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증거를 (7)
“멍청한 샌님, 바보 같은 샌님, 세상에 둘도 없을 머저리 샌님…….”
데스브링거는 단단한 신성력의 벽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벽을 부수고자 내려치고 두드리길 반복한 손은 새빨갛게 변하여 금방이라도 멍이 들 것만 같다.
“정말 후회할 거란 말이야…….”
하나 그보다 더 아픈 곳은 가슴 안쪽, 심장보다 더 깊은 곳에 위치한 어딘가다.
“망할 샌님아…….”
아. 좀 더 대화를 나눴다면 좋았을까?
설마 근시일 내에 마주치겠어, 라고 여유 부리는 대신 인퀴지터를 좀 더 채근하고 닦달했으면 뭐가 달라졌을까?
인퀴지터에게서 어떤 답이 나올지 몰라 두려워 미적거리는 대신 용기 내어 다가갔다면, 그랬다면…….
그렇지만 악마기사가 사라진 이후 고통스러웠던 건 그녀뿐이 아니다. 그 아픔이 너무 짙어서 대화를 주저하던 건 그뿐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줄 모르고, 남과 대화하며 푸는 것도 낯설어, 결국 혼자 눌러 담길 택하는 인생이 딱 한쪽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란 말이다.
즉, 이건 피하고자 해도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하필이면 이런 인간들 여럿이 서로를 만나 버렸기에 나온 결론이었다.
그들은 결코 서로의 벽을 넘지 않기에, 스스로의 늪에 가라앉으며 죽어 가는 수밖에 없다. 두드리고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을 바라만 보는 채로, 영원히.
“뭐 하냐.”
“……?”
영원히?
“먼지랑 같이 굴러다니는 게 취미야? 아니면 드디어 스스로의 주제를 파악하고 바닥에 납작 엎드리기 중?”
데스브링거는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는 대신 때려 부수는 이를 보았다. 사람이 늪에 파묻혀 죽어 가든 말든 본인 꼴리는 대로만 살며 멋대로 쳐들어오는 인간을 직시했다.
“…댁은 시발, 뭐가 문제입니까?”
그리고 한마디 평가를 내놓았다. 저 인간은 감성이란 게 없나? 철을 두드리고 사는 인간이라서 본인도 철이 된 건가?
“뭐.”
“샌님이 지금 나리를 죽이러 갔는데… 그거에 대해 아무 생각 없냐고요.”
“아, 죽이러 갔어?”
데스브링거는 이를 악물었다. 죽이러 갔어? 죽이러 갔어어? 갔어어어?? 누가 보면 시장에 반찬거리 사러 간 줄 알겠네……!
“사갈도 댁보단 피가 뜨거울 겁니다!”
“뱀은 변온동물이야. 내가 더 뜨거워.”
“내가 그걸 몰라서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그럼 틀린 걸로 비유를 들지 말든가.”
하나 마이스터는 정말 제멋대로 사는 철인이었다. 그는 이상한 것에 지적을 남기고는 귀를 후비적거렸다.
“됐고, 어디로 갔어?”
“…그건 왜 묻는데요.”
“인퀴지터가 악마기사를 죽이러 갔다며. 안 따라가?”
“따라가서 뭘 할 수 있다고─”
“그래서 여기 남아 있겠다?”
“…….”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는 일침에 데스브링거는 순간 꿀 먹는 곰처럼 입을 다물었다. 정말 화나지만, 마이스터는 여러 의미로 맞는 말만 하는 사람이었다.
“…댁은 왜 가려는 건데요?”
“의뢰품 전달할 게 있으니까. 죽기 전에 전해 줘야지.”
“물어본 내가 등신이지.”
“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
“…가요.”
데스브링거는 쌓이는 울분을 한곳에 차곡차곡 쌓으며 불퉁하게 대답했다. 똑똑. 동시에 그의 손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신성력 막을 두드렸다. 그를 가두는 막이었다.
“그렇지만 이것 때문에 당장은…….”
툭.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언가가 던져졌다. 커프스 단추나 견장, 브로치, 과대 같은 장식용 물품이었다.
“…이건.”
다만 그것들의 특이점은 장신구 종류라는 것에서 오지 않는다. 신성력 막을 통과하여 그의 앞에 떨어졌다는 점에서 오지.
“원래 의뢰품은 남에게 시착해선 안 되지만, 의뢰자가 뭐라 할 것 같진 않으니까 융통성 좀 발휘하자고.”
데스브링거는 서둘러 그것을 쥐고 몸 곳곳에 꼈다.
“그건 부츠에 끼는 거야. 그건 귀에 꽂는 거고. 관절 하나당 하나씩 낀다고 생각해.”
어디에 착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건 마이스터가 친절히 알려 주었다. 졸지에 귀를 뚫게 생겼지만 마음이 급하다 보니 별 신경도 안 쓰였다. 데스브링거는 부위 하나당 장신구 하나를 채웠다.
“근데 저희 둘이 마역을 뛰어 가게 해 주겠습니까?”
그렇게 전부 착용했다고 판단한 순간, 마이스터가 손을 까닥였다.
“몰라.”
나와 보라는 손짓이었기에 데스브링거는 묵묵히 따랐다. 미묘한 느낌과 함께 손이 먼저 통과하고 몸통이 이어 빠져나왔다.
“그럼 어떻게 내려왔는데요.”
“널 데려오겠다고 하니까 내려보내 주더라고.”
“뒷일은 생각 안 했습니까?”
“안 했는데.”
이게 맞나? 마이스터의 당당함 앞에서 데스브링거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요?”
“인퀴지터도 그냥 걸어갔을 텐데 우리도 못 할 건 없잖아.”
“마역을요? 악마가 튀어나오는 마역을?”
“…음.”
그렇네. 저긴 마역이었지. 마이스터가 그건 고려 못 했다며 고개를 기울였다. 진짜 대명장 맞아? 데스브링거는 하루에도 다섯 번은 떠올리고 마는 문장 앞에서 본인의 이마를 찰싹 때렸다.
“…걸어가기가 좀 그렇다면 말을 데리고 오면 되겠네.”
“말을 여기에 어떻게 데려오는데요.”
성벽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곤 하나 말이 저걸 통과할 수 있을까? 가능하더라도 천천히 이끌며 통과시켜야 할 텐데 주위 사람들이 그걸 지켜만 봐 줄까?
데스브링거는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했고, 마이스터는 그 모든 지적을 씹어 먹었다.
“글쎄. 아직 그건 모르는 일이지.”
그러면서 그가 본 건 남청색 머리칼을 지녔으나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표정의 남성이다.
* * *
“…아?”
내 말 몇 마디에 녹색 눈이 요동쳤다. 백지에 떨어트린 물감처럼 미묘하게 농담 차이가 있는 눈이 핑글 도는 낙루 한 방울에 더욱 옅어졌다.
“주제 넘는 부탁임은 알아. 하지만, 인퀴지터. 나는…….”
그것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나는 점차 가빠지는 숨을 억지로 고르며 혀를 움직였다. 한 번의 기회면 돼. 몰염치하게 두 번까진 바라지 않을 테니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안,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과는 원하지 않아도 늦는다. 바라지 않아도 상황이, 판단이 그렇게 만들고 만다.
나에게 베뮈르헨을 떠나는 것이 선택지가 없던 일인 것처럼. 우리가 각자의 문제를 서로보다 더 우선시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저는, 저는 용사니까. 신탁을 따라, 신의 명을 행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그러하므로 나의 사과는 늦었다.
“당신을 살릴 수 없습니다.”
당연하게, 필연처럼 늦어 버렸다.
“…그런가.”
하지만 인퀴지터. 내가 속죄할 기회를 받지 못하는 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치더라도, 날 죽인 이후의 너는 어떻게 되는 거야?
내가 아는 너는, 지금 보이는 너는 나를 죽인 후에 도저히 멀쩡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용사라는 단어에 먹혀 너의 삶을 잃어버릴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은 거야?
“미안하다.”
사과 외에도 해 주고 싶은 말은 참 많다. 너를 구성하는 개념 중 하나를 너와 동치시켜선 안 된다든가. 수단과 목적을 헷갈리면 안 된다든가.
그렇지만 뿌예지는 시야로 보건대 몸은 이미 한계에 달했다. 인퀴지터가 메이스로 내 머리를 찍지 않아도 그 전에 과다 출혈로 사망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과, 하지 마십시오.”
“아니. 나는 사과해야 해.”
그래도 차라리 그게 낫다. 인퀴지터가 나를 죽임으로써 평생 갈 상처를 받는 것보단, 그게 나아.
“…미안해.”
“악마기사, 저는─”
나는 최선이 못 될지언정 차악 정돈돼 줄 미래를 그리며 내가 주워 삼킬 수 있는 유일한 말을 반복했다.
차라리 진실을, 악마기사에 다른 전말이 있음을 고백하는 건 숙고 끝에 포기했다. 인퀴지터가 지금 이런 선택을 내린 건 ‘내’가 악마기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악마기사’가 나였기 때문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말해도 선택이 바뀌지 않는다면, 도리어 인퀴지터의 죄책감만 깊어질 거라면 차라리 입을 다물고 가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다.
“미안해.”
다만 그래.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쓰이는 건 상처받은 채 남겨질 인퀴지터와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소년이라.
나는 흐리흐리하게 보이는 파우스트와 인퀴지터의 얼굴을 보며 눈꺼풀을 깜빡였다. [이렇게 끝난다고? 이렇게?] 귓가에서 울려 퍼지는 히스테릭한 외침은 정말이지 마지막까지 기분을 불쾌하게 만든다.
“구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괜찮아요.」
[이렇게 끝날 거라면, 차라리 이렇게 될 거라면……!]
하나 녀석의 외침은 단순히 기분만 불쾌하게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너……!」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파우스트가 경악하듯 악마를 불러 댔다.
「도망가게 내버려 둘 것 같아?!」
[망할 애송이, 놔! 나는 여기서 절대로 안 죽어!]
「절대 못 가!」
[망할 꼬맹이가……!]
아, 정말이지. 빌어 처먹을 악마 새끼는 끝까지 말썽이었다.
[네 영혼이 처음과 같은 줄 알아? 부서진 영혼으로도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냐고!]
나는 안 그래도 다 죽어 가는 마당에 소용돌이치기까지 하는 내부의 마기를 보며 피를 한 바가지 쏟아 냈다. “아.” 인퀴지터가 탄성을 흘렸으나 더 이상 신경 써 줄 여유는 없었다. 시야가 흐려 더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괜찮으시다면, 그걸 써 주실 수 있을까요.」
[…이 개같은!!]
다만 지금의 내게 또렷하게 들리는 것은 단 하나.
「계약도 있고, 제가 억제도 하는 데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만큼 거의 불가능할 거라 생각되지만… 세상일은 또 모르는 거니까.」
[지랄 마! 여기서 다 죽자고?! 나는 안 돼, 안 된다고! 내가 이러려고 그 지옥에서 살아남은 줄 알아!?]
「여기서 심장이 터지면 반드시 죽어요. 용사가 움직이지 않아도, 저희가 전전긍긍하며 기다리지 않아도요.」
[안 돼, 안 된다고! 시도할 생각 따위 추호도 하지 마, 그레트헨!]
이상하리만치 침착해진 파우스트의 목소리와 비명에 가까워진 악마의 외침이었다.
「혹시 몰라서 말하지만, 저는 괜찮아요. 정말로요.」
[안 돼, 안 된다고, 그레트헨. 제발. 그러지 마. 이미 다 죽어 가는데 시간을 앞당겨서 뭐 해! 꼬맹이를 살리고 싶어 했으면서 그럴 거야?! 그럴 거냐고!]
「처음부터 당신의 구원은 제게 너무 과분했어요.」
[난, 죽기 싫어!!!]
그 모든 대화가 슬펐나? 아니면 통쾌했나?
“…울지 마.”
「네, 울지 않아요. 전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잘은 모르겠다. 이런 끝이 비통하기도 했고 인퀴지터에게 미안하기도 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막을 향한 후련함과 드디어 돌아간다는 희열이 느껴지기도 했다. 선택지 없이 달려가는 열차가 괴롭고 또 편안하다.
“네 탓이 아니야.”
「당신의 탓도 아니에요. 그러니 상냥하신 분, 이제 깨어나세요.」
아, 그래도 인퀴지터. 마지막까지 너한테 이런 트라우마를 안겨 주는 것만은 미안해. 그렇지만, 최소한 네가 나를 죽이는 것보단 이게 더 나을 테니까.
「부디 이 악몽이 당신을 오래 괴롭히지 않기를…….」
나는 홀린 듯 가슴 보호구의 마법을 발동할 키워드를 외웠다.
“집에 가고 싶다…….”
아, 집에 가고 싶었다.
* * *
“집에 가고 싶다…….”
멍하니 풀리는 눈을 보며 용사는, 용사였던 이는 무심코 메이스를 내던졌다. 깡, 깡깡. 금속이 경사진 돌무더기를 따라 굴러떨어지고, 이제 비게 된 손이 다른 쪽을 향해 나아갔다.
“아, 안…….”
그녀는 서둘러 죽어 가는 이의 뺨을 붙잡았다. 흐으. 얄팍하게 들려오는 숨은 시시각각 옅어지기만 한다. 죽음이 그를 데려가려 하고 있었다.
“안 돼. 안 돼요. 악마기사, 안 돼요…….”
그것만은 보고 싶지 않다. 그를 죽여야 하는 입장이지만, 그가 이렇게 된 건 전부 그녀의 선택이지만, 그래도 보고 싶지 않아.
심장이 기어이 무덤을 부수고 뛰쳐나왔다. 죽지 마세요, 저를 두고 가지 마세요. 내가 어떻게 당신을…….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제가…….”
인퀴지터는 눈물을 후드드득 흘리며 쓰러진 자를 껴안았다. 죽여야 해. 용사로서의 책임이 그녀를 짓눌렀으나 그뿐이었다.
진정한 상실의 위기 앞에서, 의무는 낙루를 따라 흘러가고 또 잊혔다.
『나리를 죽이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냐고, 이 머저리야!!』
다만 그를 대신하듯 뺀질이가 그녀에게 외친 경고가 계속 떠올랐다.
그 녀석이 맞았다. 그녀는 후회했다. 당신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것, 당신을 공격한 것, 당신을 이렇게까지 만든 모든 것을… 그녀는 후회했다.
결국 그녀는 용사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거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악마기사…….”
그렇지만 용사가 될 수 없는 그녀에겐 대체 무슨 가치가 있지?
신께서 그녀에게 맡긴 사명을 해낼 수 없다면, 그녀의 존재는 무슨 의미가 되는가?
“제가…….”
…모르겠다. 애시당초 그녀에게 용사의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정에 이끌려 눈앞의 대악마조차 죽이지 못하는 이가 과연 용사가 될 수 있는가? 그녀가 용사가 되는 건 정말 옳은 일이었나?
“제가 용사가 되면 안 됐는데.”
신이 그녀를 용사로 지정함에는 분명 무언가의 가능성을 보아서였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너무도 부족하여 신이 말한 일을 해내지 못했다. 나아가 당신조차 구하지 못했다.
결국 남는 건 이도 저도 되지 못한 현실과 참담함뿐이다.
“차라리 당신 같은 분이 용사로 뽑혔어야 했는데…….”
아아. 신께서는 왜 그녀를 택했을까. 왜 그녀를 골라 이다지도 무거운 짐을 떠맡겼을까.
차라리 악마기사가 뽑혔다면 그녀보단 나았을 텐데.
“신이시여 제발… 제발…….”
뼈저리도록 깊은 무력감 앞에서 인퀴지터는 반사적으로 신을 찾았다. 정작 그를 죽이라 명한 건 신임에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평생 동안 모셔 온 신앙은 대체할 선택지란 게 없어서, 모르는 게 아님에도 버릇처럼 튀어나와 기도를 하게 만들었다.
“제발, 신이시여…….”
하나 무의식적인 버릇과 그걸 깨달은 의식의 비참함은 별개의 것이라. 그녀는 악마기사를 끌어안은 채 꺽꺽대는 숨을 삼켰다.
지금 이 순간, 신께 비는 것 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이 그녀를 더욱 참담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악마기사를 치료할 수도, 구해 줄 수도, 그에게 미래를 약속해 줄 수도 없다.
그녀가 행하는 모든 행위가 도리어 악마기사를 죽일 것이므로.
“차라리 제 목숨을 가져가시고 이분을 살려 주십시오.”
왜 우리는 이렇게 되어야만 하지?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우상인 이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어긋나기만 해야 합니까? 자기 목숨을 도외시하던 헌신이 사실은 자기 학대에 불과하단 걸 알았음에도 여전히 동경의 한 자락인 이에게 매달렸다.
“그가 악마를 품은 것은 결코 그의 본의가 아니니, 그런 그에게 마땅한 기회를 베풀어 주소서.”
그녀는 역시 악마기사가 살았으면 했다. 자신의 앞에 당신의 든든한 등이 있기를, 또 그녀가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남고 마는 선택지를 대신 골라 주기를 바란단 말이다.
왜냐면 그는 그녀의 동경이고, 우상이며, 앞길을 알려 주는 등불과도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녀가 용사로서 모든 걸 이끌지 않아도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줬던 사람이니까.
그 모든 가르침이 한때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그녀는 분명 당신이 있었기에 달라질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신이시여, 부디…….”
당신이 나의 영웅이었으니까.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아아…….”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살릴 수 없겠지. 그는 악마를 품었고, 그녀는 사제였으므로. 그녀에게 악마의 그릇을 살릴 능력 따위는 없으므로.
따가닥.
“내가 이럴 줄 알았다.”
그녀에겐 자신의 영웅을 치료할 힘이 없었으므로.
“내가 후회할 거랬잖아요, 망할 샌님…….”
“…너.”
“와, 이게 안 죽었네.”
인퀴지터는 자신이 두고 온, 그러나 악착같이 따라온 이들 앞에서 끝내 와앙 울어 버렸다.
“용사 같은 거, 안 할 테니까 제발 이분을 살려 주십시오…….”
그녀 나이에 꼭 맞는 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