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312화 (312/389)

312화 전해 줘 (6)

다니엘은, 대악마를 상대하느라 신성력의 대부분을 소모했을 것임에도 돌아와 의무를 다하는 용사 앞에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녀가 불편하다거나 열등감을 느껴서는 물론 아니었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난국을 극복하는 용사는 굳이 따지면 감명받거나 감사해야 할 존재지, 질투나 시기 따위를 보낼 대상이 아니었다.

“성주 측에서 정화 영역 확장이 가능하냐 묻는데, 어찌 답할까요?”

“저는 괜찮습니다만… 신전 쪽은 어떻습니까? 여력이 됩니까?”

“대리자께서 당장 급한 부분을 처리해 주신 덕에…….”

다만 그를 초조하게 만드는 건 다른 부분이었다. 예컨대 이곳에 오기 전 용사가 들렀을 어느 장소라거나 용사가 그곳에서 손대었을 누군가 같은 것 말이다.

“사제님, 절 보내 주십시오. 가족들이, 제 자식들이 아직 저 바깥에……!”

“안 됩니다. 이곳을 나가시면……!”

“놔주세요! 놔주십시오, 사제님!!”

“누가 이분 좀……!”

“잠시만, 진정하시지요.”

사랑하지 않는, 굳이 따지자면 싫어하는 것에 가까운 상대에게 주목하느라 제 할 일을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그렇기에 다니엘은 자신이 맡은 임무를 따라 난동 부리는 주민을 제압했다.

당연하게도 거칠게 대하지는 않았다. 급박한 상황에 가족과 헤어진, 그리하여 흥분했을 뿐인 사람은 보통의 범죄자와 결이 많이 달랐다.

“가족분들은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이곳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형제님이 바깥으로 나가면 가족분들이 도리어 더 위험해집니다.”

“사제님…….”

그는 이단심문관 증표를 내보임으로써 주민의 신뢰를 확보하고, 담담한 음성으로 그의 흥분도를 낮췄다.

“가족분들이 거주하거나 있을 법한 위치가 어디인지 말해 주시겠습니까?”

“그, 상점가에서 가게를 하고 있어서… 아마 거기에…….”

“확인했습니다. 해당 구역에 제가 직접 가 보겠습니다.”

더불어 길진 않으나 짧지도 않은 기간 동안 이단심문관 일을 하며 쌓여 온 관록은 그에게 필요한, 누군가에겐 노련해 보이는 대화를 이끌어 냈으니.

젊은 얼굴을 두고 긴가민가하던 주민이 기어이 넘어왔다.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사제님…….”

“예, 반드시 모셔오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이곳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이렇게 말해 놓고 가족을 구하지 못하면 모든 원망은 그에게 돌아오겠지만… 그건 모든 이단심문관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다니엘은 주민을 마지막으로 다독인 후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병사나 사제들이 정화된 영역의 바깥으로 가기 전 숨이라도 돌리라 만들어 둔 휴식 구역이었다.

“고생했고, 잠시 쉬고 있도록. 그리고 너희! 바로 출발해!”

“대장님! 5번 거리에서 분쟁이 일었답니다!”

“이런 썅……! 지금 힘 남는 놈!”

물론 마냥 휴식만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이곳은 인력을 교대하는 장이자, 갑작스러운 변수가 생기면 대처할 사람을 마구 뽑아 가는 대기소이기도 했다.

이단심문관, 사제, 병사, 자원병, 하다못해 마법사나 기사까지. 출신과 직업에 상관없이 그때마다 대충 필요할 것 같은 인력들이 불려 나갔다.

“악마와 싸우며 죽을 각오로 왔건만, 정작 싸워야 할 대상은 주민과 역병들이라니. 기분이 참 묘합니다.”

그러다 막 돌아온 기사 한 명이 그의 곁에 앉았다. 다니엘은 의자에 앉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아무튼 옆자리였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해서 다니엘은 이단심문관들 특유의 엄숙하고 음울한 낯빛으로 기사를 힐끗 돌아보았다. 만하펠트 출신의 지원 기사는 나이가 제법 지긋하여 괜히 돌아가신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다니엘은 울렁거리는 속을 연기 탓으로 치부하며 눈을 무겁게 감았다.

“악마와 싸운다는 것은 악마 그 자체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남긴 잔재와 다투는 것도 포함되는 것이니까요.”

“하긴,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곤 다시 눈을 떠 자신의 장비를 점검했다. 주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갈 채비를 해야 하는 까닭이다.

다만 임무 수행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주민과 대화를 나눈 것이라, 현 상태는 썩 좋지 않다. 지급받은 물도 거의 다 떨어졌고, 시체를 태우는 과정에서 난 연기를 흡입하는 바람에 속도 메스껍다. 체력과 허기짐은 말할 것도 없는 기본 증상이었다.

“…아직 젊어 보이시는데, 이단심문관님은 이런 상황이 익숙해 보이시는군요.”

하나 심문관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상황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최악의 몸 상태로 타인의 감정을 받아 주는 것도, 그들을 위해 억지로 움직이는 일도, 하다못해 심문관 본인이 가족을 잃은 채 악마를 쫓는 일도.

“그래 보인다면 다행입니다. 제가 제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의미니까요.”

또는 원수로 추정되는 자에게 복수하기는커녕 그 기회조차 빼앗기는 것조차도, 심문관으로서는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다.

“오, 이런. 모욕의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사과드리지요.”

“모욕이라 생각하진 않았습니다만, 받아 드리겠습니다.”

하나 아주 가끔, 보다 정확히는 바로 지금.

다니엘은 그 사실이 참 힘겹다고 생각했다. 그가 이단심문관이기 이전에 한 명의 사람이라서, 완벽한 신의 종이 되지 못한 나약한 인간이라서 더욱 그랬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부디 신께서 가호하시길.”

괴롭다. 정말로 괴롭다.

원수의 죽음에 그 어떠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도, 애시당초 그 존재가 자신의 원수인지 아닌지 확실한 바가 없다는 것도.

차라리 상대가 온전한 악마이고 명백한 살해자라면 앞으로의 피해만큼은 없겠거니 기뻐라도 할 텐데.

“저, 다음으론 어딜 가면 되겠습니까?”

다니엘은 침묵한 괴수의 거체와 성벽 위에서 울려 퍼지던 누군가를 향한 칭송을 떠올렸다. 그를 좀 더 갑갑하게 만들고 그의 울분을 좀 더 달구는 그 외침들을 되새김질했다.

그의 원수는, 아마도 원수일 그 자는 빌어먹을 정도로 영웅적이라서 마음 편히 원망하기도 어려웠다.

“그, 괜찮으시겠습니까? 돌아오신 지 얼마 안 되신 걸로 기억하는데…….”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원망 해소도 속 시원함도 결국 못 느낄 거라면. 차라리 생각이란 걸 못 할 만큼 혹독하게 움직이자. 이 괴로움을 이겨 낼 자신이 없으니 외면이라도 해 가며 뒤로 미루자.

다니엘은 끝내 그런 결정을 내렸다. 인력을 조율하던 지휘 계급의 병사가 당혹스러워했으나 배려할 여유는 그에게 없었다. 다니엘은 몇 번 고집을 부림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 냈다.

“어, 어?!”

“저, 저거 봐!”

다만 그 혹사와 과로의 끝에도 그가 원하는 구원은 없었다.

“…살아 있었어.”

아니, 아니다. 그가 원하지 않았을 뿐 어떤 시각에서 그건 구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살아 있었어.”

다니엘은 요동치는 마기 앞에서, 그가 몇 번이고 생각했던 대상이 생존해 있다는 소식 앞에서 울듯 웃었다. 그 누구도 공감할 수 없고, 말로도 설명되지 않을 감정은 그의 가슴속에서 휘몰아치며 지독하리만치 질척인다.

“살아 있었다고…….”

안도라고 하기엔 증오가 섞여 있고, 기쁨이라고 하기엔 부정적이며, 슬픔이라고 하기엔 희열이 섞인 감정이 그의 눈꼬리와 뺨을 따라 추락했다.

* * *

라텔의 벌어진 입이 베헤모스를 삼키는 광경은 어딘가 비현실적인 면이 있는지라.

나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점차 줄어드는 걸 보며 그쪽으로 발을 옮겼다. 거대하게 부풀었던 흰 동산은 순식간에 쪼그라들어 찹쌀떡 같은 동그란 형태로 변모한 채다.

“진짜 사라졌네…….”

참고로 내 뒤에는 도시에 말을 전하고 돌아온, 도시의 반응을 전해 주기 위해서라도 다시 올 수밖에 없었던 데스브링거가 있다.

위험하다고, 좀 떨어져 있으라고 충고한 덕에 사이의 간격이 근 30m가량 되긴 하지만서도.

‘이제 급할 때마다 써먹으면 되겠네.’

어찌 되었건 이제 라텔만 회수한 뒤, 데스브링거와 합류해 도시로 돌아가면 된다. 나는 데스브링거가 가만히 있는 걸 확인한 뒤, 찹쌀떡 라텔을 향해 팔을 뻗었다.

[…내 확신하건대, 죽인 시체를 물약 취급하며 거두는 사람은 그대밖에 없을 거야.]

분노가 질린 목소리를 냈다.

‘설마 그럴 리가.’

하지만 이건 좀 억울하다. 게임 좀 한다 싶은 한국인이라면, 그보다 효율을 좀 챙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나처럼 굴 텐데?

물론 사람 시체라면 나도 거부감이 들었을 터다. 하나 이건 악마 사체지 않은가.

인간과 너무 달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악마가 백해무익한 존재라 그런 건지. 아무튼 악마 사체 정도는 아이템이나 소재 취급해도 별 양심의 가책이 안 느껴진다. 그러니 이렇게 써먹는 것도 별로 이상하단 생각이 안 든다.

내가 앞에서 상대해 온 적들의 위용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솔직히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이 빌어먹을 악마들의 난이도가 이상한 건데, 이 정도 꼼수는 허락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너희도 이 정도 편법은 쓸 거잖아.’

그리고 말이야. 꼭 게이머가 아니고,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 꼼수는 누군들 떠올릴 만한 수준 아닌가?

[미안하지만, 아닌데.]

‘…왜?’

아니, 진짜 왜? 마력 회복할 수 있는 수단 있으면 싸움에 유리해질 텐데 이걸 안 쓴다고? 동족이라 아껴 준다 뭐 그거야?

[…망할 왕이 규제한 것도 있긴 하지만, 오래된 마법과 접촉할 수 있는 악마 자체도 별로 없어. 원할 때마다 끌어다 쓸 수 있는 존재는 더더욱 없지.]

‘너는 왜 되는데.’

[나는 계약의 특수성을 이용한 것에 불과해. 본래라면 이렇게 자주 쓰지는 못했겠지. 자주 쓸 수 있대도 그러지 않았을 거고.]

내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잠시 침묵하는 사이, 허공에 둥둥 떠 있던 분노가 갑작스레 몸체를 바르게 세웠다.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게 피부로도 느껴졌다.

[그래서 말인데, 그레첸. 오래된 마법을 남용하는 건 좀 줄이는 게 어떨까? 이건 진심으로 하는 충고야.]

하여 나는 데스브링거가 보기에 이상한 모습이 되지 않도록 시선에 주의했다. 내 손에 쥐인 찹쌀떡 라텔은 주입된 마기에 따라 내게 익숙한 투헨더의 형태로 변화한다.

변화하는 라텔 너머에 선 분노의 시선이 선명했다.

[오래된 마법은 인간이니 악마니 하는 존재들의 개념에서 벗어난 힘이야. 그리고 세상에 대가 없는 편의란 건 존재하지 않지. 우주를 관장하는 절대력이 한낱 인간에게 맥없이 이용당하는 일은 더더욱 없고.]

「듣지 마세요. 저 녀석은 그냥 당신이 보낼 9년이 불편해지길 바라는─」

[더군다나 그대, 당장 피해가 없다곤 하나, 한낱 인간이 그런 거대한 개념과 자주 대면하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이겠어?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것만은 못할지언정 계약을 한다는 건 서로의 힘이 섞인다는 의미인데, 그게 정말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올까?]

파우스트가 중도에 말을 막으려 했으나, 녀석은 멈추지 않았다. 웬만하면 웃음기를 머금고 있던 목소리는 지금에 한해 참으로 단조롭고 딱딱하기만 하다.

「그, 아니에요! 계약할 때 분명 거대한 힘이 느껴지는 건 맞지만… 그게 저에게 해를 끼치거나 한 적은……!」

[그대도 알겠지만… 신이니 우주의 의지니, 그런 힘에 의지하다 몰락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하늘의 별처럼 많아. 또한 비슷한 이야기가 여럿 존재하는 것엔 마땅한 이유가 있는 법이지.]

「저, 저 녀석이 과장하는 거예요! 절대, 절대로……!」

[하니, 친애하는 나의 그레트헨. 비슷한 이야기가 새로 하나 더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 줬으면 좋겠어. 나는 그 거대한 힘에 깔려 죽고 싶지 않으니까.]

말로는 도저히 못 이기겠다 생각한 건지, 파우스트가 뿅 하고 나타나 내 손 위에서 팔을 마구 휘저었다. 하나 이미 내 귀는 상대의 말을 다 들어 버린 상태다.

「진짜, 진짜 괜찮은데……!」

‘어, 어. 그래. 알았으니까 진정해…….’

나는 파우스트를 진정시키는 한편, 라텔을 보는 척하며 분노에게로 눈길을 주었다. 말은 참 잘하지. 분노의 말을 들은 내 마음속은 다소 복잡해진 상태다.

「…저 녀석의 말을 믿으시는 건 아니죠?」

‘…글쎄다.’

「저는, 전 정말 괜찮은데……!!」

‘알아. 단지 생각해 보는 것뿐이야.’

놈의 수작에 넘어가고 싶지는 않다. 하나 꺼낸 주제가 주제고 무게가 무게인지라 함부로 무시하기도 좀 그렇다.

아무렴 약도 남용하면 몸이 망가지고, 돈과 권력도 잘못 쓰면 인생이 박살 나는데 세계를 관장하는 힘은 또 어떻겠는가.

워낙 진실과 거짓으로 장난을 많이 치는 녀석이라 믿음이 안 가는 것일 뿐, 이건 분명 경계해야 할 주제가 맞다. 나는 신화에서 흔히 나오는 인간상 1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뭐. 확실하지도 않은 무언가가 무서워, 결정적인 순간에 패를 아끼는 머저리가 되지도 않겠지만.

‘그보다 넌 사는 게 참 힘들겠다.’

[…뜬금없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 전적 때문에 좋은 의도로 말해도 모두가 의심할 거 아니야. 지금 내가 그러하듯.’

별개로 얘는 진짜 인생 어떻게 사냐. 나는 몸소 양치기 소년의 위험성을 알려 주는 존재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나라면 저렇게 안 살아. 반면교사는 덤이었다.

[무슨 소리를…….]

물론 분노는 어처구니없어했다. 하나 쟤가 내 삶을 이해 못 하듯, 나 또한 그러할 뿐인 이야기라.

나는 고개만 살짝 저은 후 파우스트에게 시선을 주었다.

‘너는 저렇게 살지 마라.’

「…네?」

‘모든 순간에 정직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순간에 거짓만을 말하며 살진 말란 의미야. 그건 결국 너한테도 독이 되는 일이니까.’

그리고 분노야말로 ‘스스로에게도 독이 되는 일’의 전형적인 케이스다. 나는 그것을 주지시킨 후, 슬슬 뒤로 몸을 돌렸다. 이 이상 가만히 있으면 데스브링거가 의문을 품을 거다. 사실 지금도 충분히 의심스러울 만한 시간이었고.

“돌아가지.”

“넵.”

그래도 분노가 보인다는 것 자체는 숨기지 않을 예정이니까. 돌아가면서 설명해 주면 되겠지.

나는 떨떠름해하는 분노와 파우스트를 등 뒤에 매단 상태로 데스브링거가 챙겨 온 말에 올랐다. 도시에서 내가 마주할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