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화 그럴 수만 있다면 (21)
“오수에 튀겨도 모자랄 개새끼… 혀 대신 구더기를 매달고 사는 새끼… 자기 보신만 조지게 챙기고 남은 악의 구렁텅이에 처넣는 인간 말종 새끼… 애초에 인간도 아니지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안 되나 보다. 다니엘은 모든 일의 원흉이 또다시 잡히지 않고 도망가 버렸다는 아쉬움과 쏟아지는 모욕의 언어에 정신적 어질어질함을 느꼈다. 쏟아지는 말들이 태반이 밑바닥을 기며 사는, 소위 뒷골목의 사람들에게서나 가끔 듣던 문장들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경께선, 생각보다 말이 험하시군요…….”
아무리 악마라지만 단어 선택이 너무한 거 아니냐… 란 심정은 물론 아니다. 악마기사가 질타하는 자는 저보다 더한 경멸과 혐오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도리어 그래야 마땅할 존재니까.
다만 현기증이 나는 건 다른 부분이다. 하필 저 모든 말을 뱉는 사람이 마이스터가 아니라 악마기사라는 것.
그것이 다니엘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너무 편해진 말투 같은 건 인지되지도 못할 수준의 충격이었다.
“의외라면 의외긴 하지만, 그래도 저 정도면 그래도 순하지 않나?”
“…저게 말입니까?”
“부모님이랑 형제 자매까지 끌고 와서 욕하진 않잖아. 아니면 네 눈깔 뽑아서 으적으적 씹어 먹겠다거나 내장을 전부 긁어 뽑아서 던져 주겠다거나─”
“그만, 그만……!”
“내 알기로 이단심문관들이 이단 대할 때는 이보다 더한 짓도 한다는데, 왜 순진한 척이냐?”
그건… 그렇지만……! 다니엘은 차마 부정도 긍정도 못 한 채 이마를 짚었다. 그가 소속된 지부는 온건한 편이라 저런 짓을 용납하지 않지만, 세상엔 그렇지 않은 지부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인 탓이다.
“아무튼 악마는 못 하거나 안 나오려는가 본데… 하긴. 나와 봤자 처맞는 것밖에 더 없을 텐데 악마가 왜 나오겠냐.”
하여 다니엘이 그 사실에 끙끙대는 사이, 마이스터는 중얼중얼 음침하게 욕하는 녀석에게 무언가를 툭툭 내밀었다. 물병이었다.
“…왜.”
“물 없이 술만 처먹으면 내일 뒈진다, 멍청아.”
사실 수분 보충 타이밍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술을 더 꼬라박는 것보단 물을 쑤셔 넣는 게 나을 것이다.
마이스터는 그런 판단 끝에 물통을 건네고, 겸사겸사 음식 그릇도 밀어 주었다. 악마기사가… 아니, 아크메이지에게 전해 듣기로 ‘모험가’라 불러 달랬던가. 아무튼 모험가가 눈꺼풀을 두어 번 깜빡였다.
악마가 자리 잡은 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타고나길 그런 몸인 건지. 술이 들어갔음에도 그 뺨과 눈가엔 혈색이 하나 없다.
아니, 오히려 술을 마시기 전보다 더 창백해진 것 같기도 하고? 마이스터가 관찰의 시선을 보내는 동안, 보다 충동적이게 된 모험가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통을 비우고, 여러 가지 대화로 인해 방치되었던 안주에게도 드디어 손을 뻗은 거다.
“…그것보단 이걸 드시죠. 속도 안 좋으실 텐데.”
다만 다니엘은 모험가가 손 뻗던 뫼니에르를 치우고, 생선 무스를 올린 크래커를 대신 내밀었다. 취객이 가시를 바르는 것엔 한계가 있을 것이므로 꽤 괜찮은 판단이었다.
어차피 모험가는 취해서 뭘 권하든 아무 생각 없이 받아먹었다.
“거지 같은 악마 새끼, 좆같은 신전 놈들, 원수 같은 만두 놈들…….”
끊이지 않는 욕과 함께.
“…그, 아까부터 만두라 하시는 것들은 대체?”
“……?”
신세 한탄 자체야 그가 겪은 일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하다. 하나 중간중간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면 호기심 정도는 들고 마는지라.
다니엘이 묻고, 마이스터도 집중했다. 추정 가는 바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예상과 확신은 다른 법이었다.
“…만두는 만둔데.”
“아니, 그… 이름이 만두인 겁니까?”
“…아니?”
취한 사람은 탐문이 어렵다. 하여 그들은 돌려 돌려 물어본 끝에 그들이 데스브링거와 인퀴지터를 지칭하는 게 맞음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정을 줬던 모양이네? 애칭도 주고?”
그놈의 김치만두와 고기만두가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어감상 욕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설령 욕이라 할지라도, 발음할 때 부정적 감정을 내포하지 않은 걸 보면 말 그대로 애칭에 더 가까울 것이다.
마이스터는 그런 추론 끝에 꽤 의외로운 감정을 전달받았다. 난 귀찮아하는 줄 알았는데. 불가피한 감상이었다.
“…귀엽잖아.”
“…용사님이라면 몰라도, 그 시커먼 놈이 말입니까?”
“넌 그 다 큰 놈들이 귀엽냐? 취향 이상하네.”
“다 크긴 무슨. 하는 짓 보면 그냥 몸만 큰 애들인데…….”
한데 슬슬 취기가 올라오는지, 모험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또 꼬이기 시작했다. 뭐. 평상시에도 발음 하난 똑바른 타입이고, 술김에도 그러려 하는 녀석인지라 청해에 무지막지한 어려움이 있진 않았지만 슬슬 위기인 건 분명했다.
“가끔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지만, 애니까 어쩔 수 없지…….”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뭘?”
“…….”
“그, 말해 보십시오. 그런 건 대화를 해야 개선되지 않습니까.”
역시나, 독주 연속 원샷의 여파가 오는지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하다못해 리소토를 씹는 턱의 속도도 둔하기 짝이 없어, 거의 졸면서 먹는 듯했다.
“…됐어.”
“뭐가.”
“어차피 헤어지면 영원히 안 볼 얼굴인데…….”
“…예?”
“음.”
“거기까지 신경 써 줄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저리 취한 것에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그건 심리적 방벽이 와르르 무너졌단 점이겠지. 그마저도 완전히 뻗어 버리면 더는 들을 길이 없어지겠지만.
“그, 그 말은…….”
그러나 마이스터는 당장 이 정도로도 만족했다. 최악의 경우 아무것도 못 듣고 돌아갈 걸 각오하며 온 길인 까닭이다.
“졸려…….”
“자, 잠시만.”
그렇게 마이스터가 흡족해하는 사이, 다니엘은 기절하듯 쓰러지는 이를 다급히 붙잡았다. 하필 앉은 자리가 등받이 없는 스툴인지라, 잘못하면 바닥에 그대로 넘어질 수 있어서였다.
“아, 가 버렸나. 하긴, 술 안 마시던 놈이 독주를 연속으로 꼬라박았는데 안 가는 게 이상하긴 해.”
“알면 좀 잡아 주십쇼…….”
“충분해 보이는구만, 뭐.”
“아니… 하. 됐습니다.”
참고로 모험가의 체격은 미들족으로서도, 직업 특수성으로서도 유독 특출난 편이다. 180을 넘기며 미들족에선 최장신으로 취급받는 다니엘 그조차 모험가보단 반 뼘이 더 작으니 확실한 지점이었다.
함에도 마이스터는 그를 도우려 들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마이스터의 성격을 아는 다니엘도 곧내 지원을 포기했다. 사실, 도움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흣차.”
다급히 붙잡느라 자세가 이상해져서 도움을 청했을 뿐이지, 자세만 제대로 잡히면 혼자 부축하는 건 일도 아니다. 아무렴, 30kg 군장을 진 채 12시간도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설마 100kg 인간 하나를 어깨에 잠깐 못 걸치겠는가?
단지 처음 자세가 문제였을 뿐이다. 엉덩이는 의자에 엉거주춤 붙인 채 두 팔만 뻗어 사람을 받치던 그 자세가.
털썩.
그 오묘한 자세를 어떻게든 제대로 된 자세로 바꾼 다니엘은, 쓰러진 이를 침대로 옮겼다. 사람의 무게로 인해 침대가 한 번 출렁였다.
“혹시 죽은 건 아니지?”
“…아직 안 돌아가셨습니다.”
독주를 빠르게 마시다가 급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드물지언정 없진 않다. 다니엘은 그것을 감안해 고개의 각도와 몸의 방향을 조절했다. 혹시 모를 구토로 기도가 막히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경께서 방금 하신 말은 역시…….”
“걔네한테 좆같은 점이 있어서 손절 칠 각을 재고 있다, 겠지.”
“…그걸 알아들으셨으면서도 그리 태연하십니까?”
“……? 그럼 내가 여기서 펄펄 뛰리? 내가 왜?”
반면, 마이스터는 담배를 슬쩍 꺼냈다. 눈치 줄 사람이 없으니 피워야지. 양심 집 나간 생각이었으나, 각도로 인해 다니엘은 발견하지 못했다.
“당사자가 본인 의사에 따라 주변 관계 정리하겠다는데, 거기다 대고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 있나? 심지어 나랑 걔네 사이에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결정적으로 사람의 단점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걸 꼭 말해 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들은 경을 진심으로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진심으로 따른 결과가 이 꼴이잖아.”
술이랑 담배, 이것들이야말로 신의 품이지. 마이스터는 불경한 생각을 품은 채 연기를 뱉었다. “잠깐, 담배 피우십니까?” 냄새를 맡은 다니엘이 질색을 표했다.
“노력이 반드시 통하란 법은 없지.”
“…그렇지만.”
“그렇지만이고 하지만이고, 내버려 둬. 이건 세 사람의 일이니까. 너는 끼어들 자격이 없는 타인에 불과하고.”
“…….”
“거기에 세 사람의 관계에서 이놈은 일방적으로 감정을 받아 내는 쪽이야. 그런데 이렇게 개판인 상황에서 둘의 열정을 감당하는 게 어디 보통 일이냐? 감당하기 힘들면 그냥 연 끊는 게 맞아.”
하나 다니엘은 끝끝내 담배를 끄지 못했다. 끽연가의 말을 막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건 진실이었다.
“…한동안 힘겨운 날이 되시겠군요.”
그럼에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에 없진 않다. 외부에서 전해 온바, 대신전 근방 일대의 소식이 완전히 끊겨 버린 상태기에 수선함은 더했다.
“대신전이 정말 날아간 거라면, 그렇겠지.”
모두들 무소식이 희소식일 것이라며 어떻게든 좋게 생각하려 하고 있지만, 실상 폭풍 전야를 상상하는 자들이 더 많다. 그들이 그러하고, 용사가 그러한 것처럼.
“근데 그렇다고 얘가 모든 걸 감당할 이윤 없어.”
“…예. 그렇지요.”
하면 그 모든 걸 한꺼번에 짊어지게 될 용사는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견디게 될까. 다니엘은 어찌해 줄 수 없는 거대한 불행 앞에서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 * *
[드디어 깨어났구나, 형제여.]
목동은 익숙한 갈증과 공허함 속에서 눈을 떴다. 그의 곁에는 기억상 형제라 칭해지던 존재들이 몇 서 있다.
[신실한 아벨, 네가 무슨 실수를 저질러 벌을 받았는지는 묻지 않겠다. 하나 부디 빌건대, 다음엔 그러지 마라. 너의 목숨은 너만의 것이 아님을 알지 않느냐.]
[…압니다.]
하지만 형제들이 곁에 있다고 해서 공허함이 사라지진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외로움에서 기인된 감정이 아니었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다.
아벨의 숨이 희미하게 세상을 갈랐다. 영혼만 갈아 끼워졌을 뿐 연속되는 기억의 흔적은 그것을 지극히도 낯설고 또 낯익은 행위로 만들었다.
[하와.]
[응?]
[이번엔 몇 개의 목숨이 들어왔습니까?]
[다섯 개. 분노가 골라 오는 영혼의 질이 참 좋았는데, 아쉽게 됐지.]
[이번 대신전 사냥이 아니었다면 그 다섯마저 얻지 못했을 것이다. 형제여, 아껴 쓰도록 하라.]
[…그렇습니까.]
이름 없는 형제에게 나눠 준 목숨이 하나. 추가로 생긴 것이 다섯.
죽기는커녕 벌 하나 받지 않고 연장된 목숨에 아벨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처분될 것도 각오했거늘.]
[오, 형제여…….]
명령 없이 제멋대로 행동한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의 목숨은 전지한 하늘의 것이나, 그가 하늘을 위해 순교하고 공양된 횟수를 되짚는다면 이 한 번 정도는 그의 개인적 욕심을 위해서도 쓸 수 있지 않겠는가.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가여운 형제를 위해 쓴 한 번 정도는 정말 괜찮지 않겠는가.
[하늘께선 자비로우시니, 너를 용서하셨다. 하나 다음은 없겠지. 그것을 명심하라.]
물론 그의 하늘은 그의 개인적 욕망을 허용치 않으리라. 함에도 그는 죽을 각오로 그리했고, 뜻밖의 용서를 받았다.
아벨은 그것이 참 이상했다. 지금껏 탐닉해 온 지식을 총동원해도 그의 하늘이 부리는 변덕은 늘 이해 가지 않는다.
[…아담, 혹시 이름 없는 형제에게 검을 만들어 줄 때를 기억합니까?]
하나 이건 어찌 보면 인형에게, 이름 없는 형제에게 주어진 기회도 넘어가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름 없는 형제?]
[그런 게 있었나?]
[…인형 말입니다.]
[아, 아아아. 그 꼭두각시를 말하는가.]
그의 형제들도, 심지어 창조주께서도 제대로 보지 않는 피조물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살아갈 기회 정돈 주겠다는 뜻이 아닐까.
[하와는 아는가 보군.]
[왜, 인간의 도시 중 하나에 한동안 분란이 일지 않았었나. 이번에 탐식이 죽은 그곳.]
[음… 아, 이제 기억이 나는군. 꽤 이름 날린 인간 몇이 갑자기 죽었었지. 분노의 행위인지 아닌지는 끝내 밝히지 못했지만.]
[실패해서 써먹지도 못하는 것, 비수 삼아 하나 박아 두시겠노라 당시 하늘께서 천명하셨다. 어차피 나는 분노를 쫓기 위해 그곳을 향할 필요가 있었던 참이고. 해서 그것을 등에 태운 기억이 있다… 그것이 아직까지 살아 있을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군.]
[한데 아벨, 네가 갑자기 이 이야길 꺼낸 이유는 뭐지?]
[…별건 아닙니다. 그냥 그것이 살아는 있을까 궁금하여.]
[글쎄, 죽었지 않았겠나?]
[…하늘께서 그러셨습니까?]
[드높으신 하늘께서 어찌 그런 미물의 현황을 신경 쓰시겠나. 나마저도 잊고 있던 것을. 그저 탐식의 죽음을 말미암아 그것 또한 죽지 않았을까 예상하는 것뿐이다. 그 도시에 비수로서 존재했다면, 그것 또한 그 사건에 휘말렸을 테니.]
[그렇군요…….]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그는 영영 제물의 위를 버릴 수 없겠으나, 이름 없는 형제가 자유를 누리게 된다면 이런 위치조차도 제법 만족스러울 것 같으니까.
[그것의 행방은 아무도 모르는 거군요.]
아벨은 그런 생각과 함께 이름 없는 형제를 위한 기도를 조용히 외웠다. 부디 자유롭게 살기를. 닿지 않을 기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