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화 증거를 (8)
인퀴지터는 마이스터의 손끝에서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이를 보며 숨을 삼켰다. 끄윽, 끅. 흐르는 눈물과 콧물이 붉어진 뺨을 따라 바닥으로 계속 흘러내렸다.
“진짜 못생기게도 우네…….”
“흐어어어엉.”
“아, 즙 좀 그만 짜요. 이러다 탈수 오겠네!”
그걸 보던 데스브링거는 자신의 망토 안감으로 얼굴을 닦아 주었다. 결코 다정한 손길은 아니었다. 인퀴지터에게 쌓인 원한만큼 그의 손은 거칠어졌고, 힘은 더욱 억세졌다.
인퀴지터의 얼굴이 찌부러졌다.
“우리 물 안 챙겨 왔다고요.”
“내가, 내가아아흐어어엉.”
아오, 진짜. 데스브링거는 다시 터진 울음보를 보며 망토를 아예 벗었다. 눈물 콧물로 코팅된 면이 너무 넓어서 계속 쓰기가 뭐했다.
“악마기사아아아아.”
“댁 때문에 나도 못 울잖아요, 진짜…….”
다만 그렇게 드러난 그의 얼굴도 썩 여상치는 못한지라.
인퀴지터보다는 덜할지언정 코끝과 눈시울을 붉힌 이가 킁 하고 코를 먹었다. 전부 악마기사를 향한 걱정이었다.
“치료 실패로 이놈 죽이기 전에 둘 다 좀 닥쳐 봐. 시끄러워서 집중 안 되잖아.”
“끄흡.”
“씹…….”
하나 지금 여기서 가장 파워가 센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마이스터라.
그의 한마디에 두 사람은 서로의 입을 막았다. 마이스터는 시끄럽다고 진짜 죽일 것 같은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악마기사는 일단 살리고 봐야 했다.
“하, 거지 같네…….”
그들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는 동안, 최소 조치를 진행하던 마이스터 역시 약간의 환장스러움을 느꼈다. 별건 아니고, 악마기사를 살릴 방도가 안 보이는데? 정도의 환장함이었다.
“이건 치료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를 데려와야 할 것 같은데.”
아무렴 제대로 된 도구도 약도 없는 상황에서 팔다리가 작살난 사람을 어떻게 고치겠나.
심지어 저쪽은 그냥 팔다리만 작살난 게 아니었다. 배에도 관통상이 있고, 다른 부위에도 심상치 않은 흔적이 가득하다. 보편적인 조치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도 까마득하게 벗어났단 소리다.
지금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저쪽이 끈질겨서지 그가 뭘 해서는 아니다. 이건 도저히 여기서 어떻게 할 수 없다.
“그, 그러면…….”
“당장 말 타고 성벽으로 돌아가서 마법사 여럿 좀 챙겨 와 봐요. 솔직히 그것말고는 방법이 없어.”
물론 마법사를 데리고 오더라도 그 전에 죽을 확률이 높긴 했다.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30분인데, 이 꼬라지로 악마기사가 30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진 않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악마기사를 성벽으로 옮긴다? 내장이 흔들리다 못해 본인 뼈에 본인 내장이 찔려 죽을 것이다. 결국 이게 최선이다.
“아, 알았…….”
“너도 가. 저쪽 혼자 보내면 분명 제대로 말을 못 할 테고, 너 혼자 가면 악마에게 당할 수도 있으니까.”
“…예, 예.”
“댁은 가기 전에 벽 좀 치고 가고요. 악마한테 죽긴 싫거든.”
“…그, 그러면 악마기사가.”
“신성력을 투과시키는 템 끼워서 괜찮아요.”
마이스터는 서둘러 그들을 내쫓고는, 마저 붕대를 두르고 약을 펴 발랐다.
피를 과도하게 흘린 나머지 석고상처럼 퇴색된 빛깔을 띠게 된 얼굴은 꼭 시체 같았으나, 다행스럽게도 가슴팍은 아직 오르락내리락하는 중이다. 마이스터는 괜시리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만약 네가 살아남는다면, 마력 사용자의 질긴 생명력에 대해 연구해도 좋을 것 같네.”
아니다, 그건 이미 북부에서 연구가 다 끝났으려나? 생물 연구 쪽은 논문 한번 들여다본 적 없어서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마이스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혈제의 뚜껑을 뽕 땄다.
“아무튼, 일단 살아남는 게 전제지만.”
그리고 그 지혈제를 뭉개진 다리에 마구 부었다.
설사 생존하더라도 다리는 회생 불가겠군. 치료 마법은 사지 재생의 영역에까진 아직 닿지 못했고, 신체특성상 사제의 신성 치유는 못 받으니까.
이 와중에도 그의 머리는 냉정하게 현실을 재단하는 중이다.
[그래, 모든 건 살아남는 게 전제가 되어야 하지.]
“…….”
다만 멍하니 풀린 눈으로 죽어 가던 이가 멀쩡히 소리를 내었을 때,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물렸다.
달칵. 동시에 그가 쥐어 든 건 어떤 식으로든 쓸 수 있도록 개조한 다용도 나이프다.
“뭐야.”
[글쎄. 누구겠어?]
두 개의 시선이 교차하며 진득히 얽혔다.
* * *
─글쎄, 누구겠어?
나는 나가자마자 인성질을 하는 악마 새끼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괜히 내보냈나. 그냥 내가 나갈 걸 그랬나. 그런 나지막한 후회는 덤이었다.
「괘, 괜찮을까요…….」
“내가 보고 있는데, 적당히 하겠지.”
아까 최후의 수단으로 썼던 것도 막아 버렸고, 언제든 제동을 걸 수 있는 계약도 있는데 설마 수작을 더 부릴까.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잠시 방금 전 일을 회상해 보았다. 그건 내가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을 남기고 기절한 순간부터 시작한다.
“아.”
일단, 죽었나 싶었던 순간 나는 심상 세계에서 눈을 다시 뜨게 되었다. 왜 안 돌아가졌지? 당연한 의문을 품은 건 마땅한 수순이었다.
나는 내 심장을 더듬거리고 주변을 계속 살피는 것으로 나의 죽음과 귀환 여부를 확인했다. 솔직히 좀 빡치기도 했다. 죽으면 돌아가진다며? 죽으면 돌아가진다며!!
「…폭탄이 안 터졌어요.」
그런 내 분노를 잠재운 건 악마를 사슬로 마구 묶고 있던 소년의 발언이었다. [이 XXX 같은 XXXXX가 XXXX─] 사슬에 매인 악마는 감히 전달할 수 없는 상스러운 욕을 마구 퍼담는 중이다.
나와 소년은 그녀를 깔끔하게 외면했다.
“안 터졌다고?”
「…네.」
“그럴 리가 없는데?”
‘집에 가고 싶다’라는 키워드를 소리 내어 말하면 그 즉시 심장이 터질 거라며 흰바람이 그렇게 장담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왜? 망가질 일도 달리 없었고, 있었어도 수리도 재깍재깍 받았는데 왜?
베뮈르헨 사태에서조차 구슬과 함께 얌전히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어 결과적으로 흠집 하나 없었는데 대체 어째서!
「모,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나나 소년이나 그 원인을 알아낼 방도는 달리 없었다. 나는 허탈한 마음으로 몸을 벌렁 누였다. 여긴 나룻배 위구나. 그쯤 돼서야 시야가 인지 범위에 들어왔다. 나는 혈해 위에 띄워진 나룻배에 있었다.
“…지금도 돌아가지지 않는 건?”
「아직 안 죽어서…….」
“그러냐.”
피를 그만큼 처흘렸는데도 출혈사가 아직인 건가. 인퀴지터도 내 목을 아직 안 딴 거고?
나는 후자의 사실에 복잡미묘한 심정을 느끼며 몸을 도로 일으켰다. 내가 가슴 보호구의 키워드를 잘못 왼 걸 수도 있으니, 한번 다시 외쳐 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바깥에서 깨어나려는 시도는 매번 무거운 졸음과 함께 튕겨져 나오는 것으로 끝났다. 몇 번이고 도전해도 마찬가지였다.
안 되는 거구나. 나는 깨달음 적립과 동시에 바깥에서 깨어나기를 그냥 포기했다. 죽음은 쉽게 찾아올 생각이 없는지, 우리들의 마음과 긴장만을 계속 졸이는 중이다.
[…….]
악마도 그쯤 되어 발광을 포기하고 납작 엎드렸다. 그러자 긴가민가하던 소년이 사슬을 쥔 채로 앉았다. 파우스트의 눈가는 붉어졌을지언정 눈물 한 방울도 없다.
“파우스트.”
「…네.」
“이리 와.”
「……!」
뭔가 김 새네. 나는 그런 잡념과 함께 파우스트를 끌어당겼다.
어쩌면 곧 죽을지도 모르는 소년, 삶의 끝에서라도 온기를 느껴 보라는 배려였다. 여전히 원망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의 죽음마저 외롭기를 바라는 건 아니니까.
“…있잖아.”
「…네.」
“이대로 죽으면 나는 현실에서 바로 깨어나는 거 맞지?”
그래, 네가 아무리 나한테 잘못했어도 삶의 끝만큼은 따뜻해도 되는 거니까.
「…네. 바로 깨어나실 거예요.」
“게임 접속했던 그때 그대로?”
「…그건 아닐 거예요. 시간의 흐름은 다를지언정 그곳도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까.」
“…거기 시간도 흐른다고? 얼마나?”
「시간의 흐름이 고정 비율로 정해진 건 아니라서…….」
아이가 품에 안긴 채로 손을 들어 올리더니, 손가락을 꼼질꼼질 접고 펴기를 반복했다. 마치 숫자를 셈하는 것 같았다.
「어…….」
그렇지만 계산은 잘 못하는 모양이다. 나는 아이가 답을 헤아리는 동안 멍하니 심상 세계를 살폈다. 부상 정도에 따라 피가 차오르는 건지 깊이가 점차 깊어져만 가는 혈해가 보였다. 사슬에 묶인 채 또 다른 조각배에 동동 띄워진 악마도 같이.
「아직 2주……?」
“2주라.”
나는 죽음이 뭐 이리 늦어지나 가늠하다 말고 눈살을 살풋 찌푸렸다. 예상보다 기간이 더 적어서였다.
“근데 내 몸은 캡슐에 있을 텐데……?”
하나 그게 완전한 희소식이라기엔 글쎄.
예전에, 그러니까 게임 안에 갇혔다는 걸 막 깨달았던 그때 떠올렸던 문제점이 나를 찔렀다. 눈썹이 자동으로 올라가고 눈이 더욱 찌푸려졌다.
“…내 몸 죽은 거 아니야?”
「아, 아니에요.」
과연 내 몸뚱이가 영양 실조나 수분 부족으로 죽기 전에 주변인들이 나를 발견해 줬을까?
반사적으로 중얼거린 말 하나에 아이가 기겁하며 고개를 휘저었다. 간신히 남아 있는 젖살과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당신의 육체는 계약에 의해 보호받아요. 특별한 영양 공급이 없어도, 심지어는 물리적 충격을 가하더라도 몸에 이상 하나 생기지 않도록요.」
“…오.”
그건 그나마 괜찮은 소식─어쩌면 당연한 조치기도 했지만─이라.
나는 의학계가 뒤집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상념과 함께 약간의 안도를 품었다.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이 갖고 마는 안심이었다.
[…치료하고 있군. 주변인들이 이 몸을 치료하고 있어.]
한데 우리가 그렇게 죽음을 각오하고 또 기다리는 동안, 상황이 조금 바뀌었으니.
“…그래?”
[그래. 심지어 용사는 치료할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 떠나는군.]
나는 환희에 찬 악마를 아니꼽게 보다가, 품에 안긴 소년의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두고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그런다고 살 수 있긴 해? 과다 출혈로 먼저 죽을 것 같은데.”
[내가 나가면…….]
“네가 나가면 뭐가 달라? 회복에 마력 필요한 건 똑같지 않나?”
[…마력은 제물을 바쳐서 채우면 그만이야.]
그렇구나. 제물을 바치면 마력이 채워지는구나.
“되겠냐?”
내 눈빛이 싸늘해졌다. [일단 들어 봐.] 악마가 다시 비굴 모드에 들어선 건 그 다음 일이었다. 몇 번을 기고 또 계약 갱신까지 한 후에야 나갈 기회를 받은 것이 바로 지금이고 말이다.
─그렇게 보지 마. 나도 좆같으니까.
“저 새끼 진짜…….”
나는 마이스터에게 화풀이를 하는 악마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이라도 돌아오라고 해?
「…….」
…젠장. 한 번만 더 봐준다.
나는 몸을 웅크린 채 악마를 관찰하는 파우스트를 보며 참을 인을 다시 뇌까렸다. 놈이 이 이상 시간 끌면 그땐 안 봐준다. 참을 인과 함께 새겨지는 건 그런 마음이다.
* * *
“시벌, 뭐야.”
한편, 마이스터는 자신 앞에서 좆같다고 발언하는 악마기사를 보며 눈가를 좁혔다.
본 기간을 따지면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으나, 악마기사가 저렇게 말하는 군상이 아님은 잘 아는 까닭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오래된 마법이여,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이런 등신 새끼를…….]
“넌 뭐냐고.”
[재촉하지 마, 그레트헨. 지금의 내게 선택지가 더 있을 것 같아?]
“…….”
[비참해. 너무 비참해. 내가 왜 이런 꼴을…….]
이거 죽여야 하나? 마이스터는 제 말만 하는, 악마기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존재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
“…마이스터.”
하나 누군가에겐 참 다행이게도, 그 생각은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상대의 붉은 눈이 옅어진 탓이다.
마이스터는 본능적으로 그 눈의 주인이 제가 아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왜.”
“…나는, 악마의 힘을 빌려 몸을 재생하려 한다.”
“예전에 했던 내기 같은 거냐?”
“…글쎄. 내기보다는… 양쪽의 바람이 일치하여 일시적으로 힘을 합치는 것에 가깝겠군.”
“아깐 왜 안 하고?”
그의 질문에 악마기사가 느릿하게 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이 힘겹기는 한 듯 한 음절 한 음절 천천히 이어지는 말은 다소 우습고, 그럼에도 이해가 가는 것이다.
“…일시적이라곤 하나, 사제 앞에서 악마와 손잡는 것도 이상하니까.”
하긴. 말 들어 보니까 초반엔 악마라서 죽여야 한다고 한 모양이던데, 그 앞에서 악마랑 손잡고 쎄쎄쎄 하긴 그렇지.
마이스터는 악마기사의 변명을 단번에 이해했다.
“그럼 방금 전 튀어나온 그게 악마겠네.”
“…그래.”
“좋아. 난 신경 안 쓰니까 알아서 해 봐.”
“그럼 물러나라. 휘말린다.”
나아가, 그는 신성력의 막 앞까지 물러났다. 곧 회색이었던 악마기사의 눈이 다시 붉어지고, 바닥에 쌓인 돌 틈새로 흰 점액질이 올라왔다.
스르르륵.
그 흰 점액은 모스크스트라우멘Moskstraumen처럼 바닥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더니, 그 중심에 새까만 구멍을 뚫었다.
툭. 곧 그 구멍 사이로 길쭉한 그림자 두 개가 튀어나왔다. 하얀 검 한 자루와 평범한 장검 한 자루였다.
“저건…….”
그중 순백색 검은 알아보기 쉬웠다. 그가 직접 깎은 검이었으므로 당연했다.
저건 비류호의 뼈를 토대 삼아 갖가지 마법을 걸어 완성시킨 걸작이다.
“그게 왜 너한테 있냐.”
한때 녹색귀가 저 두 자루를 들고 다닌 건 안다. 다만 베뮈르헨에서 기절했다 깨어나니 없던 걸로 보아, 그 사태에서 잃어버렸나 싶었는데… 저게 설마 여기서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마이스터의 눈이 껌뻑였다.
[오래된 마법이여.]
하나 그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자는 안타깝게도 이곳에 없었다. 악마는 그를 내버려 둔 채 주문을 중얼중얼 외웠다.
[지극한 법칙이여, 우주의 천칭이여, 정당한 교환을.]
그러자 두 자루의 장검이 분해되듯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저건 분명 분해 그 어드메의 짓거리였다.
“시발.”
저걸 만들 때 얼마나 힘들었는데!
마이스터는 허공에 녹아드는 자신의 걸작을 보며 걸쭉한 욕설을 몇 번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