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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319화 (319/389)

319화 그럴 수만 있다면 (5)

마이스터는 아크메이지의 어두운 안색을 힐끗 보았다가, 다니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진짜 위험한 수준이에요?”

슬쩍 묻는 말은 주어가 빠져도 쉬이 알아들을 수 있다. 제게 질문할 줄 몰랐다는 양 다니엘이 눈을 두어 번 껌뻑거렸다.

“…제가 어찌 그것을 멋대로 판단하겠습니까? 그렇지만 머뭇거리다 무언가를 놓치는 것이 현명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살짝 뒤로 빼는 듯하던 발언은 결국 경고성으로 끝났다. 그것의 의미를 모를 리 없는 마이스터가 눈을 가늘게 접었다.

“하긴. 그렇긴 하네요.”

뭐, 사실 헷갈릴 만한 일도 아니긴 했다. 당장 오늘 낮에만 해도 악마기사가 지껄인 발언이 있지 않던가.

“사람들 목숨이 걸려 있다곤 해도, 자살을 진심으로 시도해 본 시점에서 멀쩡한 상태일 수가 없긴 하지.”

“…예?”

“…지금 뭐라 그랬나?”

심지어 죽으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도 기억을 모두 되찾은 후에 알게 된 사항으로 추정된다. 그 전까진 여기서 죽으면 진짜 죽는 것으로 알고 있었단 소리다.

함에도 녀석은 최악의 수단을 미리 고안하다 못해 몸에 착용까지 하고 있었으니. 하물며 녀석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보거든, 필요가 생기면 녀석은 해당 행위를 다시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아무렴, 아직 생각이 없다는 게 영원히 안 한다는 말과 일치하진 않지 않은가?

보통 사람의 심리를 잘 모르는 그조차도 이게 보편적인 일이 아님은 안다. 즉, 그놈은 지금 멀쩡한 상태가 아니다.

“…자, 자, 자살?”

마이스터가 그렇게 생각을 이어 나가는 사이, 아크메이지는 차마 입에 담기도 끔찍한 단어를 두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예부터 악마기사가 자신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긴 했지만, 설마 스스로 시도하는 지경까지 갔을 줄은 몰랐던 탓이다. 그녀의 털이 바짝 섰다가 좌절한 사람의 고개처럼 추욱 늘어졌다.

“…내일 그와 대화를 나눠 봐야겠네.”

하나 그녀의 좌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먼저 가 보겠네.”

무슨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그녀의 눈에 빛이 맴돌며 힘이 들어갔다. 순식간에 떠나가는 아크메이지를 두고 남겨진 두 청년은 뒷목을 긁적였다.

“댁은 뭐 할 거예요?”

“…저 말입니까?”

“도와줄 마음이 있으니까 그런 말 꺼낸 거 아닌가?”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마이스터의 지적에 다니엘이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오래 그러진 않았다. 마이스터의 눈초리 앞에서 그는 알았다는 양 한숨부터 뱉었다.

“저희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불편해하는 형태입니다. 그런 마당에 내밀한 마음이 오고 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물러나 있겠다?”

“…제게 화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언제든 화내도 되노라 말을 남겨 두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 말을 따라 줄지는 의문이군요. 어떤 사람은 표출하는 것보다 인내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법이고, 그는 명백한 후자로 보였으니까요.”

다니엘의 말에 마이스터는 바로 수긍했다. 자기 죄도 아닌 걸 전부 안고 죽으려는 인간이 설마 전자일 리 없으므로, 당연한 납득이었다. 악마기사는 확신의 인내형 인간이다.

“그럼 더더욱 기다리면 안 되겠네.”

다만 악마기사의 성향이 그쪽인 이상 그들은 더욱 움직여야만 했다.

“절대 그쪽이 먼저 움직여 주진 않을 테니까.”

참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기는 인간이, 친한 사이도 아닌 그들에게 먼저 다가와 줄 리는 천지가 개벽한다 해도 없을 것이므로.

“…그렇겠지요. 하지만 억지로 다가가 봐야 역효과일 겁니다.”

“아, 그 정돈 알아요. 그런 놈들은 자기가 그은 선 넘는 걸 별로 안 좋아하지.”

“…의외군요. 모르실 줄 알았는데.”

“……?”

…이 새끼가?

마이스터는 순간 다니엘의 목울대를 후려칠까 말까 고민했다. 그러지 않은 건 충동이 이성을 이기려 하기 직전 주어진 질문 때문이었다.

“마이스터께선 왜 그를 챙기십니까?”

“…무슨 의미?”

“아니… 용사님이나 그 치기 어린 놈은 처음부터 그 사람을 따르는 게 티가 났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았잖습니까.”

“그러니까, 안 친해 보이는 놈 일에 열정적으로 나서는 게 신기하다?”

“…그렇게 받아들이신다면 할 말 없습니다만.”

기분이 좀 그렇긴 하지만, 저쪽 입장에서 못 물어볼 질문도 아니다. 마이스터는 고민 끝에 자신의 생각을 정제하여 단어로 표현했다.

“지금까지 안 친했다고 앞으로도 안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건 아니니까?”

“…예?”

“빡대가리만 가득한 세상에 그놈처럼 말 통하는 인간이 얼마나 된다고.”

“그런 이유입니까……?”

“아, 걔한테 들어야 할 것도 있고요.”

자신의 기준으로도 흥미로운 지식을 가진 사람은 몇 없다. 그런 와중에 말이 잘 통하여 같이 있을 때 불쾌하지 않는 인간은 더 없고.

심지어 여기에 그의 꿈을 비웃지 않고 되레 알아봐 준다는 조건까지 포함하면 그건 그놈이 유일했다.

“정리하자면, 뭐 그렇네요.”

그래서였다. 지금 나서는 건 그래서였다. 마이스터는 홀가분하게 자신의 행동 원리를 정의했다.

“그으렇군요…….”

“그 표정은 시비인가?”

“…아닙니다.”

모든 걸 들은 다니엘의 표정이 조금 떨떠름해졌다.

“아무튼 아직도 생각나는 방법 없어요?”

“예, 아쉽게도.”

“아… 귀찮네……. 그 새낀 왜 속에 담고만 사는 부류여서.”

그처럼 술 빨고 주먹으로 원수 놈 후려치면서 호쾌하게 살면 좀 좋아? 마이스터는 온갖 불만을 담아 투덜거렸다가, 순간 몸을 멈칫거렸다. 그의 머릿속엔 제법 그럴싸한 수단이 떠오른 상태다.

“…술.”

“……?”

“이거 그냥 술 먹이면 되는 거 아닌가?”

“예??”

이거다. 마이스터의 눈이 반짝 빛났다.

* * *

까악, 까아아악!

“……!”

시체를 찾아 모여든 새가 울고, 내 눈이 번쩍 뜨였다. 사륵.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보이는 건 햇빛을 모조리 차단하는 두꺼운 커튼과 조명 하나 없어 어둡기만 한 방이다.

[오, 그레트헨. 드디어 기상이야?]

나는 푹신푹신한 킹 사이즈 침대를 탈출하고자 몸을 몇 번 허우적거렸다. 뭔가 간지 나게 일어나고 싶어도 침대보가 푹푹 꺼지는 통에 거의 구르듯 해야 했다.

편하지 않은 건 아닌데, 탈출하기가 좀 어렵다.

‘얼마나 잔 거야…….’

몸이 날 것처럼 편한 건 또 처음인데. 나는 비척비척 침대를 나와, 빛이 얕게 스며드는 벽 쪽으로 다가갔다. 커튼과 커튼 사이로 흘러드는 빛은 어딘가 쨍한 구석이 있다.

[글쎄. 열네 시간?]

촤악!

분노가 시큰둥하게 내뱉는 말과 걷힌 커튼이 겹치며 내 눈을 찔렀다. 그림자를 거의 없도록 만드는 강한 햇살. 시계가 없어도 정오임을 알 수 있는 강도였다. 내 정신이 얼떨떨해졌다.

‘진짜?’

[진짜.]

와. 대삼림에서도 이렇게까지 오래 잔 적이 없는데.

나는 내 수면 시간에 감탄을 표하며 창문을 열었다. 덜컥, 덜컥. 귀한 유리창이 나무 틀을 따라 열리고 바깥 바람을 안으로 들였다. 탄내가 섞여서 정신을 확 깨우는 미적지근한 공기였다.

“이쪽으로 던져!”

“신호를 세면 태운다! 하나, 둘!”

…아. 그렇지. 사건은 끝나도 뒤처리는 남아 있지.

나는 공기에 섞여 있는 탄내를 두고 코를 움찔거렸다. 도시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이 냄새의 원인임은 머리 굴려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엄청 태우고 있네.”

[베헤모스는 식탐을 관장하는 존재인 동시에 역병을 몰고 다니는 배달부였으니까.]

역병. 나는 그 단어 하나로 사람들이 열심히 태우는 이유를 납득했다. 매캐한 연기는 남은 자들을 위한 필사의 발버둥이었다.

[가엽기도 하지… 항상 이런 냄새를 맡아 가며 태워야 한다니.]

이걸 계속 맡고 있기는 좀 그렇네. 나는 반 발자국 창가에서 물러나, 창틀에 손가락을 얹었다. 끼익. 내 손에 다시 창문이 닫혔다.

우습게도 바깥 공기보다 내부 공기가 더 좋은 듯했다.

‘그보다 파우스트, 대화는 잘 끝났냐.’

환기는 못 해도 낮은 맞이해야겠지. 나는 창문만 열지 않을 뿐, 방을 어둡게 만들던 커튼은 전부 쳐 냈다. 촤악촤악. 몇 개의 커튼이 걷히는 순간에도 내 물음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파우스트?’

[대화는 그럭저럭 잘 마무리됐고, 그 애송이는 지금 잠들어 있어. 아마 한동안 못 일어나겠지.]

그에 좀 당황했을까. 분노가 친절하게도 내 귀에 상황을 속삭여 주었다.

‘왜?’

당연하게도 그 말이 내 모든 의문을 잠재우진 못했다.

‘혹시 또 별 개수작을─’

[빌어먹을, 뭐만 하면 왜 내 탓으로 돌리는 거야? 내가 그렇게 의심돼, 그레첸?]

‘그럼, 너 같으면 널 믿겠냐?’

[…내가 한 거 아니야. 정말로.]

내가 마땅한 의심을 품고 있자니, 분노가 먼저 꼬리를 말았다. 강아지가 아니었으므로 별로 안타깝지는 않았다. 나는 실체화도 안 한 놈을 노려보듯 팔짱 꼈다.

‘그러면 걔는 갑자기 왜 자는데.’

[영혼이 깨져서 그래.]

‘…영혼이 깨졌다고?’

하나 이어지는 건 자세한 사정을 몰라도 불길하다는 것 하나만은 알 수 있는 문장이라. 나는 방금 꼈던 팔짱을 풀었다. 흥. 악마가 콧바람을 소리 나게 뱉었다.

[별건 아니야. 그냥… 그대를 불러올 때 제물이 조금 부족해서 귀퉁이 좀 떼 내고. 그대가 마력 부족으로 전전긍긍할 때 마력 빌려 올 거리가 필요해서 또 조금 잘라 내고. 대충 그러느라 영혼 일부가 상실된 것뿐이니까.]

‘뭐, 인마?’

그러니까, 영혼이 제물로 쓰였다? 나를 데려올 때는 그렇다 쳐도 내가 마력 부족으로 전전긍긍할 때?

‘마력 부족이란 건…….’

[왜, 그대 스킬 창에 있잖아. 생명력 전환, 그 스킬.]

‘…그건 생명력을 마력으로 교환하는 거 아니었어?’

[오, 그레트헨.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 생명력이라는 게 정말 실존하는 수치겠어? 날마다 달라지는 컨디션, 총체적으로 병마에 대항하는 건강, 육체가 가지고 있는 기본 능력. 그 모든 것은 절대로 수치화될 수 없어. 생명력이라는 이도 저도 아닌 단어로는 특히 그렇지.]

‘아니, 그럼 그건 왜 표기를…….’

[게임인 척해야 했으니까. 당연하잖아?]

나는 어이없어지려는 심정을 두고 잠시 이마를 잡았다. 어쩐지 HP가 보이는 거랑 적용되는 거랑 미묘하게 다르더라. 불굴의 의지가 발동된 걸 고려해도 HP가 왜 0이 안 되지 싶은 순간도 많았고.

‘…난 그게 다 네 탓인 줄 알았는데.’

[내가 힘쓴 게 없진 않지.]

‘됐고, 생명력 치환은 이제 봉인이야, 봉인. 앞으론 쓰나 봐라.’

[굳이? 위험하면 써야지.]

‘지랄하네. 네 영혼부터 내놓고 말해라, 개새끼야.’

나는 지 영혼 아니라고 막말하는 쓰레기에게 중지를 날려 준 후, 약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지금이라도 알아서 참 다행이긴 한데, 별개로 너무 예상 밖의 것이라 괜히 골 때리는 탓이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공연히 손으로 꾹꾹 눌렀다.

‘됐고, 영혼이 깨진 게 문제라면 왜 지금까진 멀쩡하게 대화가 가능했던 건데? 아니면 간밤에 영혼 깨질 일이 더 생겼어?’

그래도 들어야 할 이야기는 아직 남아 있다. 나는 생명력 치환의 문제점을 기억해 둔 후, 본 궤도로 말을 돌렸다. 네 영혼을 내놓으란 말에 휘파람만 불던 분노가 냉큼 대화에 응했다.

[으음, 그건 아니고… 이걸 뭐라 해야 하지. 영혼이 깨진 건 애송이의 잠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원인이 아니야. 인간의 표현으로 따지면 수명? 천수? 대충 그러한 것이 깨진 틈새로 누수된 게 진짜 원인이지.]

‘…뭐?’

[오, 그대가 오해할 것 같아서 미리 말하는 건데, 평상시엔 안 그래. 표면 의식을 차지했을 때만 그러는 거지.]

‘아니, 대체 왜…….’

[이것도 말하기가 좀 복잡한데… 대충 한 육체 안에 영혼이 셋이나 존재하니까 압력 같은 게 생겨서 새는 거야. 심상 안에 있을 땐 그래도 압력이 덜하니까 괜찮지만, 육체를 통제할 때는 또 다르거든. 영혼체를 바깥에 내보낼 때도 비슷하고.]

젠장, 뭐 하나 들어서 괜찮은 소식이 없군.

나는 단어 하나하나가 이어질 때마다 상승하는 혈압에 뒷목을 새로 주물렀다. 정말이지 잠에서 깨어날 때의 행복한 기분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영혼체를 바깥에 내보낸다는 건… 그거지? 너 튀어나오는 것처럼 하는 거.’

[그래.]

‘빌어먹을, 그 꼬맹이는 왜 말을 안 하고─’

와중에 파우스트가 내게 말하지 않은 이유도 짐작이 가서 더 답답하다. 하여간, 애가 잘못한 게 있어서 그런지 요령이란 걸 도우지 피우려 들질 않는다. 화병 나 죽겠다.

‘시발, 시발 진짜…….’

나는 참다 참다 못해 같은 욕을 두어 번, 어쩌면 너덧 번 반복했다. 가능하면 욕을 안 하며 살고 싶은데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좆같았다.

‘…그래서 걔는 언제까지 자는데.’

[모르지? 그치만 최소한 아마 오늘 안에는 못 일어날걸. 어제 누수된 수명이 못해도 한 달분은 될 테니까.]

‘…얼마나 대화를 길게 나눴길래.’

[그렇게 길진 않았어. 대충 2시간? 3시간?]

‘고작 그거 나누고 그만한 수명을 잃었다고?’

[그러니까 그 꼬맹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거겠지?]

‘…….’

정말로, 좆같았다.

기분이 깊은 수렁으로 곤두박질쳤다.

터벅터벅.

“…하.”

그러나 삶이란 건 무릇 내 기분에 맞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나는 복도에서 계속 서성거리는 기척을 두고 입술을 깨물었다가, 끝내 눈을 질끈 감았다.

“용건이 있다면 들어와라.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그래도 되겠나, 악마기사?”

“…그래.”

방문자는 아크메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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