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내게 말해 줘 (4)
“저…….”
아크메이지가 편견을 막기 위해 다급히 선을 긋고, 그 행위 자체에 마이스터가 약간의 불만을 머금었을까.
다니엘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 마법에도 분야가 있습니까? 저는 순전히 마법이라는 학문만을 다루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튀어나온 질문은 마법사에 대한 것이다. 마법사와 접할 일이 없는 보통 사람이라면 충분히 표할 만한 의문이기도 했다.
“허, 그냥 의사 한 사람이 외상과 내상 치료를 다 한다고 말하시죠?”
하나 당연하게도, 그런 다니엘의 무지를 마이스터는 이해해 주지 않았다.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사람조차도 모르기 쉬운 지식이란 건 그에게 아무 의미 없는 양했다.
한심함을 장착하고 있는 마이스터의 시선에 다니엘의 눈동자가 데굴 굴러갔다.
“…아니었습니까?”
“당신 신전에 소속된 사람 맞아요?”
“…치료 담당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서.”
“일하고 치료받은 적은 있을 거 아닌가?”
“그, 음…….”
그렇지만 그런 다니엘을, 데스브링거는 구해 주지 않았다. 그도 저런 지식을 일행과 함께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것과 이것은 별개였다.
“혹시 그 머리는 장식으로 들고 다녀요?”
…매번 저리 갈굼당하는 게 좀 불쌍하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별개다.
“너무 그러지 말게.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잘 모를 수 있는 분야들이 아닌가.”
“쯧.”
보다 못한 아크메이지가 나선 후에야 마이스터의 입이 닫혔다.
“딱 한 번만 말해 줄 거니까 귀 씻고 잘 들어요. 다음에도 물어보면 그땐 귓구멍을 후벼 파 줄 거니까.”
아니다, 남의 멍청함을 용납하지 못하는 그는 지식을 때려 박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마법에도 분야는 있어요. 가령 물질의 본질을 탐구 본질 마법이나, 자연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걸 흉내 내려는 자연 마법 같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급 지식까진 전수할 생각이 없는지 전부 개념 수준에서의 설명이었다.
졸지에 밥 먹으면서 강의를 듣게 된 다니엘과 데스브링거의 표정이 오묘하게 구겨졌다. 인퀴지터는 여전히 밥만 묵묵히 먹고 있다.
“…마지막으로 생명 그 자체를 분석하고 관섭하는 생명 마법이 있죠.”
“……?”
그러다 잠깐. 데스브링거는 미묘하게 내려간 마이스터의 목소리 톤을 두고 귀를 까닥거렸다. 대화를 듣고 있지 않는 듯했던 인퀴지터조차 주먹을 콱 움켜쥐긴 했으나, 당장은 이게 더 중요했다.
혹시 생명 마법을 싫어하나? 암녹색 눈동자가 마이스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잠깐… 생명을 분석하고 관섭한단 말입니까? 그건 마치…….”
“신의 영역에 침범하려는 것 같다고요? 맞아요. 그런 마법사들도 있긴 해요.”
“그건 불경입니다!”
아, 거참, 시끄럽네.
데스브링거는 다니엘의 외침을 두고 반사적으로 눈을 찌푸렸다. 그 또한 생명에 관섭한다는 말을 두고 껄끄러움을 느끼긴 했으나, 생명 마법은 그에게 너무 멀리 있었고 다니엘은 참으로 가까웠다. 그의 입술이 조금 비죽거렸다.
“마탑에서는 그걸 인지하고서도 내버려 두고 있습니까?”
“이봐요, 고지식한 사제님.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지만 지금은 다니엘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데스브링거는 반쯤은 관성으로, 반쯤은 직업병으로 마이스터를 찬찬히 관찰했다.
가라앉은 목소리, 조금 더 깊어진 눈동자, 방어적으로 낀 팔짱.
“여기서 말하는 분석과 관섭은 사람의 잘린 팔다리를 재생시키거나 악마들의 신체 구조를 파악해 약점을 찾아내는 뭐 그런 거거든요?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하는 등의 행위는 신전 이전에 마법사들이 먼저 규제했어요. 우리들이 뭐 머저린 줄 아나?”
와중에 스스로의 목덜미를 매만지는 손.
“그리고 생명 마법은 본래 창조를 위해서 탄생한 분야가 아니에요. 가족을 잃은 마법사가 의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한 치료 마법이 시초인 학문이지.”
아니, 만지는 건 과연 목인가?
“…단지 그런 거예요. 사제 중에서도 부패하는 인간이 나오듯, 마법사 중에도 선을 넘는 녀석들이 존재하고 말 뿐인. 그런 이야기요.”
암녹색 눈이 장갑을 낀 손의 손끝을 살폈다. 손 끄트머리가 계속 쓸어 내리는 곳은 목이 아니었다. 목에 새겨진 고리 형태의 문신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함부로 과하게 반응한 것 같군요. 그런 뜻깊은 학문이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됐어요. 시작점이 그러할 뿐이지, 지금에 이르러선 미친놈이 제일 많은 분야인 것도 맞으니까.”
“어, 음… 그렇습니까?”
“좀… 그런 편이긴 하네. 생명 마법의 본산이 북쪽이라 더욱 그런 면모가 깊지. 그곳은 가장 치열한 전선이 있는 곳이고… 그만큼 생명 경시도 심한 편이니 말일세. 그에 맞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고 하는 종자들도 많고.”
“수단과 방법을…….”
“혹시 몰라 말하는데. 북쪽에 가더라도 마탑에만큼은 가능한 가지 말게. 그곳은… 썩 볼만한 곳이 못 돼.”
데스브링거는 고리 형태의 문신을 쓸던 손이 팔뚝 아래로 내려가 그곳에 새겨진 문신을 또 한 번 긁는 걸 보았다. 딱히 의식적인 행위로 보이지는 않았다.
“동감이에요. 당신같이 딱딱한 사제가 갔다간 바로 범죄자가 돼 버릴걸.”
“…제가 왜 범죄자가 됩니까?”
“이딴 미친 짓을 하는 인간들을 하늘 아래 내버려 둘 수 없다고 검 휘휘 휘두르다가 경비대한테 잡혀갈 거란 소리예요.”
그렇지만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딱 문신이 새겨진 부분만 긁는 것이, 그걸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과연 흔한 일일까?
…평소엔 저런 버릇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그 정도입니까.”
“악마를 산 채로 해부하는 건 고사하고, 일부 마탑에선 신전의 감시하에 자원자를 받아 인체 실험도 하거든요. 당신 같은 딱딱이한테 그런 건 좀 자극적일 테죠?”
“인, 인체 실험…….”
“아, 당연하지만 멋대로 사람 납치해서 연구하는 쪽은 불법이에요. 거긴 발견하는 즉시 박살 내도 안 잡혀갈 테니 너무 걱정 마시고요.”
“그런 걱정은 안 했습니다……! 그보다 멋대로 사람을 납치하는 자들도 있는 겁니까?”
“세상에 법 있다고 범죄자 안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당연히 있죠.”
“그 무슨……!!”
데스브링거는 낄낄 웃는 마이스터의 앞에서 자신의 직업병을 저주했다. 빌어먹을, 먹물쟁이 놈의 과거 같은 건 딱히 알아낼 생각 없었는데.
괜히 속이 거북해졌다.
* * *
“대체 무슨 일이래요?”
각 잡고 목욕하기엔 상황이 영 여의치 못한지라. 나는 마을 사람들을 따라 우물 앞에서 핏물만 좀 씻어 냈다. 가발이 단단히 고정된 채라 참 다행이었다. 세수랍시고 머리에 물을 뿌려도 흔들리지 않는다.
“가도를 점령한 악마의 숫자를 파악하기 위해 병사들을 좀 파견했다더구나. 한데 예상보다 그 수가 더 많아서…….”
“악마한테 다 당한 거래요……?”
“횡설수설하는 걸 들은 거라 확실하진 않지만, 다들 피부에 검은 핏줄이 돋은 걸로 보아 악마에게 당한 건 맞는 것 같다.”
“이런…….”
그 과정에서 이 사태의 시작점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그러니까, 저 세 명의 사람이 몸뚱어리에 창상을 달고 온 이유 말이다.
“운이 좋았지.”
글쎄, 과연 저걸 운이 좋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걸까? 한 사람은 어깨가 반쯤 잘려 나갔고, 한 사람은 배가 갈라져 내장이 흘러나올 뻔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아예 손목이 뜯겨 나갔는데?
“…다른 사람들은요?”
“모르지. 하지만 다들 죽지 않았겠나? 파견된 병력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단 건 그만큼 저 밖에 악마가 많다는 의미일 텐데.”
하지만 저걸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다. 촌장의 말마따나, 도망치는 것조차 시도할 수 없던 이들 또한 있었을 것이므로.
“음, 그보다 묻는 게 많이 늦어졌군. 자네는 누군가?”
나는 문득 저 성벽 바깥에 사람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궁금해졌다. 지금 박차고 나간다면 그들을 구할 수 있을지 또한.
“…여행자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들을 구한다면, 수십의 병사가 당해 버릴 만큼 많은 수의 악마들을 헤치고 그들을 구해 낸다면.
그 뒤는 어떻게 될까. 어쩔 수 없이 들고 말 의문들을 난 종식시킬 수 있을까? 정체를 의심받지 않고 넘길 수 있어?
“마법을 조금 부릴 줄 아는 여행자죠.”
하나 그 모든 불안에도 불구하고, 내 입에서 튀어나오고 마는 건 그런 이야기다.
“저들이 달려온 곳을 알려 주세요.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데려올 수 있도록.”
“네에?!”
웃음이라고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입새로 새어 나왔다.
“당신 미쳤어?! 방금 촌장님이 말했잖아요! 병사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그건 저도 들었습니다만…….”
“그런데도 나가겠다고요?!”
그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티샤가 펄펄 뛰었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걱정해 주는지 모르겠다. 나는 젖은 손을 몇 번 말아 쥐었다.
“아직 산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들을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산 사람을 구하는 것도 상황을 봐 가며 해야죠! 지금은 악마들이 드글드글한 상황이라니까?!”
“괜찮습니다. 제 한 몸 건사할 능력은 됩니다.”
“아니, 악마는 그런 걸로 되는 것들이 아니라니까……!”
티샤가 말이 안 통한다는 듯 본인 가슴을 퍽퍽 치고, 그동안 잠깐 물러나 있던 촌장이 침착한 얼굴로 발언했다.
“…그건 자살행위야.”
그도 나를 말리고 싶었던 듯하다.
“으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별개로 촌장의 말은 틀리지 않다. 저 밖에 돌아다니는 악마들이 내 육신을 죽이진 못하겠으나, 이로 말미암아 정체가 발각된다면 그건 그것 나름의 자살행위일 것이므로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로 나서지 않는다면, 저는 제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 될 겁니다. 할 수 있음에도 저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기 싫어서 외면한 꼴이니까요.”
그러나 그건 결국 들키지만 않으면 될 문제 아닐까? 저들에게 내가 싸우는 장면을 보이지 않고, 악마기사를 연상시키는 무언가만 내주지 않으면 되는, 그런 문제.
“반면 제겐 그저 도박일 뿐인 이 일이, 저 사람들에게 있어서 단 한 번뿐인 기회가 될 수 있을지 누가 압니까?”
하므로 나는 나를 설득시키려는 합리화의 문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어쩔 수 없어요.”
나는 내게 떳떳해지기 위해 나갈 것이다.
“당신…….”
티샤와 촌장의 눈이 척척해졌다.
함에도 방향을 쉽사리 지목하지는 않았는데, 나는 그 심정을 이해했다. 아무렴, 저들 시선에 나는 가망 없는 일에 도전하는 자살 희망자였고, 그런 주제에 자살을 도와 달라 부탁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가 껴 있더래도 자살에 가까운 일을 누군들 나서서 동조하고 싶지는 않을 터. 주저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들의 망설임을 공감했다.
“혹 말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제가 직접 찾아도 됩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러나 시간을 오래 끌게 할 수는 없다. 나는 주머니에 집어넣었던 장갑을 도로 꺼냈다.
젖은 손은 더럽게도 안 들어갔으나, 억지로 구겨 넣으니 어떻게든 밀어 넣어졌다. 피 묻은 옷소매가 그 위에 덮이고, 벗어 뒀던 망토가 등과 어깨, 상체 일부를 가렸다.
“…이쪽일세.”
“감사합니다.”
“…하지만 문은 열어 주지 않을 걸세. 문을 열다가 악마가 쳐들어오면, 우린…….”
“그건 괜찮습니다. 뛰어내리면 됩니다.”
“저, 도련님.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티샤의 말에 그저 빙긋 웃어 보였다.
“대신, 음. 제가 사람을 구해 오거든, 성문을 열지 않고도 그분들을 안에 들일 수 있게 도구만 준비해 주세요. 그 정돈 부탁드려도 되겠지요?”
“문을 열어 달란 것만 아니면 별 상관은 없지만… 문을 안 열고 어떻게 사람을 안에 들이나?”
“아, 음.”
여긴 산악 구조용 들것이 없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인벤토리에 넣어 놓고 다니는 종이과 만년필을 꺼내 그림을 빠르게 휘갈겼다.
허공에서 갑자기 생겨난 물건들을 두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그건 알 바 아니었다. 이미 마법 쓸 수 있다고 사기 쳤으니까.
“이렇게 생긴 물건을… 제가 다녀오는 동안 만들어 놓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제가 오면 성벽 위에서 이걸 내려 주세요. 여기에 사람을 눕힌 채로 끌어올리면 문을 열지 않고서도 사람을 안에 들일 수 있을 겁니다.”
“이건… 그렇군.”
“종이는 놓고 가겠습니다.”
웹작 생활로 그림 속도가 많이 빨라져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시간을 엄청 쓸 뻔했군.
나는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촌장에게 통째로 넘긴 후, 안내를 따라 성벽으로 향했다. 내가 들어온 성문이 6시에 위치해 있다면 이 성문은 10시쯤에 위치한 것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못 구해도 뭐라 하는 사람 없으니까, 꼭 살아 돌아오라고요, 도련님!”
“네에.”
좋아. 악마들이 아직 여기까지 온 것 같지는 않고.
나는 위장 스킬을 해제한 채 숨을 들이쉬었다. 아직 디버프는 완전히 빠지지 않았지만…….
“이따 뵙죠.”
이 정돈 완전 괜찮아. 나는 2층짜리 성벽을 훌쩍 뛰어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