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존재한다면 (5)
“어… 그러니까 기사 셋이 하루아침에 죽은 적 있냐고?”
“정확힌, 기사 셋과 그 가족들이요.”
“으음. 그런 이야긴 딱히 못 들어 본 것 같은데?”
“…그런가요?”
“아니면 혹시 바터로 전투를 말하는 건가? 그도 아니면 브뤼사다 전투?”
“브뤼사다 전투는… 아마 아닐 겁니다. 한데 바터로 전투는……?”
“12년 전에 악마들이 엄청 쳐들어온 적 있거든. 한둘 죽어야 많이 죽었다 평가받는 기사들이 일곱이나 죽어 나갔을 정도로 치열한 전투기도 했고…….”
그렇구나… 그보다 12년 전이라. 시간대가 맞나?
나는 시간대가 맞는지 고찰하며 부연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했다. 가게 주인이 어깨를 으쓱이며 내 청을 받아 주었다.
“그때 일로 이 도시에서 명망깨나 있던 기사가문도 하나 망해 버렸어. 현직 기사이자 가주였던 리펜슈타인 기사님이 후계자랑 같이… 으음. 뭐 그렇게 됐거든.”
물론 소리 높여서 좋을 이야기는 아닌지, 그는 내게 자리를 내준 후 사근사근 속삭이듯 말했다. 내게만 간신히 들릴 목소리가 전달한 내용은 ‘혹시?’ 싶어지는 것이다.
“…기사가문?”
“대대로 기사 한 명씩 배출한다 싶으면 그 집안을 통째로 기사가문이라 부르는데. 그건 몰랐나 봐?”
“아… 그런 거였군요.”
기사 한 명씩 배출한다 싶으면 기사가문이라.
그럼 진짜 악마기사는 기사가문의 사람이었을까? 아버지도, 형도, 누나도 기사였던 걸 생각하면 아마 그럴 확률이 높지 싶긴 한데…….
“혹 그분들이 어찌 생겼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나는 의자를 나눠 준 가게 주인에게 미리 끓여 둔 찻물을 꺼냈다. 가죽 주머니에 담겨져 있다곤 하나 인벤토리에 넣어 둔 것이니 가죽 냄새가 배진 않았을 거다.
“잔을 가지고 다니네?”
찻잔은 뭐… 뜨거운 상태 그대로 담은 건데 그걸 저 조그만 입구로 벌컥벌컥 마실 순 없잖아?
“아무튼 들려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내가 그들을 멀리서밖에 본 적이 없어서.”
“머리색이나… 그런 작은 특징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럼 다행이고. 근데 이거 왜 따뜻해?”
“여관에서 나올 때 막 끓였던 거라.”
“그래도 그렇지 아직까지도 이렇게 뜨뜻할 수 있나……?”
가판대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이야기로 돌아갔다. 내겐 감사한 일이었다.
“아무튼, 그분들은 머리 색이랄 게 없는 분들이야.”
“……?”
“비늘 달린 샤기족이었거든.”
“아…….”
각설하고 비늘 달린 샤기족이면 그럴 만하다. 그들은 털 대신 비늘만 존재하는 편이니까.
“키도 엄청 컸어. 아마 자네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컸을걸?”
“그… 자식분도?”
“그렇지. 자식들도 그분을 꼭 닮아서 죄다 고급스러운 검은 비늘을 가지고 있었는데… 안타깝게 됐지.”
다만 ‘혹시’ 싶었던 건 ‘역시나’라는 말로 끝났다. 그들은 내가 찾던 이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네가 원하는 이야기였나?”
“아뇨… 제가 찾던 분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대로 눈을 내리깔았다.
“제가 찾던 분들은 전원 미들족이었거든요.”
오프닝 영상이 기억에서 많이 희미해졌다곤 하나, 그래도 기억하는 것들은 몇 있다. 악마기사의 아버지와 형, 누나는 미들족 기사였다.
“전원 미들족인 기사가문은 이 도시에 없는데…….”
“그렇습니까.”
여기에 그 세 사람은 전부 갈색 머리카락이었고, 어머니와 막내는 회색 머리카락이었지. 면적이 적고 조명 반사 때문에 색이 바뀌기 일쑤인 눈동자까지는 차마 기억 못 하겠지만.
“도움이 안 돼서 어쩌나.”
“괜찮습니다. 그냥… 여기가 아니었던 모양이죠.”
하나 이곳에 악마기사로 추정되는 이가 없다면 됐다. 나는 다소 홀가분한 기분으로 조그만 의자에서 일어났다. 등받이 하나 없는 건 둘째 치고 다리를 구기지 않으면 앉을 수 없단 게 좀 불편하던 차였다.
“가게?”
“네. 이야기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이 얘기 하나 들었다고 이 도시를 바로 뜰 건 아니다. 아무렴 한 사람의 말만으로는 놓치는 게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니 좀 더 조사는 해 볼 것이다. 기사학교 관련자나… 그 외 사람들을 찾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더불어, 그렇게 해서도 못 찾는다면 그땐 다른 도시로 넘어가면 그만이다. 암, 동부의 기사학교가 만하펠트에만 있는 건 아니지 않던가.
하다못해 거리가 멀어서 미뤄 둔 도시 베르가르트도 있다. 왜, 예전에 나한테 힌트를 몇 개 줬던 성주가 있는 그곳 말이다.
거리도 거리고, 내 신분도 신분이라 거긴 가능한 최후의 보루로 내버려 둘 거지만… 최소한 이곳 외에도 찾아볼 곳은 아직 있다.
나는 올라오는 초조함을 내리눌렀다.
와글와글.
한데 그런 나를 돕기 위함인 건지 뭔지. 그쯤 되어 학교 내부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발소리와 말소리가 뒤섞인 채 담벼락 입구와 가까워지는 걸 보면 다들 밖으로 나오는 중인가 싶다.
“아이고, 이런. 내 정신 좀 봐. 떠드느라 준비를 못 했네.”
“아… 저 때문인가요?”
“청년 때문만은 아니고…….”
그에 맞춰 가게 주인도 분주해졌다. 준비해 둔 빵에 서둘러 내용물을 눌러 담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보다 일찍 끝날 게 뭐람. 원래라면 30분은 족히 뒤에 나올 녀석들인데.”
그 말은 거짓이 아닌지, 바빠진 건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다른 가판대의 사람들 또한 서둘러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다들 생각보다 빨리 나오는 사람들을 두고 당황한 눈치다.
“도와드릴까요.”
“그럼 나야 고맙지. 근데 할 수 있겠어?”
“직접 조리하는 것만 아니면 얼마든지요.”
그를 두고 나는 손을 걷어붙였다. 그가 내게 친절을 베풀었으니 나 또한 질 수 없다는 마음이었다.
그가 고기를 굽기 위해 불을 피우는 동안, 나는 바닥이 드러난 절임 통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빵을 나열했다.
곧 훈련으로 배가 꺼진 걸신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으아, 배고파!”
“두 개만 주세요!”
“저는 고기 가득!”
병사들은 처음 보는 얼굴의 등장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본인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고자 주문을 쏟아 냈다.
덕분에 나는 관심 한번 받지 않은 채 주인을 보조했다. 고작해야 빵에 채소절임을 담고, 돈을 받아 거슬러 주는 정도의 도움이었기에 폐 끼치는 일도 없었다.
“엄청 바쁘네요.”
“이 뒤부턴 넉넉해.”
여기서 또 다행인 점은, 한정된 수의 손님이 여러 가판대에 분산된 덕에 그중 일부만 감당하면 된단 것이었다.
해일과 같던 주문들을 한차례 버텨 내니, 그 뒤부턴 다시 여유가 찾아왔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던 내 손이 허공에 탈탈 털듯 스트레칭을 했다.
“매일 이렇게 하시는 거예요?”
“그렇지.”
“엄청 힘드시겠네요…….”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주인이 낄낄대며 웃고는 내게 인사했다. 덕분에 오늘은 덜 바빴다는 감사 인사였다.
“도와준 값으로 아까 먹은 빵값 돌려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엥, 정말로?”
“아저씨 아니었으면 저도 이야기 듣느라 발품 팔았어야 했을 텐데요, 뭐.”
“그렇다면 다행인데…….”
그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더니 저녁이라도 같이 먹겠냐며 초대 의사를 밝혔다. 얼마 전 자식이 분가하는 바람에 아내도 적적해하는 상태라고, 와 주면 분명 좋아할 거라고 그런 부연 설명이 덧붙여졌다.
“저야 초대해 주시면 감사하긴 한데…….”
“주인장, 아직 안 닫았으면 여기도 하나… 어? 아까 그 청년 아닌가?”
하나 그 초대는 예상치 못한 일로 무르게 되었다.
“왜 여기 있나?”
아까 출입 검문소에서 봤던 기사가 손님으로 찾아왔다.
“아는 사이… 십니까?”
아무리 넉살이 좋은 상인도 풀플레이트를 갖춰 입은 기사 앞에선 너스레를 부릴 수 없나 보다. 가게 주인의 입에서 자동적으로 존대가 튀어나오고, 그의 두 눈은 나와 기사 사이를 연신 살폈다. 아무래도 내가 높은 사람인 건 아닌가 의심하는 눈치였다.
“아까 검문소에서 뵀거든요.”
“아하…….”
그런데 도와준 사람에게 그런 불안감을 실어 줘서 뭐 하나. 나는 부드럽게 오해를 풀어 내곤, 다시 기사와 마주 보았다.
“이곳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 이분께 이야기를 대신 듣고 있던 참입니다. 겸사겸사 일도 도와드리고요.”
“아하.”
뭐, 내가 들은 건 학교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걸 저 기사가 알 일은 없을 것이다. 기사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겁먹은 가게 주인이 그에게 진실을 말하려 들진 않을 테니까.
또, 실제로 완전히 어긋난 발언도 아니고.
“마음 같아선 한 번쯤 구경시켜 주고 싶네만… 일반인에겐 출입을 금하는 곳이 저 안이라서 말일세.”
“이해합니다.”
오히려 한 번 마주친 사이에 저렇게까지 말해 주는 기사가 더 신기하다.
나는 내 변명이 너무 잘 먹힌 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가게 주인에게 인사했다. 저녁 식사는 글러 먹은 것 같으니, 차라리 마무리라도 좋게 하려는 노력이었다.
“어어, 잘 가게.”
역시나, 미묘한 표정의 가게 주인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눈에 잘 들어 보라고.” 다소 이해 못 할 응원을 속삭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것도 인연이겠다, 궁금한 게 있으면 한번 물어나 보게. 보안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이라면 대답해 주겠네.”
그사이, 가게 주인에게 빵을 받아 든 기사가 내게 제안했다. 그건 꽤나 감사한 제안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기사라면, 같은 기사에 대해 잘 알 테니 말이다.
“혹시 본인을 포함해 장남과 장녀를 기사로 키워 낸 미들족 기사를 아십니까? 듣기론 차남도 기사후보생이었다던데.”
“흐음… 이름은 아나?”
“이름은 모릅니다.”
“외관도?”
“아, 갈빛 머리카락을 가지신 건 압니다.”
“갈빛 머리… 너무 흔한데.”
“…참고로 지금은 돌아가셨을 겁니다. 가족분들과 함께, 일시에.”
“음?”
본인의 콧수염을 쓰다듬던 기사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 했더니, 뮌문트의 잉걸불이었군.”
찌릿. 오른팔이 불타듯 아파 오기 시작했다.
“…아십니까?”
“자네가 찾는 이와 일치하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그 사람 자체는 알고 있네. 뮌문트에서 가장 유명한 기사였으니 말일세.”
하나 그 아픔은 나를 괴롭히지 못했다. 찾았다. 오른 어깨를 쥔 손이 굳은살 박인 손끝으로 옷자락 위를 할퀴었다.
“그런데 그는 왜 찾지?”
“…제게 잠깐 검을 가르쳐 주셨던 분이, 그분께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하신 적이 있거든요. 이 이상은 못 들었지만, 여행길에 오르고 나니 좀 궁금해져서.”
그러는 동안에도 대화는 흘러갔기에 나는 다급히 변명을 짜냈다. 이렇게 빨리 찾을 수 있을 줄은 몰랐기에 다소 급조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그보다 뮌문트에 소속된 분이셨군요. 전 당연히 체체바토르의 기사님일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나?”
“그야… 남에게 추천할 정도면 정말 훌륭한 기사님이실 텐데, 그런 기사님이 계실 곳 하면 체체바토르가 가장 먼저 떠올랐거든요.”
물론 여기서 끝냈다가 의문이라도 사면 안 되기에, 나는 화제를 서둘러 돌렸다.
체체바토르 최고, 짱. 뮌문트보다 먼저 떠오르는 최고의 학교! 그런 뜻을 돌려 돌려 전하자 기사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기분 나쁜 눈치는 아니고 굉장히 흡족한 얼굴이었다.
화제를 돌리려던 의도가 제대로 먹혔다.
“크흠, 그럴 수 있지. 아암, 그럴 수 있어.”
기사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내 어깨를 탕탕 두드렸다. -300. -300. -300. HP가 쑥쑥 깎이더니 내 목구멍을 붉은 액체로 가득 채웠다.
“웨엑.”
“흐어억, 자네 괜찮나?!”
“괘, 괜찮습니다.”
이게 무슨 시트콤도 아니고.
나는 창백한 얼굴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손사래를 쳤다. 기사를 진정시키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
.
.
“그래서 이젠 어쩔 건가?”
한참 뒤 핏물이 더는 나오지 않게 됐을 때.
기사가 내게 물었다. 답하기 참 어려운 질문이었다.
“글쎄요…….”
솔직한 마음으론 당장이라도 뮌문트를 향해 떠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역시 어렵겠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소모한 물자도 채워야 하고 푹신한 침대에서도 좀 자고 싶으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안 될 걸 알면서도 무턱대고 와서 그런가.”
무엇보다 바로 뮌문트에 가 버리겠다고 하면 겨우 높여 둔 이 기사의 우호도가 바로 0이 될 것 같았다. 그가 한 번 스쳐 지나갈 인연에 불과할지라도 그건 좀 피하고 싶었다.
“으음…….”
“여비도 그렇게 많이 남지 않은 상태고…….”
뭐, 그래도 위장 스킬을 생각하면 이삼 일 내에 뜨긴 해야 할 테니까. 나는 처참해진 HP를 여비로 돌려 말하며 어설프게 웃었다.
“그래도 목표하던 곳만은 제 두 눈에 담았으니 이걸로도 만족─”
“자네!”
“예?”
그리고 내 손을 향해 기사의 손이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빼지 않은 건 내 필사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기사의 손을 피하는 건 역시 이상하니까, 그냥 잡혀 주자. 잡혀 주자. 빵 부스러기가 가득 묻은 손이지만 그래도 잡혀 주자……!
“그럼 우리 집에서 며칠 묵는 건 어떤가?”
하나 그 노력은 이어진 말 앞에서 의문형으로 돌아가 버렸다.
“학교 구경까진 어렵더라도, 거기서 뭘 하는지 맛 보여 주는 건 내가 해 줄 수 있네.”
그으, 잡혀 주는 게 정말 맞았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