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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281화 (281/389)

281화 내게 말해 줘 (11)

‘하여간, 이걸 또 막아선다니까…….’

누군가가 내 눈과 귀를 가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깨어났을까.

나는 난데없이 권력자로 추정되는 이와 실컷 대화하게 되었다. 얻은 게 없지는 않았으나, 퍽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름 대우받을 수 있을 것이다.”

“네.”

대화가 끝날 즈음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권력깨나 있는 인물이 나가 주긴 했는데, 이젠 또 감시병과 단둘이 남겨진 탓이다. 서로의 입장이 입장이다 보니 공기가 묘하게 어색해졌다.

“후…….”

하지만 작금의 내겐 모르는 사람과 남겨졌다는 사실보다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감금과 고용. 자유와 시험. 상상치 못했으나 어떻게든 꾀를 짜내어 통과해야만 할 시련이었다.

그렇지만 대체 어떻게?

마법사라고 둘러대긴 했으나 그건 그저 눈속임과 타인의 무지를 이용한 사기였을 뿐이다. 정말로 그쪽 지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진짜 마법사가 지식의 깊이를 시험하거든, 내가 통과할 리 없단 거다.

아니, 통과만 못 하면 차라리 낫다. 실력 부족 정도로 여겨지면 그냥 고용만 못 되고 끝날 테니.

하나 그 질답으로 하여금 가짜 마법사라는 진실이 까발려지면? 감히 속이려 들었단 이유로 수배령이 걸리기라도 하면?

그때야말로 파멸이다. 나는 쉽게 상상되는 미래에 안경을 벗고 잠시 마른세수를 했다.

그냥 포기하고 경비대 감옥에 갇혀 있을까.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조사를 할 수가 없는데. 위장 스킬 제한 시간 때문에 중도에 튀어야 할 확률도 높고.

차마 고를 수 없는 선택지의 반대편에는 비슷한 형태의 말로만이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

어느 쪽이든 답이 없네.

나는 막막한 상황을 돌아보며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댔다. 쿠션으로 쓴 베개는 어디서 쓰던 것인지 쿠션감이 썩 나쁘지 않았다. 솜까진 아니더라도 새 지푸라기를 잔뜩 집어넣은 제품 같다.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혀 오는지라 썩 위안이 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저…….”

그러고 보니 여긴 진짜 어디지? 나는 답 없는 선택들을 잠시 미뤄 두기로 하며 감시병을 힐끗 쳐다보았다.

뮌문트의 군기가 굉장히 엄격한지, 병사는 꼿꼿한 자세로 정색한 표정을 꾸준히 유지하는 중이다. 군인 고유의 엄숙함과 직장인 특유의 동태눈이 눈동자에서 엿보였다.

“병사님, 혹시 물을…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하나 그런 사람이라도 대화는 시도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병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되도록 조용히, 최대한 공손하게 물었다. 막 깨어난 사람이 물을 찾는 건 드문 일이 아니므로, 주제를 두고 수상하게 여겨질 일 또한 없을 것이다.

나는 얌전히 병사가 보일 반응을 기다렸다.

“현재 식수는 전략 물자로 취급되어 통제되고 있습니다. 제 권한으로는 내드리긴 어렵습니다.”

“아…….”

다만, 돌아온 답이 제법 상상치 못했던 것이라.

나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전장에서 식수가 중요하다는 건 잘 알지만, 설마 환자에게 한 잔 내주지 못할 정도로 빡빡하게 관리하는 줄은 몰랐던 까닭이다.

아니면 혹 내가 그만큼 대우받지 못하는 위치인 걸까? 성의 상황을 잘 모르다 보니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그런 줄 몰랐어요. 괜한 부탁을 드렸네요.”

“괜찮습니다.”

“음, 그렇다면 본래 제가 가지고 있던 물을 마시는 건 가능할까요?”

그렇지만 대화를 터야 한다는 목표 외에도 실제로 목이 살짝 마른 상황이다. 나는 갈증을 적시기 위해 조심스럽게 부탁해 보았다.

병사의 눈이 데굴 굴렀다.

“…제가 가방에서 대신 꺼내는 것에 동의하신다면, 그 정도는 허가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마법사라는 신분을 가장하고 있어서 그런가. 병사는 내가 혼자 가방을 건드리는 것도 경계했다. 다소 떨떠름한 일이었다.

내가 아는 마법사들은 위협적이기보단 광적인 놈들뿐이었는데. 이렇게까지 경계할 것 없다고 생각되는데.

“그건 괜찮습니다.”

물론 관점에 따라선 광적인 것도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는 있지. 나는 미묘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방에 든 것이라고 해 봤자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것들투성이였기에 가능한 승낙이었다.

레그백 인벤토리조차도 뭐… 마을에서 나올 때 팔찌의 아공간으로 옮겨 버린 상태니까.

나머진 훔쳐 가든 말든 괜찮다. 나는 병사가 움직이는 걸 가만 지켜보았다.

“이것입니까?”

“네.”

빈약한 내용물 덕분인가. 병사가 금세 물을 찾아주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인지 내용물을 잔에 따라 가며 마지막까지 확인하는 게 정말 철저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받아 가십시오.”

꿀꺽. 물주머니를 넘겨주는 이의 목울대가 유난히 크게 움직였다.

“…….”

“……?”

내가 물주머니의의 입구를 기울여 두 모금가량 마셨을 때도 비슷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명확한 시선이 내게 꽂혀 들어왔다.

나라는 사람에게 집중된다기보다 물주머니와 주머니에서 나오는 물로 향하는 시선이었다.

“…드실래요?”

“예?”

이렇게 열렬히 응시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저쪽도 목이 말랐던 모양인데… 하긴, 식수 통제가 나한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면 병사도 물을 원하는 대로 못 마셨을 테다.

그리고 사람이란 본디 금지하면 금지할수록 더 갈구하는 요상한 동물이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목 축이실 정돈 될 겁니다.”

물을 향한 갈급함을 채 못 숨기는 걸 보면 완벽한 FM은 못 되는 듯하고. 그럼 이걸로 좀 공략을 해 볼까.

나는 반에 조금 못 미치도록 물이 남아 있는 물주머니를 내밀었다. 조금 망설이던 병사가 끝끝내 넘어왔다. 떨치기엔 너무 강렬한 유혹이었나 보다.

“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아, 다 마셔도 괜찮습니다.”

거기에 이런 허락까지 내려 주니, 병사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병사가 헐레벌떡 물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목이 엄청 마르셨나 봐요.”

“네… 좀.”

나는 순식간에 비워진 주머니를 가방에 던져 넣은 후, 침대 헤드에 다시 몸을 기댔다. 물이라는 호의가 오가서인가, 나를 보는 병사의 눈은 한결 부드러워진 상태다.

“잘 몰랐는데, 뮌문트는 엄청 엄격한 도시였군요. 식수까지 이렇게 일일이 통제할 줄이야.”

“아… 그건 오해입니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안 합니다.”

“아, 아닌가요?”

“네.”

내 말에 병사가 눈을 옆으로 도르륵 굴렸다.

“식수 통제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내게 진실을 알려 주는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만이 담겨 있다. 티 내고 싶어서 티 내는 게 아니라, 감독되는 상황에 대한 반감이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온 경우였다.

“그렇군요… 갑자기 왜 그런 지령이 떨어진 걸까요?”

하면 이건 제법 찔러 볼 만할지도.

나는 병사의 처지를 안쓰럽게 여기는 사람처럼 눈썹을 내리고, 윗선의 결정을 힐난하는 것처럼 의문을 표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윗선에선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도 일단 참으라는 말밖에 해 주질 않아서…….”

병사가 옳다구나 내 맞장구를 맞받아쳤다. 자신의 심정이 이해받고 또 옹호받는단 느낌에 용기가 좀 더 선 듯하다. 그의 불평이 조금 더 튀어나왔다.

“이유라도 알려 주면 좋을 텐데. 군대라서 그런가 참 엄격하네요.”

“뭐, 그렇죠. 까라면 까는 게 저희의 일이니까…….”

그래도 쿡 찌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오는 사람이 감시병으로 붙어 참 다행이다. 꽉 막힌 사람이 상대였다면 이런 소소한 정보조차도 얻지 못했을 텐데.

나는 그 사실에 감사하고, 또 병사를 위로하며 다음 질문을 고민했다. 예민한 질문을 했다간 겨우 쌓은 호감도가 수직 하락 할 것이기에 검토는 굉장히 신중하게 이뤄졌다.

“저… 마법사님.”

하나 그 때문에 시간이 좀 소요되었다. 내가 질문을 택하기도 전에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올 정도로.

“네.”

물론 병사가 질문하는 행위 자체는 나쁜 신호가 아니다. 최소한 내게 물음을 던질 정도로 마음의 허들이 내려갔다는 뜻일 테니까.

다만 이제 그가 무엇을 물을지가 문제인데…….

나는 그가 마법사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길 바라며 사람의 신뢰를 살 만한 미소를 내걸었다. 병사의 목울대가 마른침을 삼켰다.

“윗선에선 참으면 되는 문제라고 하지만… 그래도 좀 불안해서요.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걸까요?”

“…정확히 어떤 지점이 불안하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그러니까…….”

천만다행히도 마법에 대한 질문은 아니었다. 나는 그가 안심할 수 있도록 어조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었다.

“보면 저뿐만이 아니라 동료들도 죄다 배고프다, 목 마르다 하고 있거든요……. 다른 애들 얘기 들어 보니까 병사만 그런 게 아니라 시민들도 똑같은 상황이라 하고…….”

“그렇군요.”

와중에 갈증과 허기를 호소하는 게 이 사람뿐이 아니라고? 심지어 시민들마저 그런다고? 나는 순식간에 불어난 스케일을 두고 손을 죔죔했다.

리챠 씨도 그랬던 걸 생각하면, 이거 아무래도 보통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도시 전체에 악마가 저주를 내린 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 아는 사람도 없고, 상관에게 물었다간 박살 날 것 같아서 일단 저희끼리만 쉬쉬하는 중이지만…….”

내가 뻣뻣이 굳으려는 얼굴을 막고자 노력하는 사이, 병사가 살짝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님은 저보다 배운 것도 많으실 거 아녜요. 그러니까 혹시 이 상황에 대한 것도 아시나 싶어서, 그래서 여쭤본 거예요. 이거, 정말로 악마 짓일까요?”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해 두려워하고, 또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그 정도만 무서워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망했네. 내 입이 반사적으로 다물리되 내 당황을 숨기기 위해 양쪽 입꼬리를 겨우 끌어 올렸다.

“그… 마법사라 불리고 있긴 하지만 저도 배움이 깊은 편은 아니라서요. 악마에 대한 건 더더욱 모르는 편이고…….”

빌어먹을, 이게 악마 탓이 아니면 대체 누구 탓이겠어. 정확히 어떤 악마가 했는지는 못 꼬집어도 악마종 자체에 원흉이 있을 거라는 건 앞구르기 뒷구르기 플랭크 하면서도 확신할 수 있는 성질의 사건인데.

“그래서 딱 이거다라고 말씀하긴 어려울 것 같네요.”

그렇지만 이걸 그대로 말했다가 병사들 사이에 이야기가 쫙 퍼지면, 그래서 사기가 하락하면 그땐 내가 박살이 나겠지?

나는 그런 마음으로 긴급히 입을 털었다. 상대가 이 일의 원인을 반쯤 확신하고 있다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애당초 이건 갓난아기가 아니고서야 모를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이건 하나만큼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정답을 알고 있음에도 병사가 내게 물은 건 외면하기 위함이었고, 내가 여기서 택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어울려 준다는 선택지뿐이다.

“다소 힘들지라도 승리하는 건 이 성이 될 거예요. 바깥에 악마들이 득실거린다고들 하지만, 실상은 저 같은 허접한 마법사조차 뚫고 올 수 있을 만큼 빈약한 포위망이었을 뿐이니까요.”

나는 병사가 마음의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게 최대한 힘 있게 웃어 보였다.

* * *

“진격하려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군요.”

“하, 저놈들이 당장 진격하겠나? 이 상태로 일주일만 기다려도 알아서 무너질 듯한데?”

“…소성주님.”

귄터는 호위기사의 말에 손을 휘저었다. “내가 실언했네.” 진심으로 건네는 사과는 아니었다. 방금 한 말이 틀리다는 생각은 결코 안 드는 탓이다.

“성주님이 계셨다면 경을 치셨을 겁니다.”

“알고 있네. 진실이든 거짓이든 병사들이 동요할 만한 발언은 결코 해선 안 된다고 지랄 지랄 하셨겠지.”

“소성주님.”

“노친네 앞에서 이러진 않잖나. 이 정돈 봐주게.”

“…아버지께 그런 단어를 쓰시면 안 됩니다.”

“하. 아버지? 나한테 아버지가 있었나? 그것 참 이상하군. 나한테 아버지 노릇 한 분은 이미 돌아가신 것 같은데.”

“소성주님……!”

“사파이어 경, 자네가 하는 잔소리가 전부 나를 위한 것임을 알아.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제발 그만해 주게. 나는, 제기랄, 노친네가 정말로 싫어.”

“…….”

다만 그쯤 되어서, 그는 급격히 아탸가 보고 싶어졌다.

걔가 여기 있었다면 저렇게 면박을 줄 게 아니라 같이 부모님 욕을 해 줬을 텐데.

“그 인간은 내게 한 번도 아버지였던 적이 없어.”

앨랴도 그렇다. 까칠하지만 정이 많은 둘째는 주군 까기에 호응하는 대신 어깨를 빌려주었을 것이다.

나이 차이가 좀 나는 파샤나, 너무너무 어려서 차마 상담할 수 없던 리냐는 그냥 그 존재 자체만으로 위로가 되어 줬을 테고.

“…그러니 다음부턴 그냥,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말게. 서로 기분 잡치는 주제니까.”

그렇지만 그들은 없다. 그를 숨 쉬게 해 줬던 이들은 사라졌다.

귄터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홀로 짚었다. 고픈 배와 바싹 마른 목구멍은 짜증나기보다 그저 허하기만 하다. 공복이 너무 길어졌던 게 분명하다.

“…저기 에메랄드 경이 보이는군요.”

“젠장, 왜 또.”

“소성주님…….”

그런 상황에서 보기 싫은 얼굴까지 보니 더 불쾌하다. 귄터는 지휘와 통솔에 재주가 있는 기사들과 에메랄드가 성벽 위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걸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발견한 이상,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서글플 뿐이다.

“…또 보는군요. 지금이 에메랄드 경의 순찰 시간은 아닌 듯한데.”

“적들 앞에서 휴식을 취할 생각은 별로 없는지라.”

“…경의 헌신에 감탄만 나올 뿐입니다. 하나 스스로의 컨디션을 챙기는 것도 기사의 덕목임을 기억해 주셨으면 하군요.”

“걱정 마시지요, 소성주님. 생각하시는 문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니.”

말은 참 잘하지. 귄터는 본인 몫의 물까지 기사들에게 나눠 주는 취옥기사를 보며 괜히 주먹을 쥐락 펴락 했다.

겉보기엔 흠잡을 것도 없고 도시의 일에도 열성인 수석기사인데 왜 이렇게 싫은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되었습니다. 부디 무리하지 마시길. 자네들도 수고하게.”

“예!”

그래도 시비 거는 것만은 참았다. 귄터는 그의 호위기사가 들으면 부정할 생각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성벽 위는 전부 점검했으니 성으로 돌아가지.”

“…예.”

아직 그에겐 일이 남아 있었다.

“남은 일이 뭐가 있더라…….”

귄터는 자신이 한 일과 해야 할 일을 헤아렸다.

병사들의 상태 점검, 식량 배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지 감시, 식량 창고와 식수원의 안전 상태 검사, 시민들의 여론 및 사기 확인 등… 대충 굵직굵직한 건 다 끝난 듯했다. 그래 봤자 성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일이 생기겠지만.

예컨대, 배급받던 도중 난동 부린 자들의 처벌을 결정하거나, 조사한 식량의 양을 토대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을 계산하는 등의 일이 말이다.

“아. 마법사도 찾아가 봐야 했는데.”

그뿐만이 아니다. 귄터는 마탑 근처의 숙소에 처박아 둔 객을 떠올리곤 한숨을 길게 뱉었다.

“…마법사부터 찾아가 보지.”

저녁조차 먹지 못한 채로 일하고 있건만, 어째 끝이란 게 보일 기미가 없군. 뭐, 언제는 아니 그랬냐만.

귄터는 그렇게 자조하며 호위기사를 이끌고 객이 머무는 숙소로 향했다.

“대화하는 동안 자네는 밥이라도 먹고 오게.”

“호위하겠습니다.”

“자네가 내 호위기사이기 이전에 수석기사 중 한 명임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군. 먹고 오게.”

“…제가 오기 전까지 먼저 가시면 안 됩니다.”

“알았으니까 빨리 가기나 하게.”

호위기사마저 떨쳐 내고 들어간 마법사의 숙소는 매번 보던 모습이었다. 매일 청소해 주는 사람이 있음에도 복도에 구겨진 종이가 굴러다니고 간간이 마법사들이 내는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하여간 미친놈들.”

연구만 하는데 비명은 왜 지르는 거지? 귄터는 마법사들의 광기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곤 한쪽 문으로 향했다.

“아탸가 누군지 아세요?”

다만 복도 안쪽에서 작게나마 흘러나온 소리에 그는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저와 함께 여기까지 온 병사분도 그렇고, 아까 그 귀하신 분도 그렇고. 저를 아탸란 분과 착각하셨거든요.”

“어, 어어…….”

“모르시면 어쩔 수 없고요.”

“죄송합니다, 그건 너무 흔한 애칭이라…….”

그리고 그는 다시 다리에 힘을 주었다. 벌컥. 노크조차 하지 않은 손이 문을 거칠게 열었다.

“헉, 소성─”

“지금은 죽은 내 친구다, 아탸는.”

아탸도, 앨랴도, 파샤도, 리냐의 것도 아닌 차분한 녹색 눈이 보였다.

“이야기를 듣고 싶나?”

조금 더 수식한다면, 고해를 들어 주는 사제의 눈처럼 보이는 것이.

“네.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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