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내게 말해 줘 (8)
나는 갈수록 빡빡해지는 포위망을 두고 결정을 내렸다. 이대로라면 끝까지 위장 스킬을 끄고 가거나, 다시 돌아가는 것밖에 수가 없다.
“큰일인데…….”
물론 빡빡한 포위망이 내게 위협이 되느냐 묻거든 그건 당연히 아니었다.
아무렴 잡몹이 모여 봐야 잡몹일 뿐이지 않던가. 내가 가로로 참격을 쏘아 내면 숲과 함께 모조리 몰살될 것들. 위협이라고는 절대 여길 수 없다.
“하…….”
하지만… 하지만 그래. 숲을 통과하여 뮌문트에 도달한다는 목표에다가, ‘마기를 들키지 않아야 한다’라는 전제 조건을 하나 달거든 이야기는 판이해진다.
뮌문트 사람에게 내 마기를 들키지 않으려면, 못해도 내가 그 마기의 주인임이 발각되지 않으려면. 최소한 도시와의 거리가 30분 이하로 접어들었을 때 위장 스킬을 발동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런 포위망 속에서 위장 스킬을 켠다? 그때는 위험해지는 게 리챠 씨의 목숨뿐이 아닐 것이다.
평상시에나 위협이 되지 않는단 거지, 위장 스킬을 켰을 때에는 나 또한 곤란한 수준이 지금이었다.
“…진짜 어쩌지.”
그렇다고 여기서 돌아가? 도시가 이제 눈에 보이는 수준인데? 1시간 혹은 30분, 그 정도만 더 가면 되는데?
나는 입술을 깨물다가 조심스럽게 리챠 씨를 돌아보았다. 내 거친 운전… 운행… 배달에 기절해 버린 그는 아직도 깨어날 기미가 없다.
아니, 도리어 더 창백해진 것 같기도 하다. 사람 어깨에 둘러메지다 못해, 그 상태로 한 시간이나 있었으니 누군들 악화되지 않고 배기겠느냐만.
‘프흐흐.’
그런 점에서 돌아가는 건 역시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 여기서 그 마을까지 가려면 반나절은 다시 뛰어야 할 텐데, 그걸 리챠 씨가 버틸 거라는 판단이 도무지 안 드는 까닭이다.
갑작스러운 갈증이나 마기 침식도 마찬가지다. 원인은 잘 모르겠으나, 계속 방치했다간 절대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다.
‘외면한 것이 곱절로 돌아오는 기분은 어떻지, 애송아?’
또한 리챠 씨 외에도 내가 가지 못할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내 시선이 마역 저편에서 느껴지는 마기를 향해 돌아갔다.
‘가장 지키고 싶던 것이 멸망할 위기에 처한 기분은?’
저 마기 앞에서 과연 뮌문트가 버틸 수 있을까? 저 재해가 지나간 후의 뮌문트에 내가 얻고자 한 것들은 남아 있을까?
그런 생각만 하면 결국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나는 화끈거리는 몸을 두고 뺨을 쓸었다.
‘더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의 때가 왔어.’
투둑. 생리적으로 흐르고 만 식은땀이 콧등에서 떨어져 내렸다.
“아.”
아니다. 코피였다.
나는 서둘러 손수건을 꺼내, 코를 막았다. 흐으. 온몸이 욱신거리고,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치 우는 사람의 몸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으윽.”
“…깨셨습니까?”
그런 와중에 리챠 씨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꿈틀거리던 몸이 미약한 소리와 함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깨어남과 동시에 약해진 숨소리는 그가 평생 받아 온 훈련의 깊이를 알려 준다.
“…여긴 어딥니까?”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굳이 따지자면 입술만 달싹이는 수준의 질문이 들어왔다. 해서 나는 고갯짓만 살짝 해 주었다. 대답없이 주변만 돌아보게 해 줘도 답을 눈치챌 거란 판단이었다.
“…실패한 겁니까?”
예상대로 리챠 씨는 상황을 금세 파악해 주었다. 나는 애매하게 눈썹을 구부렸다.
“성은 이제 육안으로도 보입니다만… 악마가 너무 많아서요. 저것까지 통과할 수는 없을 듯하여 잠시 멈춰 섰습니다.”
“그렇군요…….”
그에 리챠 씨도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뮌문트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는 아쉬움, 그래도 안전한 상태인 것 같긴 하여 품는 안도감. 그런 것들이 그의 눈동자에서 교차했다.
“…목은 여전히 마르십니까?”
“…예. 안타깝게도 아직 그런 것 같, 잠깐. 다치셨습니까?”
그러다, 그의 눈이 내 코 쪽으로 내려갔다. 코피. 나는 아차했다.
“…아. 악마에게 당한 건 아닙니다.”
으음. 코피가 갑자기 난 걸 뭐라 설명해야 할까. 그냥 몸이 약하다? 피로가 쌓여서 그렇다? 그것들은 너무 뻔하고 의미와 이득이 없는 변명인데.
“그냥, 제 경지 이상의 마법을 펼친 부작용입니다.”
나는 머리를 찰나간 굴린 끝에 좀 더 효과적인 답을 찾았다. 리챠 씨에게 딱히 심적 부담감을 주려고 했다기보다는, 나중에 ‘그 마법 다시 보여 주세요’라는 부탁을 들을까, 미리 약 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런……!”
후, 이렇게까지 했으면 다시 해 보세요 소리는 최소한 안 듣겠지. 듣더라도 리챠 씨가 변호해 주든가 할 테고.
나는 그런 미래를 꿈꾸며 희미하게 웃었다. 온몸에 맺힌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리챠 씨.”
그런 순간에도 코피는 멎었다. 나는 그것을 느끼고 손수건을 떼었다. 잠깐 사이에 절반이 젖은 손수건이 내 손 위에서 찌그러졌다.
“움직이실 수 있죠?”
“그럼요.”
“혼자서도 갈 수 있으실 테고?”
“…그렇, 죠.”
“좋아요.”
이건 더는 못 쓰겠지. 나는 미련 없이 손수건을 버릴 생각을 하며 입꼬리를 좀 더 끌어 올렸다.
리챠 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제가 지금부터 마법 하나를 펼칠 겁니다.”
“…예.”
“그런데 이 마법이 다소… 반동이 심해서요. 이걸 쓰고 나면 저는 이 자리에서 못 움직일 겁니다.”
“잠깐… 마법사님, 그 말은…….”
“그러니 그동안 리챠 씨는 뮌문트로 달려가 주세요.”
“마법사님……!”
“괜찮아요.”
으음.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지 대충 알 것 같아서 좀 웃기고 슬프다. 절대 희생 각을 재려는 게 아닌데. 순전히 내가 마력창 수십 개를 소환해 악마들 때려잡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뿐인데.
“악마들은 절대 당신을 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게 문제가…….”
“아, 음. 혹시 제가 걱정되시는 거라면… 반동이 끝나고, 마력이 회복되거든 저도 따라갈 거니까요. 괜찮아요. 그냥 앞만 보고 가세요. 그것으로 당신의 의무를 행하세요.”
그렇지만 그걸 모르는 입장에선 많이 양심 아프겠지. 이해한다. 나는 울 것 같은 리챠 씨의 얼굴을 두고 헤프게 눈썹을 내렸다.
“지금부터 준비할게요.”
“…마법사님의 헌신은 반드시 성주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아하하…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요. 그러면 오히려 곤란해져서…….”
뭐? 성주님한테 보고? 그건 좀…….
성주님한테 들어야 할 이야기가 생긴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그건 도리어 독이다. 높으신 분의 관심은 항상 여파를 끌고 오니까.
“…어떻게 나온 집인데 다시 끌려가긴, 좀.”
하나 보통 사람들은 성주에게 잘 보이는 걸 좋아하겠지? 나는 그걸 고려해 또 하나의 약을 치기로 했다.
거짓말이 점차 불어나는 기분이라 뒤가 좀 걱정됐으나, 이미 벼랑 끝에 내몰린 삶이다. 그래서 괜찮았다. 나는 뒤 없는 사람처럼 웃었다.
“잠깐…….”
“그럼, 지금부터 하겠습니다.”
“잠깐 마법사님─”
나는 리챠 씨의 손을 붙잡고 그를 일으켜 세워 준 후, 그 등을 툭 쳤다. 막 깨어난 상황이고, 막 일어난 상황임에도 그의 몸은 살짝 흔들릴 뿐 무너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잘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뒤는 걱정 마세요.”
하면 이제 해야 할 건 이 사람이 살아서 뮌문트까지 갈 수 있도록 엄호하는 일이겠지.
나는 그가 안도할 수 있도록 최대한 환하게 웃어 주었다. 머뭇거리던 이가 결국 마음을 다잡았는지, 몸을 살짝 틀었다.
“대신… 이것, 가지고 계십시오. 미신일 뿐이지만, 복이 들어올 겁니다.”
“…네.”
다만 그는 떠나기 직전에도 내게 무언갈 건네주었다. 조그만 복주머니 목걸이. 나는 멀어지는 그를 보며 그것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하…….”
그러고는 앓는 소리와 함께 나무에 몸을 기댔다. 말에 짓밟힌 것처럼 아픈 다리에 꾸준히 힘을 주는 것도 썩 고역이었던 탓이다.
그래도 지지대가 생기니 버티는 게 훨 편하다. 나는 집중을 위해 눈꺼풀을 닫고 숨을 몰아쉬었다. 시야의 정보값이 사라진 만큼 다른 감각이 점진적으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스으으.
바스락.
스르르르르.
이제 동 트기 시작한 숲의 풀과 흙냄새, 바스락거리는 옷의 감촉, 사라진 벌레를 대신해 바람이 풀잎을 갉아먹는 소리.
소리.
내 온 신경이 마지막 것에 몰두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잔향이 나를 방해했으나, 어떻게든 흘려듣는 것으로 무시했다.
내가 지금 주목해야 할 방향은 오직 한 곳이다.
리챠 씨가 간 곳. 나는 그곳을 향해 감각을 집중하고, 마력을 끌어모았다. 쿵. 리챠 씨를 발견하고 몸을 틀던 악마 하나가 침묵했다. 쿠웅. 이제 둘. 털썩. 아니 셋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끝까지 인도할 수 있을 거라는 꿈은 꾸지 않는다. 아무렴 내가 일반인에 비해 예민한 감각을 지녔다 해도, 직선거리만 5km에 달할 경로를 전부 커버할 순 없었다.
내가 듣고 사정을 파악할 수 있는 거리는 기껏해야 50m, 그것도 이렇게 빡세게 집중했을 때만 가능했다.
“하아.”
함에도 리챠 씨에게 괜찮을 거라 장담한 것은 기실 도박사의 심정이었던 것이라.
“되면 좋겠는데…….”
보다 정확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한 도박쯤 되시겠다.
내 마력이 목도리를 세운 도마뱀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딱히 무언가를 하려는 것보다는 일종의 과시였다. 저어기 마역 너머 누군가가 하는 짓거리처럼,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행위.
‘…와중에 하는 짓은 이런 건가.’
그 상태에서 일제히 마력을 터트렸다. 폭발이라는 형태는 결코 아니고, 마치 가스를 살포하듯이 공기중에 살살 퍼트리는 식이었다.
‘제법 재능이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지만 이다음이 문제인데. 나는 감각 반경의 악마들이 흠칫 놀라는 꼴을 느끼곤 손가락을 움직였다. 톡톡. 손끝이 기대고 있던 나무의 표면을 두드렸다.
이걸 위협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악마들이 꽁지가 빠져라 이 근방에서 물러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저것들이 내 심정을 눈치채게 하려면 뭐가 좋을까?
‘한 번 본 걸로 요령을 터득하는 건 놀랍네.’
…퍼트린 마력으로 무언갈 더 할 수는 없을까?
나는 전방에 치우치도록 퍼진 마력에 의지를 담았다.
『외부로 마력을 표출할 때는 마력을 응집시키는 게 중요해요. 마력은 대기 중으로 흩어지는 성질이 있으니까.』
언젠가 들었던 조언이 나를 도왔다. 지금 공중으로 퍼트린 마력은 그냥 흩어져서는 안 됐다. 그것들은 좀 더 날카롭게, 살의를 담아 세상을 압박해야 했다.
“제발 눈치 좀 봐라. 고위 악마가 사냥하려 들 때만큼은 도망치는 습성이 있다며…….”
나는 사방에 퍼진 마력을 일일이 조정하느라 뜨끈하게 달아오른 머리를 매만졌다. 이것이 통했을까? 통했다면 좋겠는데.
“…최소한 근처에 있는 놈들은 가는구만.”
그렇지만 완벽히 먹히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다. 이럴 줄 알고 예비 계획도 세워 놨다. 내 손이 지지대가 되어 주던 나무를 밀어냈다.
휘청.
그 과정에서 몸이 좀 비틀거리긴 했는데… 참고 넘겼다. 근육통이 심하게 온 듯한 몸과 너무 열일 해서 멍한 머리의 조합은 넘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내고 있었다.
“후.”
문제는 여기서 위장 스킬을 더해야 한다는 건데.
나는 꽉 차 있는 HP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뒈질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풀피니까 괜찮겠지. 그건 안 괜찮을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하는 말이다. 달리 선택지가 없기에 할 수 있는 합리화이기도 했다.
아무렴, 나 아프다고 리챠 씨를 그냥 보내? 방금 한 일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그럴 순 없지. 아암, 그럴 순 없다. 못해도 30, 40m의 거리를 두고 따라가며 엄호사격까진 해 줘야 내 마음이 편했다. 리챠 씨는 가능한 죽으면 안 되는 인재였다.
탁, 탁!
“……?”
한데 내가 위장 스킬을 발동하고 막 리챠 씨의 뒤를 따르려던 그때. 최대한 줄이고 줄인 발소리가 내게로 돌아왔다. 본래라면 30m쯤은 앞서 나갔어야 할 리챠 씨의 발소리였다.
저 사람이 왜……? 앞에 악마가 있거나 하지도 않을 텐데 왜?
나는 의문을 품다가, 눈살을 살짝 찡그렸다.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눈알을 찔러서였다.
맞아, 눈썹.
동시에 내가 잊고 있던 무언가도 생각났다. 지금까지는 밤이어서 눈썹 색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지만, 이제부터는 또 다르기 때문이다.
아공간 팔찌를 통해 내 손에 염색약과 붓이 빠르게 쥐이고, 나는 왕년의 기억을 되살려 눈썹과 속눈썹만 빠르게 칠하고 다시 넣었다. 잘 그려졌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었다.
“마법사님.”
대신 간발의 차로 리챠 씨가 내 앞에 섰다.
“제가 업겠습니다. 그냥 같이 가시죠.”
내 표정이 미묘해졌다.
나… 무거울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