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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318화 (318/389)

318화 그럴 수만 있다면 (4)

“아니, 이 미련곰탱이가. 또 기절할 때까지 힘을 썼습니까?”

누군가는 지친 몸을 누이고, 누군가는 살아만 있음에 그저 감사하는 그 시간.

악마기사의 소식을 전해 주고자 인퀴지터를 찾아갔던 데스브링거는 혀를 찰 만한 상황에 직면했다.

“기절은… 안 했다아…….”

“열 오르면서 머리통도 구워지셨습니까요, 샌님? 이게 반기절이지 뭔데요.”

망할 미련퉁이가 또 신성력 과다 사용으로 쓰러졌다.

“잘하는 짓입니다, 진짜.”

데스브링거는 열이 펄펄 오른 인퀴지터의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 주었다. 신성력을 과도하게 쓴 것이 원인인 열이라, 같은 신성력으로도 치료를 못 하기에 해 주는 조치였다.

이마에 갑자기 닿아 온 찬기에 인퀴지터가 ‘흥약’ 하고 이상한 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내가 지금 더 많은 사람을 살려야 나중에 악마기사를 비호할 때 사람들이 말을 들어 주지 않겠는가.”

“주민들보단 윗사람을 설득하는 게 더 효과적일 텐데요.”

“역시 그런가…….”

인퀴지터의 달뜬 뺨이 추욱 쳐졌다. 그러자 데스브링거의 눈동자가 몇 번 굴러가다가, 툭 하고 한마디를 뱉었다.

“뭐어. 여기 주교나 소성주 하는 걸 보면 사람 많이 살리는 게 설득 방법 같긴 하덥니다.”

베뮈르헨은 악마처단에 중점인 분위기라면 이쪽은 확실하게 인명 우선주의였다. 그걸 고려하면 인퀴지터의 무리는 미련할 수는 있어도 그른 선택은 아니리라.

그의 발언에 인퀴지터의 눈이 조금 커졌다.

“……! 그거 다행이군…….”

“그 대가로 당신 몸이 뒈져 가는 중인데 그걸 또 좋아합니까? 으이구… 진짜.”

데스브링거는 악마기사나 인퀴지터나 아주 자기 몸 가는 데 천재적이라며 투덜거렸다. 이 순간에도 그의 손은 새 수건을 찾아 인퀴지터의 목과 팔을 닦아 주고 있다.

“…뺀질이, 혹시 다니엘 이단심문관님을 보았나?”

그러다 잠깐. 데스브링거가 수건을 새로 빨아 쭉 짤 즈음, 인퀴지터가 슬쩍 질문을 던져 왔다. 말하기 난처한 건 아니나, 함부로 떠들긴 곤란한 주제였다.

“…그 양반이요? 봤죠.”

“그럼 그분이 혹시…….”

“나리랑 한판 했냐면 한참 전에 했어요.”

“헛.”

“그래도 걱정은 마십쇼. 괜찮게 끝난 것 같으니.”

“그, 그런가.”

물론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둘이 생사결을 하지 않았다 할 뿐, 헤어진 후 각자의 표정이 후련한 형태진 않았으니까.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데스브링거는 인퀴지터가 미처 전달받지 못한 진실과 자신이 느낀 찝찝함에 대해 토로했다.

그보다 사람 감정에 미숙한 사람이 인퀴지터이니 답 같은 건 아마 안 나오겠지만, 그래도 혼자 궁구하는 것보단 낫겠거니 하는 심정이었다.

“…그분께선 그런 사정이 있었나.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이신 건…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역시 그렇죠?”

“다만, 그분께서 지쳤다고 말하시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생각되진 않는다.”

하나 삶이란 보통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답이 나오는 법이니.

“악마기사께서 기존에 처한 처지도 썩 좋지는 못했지만… 그분께서 기억을 되찾은 것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

“그분은 여전히 악마를 몸에 품고 계시고, 그것을 제거할 방법 역시 마땅히 없다. 와중에 나는 심지어 그분께 무기를 겨누는 것으로 그분을 죽음의 위기까지 내몰았으니.”

“그건…….”

“나는 악마기사께서 내게 검을 겨눌 때의 참담함을 기억한다. 악마기사께서 직접 겨눈 것이 아니라 그 속의 악마가 한 짓임에도 그건 분명 상처였다. 한데 나는 악마의 수작이 아닌 나 스스로의 선택으로 그분께 적대하길 택했으니, 그건 그분께 어떤 심정을 안겨 드렸겠나?”

미숙하다는 게 멍청하다는 것은 아니다. 어쩔 땐 우직한 올곧음이야말로 정답을 거울처럼 비춰 낼 때도 있다.

“…악마기사께서 기억의 부재를 알아차렸음에도 우리를, 나를 믿지 못하고 말없이 떠나간 이유를 드디어 알 것 같다. 그분께선 결국 내가 이렇게 나올 걸 예상하셨던 거다. 내가 그분의 진의나 사정을 짐작하기보다 신의 말씀을 우선하려 들 것을, 그분의 혼란을 반드시 악마의 소행으로만 단정 지을 것을… 그분은 현명하게도 알아보셨던 거다. 나란 존재가 이다지도 어리석고 멍청함을… 도저히 신뢰할 만한 사람이 아님을 말이다.”

지금이 그랬다. 데스브링거는 인퀴지터의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놓친 게 무엇인지 알았다.

“어떻게 사과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이것이 사과로 될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는 그분께 이다지도 받은 은혜가 많은데 보은은커녕 지독한 상처만을…….”

“…그렇게 말하면 안 됐는데.”

“……?”

붙잡기 위해 썼던 얄팍한 수는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아니, 애초에 그를 붙들 자격이 있기는 했나?

드디어 실수를 알아차린 청년은 창백한 안색으로 덜덜 떨었다.

* * *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는 안 됩니다.”

한편, 신전도 마탑도 성도 아닌 장소.

남몰래 만들어진 그 장소에서 사제와 마탑의 인사 몇몇이 회동을 가졌다. 전부 악마기사의 처우를 두고 불만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는 너무 위험합니다! 제대로 된 대처가─!”

쾅!

“……!”

“무, 무슨.”

하나 그들이 제대로 된 이야기를 이어 가기도 전에 문이 거칠게 열렸다. 어쩌면 부서진 것일지도 몰랐다. 정상적으로 열리는 대신 앞으로 넘어진 문짝이 거친 소리와 함께 발판이 되었다.

“그를 용인하는 게 정 불안하면 영구 추적 마법을 다는 걸로 협의 보죠? 상시 감시가 가능하고 절대 혼자 못 푸는 걸로.”

“당신은……!”

그리고 그 발판 위로 누군가가 발을 당당히 내밀었다. 아크메이지를 꼬리처럼 달고 있는 마이스터였다.

“그 정도면 제법 타협 볼 만하지 않나?”

발길질 한 번으로 잠긴 문을 부순 이는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건들건들 들어왔다. 어찌나 당당한지, 일부는 그가 초대받은 사람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뭐, 정말 초대받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문을 부수고 들어오진 않았겠지만 말이다.

“추, 추적 마법이라니!”

어쨌거나 자신이 저지른 일에 언제나 당당한 이는 뻔뻔스럽게 고개를 기울였다. 뭐가 문제야? 다섯 글자가 그 모습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왜요? 그걸론 만족 안 됩니까? 죽여야 직성 풀려요?”

“그, 그 무슨…….”

“그거 아니면 이걸로 끝내요. 충분하잖아요.”

“…갑자기 들어오신 후 그리 말하시면, 저희로선 따라갈 방법이 없습니다만.”

그런 그를 두고, 마법사 하나가 겨우 침착하게 답했다. 그런가? 마이스터가 그제야 납득한 얼굴을 했다. 근데 이걸 왜 못 따라와? 완전한 납득은 아니었다.

“당신들이 겁내는 건 악마기사의 폭주와 그가 달아날 가능성 아닙니까? 하지만 악마기사는 더 이상 폭주할 일이 없다고 단언했고, 달아나는 건 추적 마법을 걸면 해결될 일이에요. 그러면 이제 끝 아닌가요?”

“…추적 마법이 폭주를 해결해 주진─”

“대신 대륙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죽일 수 있게 해 주겠죠. 저 무력을 한편으로 삼을 거면 이 정도는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그건─”

“왜요, 폭주가 그렇게 걱정돼요? 근데 진짜 걱정하는 거 맞아요?”

이어진 질답에도 비슷했다.

그는 상대가 무슨 발언을 할지 아는 사람처럼, 거기에 더해 멍청한 질문 따윈 듣고 싶지 않은 것처럼 말을 잘라먹었다. 문장을 뽑아내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남들은 마이스터가 했던 행위를 그대로 돌려줄 수도 없었다.

말을 끊어 먹는 것도 기술이었다.

“마침 잘됐습니다. 안 그래도 오는 내내 묻고 싶었거든요. 당신들 정말 폭주를 걱정하는 거 맞아요?”

“당연히 걱정─”

“진짜요? 근데 걱정한다면서 왜 상대를 궁지로 내몹니까? 쥐도 구석으로 내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거 모르나? 아니면 출렁거릴 정도로 비대해진 몸이 그렇게 자신만만해요? 쥐가 물어도 안 아플 걸 확실할 정도로?”

하나 마이스터의 입장에서 보건대 이 행위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당연했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근데 지금 도시 꼬라지만 봐도 견적 나오지 않습니까? 이 협상에서 진정한 갑이 누군지, 정말 당신들 앞에 있는 게 쥐이긴 한지 말이에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참았던 건 순전히 악마기사 때문이었다. 변호인을 구하기는커녕 자기변호도 안 하던 피고인 때문에. 그리고 피고인이 가지고 있던 유일한 문제점(폭주) 때문에 함부로 발언하기가 뭐했단 말이다.

“갑이라니…….”

“협조적으로 나온다고 해서 다 을인 건 아니죠.”

하나 지금에 이르러, 가장 걸림돌이었던 난제(폭주)는 사라지고 피고인의 의지도 개선되었다.

즉, 마이스터는 이제 머저리들에게 깨달음만 주기만 하면 된다는 거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제일 사랑하는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고!

“일단 악마기사의 지난 행적부터 따져 볼까요? 그 자식이 잡은 게… 대악마 둘, 아니 이젠 셋인가?”

“태곳적 짐승까지 더하면 넷일세.”

“그렇다네요. 와. 신전은 그간 단 하나도 해치우질 못했는데 이놈은 지난 일 년간 혼자서 싹 잡아먹었어요?”

하니 주저할 이유 있나? 마이스터는 신나서 진실이란 패를 꺼내 들었다. 주교 바로 아랫급 사제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으나 별로 알 바 아니었다.

그 새끼가 주교 바로 아랫급이라면 그는 세상에 몇 없는 대명장이고, 그의 뒤에 있는 사람은 바로 아크메이지였다.

“각설하고, 해당 전적을 고려했을 때 악마기사가 과연 힘이 없어서 신전을 피해 다니는 걸까요? 아니면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서 설설 기는 걸까요?”

더불어, 신전의 사람은 애초에 설득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무렴, 논리를 교리로 받는 새끼들인데 설득이고 뭐고 되겠는가?

저 새끼들이 경전 뽑아 든 채 귀 막고 눈 닫은 채 ‘안 들어, 안 들어.’를 시전하면 답답해지는 건 오직 그다. 그러니 그런 꼴을 볼 바에야 차라리 처음부터 포기하고 말겠다.

마이스터는 사제들을 모조리 버리고, 이 자리에 있는 마법사들에게만 하나하나 시선을 주었다.

“입에 바느질했어요? 아니면 연구하는 데 지능 다 썼어요? 그게 아니면 어서 말해 보시죠? 내가 질문했잖아요.”

뭐… 설득한다고 했지 호의적으로 굴겠다곤 안 했으므로 아무튼 시선을 주었다.

뒤에서 옳은 말이 나올 때마다 고개를 주억이던 아크메이지가 깜짝 놀라 마이스터를 보았다.

“마법사면 마법사답게 논리적으로 어서 답변해 봐요. 저 인간이 왜 신전을 피해 다녔는지, 죽일 힘은 충분하고 상대도 자기를 죽이려 드는 상황인데 왜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며 싸움 자체를 회피하는지 어서 설명해 보라고요.”

분명 착한 심문관 나쁜 심문관 전략으로 나가자고 하지 않았나? 아니, 그 전략 때문에 일부러 저러는 건가? 근데 아무리 봐도 그냥 성질 그대로 내보이는 것 같은데?

타이밍에 맞춰 끼어들려던 아크메이지가 혼란에 빠졌다.

“…저희가 저희의 입장에서 어떤 답을 내놓는들, 그건 논리적인 타당성을 지니지 않을 것 같군요.”

그사이, 맨 처음 마이스터에게 침착히 대응해 냈던 마법사가 발언했다. 그의 표정은 처음보다 한결 풀어진 상태다. 갑작스러운 침입에 대한 불쾌함도, 악마기사를 향한 적대감도 누그러져 보이지 않는다.

“하니 대명장님, 여쭙겠습니다. 대명장님께선 이 모순된 조건을 합당하게 만드는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그러자 마이스터도 태도를 조금 달리했다.

조금만 더 멍청한 소리를 지껄이면 망치를 가져와 아가리를 날려 주마. 그런 의지가 팽배했던 눈이 ‘어쭈. 참아 준다.’로 변했다.

“멀리 갈 것 있나요? 저 새끼가 그냥 호구 새끼라서 그런 건데.”

“…그건.”

“증거가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고요? 글쎄요, 증거라면 이 정황 자체가 증거지 않나요?”

그쯤 되어, 아크메이지도 자신이 나설 순간을 자각했다. 마이스터에 비하면 백 배는 온화한 눈이 앞으로 나섰다.

“…잠적해서 9년만 채우면 되는, 구태여 이런 거래를 청함으로써 감시당할 걸 자처할 필요 없는 이가 그럼에도 거래를 청하는 것에는 긴 수사가 필요 없지요.”

바다처럼 관대한 선의, 눈부시도록 올곧은 품성, 보는 이가 더 안타까워질 만큼 우직한 도덕.

사제에게도 함부로 쓰지 못하는 찬사에, 사제가 미간을 흐트렸다.

“대현자시여, 확신하실 수 있습니까?”

“그럼 달리 묻겠습니다, 사제님. 신전은 잠적한 악마기사를 잡을 수 있습니까? 지난 몇 주간 그의 꼬리 하나 못 잡은 걸로 아는데, 실로 그러실 수 있으십니까?”

또한, 마이스터는 그 사제보다 미간을 더 찌푸렸다. 지금 아크메이지가 나설 차례고 뭐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돌다리를 두드려 보는 게 너무 답답해서 참기 힘들었다.

“그냥 저쪽에서 좋게 좋게 나올 때 응 하고 넘어가죠?”

마이스터는 목끝까지 차오른 욕을 삼키곤, 멸시와 경멸의 눈빛을 장착한 채 팔장을 꼈다. 혹시라도 저 어리석음에 질려, 턱주가리에 주먹을 꽃아 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지금 대신전에 문제 생겼을 확률이 높은데, 여기서 저 미친 무력까지 적으로 돌리지 말고?”

그렇지만 팔을 봉했다고 해서 눈빛으로 흘러나오는 흉흉함까진 봉인되지 않았으니.

“…악마기사가 고의로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저희 지부는 그의 손을 들겠습니다.”

한참 뒤, 기어이 백기가 올라왔다.

말로 설득된 것인지, 현실에 넘어간 것인지, 혹은 주먹을 피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일단 하나의 고비는 넘긴 순간이었다.

“머리에 뇌가 아니라 돌멩이를 넣어 놓고 다니나. 설득 개 오래 걸리네.”

마이스터는 박살 난 문짝을 도로 밟고 나오며 투덜거렸다.

“…뒷사람들이 듣고 있네만.”

그 당당함에 골치가 아파지는 건 아크메이지였다. 그녀는 뒷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힐끗 확인하며─시선을 죄다 피하고 있었다─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자네 덕분에 일이 편해졌네. 고맙네.”

“그 새끼가 튀면 저도 곤란해지니까 도왔을 뿐이에요. 그러니 고마워 마세요.”

악마기사가 도망가는데 어째서 마이스터의 곤란함과 직결되는진 모르겠으나, 아크메이지는 대충 넘겼다. 그냥 도와주기는 부끄러워서 또 독하게 말하나 보지. 어떤 젊은이들의 업보가 이뤄 낸 납득이었다.

“다니엘, 자네도 고맙네.”

대신 그녀는 다른 이에게도 감사를 전달했다.

“…별일 아니었습니다.”

“자네가 아니었다면 우린 이 회동의 존재를 몰랐을 테고, 나중에 문제로 불거졌을지도 모르는데? 겸손도 과하면 독일세.”

지금 한 말은 실로 진실이었다. 다니엘 이단심문관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이 회동의 유무조차 모르고 넘어갔을 터였다.

“…그들이 저를 끌어들이고자 알려 줬기에 알아낸 것이지, 제가 특별히 한 건 없습니다.”

“하나 그걸 거절하고 우리에게 말해 준 것은 공으로 따져 볼 일이 아닌가.”

물론 그녀가 정말 감사한 건, 이걸 말해 준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다니엘이란 점이었다.

암, 다니엘과 악마기사 사이의 꼬인 관계를 그녀가 모르지 않는데 어찌 별것 아닌 걸로 치부할 수 있겠는가? 무시할 수도 있던 일을 굳이 말해 주기까지 얼마나 큰 결심이 있었을지 아는데, 어떻게 큰일이 아니라 여기겠어.

“…그를 용서한 건가?”

별개로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다니엘과 악마기사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눴던 것일까? 무슨 대화를 나눴기에 다니엘이 이렇게나 태도를 달리한 것일까.

“무례였다면 답하지 않아도 좋네. 함부로 물어서 미안하네.”

그녀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가, 굳은 표정을 보고 바로 철회했다. 내가 또 실수했군. 그녀의 머릿속에서 정해진 것처럼 이어 떠오르는 생각은 그런 것이다.

“…무례까진 아닙니다. 다만 조금 복잡할 뿐입니다.”

“그런가……?”

아크메이지도 이야기는 대강 들었다. 그러니까 악마기사가 기억을 잃었다가 되찾았다는 것, 그가 그들에게 사과하기 위해 남았다는 것, 다니엘과는 이미 충돌했다는 것. 대충 그 정도만.

“…일단, 용서하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그를 탓하지도 않습니다. 사과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관련도 없는 남에게 화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나 다니엘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확연하게 닿아 오는 것이 있다.

그들은 정말로 악마기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는 것, 악마기사가 짊어지고 있던 짐은 그들이 가늠하던 것보다 더 거대했다는 것, 그들의 관계는 정말 꼬일 대로 꼬여 버렸다는 것…….

“당연히 그래야지. 죄 없는 사람한테 화내서 뭐 해?”

“…예. 저도 압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아크메이지는 다니엘과 대명장이 나누는 대화를 보며 속 어딘가가 복잡해졌다. 그녀가 악마기사를 만나러 가는 대신 이곳에 오기로 결정할 때와 비슷했다.

“아크메이지님.”

“…왜 그러나?”

“제가 할 말은 아닙니다만…….”

지금 악마기사를 만나 보았자 할 수 있는 건 없다. 거기에 악마기사는 바로 떠나지 않을 것이라 했으니, 만남이 좀 늦어져도 될 것이다. 차라리 이곳에 남아 그녀의 공을 높이는 것이 후일 악마기사를 변호할 때 도움이 될 거란 거다.

그러니, 그러니… 나중에 보자. 악마기사가 당장 쉴 수 있게 해 주자. 어차피 그녀가 악마기사와 마주쳤을 때 내놓을 수 있는 말은 몇 가지 되지도 않을 테니.

“…그 사람은 지금 도움이 필요해 보입니다.”

하나 그 모든 합리화도 결국 요약하면 한마디로 매듭지어진다.

그녀는 악마기사를 다시 마주치는 것이 두렵다.

“용사님이나… 그 치기 어린 친구로는 안 됩니다.”

왜냐면, 또 실수할 것 같았으니까.

젊은이들이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그녀가 끼어들어 봤자 또 그르치기만 할 것 같았으니까.

“그 두 사람은 너무 어리고, 그를 너무 강인한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큽니다.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인지하고 있지만, 그로 하여금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진 않단 말입니다.”

하지만 젊은 이단심문관은 그녀의 두려움을 알아본 것처럼 말을 이었다.

“하나 아크메이지님은 아시지 않습니까. 세상에 무너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요.”

“…그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인가?”

“그저 추측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가능성이 없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녀를 향한 종용이었다.

“저조차 원수와의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었는데, 자신을 파멸로 밀어 넣은 자와 공존하고 있는 그는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하물며 제겐 의지할 혈육이라도 있지, 강제로 그 몸에 끌려온 그에겐 그 무엇 하나 없을 텐데.”

그 두려움조차 딛고 일어나라는 종용.

아크메이지의 주먹이 오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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