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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300화 (300/389)

300화 증거를 (5)

“죽겠다…….”

베헤모스의 뇌를 기어이 불태우는 데 성공했다. 안구와 뇌 사이에 뼈가 없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싶을 만큼 지난한 과정이었다.

[…망할 개호구 새끼.]

안구 대부분을 체우는 유리체가 냉동 삼겹살만큼 단단할 때부터 예상했어야 했다. 본래라면 젤리 같았어야 할 유리체마저도 강도가 그런 판이니, 진짜 살점은 얼마나 단단했겠나.

나는 내가 광부라는 새로운 직업을 얻었나 했다. 진짜 더럽게 안 파여서.

[젠장, 이러다 용사가 먼저 도착하면……!]

그래도 최종적으로 이긴 건 나였다.

나는 불태워 버린 뇌를 피해 베헤모스의 눈구멍을 밟았다. 피비린내와 썩은 내가 조금 덜해지고, 탁 트인 풍경이 숨통을 틔워 주었다.

“다 쓴 건 마력인데 왜 체력이 동난 기분이냐…….”

다만 마기를 다 털어 넣은 탈력감에 무심코 걸음이 멎었다. 마음 같아선 어디 적당한 곳에 몸을 누인 채로 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빨리 안 걸어?]

“…확 쉴까 보다.”

나는 자기 죽기 싫다고 채근하는 악마를 보며 눈을 치떴다. 파우스트만 아니었어도 배 째라면서 누웠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전, 전 괜찮은데…….」

“아냐. 가자.”

나는 눈구멍을 타고 바깥으로 슬슬 내려갔다. 베헤모스의 머리는 한 발 한 발 딛고 내려가기 좋은 경사가 아니었으나, 엄니라는 특수 부위 덕에 아주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나는 앓는 소리와 함께 엄니를 밟고, 그대로 미끄러져 내렸다. 조금 비틀거리는 몸이 약간의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할 뻔했다.

“처박힐 뻔…….”

하마터면 이 단단한 대지를 얼굴로 처음 맞이할 뻔했다. 나는 깨지는 걸 면한 코를 매만지며 엄니에 기댄 몸을 곧추세웠다.

마력을 다 쓴 거지, 체력이 동난 건 아니었기에 그럭저럭 서 있을 수 있었다.

“…이제 어디 가냐.”

다만 문제가 하나 생겼다.

갈 곳이 없다.

[목적지는 나중에 정해도 좋으니까 일단 가자고.]

“닥쳐 봐, 좀.”

[제발, 좀 가면서 생각해!]

마음 같아선 저 도시로 돌아가고 싶다. 리챠 씨라든가, 남청색 머리칼의 소성주님이라든가. 파우스트가 분명 보고 싶어 할 것 같아서.

돌려줘야 할 검과 복주머니 목걸이도 있고.

“…나중에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으려나.”

하나 저곳엔 용사가 있고, 변장도 들통난 상태이며, 결정적으로 지금의 내겐 마기가 없다. 정확히는 뭘 저질러도 탈주할 수 있도록 해 줄 힘이.

「전 괜찮아요.」

그러니 당장 돌아가는 건 아마 안 될 것이다. 나는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는 소년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5년쯤 지나면 다시 오자.”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였다. 소년이 대답 없이 흐리게 웃었다.

“검은 여기다 두고 가면… 회수가 될지 모르겠네. 그냥 들고 갈까.”

[그대, 일부러 시간 끄는 거야?]

언젠가 다시 올 거라면 그때 돌려줘도 되지 않을까? 나는 인벤토리에 넣어 둔 호박색 검을 힐끗 보고, 또 내가 잡은 괴수의 사체를 일별했다.

…저것도 못 챙기겠지? 나는 끔찍할 정도로 질기고 단단한 가죽을 아련히 보았다가, 퍼득 떠오르는 과거 사건 하나에 몸을 떨었다.

“야야야야야.”

[제발, 그레트헨. 좀 가면서─!]

“아니, 이번 건 너 꼴받게 하려는 게 아니라. 이거 챙겨 갈 방법 정말 없냐고.”

[…이건 왜.]

“모비딕 처먹은 비류호 꼴 날까 싶어서 그런다.”

[…….]

악마가 나를 노려보았다. 산양 뼈 가면이 띄운 붉은빛은 특별한 감정표현이 없음에도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그냥 내버려 두면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용사가 이곳으로 오고 있잖아. 내버려 둬. 저쪽에서 알아서 정화할 테니까.]

“…소재, 진짜 못 가져가?”

[망할 그레첸, 이게 게임인 줄 알아? 저걸 챙겨 간다고 해서 뭐 레전더리템이라도 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름이 보라색으로 표기되는 갓템이 나올 것 같냐고.]

“아니, 게임이 아닌 거야 아는데. 그래도 저 정도 질긴 가죽이면 옷 같은 거 만들었을 때…….”

[친애하는, 빌어 처먹을, 그레트헨. 검도 안 박히는 가죽에 바늘이 박힐 거라는 생각을 설마 하고 있진 않겠지? 아니면, 그대가 일일이 가족을 재단하고 꿰맬 건가?]

오, 빡쳤다. 나는 의도치 않게 악마의 성질을 긁으며 그녀의 설유에 납득되었다.

하기야 마력이 넘쳐 나는 나도 상대적으로 여린 눈알을 찔러 죽였는데, 평범한 장인이 저 가죽을 기반으로 뭔 만들 수 있을 리는 없으리라.

“알았어, 가자.”

나는 팔뚝에 매달린 파우스트가 떨어지지 않도록─비록 환상이라 떨어져도 별문제 없겠지만─어깨에 올려 주며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동쪽의 성벽을 왼쪽에 끼고 수평 방향으로 뛰고 있으니 아마 남쪽일 것이다.

“…요 몇 주간 하고 다닌 모습, 혹시 수배될까?”

동시에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했다. 겨우 만든 두 번째 신분이 날아간 것에 대한 걱정이다.

[알 바야?]

「그, 글쎄요…….」

“수배되면 아쉬울 것 같은데.”

그 모습이 수배되거든 만하펠트도 다시 못 들어가게 될 터.

역시 아쉽다. 발터 경에게 해 주고픈 말이 있었는데. 당신이 가르쳐 준 검술이 목숨을 살려 줬다고, 정말 고맙다고 말해 주고 싶었는데.

나는 짙은 안타까움을 삼키며 바위 사막을 통통 달렸다. 마기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없는지라 쌩으로 달리고 있지만, 그래도 속력은 꽤 나왔다.

[…속도 좀 올려.]

“아, 더럽게 채근하네.”

와중에 악마는 내게 언성 하나 높이지 못하는 채로 설설 기었다.

우위를 점한 상태로 불공정 계약을 맺어서 그런가. 어찌 보면 찌질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너, 약한 척하지 마.”

그러나 그것이 우습고 안타까워 보이느냐면, 절대로 아니.

“난 너 같은 인간을 잘 알아. 끝의 끝까지 참회하는 대신 배신할 틈을 엿볼 인간인 걸 안다고.”

저 새끼는 일가족 하나를 몰살하고, 유일한 생존자의 몸에 기생하여 인간들 여럿을 학살한 살인마다. 심지어 아이에게 불공정 계약을 강요하고 심리적 학대를 유지해 왔으며 아까 전엔 고향 가지고 협박까지 한 개밥버러지기도 했다.

“분명 지금도 내 뒤통수를 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겠지. 어떻게든 계약의 허점을 찾아 치명적인 순간에 나를 찌르려 들 준비도 하고 있을 거고. 또 정말 최후의 순간이 되어야만 공개할 만한 패도 따로 있을 거야. 너 같은 놈들은 자기 목숨을 정말 끔찍하게 여기니까.”

즉, 요약해서 말하면 갱생 불가능한 최악의 범죄자다. 찌질한 모습까지도 방심을 위한 연출일 수 있는, 그저 자비도 기회도 베풀 필요 없는 쓰레기.

“그러니 나한테 친근감 주려고 수작 부리지 마. 내 상냥함은 너 같은 놈에게 주려고 있는 게 아니야.”

[…….]

나는 제발 가자고 빌던 모습이 무색해질 만치 무표정해진 악마를 시야 바깥으로 밀었다.

「…저.」

대신 작게 속삭이는 아이에게로 고개를 슬쩍 틀었다. 조그매서 표정을 알아보기 힘은 소년이 웅얼거렸다.

「용사에게 발각되면, 조금 아프실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안정적으로 죽으실 수 있을 거예요.」

다만 거리가 가까워서. 혹은 그가 내 심상과 연결된 존재여서 그 목소리는 또렷하게도 들려왔다.

「그러니까… 전 정말 괜찮으니까. 그냥 지금 돌아가시는 건 어떨까요. 9년은, 너무 길잖아요.」

정말, 듣기 싫은 발언이었다.

“눈치챘을 수 있겠지만.”

탁, 탁. 마력 없이 땅을 박차는 몸이 돌 하나를 뛰어넘었다. 돌아가는 수도 있었지만 충분히 넘을 만해서 그냥 넘었다.

“만약 네 주변에 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난 절대로 널 돕지 않았을 거야. 왜? 악의는 없었다고 하나 너로 인해 내가 겪은 일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수준이거든.”

하나 첫 번째 바위를 넘은 후에도 순탄한 길만 있지는 않았다. 곧 두 번째 바위가 나왔다. 어쩌면 굴곡진 땅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갈라진 땅이 고개를 들어 커다란 계단을 이루었다.

“솔직히 지금 널 보는 것조차 난 좀 불편해. 나도 사람이니까, 나도 아프다 말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나는 그것을 뚫어져라 살펴보다가, 불거진 부분을 찾아 밟았다. 그새 조금이나마 회복된 마력이 내 점프를 도왔다. 그 뒤엔 마력 바가 다시 바닥을 찍어 버렸지만.

“하지만 그 이상으로 네가 가여워. 네가 그렇게 말해야 하는 사정이, 아이가 저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환경이. 도움 하나 청할 곳 없다는 비극 자체가. 너무 싫고 불쌍해.”

탁, 탁, 탁. 지그재그로 바위를 박찬 몸이 본궤도에 다시 올랐다.

“그래서야. 내가 널 돕는 건, 오직 그래서라고.”

「하지만, 전. 저는… 당신의 동정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

함에도 산 너머 산이라고, 넘어야 하는 건 더 있었다.

불거진 부분을 밟고 올라가기엔 너무 높고 가파른 지형이 새로이 등장했다. 좌우로 길어서 돌아서 가기도 어려운 땅이었다.

나는 툭 튀어나온 대지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뭔 자격.”

「이미 아시잖아요. 당신께 저지른 잘못을 떠나… 저는, 저 악마를 제대로 통제 못 해서 수십 명의 피해자를 만들었어요. 당신을 데려오기 위해서 수천 명의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고요.」

귓가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차오르는 숨 위에 얹혔다.

「저는 그런 쓰레기예요. 누군가에게 구원받을 자격 따윈 없는 머저리라고요. 그러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맞아요. 저는, 저는… 당신이 9년의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없어요.」

이걸 어떻게 넘어야 할까. [이봐, 그레트헨.] 나는 답답한 속을 조금이라도 풀고자 셔츠의 목깃 부분에 손을 걸었다. [가야 해.] 그러나 셔츠는 이미 다 풀어헤쳐진 상태라. [저 녀석, 괴수의 사체 대신 이쪽을 선택했어.] 나는 결국 한숨으로 회귀했다.

“…일단, 처음부터 검토해 보자.”

그래도 차근차근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위에 다다르지 않을까. 나는 소매를 걷어붙인 후─그쪽도 너덜너덜해서 별 의미는 없었다─울퉁불퉁한 벼랑의 표면을 잡았다.

“먼저 악마를 통제 못 해서 수십 명의 피해자를 만든 건 절대 네 탓이 아니야. 네가 통제를 포기해서 벌어진 일도 아니고, 시도했는데 부족해서 실패한 일일 거잖아. 그렇지?”

「하지만 제가 좀 더 강했다면…….」

“좀 더 강했다면, 이라는 가정은 불필요해. 그건 네가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

마력이 없어도 강건한 육체가 어디로 가진 않는다. 암벽 등반 경험이 많지 않아서 길을 못 잡는 건 어쩔 수 없지만서도, 최소한 아귀힘이나 허릿심이 부족해서 낭패를 보는 일은 없었다. 초반에는 그러했다.

“스스로가 간섭하지 않고, 제어할 수도 없는 외부적 요인에 의한 피해를 사람들은 보통 재해라 표현하지. 그리고 재해에 당했을 때, 잘못은 결코 피해자의 것이 아니야. 절대로 네 잘못이 아니라고. 알았어?”

「…….」

“그리고 사람들을 제물로 바친 건… 그래. 그건 나도 긍정할 수 없어. 잘못은 잘못이니까.”

하나 중반쯤 다다랐을 때, 나는 약간 힘이 부치는 걸 느꼈다. 좀 더 솔직해진다면 조금 많이 힘들었다.

바스락. 종종 무너지는 발판과 뻐근한 근육은 수백 미터를 뛰는 것보다 피로감을 더했다. 중간중간 회복된 마력을 투입해도 마찬가지였다.

클라이밍 초짜의 도구 없는 등반은 할 짓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넌 어리고, 도와줄 사람은커녕 구조를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 거기에 네가 방치된 환경은 어른조차 쉬이 버틸 수 없는 것이었어. 그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생각해.”

그래도 절반은 넘겼다. 그래, 절반을 넘겼다. 나는 돌아가기도 애매해진 아래와 많이 줄어든 위쪽 거리를 살피며 다시 손을 뻗었다. 이제 반밖에 안 남았다.

“어리다고 모든 게 용서된다 말하는 게 아니야. 네가 죽인 사람이 범죄자라 해서 정당화될 수 있단 소리도 아니고. 단지, 네 나이와 환경을 고려했을 때 한 번쯤은 기회를 받는 게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하는 거야.”

「제가, 제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도요?」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은 그래.”

수천 명을 죽인 핏값은 과연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렇진 않으리라. 범죄자고 아니고를 떠나 죽은 사람들이 아이를 이해해 주진 않을 테니까.

“살고 싶어서 친 발버둥이 죄에 속한다고 죽어야 한다면, 그건 너무 불합리하잖아.”

하나 자지도 못하고, 매순간 아프고, 조금만 방심해도 사람을 죽이게 되는 환경 속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 거란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회는 주어져야만 했다. 쌓인 죄악이 많다고 해서 나아질 계기조차 주지 않는 건 너무 잔인했다.

「하지만, 하지만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제가, 제가 무슨 자격으로 그 사람들의 핏물 위에서 살겠어요…….」

이대로 죽게 놔두기엔 삶이란 걸 제대로 누려 보지도 못했을 아이가 너무 불쌍했다.

“있지, 파우스트. 내가 한동안 죽어도 상관없다며 마구잡이로 몸을 굴린 건, 여기서 더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였어. 죄책감이 온몸을 짓누르는데, 악마라는 우환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서. 도저히 살아 있을 의미가 안 느껴져서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했어.”

「…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가 9년을 버티면 네가 살 기회를 받을 수 있어. 내가 버티는 시간에 의미가 생겼다고.”

나는 기어코 다다른 절벽의 끄트머리에서, 마지막으로 팔을 움직였다.

“나의 9년은 너의 50년이 되겠지. 그리고 너의 50년은 어쩌면 네가 죽인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네가 지은 죄보다 더한 선행을 베풀 수 있게 될지도 모르고.”

바스락. 손끝이 절벽 윗부분에 닿았다. 땀으로 젖은 온몸은 천근만근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파우스트, 살아. 네 어깨에 짊어진 죄가 너무 무겁고 죄책감이 시시때때로 너를 괴롭히겠지만, 그래도 살아 봐. 살다 보면 속죄할 기회는 와. 용서받지 못했기에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 순간도 생겨. 그게 인생이야. 그게 인생이라고.”

그래도 끝이니까, 나는 그 손끝에 마지막 힘을 싣었다. 몸이 쭈욱 끌어 올려지고, 내 몸이 절벽 위에 엎어졌다. 시발. 내가 다신 마력 없이 암벽 등반 하나 봐라.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사람 수천 명을 죽이고 나란 어른 하나 갈아 가면서 겨우 부지한 목숨. 여기서 끊는 것도 예의가 아니잖아.”

나는 가까워진 신성력의 기척을 느끼면서도 땅 위에 널브러진 채 미동할 생각을 않았다. 인퀴지터는 갑옷을 입었고 그 갑옷으로 암벽 타기를 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런 약은 계산 끝에 나온 배짱이었다.

“파우스트.”

「…네.」

“이래도 아직도 죽고 싶어?”

그건 영 틀린 계산이 아닌 듯, 신성력의 기척은 절벽 아래에서 멈춘 채 움직이질 않았다.

“정말로 죽을까?”

아니다. 움직였다.

「…저는.」

어, 어. [이봐, 그레트헨.] 직감이 갑작스럽게 경종을 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당장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내 눈이 부릅뜨였다.

「저는…….」

콰아아앙!

거대한 신성력이 절벽을 후려치고, 그대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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