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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261화 (261/389)

261화 만약 (9)

아카타는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와 제작자의 정체가 숨겨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손쉽게 팔려 나가는 팔찌를 보며 복잡미묘한 심정이 되었다. 실소와 헛웃음이 번갈아 나오는 그런 심정이었다.

“그래도 돈은 벌렸으니까…….”

도시 사람들에게만 유행했다면 그렇게 큰돈이 벌리진 않았을 것이나, 마법사에게까지 유행이 퍼진 효과는 달달했다. 목표했던 백만 갈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녀의 나이대─어쩌면 웬만한 촌부들까지 포함해─에선 벌기 힘든 돈이 쥐였다.

“그냥 번 수준이 아니지. 제품 대비 엄청 번 거지.”

아카타는 선임 첼시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이 순간에도 그녀의 팔 세 쌍은 실팔찌를 따고 토시를 짜고, 담요를 뜨고 있다.

“거기에 주문 제작도 받기 시작했잖아.”

“그래봤자 세 사람인걸요.”

“그리고 그 세 명 전부가 마법사지. 심지어 그중 두 명은 아이템 제작에 힘쓰는 사람이고! 이건 정말 자랑할 만한 일이야!”

첼시의 과장된 외침에 아카타는 눈을 데굴 굴렸다.

그러곤 인정했다. 이건 확실히 자부심 가질 만한 일이다. 지금 첼시가 언급한 두 사람의 위상은 천상계에 버금가는 상태였다. 마법 도구의 본산, 베뮈르헨 마탑 지부가 미증유의 사태로 망해 버린 상황이기에 더더욱.

“거기에 마법사들은 한번 꽂히면 한동안 그것만 쓰는 성향이 있다고. 마법사 한 명에게 퍼지면 다른 마법사들에게 퍼지는 경우도 왕왕 있고. 분명 잘될 거야.”

“그럴까요.”

“그래. 당장 상단주님도 네가 될 것 같으니까 팍팍 밀어주고 계시잖아.”

하긴 그건 그렇다. 직원 대우가 굉장히 좋은 상단임을 고려해도, 일주일 치 일을 빼 주고 재료도 무료로 구해 주는 등의 행위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다. 마법사와 연을 맺는 것에 기대를 걸고 하는 투자지.

“그렇지만 연을 맺어도… 뭐가 확 달라질 것 같진 않은데요.”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이 시기에 아이템 제작사와 좋은 인연으로 남는 건 그 자체로 충분한 이득이야. 앞으로 휴델렌 마탑 지부가 가질 위상을 생각하면 더 그렇고.”

남부에 한정해, 베뮈르헨 지부 다음으로 아이템을 많이 공급하는 마탑은 휴델렌 지부다. 베뮈르헨이 생산한 물품 중 60%를 북부에, 30%는 남부에 공급한 걸 고려하면 휴델렌이 약간, 아주 약간 좀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남부에 유통되는 아이템 중 대략 40%가 휴델렌 생산품이고 39%가 베뮈르헨 생산품인 느낌으로.

하나 중요한 건 휴델렌이 더 많이 팔았냐 베뮈르헨이 더 많이 팔았냐가 아니다. 휴델렌에 버금가는 물량을 담당하던 공급처가 예고 없이 몰락해 버렸다는 것이 진정 중대한 사항일뿐.

하면 그들, 거래처를 갑자기 잃어버린 39%의 손님들은 과연 어디로 몰릴까? 수요는 동일한데 공급이 줄어들며 폭증하게 될 아이템값은? 그걸 만드는 제작자의 가치는?

그런 점에서 제작자와 연을 맺은 건 첼시 말마따나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정도를 지킬지언정 상인으로서 이익을 좇는 그들 상단과 상단주가 이만치 기뻐할 정도로.

“하긴…….”

또한 좀 더 고민해 보거든 이 인연은 소녀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었다. 아무렴, 이렇게나마 안면을 튼다면 나중 가서 아이템을 구매할 때 약간의 배려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겠나.

할인이나 무조건적인 우선권까진 바라지도 않아. 별 잡것이 의뢰를 넣었다며 광속으로 거절당하는 것만 피해도 충분한 배려다.

그녀가 최대한 빨리 넣어야 할 의뢰가 있는 상황이기에 더 그렇다. 아카타는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람을 또 한 번 떠올렸다.

“아, 다 됐다.”

“다 됐어?!”

그사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팔 하나가 제품을 완성했다. 실팔찌나 토시는 진즉 완성되어 새 제품을 만드는 중이고, 지금 완성된 건 담요다. 마법사 중 한 명이 주문한 제품이기도 했다.

공간의 활용을 위해 아카타와 한 공간에서 서류 처리를 하던─보다 정확히는 서류 처리 하는 공간을 아카타의 작업실과 겸하도록 한 거지만─첼시가 책상을 치며 일어섰다. 흥분한 게 십 리 밖에서도 보일 수준이다.

“그럼 이제 배달만 하면 되는 거지?”

“잠시만요. 하자 있는지 확인 좀 하고.”

반면 아카타는 침착하게 제품의 완성도를 확인했다. 기존에 유행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특색의 담요가 손짓 한 번에 펄럭 펴졌다. 좋은 실을 써서 그런가 도톰한 정도에 비해 무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 정도면 체력 약한 마법사들도 무리 없이 덮고 다닐 것이다.

“괜찮아?”

“괜찮네요.”

“좋아. 그럼 전달하고 올게!”

“아. 그거 말인데요. 제가 직접 드리고 와도 될까요? 어차피 제가 만들었다는 것만 숨기면 되니까.”

거기에 마탑은 눈이 여덟 개인 사람을 심부름꾼으로 썼다고 해서 불쾌해하는 곳이 아니다. 애시당초 대삼림과 좋은 연을 맺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니만큼 더 절절맬 것이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막을 순 없지만… 왜?”

“마법 아이템을 구경하고 싶어서요.”

“뭐어… 그렇다면 막을 이유 없지. 그래라.”

좋았어. 아카타는 첼시가 도로 앉는 걸 보며, 담요를 차곡차곡 접어 포장지에 집어넣었다. 린넨 천에 감싸 리본으로 묶은 상품은 예의에 썩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다녀올게요.”

소녀의 통통 튀는 듯한 걸음이 상단 건물 밖으로 이어졌다.

【아카타.】

【어. 아오리 님.】

숙소에 있어야 할 사람이 상단 앞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마탑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왜 여기 계세요?】

【숙소 주인이 저희 일행을 썩 좋아하지 않는 눈치기에 구경이나 하고자 나왔습니다. 겸사겸사 아카타가 일하는 곳을 제 눈으로 보고자 왔지요.】

【아하.】

【그보다 어딜 가는 길입니까?】

【마탑에 배달할 물건이 있어서요.】

【그렇군요. 잘됐습니다. 저도 마탑을 한번 경험해 보고 싶던 차였습니다. 혹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고향 부족민들에겐 유감이 많으나, 타 부족이었고 그녀에게 많은 선심을 써 줬던 대족장과 그의 제사장─이제는 부족의 제사장이 아니라 늪의 제사장으로 발탁됐다는 듯하지만─에겐 얼마든지 친절을 베풀 수 있다.

아카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길 안내를 위해 한 발짝 앞장섰다.

【다른 분들은요?】

【저처럼 도시 구경 중일 것입니다. 식량과 약초를 조달한 지금, 저희가 도시에 나온 목표는 전부 달성되었으니까요.】

참고로 이 말의 기반되는 사정은 이러하다.

얼마 전, 대삼림은 베뮈르헨 사건을 공식적으로 접하게 되었고, 그 비극적인 참사에 대족장은 바깥과의 우호를 다질 겸 피해 입은 자들을 도울 겸 ‘물자 지원’이란 결정을 내렸다.

아오리가 지금 휴델렌에 서 있는 이유였다.

【…그래서 아카타, 구매처는 확실히 찾으셨습니까?】

【아직요. 요즘 아이템 제작자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상태라…….】

【그렇습니까.】

물론 이 일행에 아오리가 꼭 포함된 건 그녀가 대족장의 총애받는 부하여서만은 아닐 테다. 아니, 어쩌면 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고.

암, 악마기사가 대삼림에 아직도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극비 중 극비이나, 아오리와 아카타가 그 사실을 공유하고 있는 건 결국 대족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서가 아니겠나?

대족장이 굳이 아오리를 보낸 건, 정보 누설 걱정 없도록 아카타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란 뜻이었겠지만.

【하지만 이 물건을 배달받을 분이 아이템 제작사세요. 잘만 하면 환상 마법 전문 마법사를 소개받을 수 있겠죠.】

【그건 다행인 일이군요. 알아보기 힘들었을 텐데도 이렇게까지 힘내 줘서 정말 고맙고 미안합니다. 제가 직접 움직였다간 마탑주의 눈에 띌 확률이 높은 터라…….】

【괜찮아요. 저도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걸요.】

아카타는 마탑주의 눈에 띄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으나, 최소한 아오리가 직접 움직이면 안 될 상황이란 건 알아들었다. 그거면 됐다. 소녀가 입은 은혜를 고려하면 이 정도 발품은 일도 아니었다.

【다만 가장 큰 문제가 있어요. 아까 말했다시피 요즘 마법 도구가 굉장히 비싸진 상태라…….】

【돈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또한 아카타가 걱정하던 금액 문제 역시 아오리는 해결법을 들고 왔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아카타가 방법을 찾았노라 편지를 부치고 대족장이 그녀라는 인편으로 그 방법을 시도해 달라 부탁하는 그사이에 해결법이 생겼다.

【이쪽 돈으로… 3백만 갈까지 지원해 드릴 수 있는 상태니까요.】

【그, 그 정도나요?】

당연하지만 이 3백만 갈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검은천둥뱀의 지갑에서 나온 것들이다. 보다 정확히는 그가 추가로 쥐여 준 돈.

【좀 과하긴 하나, 부족을 떠나 외부에서 홀로 생존하고 있는 동족에게 이 정도 투자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는 아마 가발값으로 준 듯하지만… 정작 그 가발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구매한 것이니.

대족장과 아오리는 오랜 고민 끝에 이 3백만 갈의 용처를 결정했다. 기사에게 돌려주려 해 봐야 실패할 확률이 높으니 차라리 다른 물건 구하는 데에나 쓰기로 한 것이다.

【만약 돈이 부족하다면 그땐…….】

【부족하진 않을 것 같아요. 아마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혹시 모르니 상단에 말해 두겠습니다. 갚는 건 저희가 할 테니 부족한 만큼 빌려 쓰세요.】

【음, 네. 근데 남으면 그때는 어떻게 할까요?】

【남는다면 그땐 아카타가 가지세요. 애초에 지원금이란 명목으로 준 돈이니 돌려받을 순 없습니다.】

또한 그리 쓰일 것이기에, 그 돈은 고스란히 아카타에게 전달될 것이다. 외부에서 보기엔 지원금이란 이름으로, 실상은 필요한 도구를 구하기 위한 자금으로.

【더불어 지금 줄 50만 갈은 명목상이 아니라 정말로 아카타 당신에게 주는 것입니다. 마법 도구를 사는 데 쓸 필요는 없습니다. 부족하다면 그건 상단에서 빌리고, 이건 오롯이 아카타 당신을 위해 쓰십시오.】

【그래도 돼요?】

【진즉 챙겨 줬어야 할 것들입니다. 사양치 마세요.】

물론 지원금이란 명목을 우려먹으면서 진짜 지원금을 주지 않는 패악을 저지르는 것은 대족장의 미덕이 아니었으므로, 아오리는 대족장이 사비로 마련한 돈을 새로 건네주었다.

아카타를 떠나보낸 후 마음 한구석에 남았던 응어리가 드디어 풀리는 기분이었다.

* * *

오늘 베뮈르헨의 성주가 급사했다. 원인은 아마 과로사일 것이다.

다행히 성주의 급사는 큰 혼란을 불러오지 않았다. 다른 도시의 지원이 속속들이 도착하며─동북부의 뮌문트에서 보낸 지원군마저 이곳에 도달했을 정도다─형편이 많이 나아진 상태고, 도시 복구도 막 궤도에 오른 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뭘 그리 슬퍼해? 그래 봤자 귀족들만 우선하던 놈이 죽은 건데…….”

“시끄러워. 그래도 성주님이 아니셨다면 우리는 진즉 다 죽었어.”

“씨이…….”

하지만 그가 진정 파급력 없이 갔느냐면 그건 아니었다. 병사들에게 식량을 우선해서 준다며 화를 내던 주민들도, 성주가 신전에 반하는 말을 하여 기분 상해 있던 사제들조차도 그를 애도하고 묵념했다.

나름 평생을 성주로서 봉사하고 헌신한 사람이라 그런가. 죽고 나니 ‘그분은 그래도 괜찮은 분이었는데.’라는 의견이 사방팔방 퍼진 것이다.

어쩌면 죽음이 주는 충격이 켜켜이 쌓여 온 분노를 희석시킨 것일지도 몰랐다. 몇 주 전처럼 식량이 부족하던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안정된 상태니까.

“머저리들.”

그래 봤자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감상은 지워지지 않지만서도.

마이스터는 문득 이 도시에 제가 남아 있을 필요가 있나 싶어졌다.

할아버지처럼 되고 싶어서, 그리고 덧없이 죽어 간 동지들이 세상에 또 한 번 나오는 꼴을 보기 싫어서. 그런 의도에서 약자들을 위한 연구를 하는 그였지만, 그런 그조차 이 사건에서 실망감을 감출 순 없던 탓이다.

“환멸 나네, 진짜…….”

물론 쓰레기 같은 인간 몇 때문에 모든 인간들의 편의를 향상시키겠다는 목표를 버리진 않을 것이다. 그건 인간을 향한 경멸보다 더 높고 중요한 이상에서 우러나온 목적이니까.

하나 최소한, 그를 실망시킨 사람들을 위해서 계속 봉사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모두를 위한다는 마음이 그중 소수마저 지켜야 한다는 것과 동치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

마이스터는 거기까지 사고했다가, 그의 할아버지를 떠올리곤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하여간 빌어먹을 영감탱이였다.

* * *

산군은 자신이 먹을 거라며 도시락 삥 뜯어 오는 것에 맛들렸는지, 거의 매일같이 먹을 걸 들고 내게 찾아왔다.

덕분에 맛없는 걸로 배 채우거나 귀찮다고 굶는 일은 없게 됐는데… 이거 너무 편안하게 지내는 거 아닌가? 너무 잘 먹고 잘 쉬어서 살이 붙어 버린 기분인데 이게 맞나?

나는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마음과 ‘이걸 안 걸리네’라는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그게 딱 14일이 되던 날, 나는 형용할 수 없는 마음으로 인벤토리를 닫았다.

인벤토리 안은 산군이 만들어 준 파밍지에서 차곡차곡 수확한 식량과 산군의 조언을 받으며 캐낸 몇 종류의 약초들로 가득하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됐다.

“검은천둥뱀이시여.”

와중에 은신처를 나가려다 말고 산군 그리고 대족장과 마주쳤다. 또 나를 막으려고 찾아왔나 싶다.

“가시기 전에 이것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하나 이번엔 울고불고 매달려도 안 넘어가 줄 것이다. 나는 그 뚝심을 전하고자 입을 열려 했고, 그것을 비웃듯 대족장이 한발 빠르게 입을 열었다.

나를 붙잡으려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잠시. 내밀어진 소년의 손바닥 위에는 동그란 은테 안경과 장신구로 보이는 보석이 각각 하나씩 올라가 있는 상태다.

“신체에 닿아 있기만 하면 눈동자 위로 환상을 덧씌워, 홍채의 색을 달리 보이도록 하는 안경입니다. 참고로 어떤 색을 고를지 고민하다가 바깥에서 흔히 보이는 눈이 녹색이란 이야기를 듣고 그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성의를 봐 넘어가 주시지요.”

“…뭔.”

잠깐, 뭐라고? 뭐에 환상을 덧씌운다고?

“또한 이것은 귀에 거는 장신구인데, 착용하고 있으면 입가의 상처가 가려진다 합니다. 여정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거기에 장신구는 또 뭐야. 입가의 상처가 가려져? 그래서 여정에 도움이 돼?

…눈색을 바꿔 주고 상처를 가려 주면야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만, 대체 어떻게 알고?

“…이걸 왜 내게 주지?”

혹시 모를 추적을 위해 외형을 바꾸고자 노력한 건 사실이다. 하나 아무리 찾아도 그 방법이 보이지 않아 포기하던 차인데… 대족장은 그걸 어떻게 알고 딱 구해 왔을까.

그리고 이런 걸 내가 그냥 받아도 되는가.

나는 안경과 장신구를 건네받는 대신, 메는 목을 두고 목소리를 억눌렀다. 꽉 조여진 목소리가 으르렁거리듯 튀어나왔다.

“질문의 본의를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의미로 물으신 것인지요?”

“이렇게까지 해 주는 이유가 뭐냐는 거다.”

“아하.”

머무는 것까진 그래도, 그래도그래도 납득할 수 있었다. 이 정도는 어떻게 변명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고 그쪽에서 나가는 돈도 0에 수렴─대리 구매를 부탁한 건 내 쪽에서 값을 치렀으니 포함하지 않는다─하니까.

하지만 이건… 이것은…….

“항상 생각하는 바지만, 은인분께선 호의가 익숙하지 않으신가 합니다. 매번 비슷한 질문을 하시는군요.”

글쎄. 내가 호의에 낯선 사람이라기보다는 낯설게 돼 버린 사람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

거기에 대가 없는 호의도 정도껏이지, 이런 비싼 물건은 누구나 부담스럽게 여길 거다. 그래. 마법 도구는 그냥 받기엔 너무 비쌌다. 정확한 시세를 모를지언정 이걸 날로 받을 수는 없을 정도로.

“그러나 은인이시여, 이건 제가, 이 숲이 드리는 게 아닙니다. 아카타가 선물한 것이지.”

하나 다음으로 꺼내진 이름 앞에 나는 거절의 한마디를 꺼낼 수 없게 되었다. 손쓸 새도 없이 불타 사라진 실팔찌가, 그리고 내 손으로 남에게 넘겨 버린 실팔찌가 떠올랐다.

“아카타를 기억하십니까?”

내가 그 아이를 잊었을 리 없잖아.

“기억하신다니, 그 아이가 이 사실을 듣는다면 기뻐할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 애가 왜? 그 애가 무슨 돈이 있고 애정이 있어서 내게…….

“그 아이가 왜…….”

“아오리가 전해 주길, 아카타는 바깥세상에 훌륭히 적응했다는군요. 자신이 입은 은혜를 슬슬 갚고 싶어할 만큼 말입니다.”

“이건 과하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은공의 앞날에 필시 도움이 될 테죠. 아카타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해할 겁니다.”

“이건 받을 수─”

“거절하지 마십시오. 그 아이가 바라는 건 거절이 아닐 겁니다.”

나는 무언가 말을 하고자 했다.

그러나 내 입은 억지로 손바닥 위에 올려진 물건들 앞에서 막혔다. 올라온 아이의 손이 조심스럽게 안대를 벗겨 냈다.

“녹색 눈도 어울립니다.”

망할 꼬맹이들. 차마 담지 못할 말이 목구멍에 박혀 내 속을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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