숙제 중 하나를 끝낸 심정으로 후련하게 발길을 옮겼다. “아, 잠시만……!” 리챠 씨의 목소리가 그것을 잠시 멈춰 세우긴 했지만서도.
“무슨 문제라도?”
“…제가, 당신을 다시 뵐 수 있겠습니까?”
“…왜 저를 다시 보고자 하십니까?”
“당신께선 제 조카를 돕고 계시고, 또 제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시기도 합니다. 하니 인간 된 도리로 어찌 은혜를 갚지 않고 넘기겠습니까?”
“…그건.”
“부디, 제게 그 기회가 올 수 있다고 말해 주십시오.”
이번 건 답이 조금 까다롭다. 돌려서 말했을 뿐, 결국 내 향후 거취를 묻는 것과 다름이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결정을 못 하겠다. 이곳에 남는 것이 내겐 가장 안온하고 평안할 선택일 걸 앎에도 그렇다.
『감사합니다.』
인벤토리에 여즉 남아 있을 실팔찌의 무게가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