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전해 줘 (5)
“…불문에 부쳐 달라 부탁했는데.”
뭐어… 정보상에게 당부할 당시, 비밀 엄수를 부탁하면서도 딱히 그래 줄 것을 믿지는 않았지만. 나아가 그가 비밀을 지키지 않은 게 결과적으로 나를 향한 데스브링거의 믿음을 만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기분은 미묘해졌다. 마치 은행원이 내 계좌 정보를 남에게 알렸을 때와 비슷했다.
기대가 깨진 것과는 조금 다른, 당연한 신뢰가 부서졌을 때의 떨떠름함이 입안을 감돌았다.
“그, 제가 억지로 들은 겁니다요…….”
다만 내가 그런 애매한 표정으로 있자니, 데스브링거가 눈물조차 삼켜 가며 눈치를 보았다. 딱히 그쪽으로 채근한 건 아니었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뒷목을 슬슬 쓸었다.
“뭐라 하려는 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아니, 진짜 뭐라 하려던 건 아닌데. 애초에 정보상을 필사적으로 신뢰하던 것도 아니고, 알려지는 것도 충분히 각오했던 바니까.
심지어 지금의 떨떠름함도 ‘그래?’라는 색에 가깝지, ‘짜증나네’라거나 ‘기분 나쁘네’는 분명 아니다. 그러니 정말 괜찮다. 정말 괜찮은데…….
“음.”
그렇지만 이 말을 전해 줘도 데스브링거가 믿어 주진 않겠지? 하긴 다르게 보면 뒷조사한 셈과 동격이니까.
“믿어 줘서 고맙다.”
“……!”
해서 나는 차라리 말을 돌렸다.
데스브링거의 꼬리가 펑 하고 터졌다.
“고, 고, 고, 고맙기는, 무, 무, 무슨.”
하물며 그는 말하는 기능도 고장 난 사람처럼 말을 더듬었다. 진동 모드의 핸드폰이 사람이 되면 저러지 않을까 싶은 모양새였다.
그, 내 감사가 그렇게까지 당황할 일이야……? 데스브링거가 너무 경악하는 나머지, 나조차도 떨떠름함을 잊고 당황해 버렸다.
“이, 이거나 받으십쇼!”
와중에, 데스브링거가 확 팔을 내뻗으며 들고 있던 물건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요상하게 흘러가는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돌파수 같았다. 나쁘진 않다.
“…해가 지면 추워지니까, 아니 물론 그 전에 도시로 돌아갈 수도 있긴 한데, 아무튼 모래바람도 거칠게 부니까요…….”
다만 그걸 건네면서도 데스브링거는 변명을 주섬주섬 삼켰다. 이것마저 공기를 환기하기 위한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거절하지 말라는 의미로 명분을 쌓아 주는 것 같다.
“…고맙다.”
그런데 그 명분 제공의 원인은 역시 내 컨셉이 쌓아 온 거절의 역사 때문이겠지. 나는 건네주는 입장에서 되레 변명하게 만든 것을 두고 미안함과 고마움을 듬뿍 담아 답했다.
“……!”
물건을 건네주고자 다가왔던 데스브링거가 또 꼬리털을 쭈뼛 세웠다. 다이아몬드 꼴로 벌어진 입과 무의식적으로 물러난 발은 그가 지금 받은 충격이 얼마나 큰지를 알려 준다.
“…나, 나리가, 고, 고맙다를 두, 두 번이나.”
아, 제발. 나는 이마를 붙잡고 싶어졌다.
“…내 죄가 깊군.”
“그, 나리 죄는 아니긴 한데…….”
이야… 지금도 이런데 말투까지 바꿨으면 어쩔 뻔했어.
나는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유지한 고압적 말투를 두고 씁쓸함을 느꼈다. 보다가 괜찮으면 존대로 돌릴까 했는데 아무래도 어림없어 보인다.
“의심되나.”
“…의심은 아니에요. 그냥, 나리가 그런 말을 하실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서…….”
아무렴, 감사 인사를 두 번 한 걸로 지금 이런 말을 들었는데, 여기서 존대까지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악마 논란은 둘째 치더라도 쟤네의 인지 장치가 먼저 고장 나 버릴지 모른다. 악마기사가 저럴 리 없어! 하고.
[근데 그건 저들과 함께하지만 않으면 되는 문제 아닌가, 나의 그레첸?]
‘닥쳐.’
나는 치사하게 팩트로 찔러 오는 분노를 마법의 단어로 여물게 만들며, 씁쓸함을 다시 삼켰다.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보던 데스브링거가 우물쭈물 입을 벌린 건 그다음이었다.
“죄송해요.”
지금까지 몇 번이고 나왔던 말이, 어쩐지 다른 공기를 두르고 도로 튀어나왔다.
“그때 진심으로 찌르려고 했던 것도, 나리에게 빨리 사과 못 한 것도. 그리고…….”
“잠깐, 그건 왜…….”
“제가 잘못했어요.”
그걸 쟤가 왜 사과해? 그건 그냥 일어날 법한 해프닝이었을 뿐인데. 그 뒤의 건 내가 사과조차 못 하게 거리를 둬서 벌어진 일일 뿐이고.
나는 조금 황당해졌으나 데스브링거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후드득. 잠시 말랐던 뺨이 다시금 젖어 들어 갔다.
“정말로 잘못했어요…….”
심지어 그의 울음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청년의 얼굴이 구겨진 휴지처럼 찌그러들었다. 미남까진 아닐지언정 준수한 축에 들던 얼굴이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코끝이 빨개지고 이목구비가 단정함을 잃어버렸다. 죄책감이 얼굴을 갖는다면 아마 저러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용서까진 바라지도 않을 테니까요, 나리… 그냥, 그냥…….”
“아니…….”
해서 나는 결국 허, 하고 숨을 뱉었다. 웃을 일은 아니지만 표정 자체가 너무 우스꽝스럽고, 지금껏 그걸 마음에 담아 둔 미련함도 어이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입가가 올라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노력했다.
“죄송해요으흐어어엉…….”
하여간 둘 다 만두 아니랄까 봐 인퀴지터랑 이놈이랑 돌아가면서 불어 터지는군.
나는 간지러운 기분에 뒷목을 살살 쓸다가, 끝내 오열하는 데스브링거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
가느다란 시선이 뒤에 하나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속죄라 그런지. 받아 줄 때의 기분은 참으로 오묘했다.
“…이제 어쩌실 거예요?”
데스브링거는 한참 뒤에 진정했다. 히끅. 그의 긴 울음이 남긴 잔재는 이따금씩 말 사이사이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중이다.
“글쎄.”
별개로 마이스터도 그렇고 데스브링거도 이걸 묻네. 하기야 이딴 처지의 사람을 보면 누군들 미래가 궁금할 수밖에 없겠지.
“떠나실 겁니까요……?”
다만 나도 내 앞길을 모르긴 매한가지라. 나는 마이스터에게 말했던 만큼만의 계획을 데스브링거에게 전해 주었다.
정한 건 딱히 없고, 일단 너희한테 사과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여기에 남아 있다.
요약하면 이렇게 되는 이야기였다.
“나, 나리이이…….”
그런데 그 짤막한 말 앞에서 데스브링거가 또 감동받은 얼굴을 했다. 뭐에 감동받았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설마 사과하겠다는 말이 그렇게 감격이었나?
“그, 이왕이면… 예전처럼 같이… 역시 이건 좀 아니겠죠……?”
“……?”
같이? 어… 딱히 싫은 건 아니긴 한데.
나는 인퀴지터와 아크메이지, 베르세르크, 새로 합류한 마이스터를 떠올렸다. 그들이 나를 다시 받아 줄까?
거기에 그들과 다시 다닌다면 또 싸움을 주구장창 하게 될 텐데…….
“나리가 떠나신 후… 샌님이 엄청 힘들어했습니다. 제대로 대화를 나누질 못해서 뭐가 가장 힘들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무언가를 구할 때 반드시 무언가를 버려야 할 때가 생겨서…….”
나는 반사적으로 주먹에 힘을 쥐었다. 내 빈자리가 인퀴지터에게 그런 고생을 시켰다고? 그 어린애가 트롤리 선택을 해 버려야만 했다고!?
이건, 이건 더 이상 싸움질이 문제가 아니잖아……!!
“아닙니다. 못 들은 걸로 해 주십쇼. 나리는 지금껏 충분히 고생하셨으니까요.”
“…….”
못 들은 걸로 하면… 이 되겠냐. 나는 바닥에 머리를 쾅쾅 박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내 김치만두가, 우리 똥깡아지가 힘들었다는데 그게 내가 원인이라는 게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물론 내 처지를 돌아보거든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오, 제발. 그레트헨, 차라리 9년을 떠돌아. 왜 굳이 가시밭길을─]
「힘든 길을 가시는 것만큼은 저도 말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을 참지는 마세요. 그 육신에 대한 걱정도 하실 필요 없어요. 상냥하신 분,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당신께서 어떤 선택을 하든 저는 그것을 응원할게요.」
와중에 안쪽의 인간들은 제각기 본인의 의견을 드러냈다. 분노는 한결같이 거부였고, 파우스트는… 내가 고생하는 것 자체는 말리고 싶지만 그럴 자격이 없으니 차라리 응원하겠다는 쪽이었다. 내가 그들과 함께 하면 죽을 위험도 커지는데 그마저도 감수하는 응원.
“…이에 대한 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지. 신전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뭐, 염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보통 저러겠지만… 그렇기에 도리어 마음이 진정되었다. 나는 이번 주제를 뒤로 물렸다.
“네.”
조금 아쉬워하는 구석이 엿보일지언정 데스브링거도 그 이상 가타부타 하지 않았다. 휘이잉. 모래바람이 잠시 끊긴 대화를 지나갔다.
“…그보다 이게 그, 대악마입니까?”
“그래.”
“정말… 더럽네요.”
그건 그렇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임으로써 동의를 표했다. 대악마 베헤모스는 정말 더러운 악마였다.
“…이게 빨리 정화돼야 도시로 오실 텐데.”
“상황이 많이 안 좋나.”
“예, 좀. 저주에 휩쓸린 민간인도 많고… 동물들도 난리고… 역병도 좀 퍼져서.”
뭐야, 그거. 예상보다 더 안 좋잖아.
나는 데스브링거로부터 도시 내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캐냈다. 내가 본 성벽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마저도 데스브링거가 제대로 아는 게 아니란 점에서 더더욱.
‘베헤모스가 멍청한 돼지라서 다행이었네…….’
그 멍청한 돼지가 도시에 입힌 피해를 고려하면 다행이란 말은 좀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그렇다.
이놈이 조금만 더 영리했더라면, 그래서 바로 주제 파악을 하고 도망갔더라면 추후 인간 측의 피해는 정말로 커졌을 것이다.
“정화라…….”
각설하고, 이만한 마기를 정화하려면 인퀴지터가 나서거나 수십 명의 사제가 달라붙어야 할 텐데. 지금 들은 도시 사정이면 그게 며칠 내로 될지 모르겠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너무 늦은 물음일 수도 있지만… 이거, 내가 흡수하는 건 안 되냐?’
한데 그러다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지라.
‘아닌가, 문제가 되려나?’
모비 딕을 처먹은 비류호가 결과적으로 어떤 꼴을 맞이했는지 알기에 살짝 아차 싶은 마음은 있긴 하다.
그러나 잘만 하면 정화의 필요성도 없애고 나도 강화할 수 있는 선택지기도 하니.
‘마기량이 늘어난다거나 신체 능력이 더 좋아진다거나… 그런 이점만 있는 흡수는 없어?’
역시 그냥 놓치기는 아깝다. 나는 양심 없는 요구를 달며 분노를 채근해 보았다.
시야 한편에 비껴 서 있던 분노가 팔짱을 낀 채 나를 오묘하게 바라보았다.
[굳이 찾는다면… 이름을 버리고 먹는 방법 정돈 있겠지. 악마의 본질이 이름에 담긴다는 걸 생각하거든, 밥 없는 김밥을 먹는 꼴이겠지만.]
‘뭔 소리야.’
[…이름은 본질, 영혼은 존재, 육신은 그릇. 인간은 또 다르지만 악마는 일단 그래. 본질에 따라 힘의 성질과 형태가 결정되고, 영혼이 없으면 존재 성립이 되지 않지. 마지막으로 그릇은… 말 그대로 그릇이야. 저 두 가지를 담는 그릇.]
나는 이름을 버리고 먹는다는, 인간이 듣기엔 너무도 추상적인 이야기에 이어 개념적인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막연한 감도 없잖아 있는 탓이다.
[…게임으로 비유하면 이름은 직업같은 거야. 왜, 직업에 따라 스킬도 스텟도 육성 방식도 달라지잖아? 그리고 영혼은… 대충 유저 개념인 거지. 유저가 없으면 게임 속 직업도 캐릭터도 의미 없잖아.]
다행히 뒤에 붙은 설명 덕에 좀 더 개념이 잘 잡히긴 했는데… 이름과 영혼이란 거대한 개념을 게임 직업과 유저로 비유하니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대충 장황한 예술품을 두고 오글거려 한마디로 퉁친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두 개념에게 미안해진다.
[아직도 이해 못 했어?]
‘…아니. 그래서 이름을 먹는 게 많이 위험해?’
[이름은 보통 영혼과 같이 먹히거든? 그런데 먹는다는 건 그것을 소화하기 전까지 그릇에 담고 있다는 이야기도 돼. 즉, 이름과 영혼, 몸이 한데 모인 셈이지.]
‘…되레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네.’
[이해가 빨라서 참 좋아.]
어쨌든, 그런 뒷배경이 있어서 비류호가 그 꼴이 된 거였구나. 나는 악마는 어떻게 죽은 시체마저 함정으로 이뤄져 있냐며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처음부터 끝까지 악랄한 종족이었다.
‘그런데, 이름이나 영혼은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잖아. 그걸 어떻게 먹어?’
[이름과 영혼이 물질은 아니지만 육신은 물질이니까. 그리고 그 둘은 육신이 죽는다고 바로 사라지지 않아. 죽은 육신에 담긴 채로 천천히 증발할 뿐. 그렇기에 이름과 영혼이 든 육신을 먹어 치우면 그것들도 같이 흡수되지.]
‘…그러면 피해서 먹는 게 안 되지 않나.’
[아, 그건 아니야. 보통 이름과 영혼이 담기는 부위는 머리거든. 거기만 빼고 먹으면 상관없어. 뭐, 그 두 가지를 버리고 먹는 사람이면 아예 안 먹거나 심장만 먹겠지만.]
일단 본인은 초대 식탐을 상대할 때 그랬다며, 분노가 너스레를 떨었다. 별로 궁금하진 않은데 한편으론 또 의아하긴 했다.
‘초대 식탐?’
[그대가 죽인 베헤모스는, 내가 죽인 식탐의 사체를 처먹고 작위를 계승한 돼지거든.]
‘넌 시발, 왜 사체를 남겨서 저딴 똥 덩어리가 탄생되도록 한 거냐.’
[우선, 그와 싸운 직후였기에 태워 버릴 힘도 없었거니와, 난 나와 동격인 존재를 삼키는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거든. 방금 말했다시피 위험하니까.]
다만 말을 잇던 분노가 가볍게 한탄을 뱉었다. 어쩌면 한숨일지도 몰랐다. 분노의 목소리가 징그러운 걸 본 사람처럼 힘없지만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거기에 그대, 그대도 초대 식탐의 육신을 보았다면 먹어야 한단 말은 결코 못 했을 거야.]
‘…어떻게 생겼길래, 아니 그보다. 이거 흡수 방법이 입으로 먹는 것밖에 없어?’
[그대의 비위를 위하여 최대한 짧게 말하지. 초대 식탐은 군체 형식의 몸을 가졌어. 구성 성분은 뭐… 말할 필요 없겠지? 그리고 그레트헨, 섭식 외 다른 수단이 있었다면 내가 과연 심장만 먹고 버렸겠어?]
친절하게 웃으며 단정 지어 주는 악마의 말에 나는 바로 포기했다. 능력 강화도 좀 정상적인 방법이어야 시도해 보는 거지, 저 악취 나는 것에는 입도 대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심장 정도는 괜찮아. 한번 시도해 보지 그래?]
‘꺼져…….’
살짝 약해진 제안도 그렇다. 날것의 심장을 먹는다니, 그것만은 도저히 할 수 없다. 심지어 저놈의 덩치를 고려하면 심장도 분명 거대할 텐데… 응, 절대 무리. 절대 절대 무리.
「…라텔에게 먹여요.」
한데 내가 그렇게 질색을 하고 있으려니, 지금껏 조용히 있던 파우스트가 한마디를 얹었다.
[…잠깐.]
「라텔은 외공간과 연결된, 그러니까 인벤토리의 기능을 담당하는 매개기도 해요. 그러니 라텔에게 먹이면 돼요.」
[라텔에 연결된 외공간이 무한한 줄 알아?! 저렇게 거대한 건 안 돼!]
「베뮈르헨에서 그 거북이도 삼켰잖아. 뻥 치지 마.」
[그건 마몬을 제물로 바치며 일시적으로 내 힘이 강해졌으니까 가능했던 거고!]
하여간 이 악마 새끼, 협조하는 척하면서도 중요한 건 뒤로 뺀다니까. 나는 방심하려야 방심할 수 없는 인성질의 대가를 보며 계약의 목줄을 쥐었다.
[…진짜 뭘 바치긴 바쳐야 해.]
분노가 바로 납작 엎드렸다.
‘저 몸뚱이 반 바쳐서 반 넣으면 되겠네.’
[오래된 마법은 이렇게 쓰라고 있는 게 아닌데… 아니, 그보다 그대, 그대가 계약의 당사자로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고 너무 막 쓰는 거 아니야? 계약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그 대가는 전부 저 애송이가─]
「전 신경 쓰지 마세요. 저 녀석이 과장해서 말하는 거지, 제가 받는 부담 같은 건 거의 없어요.」
다만 약간의 투정을 부리긴 했다. 파우스트가 ‘거의’ 없어요, 라고 하는 걸 보면 나름 이유 있는 투정 같긴 하지만 말이다.
‘…거의 없다는 건, 있긴 있다는 거 아니야?’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드는 심력 소모 정도예요. 제물로 제 영혼을 쓰는 게 아닌 이상 제가 받는 피해는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나는 딱 잘라 말하는 소년을 두고 약간의 불안을 느꼈으나, 분노가 별말 않는 걸 확인한 후 일단 마음을 놓았다.
오래된 마법인지 뭔지를 쓰기 꺼리는 분노 입장에서, 소년이 정말 피해를 봤다면 나를 말리기 위해서라도 말해 줬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믿음이라면 일종의 믿음인 일이었다.
‘그래. 믿을게.’
[빌어먹을…….]
아무튼, 이걸로 이 돼지 새끼 사체를 지키는 건 그만해도 될 것 같다.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건지, 멍 때리는 건지 모를 데스브링거의 팔을 툭 쳤다.
“왜, 왜, 왜요.”
“도시로 가, 말을 전해 줄 수 있겠나.”
“예?”
“악마의 사체를 제거할 예정인데, 그로 인해 마기가 요동칠 수 있으니 경계하지 말아 달라… 대충 그런 이야기면 될 것 같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