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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260화 (260/389)

260화 만약 (8)

“눈 색깔을 바꾸는 도구도 있을까요?”

도시 휴델렌의 어느 구석. 이곳의 언어에 제법 능통해진 소녀, 아카타는 어제 도착한 편지의 내용을 곱씹으며 제 선임에게 물었다. 그런 소녀의 팔에는 고급 실들로 짜 만든 팔찌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없진 않지?”

“진짜요?”

“그럼.”

그런데 그건 왜 물어? 선임이 덧붙인 말에 아카타는 어깨를 으쓱였다. 세 쌍의 팔이 한꺼번에 들썩였다.

“얼마 전에, 어떤 손님이 눈 색 때문에 불길하다 소리 듣는 것도 질렸다며 어떻게든 해야겠다고 하는 걸 들었거든요.”

“눈 색?”

“파란 눈인데, 얼룩진 것처럼 갈색이 묻어난 눈이었어요.”

“아아. 가끔 그런 사람들 있지. 엄청 보기 드문데, 어떻게 그런 손님도 봤나 보네.”

사실 부족에 남아 있을 때 본 것이고, 그녀의 부족에선 그런 눈이 그렇게까지 희귀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카타는 그 사실을 쏙 뺀 채로 빙긋 웃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도 눈 색을 바꿀 수 있나요?”

“뭐어. 불가능한 건 아니야.”

“말투가 오묘하신 걸 보니 비싼가 보네요.”

“아무래도 그렇지.”

“머리카락 색 바꾸는 것보다 더 비싸요?”

“응. 눈색을 바꾸는 건 마법으로밖에 안 되거든.”

“왜요?”

“그야… 눈에다 염료를 부을 수는 없잖아?”

“아…….”

아카타는 단번에 이해했다. 하긴, 머리 염색에만 써도 머리 빠짐이나 두피 발진 등을 각오해야 하는 게 현시대의 염료다. 한데 그런 독한 염색약을 눈에다 부었다가는 실명밖에 기다리는 미래가 없을 것이다.

“음. 그분 차림새가 그렇게 돈이 많아 보이는 쪽은 아니었는데…….”

“그럼 어려울걸?”

“그렇게나 비싸요?”

“으음. 음. 눈이라는 국소적 부위에 환각 마법을 거는 것이 해당 제품의 원리니까 마법 도구치고 엄청나게 비싸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백만 갈은 넘을걸. 시국이 시국이니까.”

“우와…….”

백만 갈. 지금의 소녀가 닿기엔 멀디먼 금액을 두고 아카타는 여덟 개의 눈을 크게 떴다. 마법 제품이니 가격대가 어느 정도 있겠거니 싶었지만, 설마 생각한 것과 자릿수가 다를 줄은 몰랐다.

“왜. 너도 사고 싶었어?”

“제가 뭣하러 눈 색 바꾸는 걸 사요. 굳이 산다면… 이마의 눈이 없는 것처럼 만들어 주는 아이템을 사겠죠.”

“어…….”

악마라는 적대적 존재 앞에서 인종 간 차별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지만, 그것도 익숙한 외형 앞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비늘을 가진 샤기족보다 더 보기 힘든 외형의 소녀는 휴델렌에 온 후 겪을 수 있는 모든 차별을 겪어 보았다. 그 차별들이 이마의 눈 여섯 개만 가려도 썩 줄어든다는 깨달음 역시 얻은 지 오래였다.

“말하고 나니까 더 탐나네요. 눈이란 부위에도 환각을 걸 수 있다면 이마에도 걸 수 있는 거겠죠? 그럼 천으로 이마를 덮을 필요도 없을 테고, 시야도 다시 트일 테고.”

다만 그렇기에, 소녀는 자신의 말이 이어질수록 해당 아이템에 대한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다.

눈 색을 환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건, 흉터를 가리는 데도 쓸 수 있단 소리가 된다. 어쩌면 얼굴 외형을 다 바꾸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고.

“…하지만 그게 가능한 건 더 비싸겠죠? 환각 걸어야 할 범위가 더 넓으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그런 걸 사려면 얼마를 쏟아부어야 할까. 그 이전에 그만한 금액을 마련하려면 어떤 것을 팔고 어떤 것을 해야 할까.

소녀는 본인의 손 두 개를 앞으로 뻗었다. 휴델렌의 유행을 선도한, 그러나 차별로 인해 기회를 박탈당한 것들이 선연히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나는 네가 굳이 그런 아이템을 살 필욘 없다고 생각해!”

그렇게 그녀가 가만히 있는 사이, 우물쭈물하던 소녀의 선임이 버럭 외쳤다. 그 잠깐 새에 아카타를 위로할 말을 짜낸 것인지 그의 얼굴은 땀으로 가득하다.

“네가 네 눈을 숨긴다면… 당장이야 받아들여지겠지만 후일 여덟 개의 눈을 가진 존재들이 부정당할지도 모르잖아. 여덟 개의 눈은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네가 숨겨야 할 게 아니야.”

“…첼시 씨.”

“물론 지금 네가 겪는 일이 많이 힘들어서, 그래서 숨겨야만 하겠다고 생각하면 그땐 막지 않겠지만…….”

“그렇게까지 절실하게 사고 싶던 건 아니지만, 뭔가 감동이에요.”

별생각 없이 말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진지한 답이 돌아올 줄 몰랐다. 아카타가 그리 말하자 첼시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식겁했잖아, 꼬맹아…….”

“가끔 생각하지만, 첼시 씨는 너무 섬세한 것 같아요.”

“뭐래… 내가 섬세한 게 아니라 네가 강한 거겠지.”

“…그런가요?”

“그래. 보통은 어른도 잘 못 이겨 내는 게 이런 차별이라고.”

하나 이런 의견은 또 처음이다. 이 정도로 좌절하기엔 그 전에 겪은 일이 많고, 힘겨울 때 힘이 되어 준 보물 꾸러미도 있다 보니 ‘항상 버틸 만하지’ 하고 넘겨 왔던 까닭이다. 한데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특별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아카타는 보물 꾸러미 속 실로 만든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그녀가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 괜히 기분 좋았다. 그 사람 볼 낯이 생겼다.

“음. 그래도 팔찌 파는 건 정체를 숨긴 채로 팔래요. 차별이고 자시고 이번 유행을 놓칠 순 없어요.”

“그건 네 마음대로 해라…….”

별개로 돈 벌 기회를 놓칠 순 없다. 그녀는 지금 막 완성된 팔찌를 치켜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것과 비슷한, 그러나 더 화려하고 세련된 무늬의 팔찌가 소녀의 손에서 흔들렸다.

“우후후후. 원조의 등장이다.”

“참 나. 그렇게 웃어도 사악하게 보이진 않는다, 꼬맹아…….”

“그치마안. 눈깔 많은 놈이 파는 건 안 산다던 놈들이, 정체 하나 숨겼다고 열광하는 꼴은 제법 웃기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몇 주 열심히 일하면 대족장님께도 당당해질 수 있을 테고.”

“아, 맞아. 대삼림에서 편지가 왔댔지.”

아카타와 고향 간의 사이가 썩 좋지 않음을 알고 있던 선임은 콧잔등을 살살 긁었다.

“무슨 내용인지 물어도 돼?”

“그럼요. 별거 아니에요. 잘 지내냐, 여긴 여전하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뭐 좀 부탁해도 되냐. 대충 그런 내용이 다였어요.”

“…그걸 들어줬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대족장님 부탁이었으니까요. 고향 사람들과 친한 건 아니지만, 대족장님은 저에게 잘 대해 주신 분이라. 그리고 부탁 내용이 워낙… 좀 불쌍해서.”

“뭐길래?”

“탈모를 가릴 가발을 구하고 싶다고…….”

“아…….”

“인종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머리가 엄청 희귀한 편이거든요. 그런 와중에 대머리가 된 분이 나와서야… 가엽지 않아요?”

“그치… 가엽지… 이건 들어줄 만하지…….”

선임이 본인의 넓직한 이마를 저도 모르는 게 만지는 사이, 아카타는 히죽 웃었다.

대외적인 내용이 그러할 뿐, 정말 중요한 건 뒷부분이지만 그거까지 말해 봐야 뭐 하겠는가? 아카타는 진실로 거짓을 가리며 히죽 웃었다.

* * *

위장 스킬을 써야지만 염색약이 먹히는 건가.

나는 반질반질하게 닦아 낸 건틀릿을 두고 내 얼굴을 요리조리 비춰 보았다. 거울 수준의 반사력은 없을지언정, 희뿌옇게 뭉개진 얼굴 속에서 눈썹 색이 진한지 옅은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눈썹이 없어.”

사실 자세히 따지고 보면 짙다 옅다의 구분도 아니었다. 눈썹이 보이면 원래 색이고 안 보이면 염색됐다 여기는 것에 더 가깝지.

실제로 건틀릿에 비친 상에서 눈썹이 없는 듯하면, 물에 비쳤을 땐 갈색 눈썹이 보인다는 점에서 거의 확실한 구분법이기도 했다. 건틀릿에선 왜 안 보이느냐 물으면, 색이 워낙 옅다 보니 상이 뭉개지는 과정에서 피부랑 섞여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답밖에 못 주겠지만.

“하.”

그래도 이렇게까지 눈썹이 흐려지면 인상이 확 바뀌지 않으려나. 안대랑 입가의 상처는 여전히 문제다마는, 그래도 사람 눈썹이 은근 인상을 좌지우지하잖아.

뭐, 그 모든 문제를 제치고 가장 아쉬운 점을 고르라면 그건 위장 스킬을 끈 순간에는 염료가 안 먹힌다는 것이겠지만.

“마법 저항력이 문제인가…….”

대체 왜 그런 걸까 좀 고민을 해 보니 그나마 답이라 할 만한 건 찾았다. 스킬 비활성화 상태와 활성화 상태의 차이점이라고 하면 덕지덕지 붙는 디버프 정도인데, 거기서 원인이라 할 만한 게 딱 이것뿐인 까닭이다.

위장 스킬의 초기와 중기의 염료 지속력이 차이 나는 것도 제법 증거가 되어 주었다. 위장 스킬 특성상, 스킬을 오래 지속할수록 마법 저항력이 수직 하락 하는데 그에 맞춰 염료 지속력도 증가했다. 역시 원인은 이놈뿐이다.

“전투할 땐 체감도 안 된 주제에…….”

그렇지만 다른 때는 다 도움 안 됐으면서 왜 이럴 때만 방해야? 나는 툴툴거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도시를 돌아다니거나 사람들과 대화하는 와중에 눈썹 색이 풀리면 굉장히 문제가 될 것이므로 어쩔 수 없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유지 시간만큼은 반드시 알아 놔야 한다.

들썩.

그때 산군이 만들어 준 파밍지 너머 수풀이 흔들렸다. 버섯을 캐기 위해 굽어 있던 내 다리도 도로 서, 검을 뽑았다.

사르르륵.

익숙해지고자 계속 착용하고 있던 가발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애매한 길이를 고려해 느슨하게 묶어 뒀더니만 머리 끈이 또 빠진 모양이었다.

팍!

그사이, 들썩이던 수풀이 기어이 반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로 표범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이 숲의 거주민치고 덩치가 조그만 게 새끼라도 되는가 했다.

검을 정수로 들었던 손이 움찔거리다, 그것을 반대로 돌렸다. 이제 내 건틀릿에 잡힌 건 롱소드의 손잡이 부분이 아니라 칼날 부분이다.

퍼억!

나는 표범의 돌진을 피하며 칼자루의 넙데데한 면으로 그 살갗을 낼름 후려쳤다. 다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표범은 곡선형이었고, 그로 인해 가드의 양 끝부분이 그것의 거죽을 할퀴었다. 촤악! 털 사이로 선명한 흡집이 나며 주위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오…….”

나는 피가 묻은 가드 부분을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게임 할 때, 곡갱이질 하듯 가드 끝부분을 상대의 목덜미에 박아 죽이는 모션을 보긴 했었지만 달리 쓸 일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새삼 생각하지만 내가 야매 검사라는 게 확 체감이 된다. 전투 시스템 보정이 아니었다면 아마 진즉에 죽지 않았을까.

캬악!

…그런데 시스템이 진짜 악마기사 아니면 악마일 수 있는 상황이 지금 아닌가? 그럼 이 보정도 걔네가 해 주는 건가?

나는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두고 기기묘묘한 감상만을 얻은 채, 덤벼드는 짐승의 뱃가죽을 가볍게 찼다. 동물 학대고 뭐고 검으로 베 죽일 순 없으니─주변에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죽였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 뭐 있나─낸 타협안이었다.

하니 녀석도 제발 이길 수 없는 사냥감임을 어서 인정하고 돌아가 주면 좋겠는데…….

크르르르…….

내 간절한 소망이 통한 걸까. 표범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내 살덩어리는 여전히 탐이 나는 듯, 주변을 빙빙 돌기는 했으나 최소한 공격 시도만은 그만둔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경우 녀석이 기회를 살살 보다 다시 습격해 올 확률이 있다. 나는 보다 확실한 경고를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주르르륵. 콧구멍 사이로 바로 핏물이 내려오고, 내 손끝이 구부러졌다.

촤악! 내 앞부터 표범의 발치까지, 땅에 네 갈래 발톱 자국이 났다. 기겁한 표범이 헐레벌떡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행은 다행인데 내 코는 좀 큰일이 나 버렸다.

“킁, 아오 씨.”

와, 진짜. 마력 역류 개에바야. 이거 한 번 썼다고 바로 코피 터지는 게 말이 되냐.

나는 진심을 담아 궁시렁거리며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버섯들이 다닥 붙어 자라던 나무가 이젠 내 엉덩이까지 감당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내가 앉은 자리는 버섯을 미리 캐낸 곳이라 깔려 뭉개진 불쌍한 것들은 없다.

[와아악! 와아악!]

그러나 코에 이어 내 고막에는 문제가 생겼다.

“…또 왔나.”

[아니, 왜 또 코피 나셨답니까. 지가 먹을 거 챙겨 왔는데 이거라도 좀 드실랍니까.]

하여간 시끄러운 뱀이었다. 내 입술이 슬쩍 올라갔다.

[어라, 어라라? 도시락 어디 가뿟데.]

더불어 산군이 추가로 추태를 보였을 땐, 올라갔던 입술이 끝내 벌어지고 말았다. 푸흐.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 한 번에 산군의 고개가 휙 돌아왔다.

[우, 웃으셨다?]

내 입술이 도로 닫히고 휘어졌던 눈매가 언제 그랬냐는 양 일직선을 그렸다.

[아니, 지금 웃으셨잖십니까.]

“그런 적 없다.”

[아니이…….]

“없다고.”

흔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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