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만약 (5)
「위장│활성화 시 육체의 구성을 바꾸어 평범한 인간을 가장한다.
효과: 스킬 비활성화 전까지 마기탐지 및 추적 무효화.
전체 HP 50%(최대 90%) 감소.
전체 MP 70% 감소.
HP 회복력 50%(최대 90%) 둔화.
물리 방어력 20%(최대 50%) 감소.
마법 저항력 40%(최대 80%) 감소.
받는 물리 피해량 30%(최대 100%) 증가.
받는 마법 피해량 90%(최대 200%) 증가.
받는 신성 피해량 500%(최대 1000%) 증가.
초당 HP 1(최대 999) 감소.
상태이상 ‘마력순환장애’ 부여.
※스킬 사용 시간에 비례하여 마기탐지 및 추적 무효화를 제외한 모든 효과가 서서히 증가합니다.
※스킬 해제 시 마기탐지 및 추적 무효화를 제외한 모든 효과는 일정 시간에 걸쳐 서서히 해제됩니다.
해제에 걸리는 시간은 스킬 사용 시간에 비례합니다.」
「마력순환장애│체내의 마력이 엉키며 제대로 조절할 수 없게 됩니다.
마력 회복 속도가 30% 둔화되고 스킬: 마력 컨트롤이 무효화됩니다.
마력 사용 시 일정 확률로 마력 역류가 일어나, 사용자가 대미지를 입습니다.」
산군이 내 식량 파밍 장소를 만들러 간 사이, 별안간 뿅 하고 뜬 스킬이다. 왜, 바다에서 해룡 잡을 때 생명력 전환이 갑자기 생긴 것처럼 말이다.
“죄송합니다. 아직 미숙해서.”
이걸 왜 이제 와서 주는진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힘들어 보이니 병 주고 약 주고 식의 적선이라도 해 주는 걸까? 근데 이미 다 들킨 거, 대놓고 나와서 주면 안 되는 걸까? 편의는 제공하되 만날 생각은 없다 이건가?
…이걸 주면 나는 당신들의 뒤를 쫓기 더 편해지는데?
“이젠 실수하지 않을 겁니다.”
도와준 덕에 활로가 생긴 건 맞다만, 그놈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당최 가늠도 안 간다. 그들은 정말 어떤 기준으로 움직이는 걸까.
나는 그런 생각을 곱씹으며 내 신체에 집중했다. 아무렴 스킬 쓰다가 또 기절할 순 없었다.
세밀한 조절 끝에 마기가 마력으로 변질되고, 조금 심한 격통이 온몸을 내달렸다. 몸이 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습니까? 마기가 가려졌습니까?”
하나 고통 대비 효과만큼은 선명했다. 육안으로 확인하고자 공개해 둔 오른손이 본래의 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더는 검은색이 아니다.
“제가 성공한 게 맞습니까?”
물론 이 위장을 대가로 얻은 디버프들은 뼈가 다 아프다. 피통과 마나통 감소는 둘째 치더라도 받는 피해량이 저렇게 증가해서야.
심지어 받는 신성 피해량은 처맞는 순간 죽을 걸 각오해야 하는 수준이다. 초당 도트 대미지는 뭐 말할 것도 없고.
기습이라도 당했다간 얄짤 없이 죽을 판이다.
“……?”
거기에 지금 보니 마력순환장애도 만만치 않은 페널티였다.
본래 소방차 호스로 물 뿌리던 느낌의 마력 사용 감각이, 이젠 입구가 짜그라진 빨대로 쀽 쏘아 내는 것만 못한 수준이 되었다. 최소한 ‘위장’을 활성화한 상태로 싸울 생각은 접어야 할 듯하다.
“…혹시 마기가 아직 느껴진다거나─”
뭐, 위장 스킬에 대한 감상 평은 대충 이러하고.
그보다 육귀, 왜 이렇게 답이 없어. 나는 혹여 문제라도 있는 건가 근심하며 육귀를 빤히 보았다.
[정정할게. 넌 정말 이기적인 놈이야.]
곧 진의를 알 수 없는 비난이 날아왔다.
“예?”
[그리도 나도… 나도 진짜…….]
너무 뜬금없는 타박이라 별 타격도 안 온다. 와중에 육귀가 제 머리를 지느러미로 냅다 가려서 더 그렇다. 그냥 당혹스럽다.
“…왜 그러십니까.”
나는 당황을 금치 못한 채 육귀에게 몇 번 더 말을 걸어 보았다. 당연히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왜…….”
진짜 갑자기 왜 이러지? 혹시 내가 기절한 것 때문에 이러나?
나는 육귀의 의문스러운 행보에 온갖 추측을 내놓으며 나름 반성했다. 그게 답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도 없는 주제에.
[지 왔습… 두 분 싸우셨십니까?]
“…아니.”
아마… 안 싸웠을걸? 아마도……?
나는 때마침 도착한 산군을 두고 뒷목을 멋쩍게 쓰다듬었다. 나도 상황을 도무지 모르겠어. 네가 어떻게 좀 해 봐라. 내 눈빛은 산군에게 헬프를 마구 치고 있다.
[조상님?]
[말 걸지 마. 자괴감 들고 있으니까.]
[옙.]
그러나 산군의 시도도 먹히지 않았다. 나와 산군의 시선이 다시 맞닿았다. 그의 입에 물려 있는 각종 약초가 어색한 공기 중에 약간의 웃음을 더했다.
[왜 그러신답니까.]
“…나도 모른다.”
알면 진즉 달랬겠지. 나와 산군은 육귀의 눈치를 보며 속닥거렸다.
[오잉. 글고 보니까는, 기사님. 마기가 싹 사라지셨네요.]
그러다, 내 변화를 알아챈 산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육귀가 아무 말도 안 하기에 실패했나 싶었더니만, 그건 아니었나 보다.
나는 묘한 기분으로 내 오른손을 만지작거렸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닌가? 혹시 성공하신 거……?]
“그래.”
산군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인간들에게 걸릴 확률은 없다고 쳐도 되는 거겠지.
나는 산군의 대답에 속으로 만족했다. 비록 페널티가 덕지덕지 붙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도시를 돌아다닐 방안을 구했다. 가장 큰 장애물 클리어다.
[하믄…….]
“……?”
한데 내가 그러고 있자니, 산군이 침울한 목소리로 고개를 떨구었다. 툭. 입에 물려 있던 더덕과 삼이 바닥으로 추락해 흩어졌다.
[이제 가시는 깁니까.]
뭔가 했더니 내가 떠날 걸 벌써 상상하는 중이었나. 마기 해결법을 찾을 동안만 머물기로 한 것이니 영 틀린 말은 아닌데, 저렇게 축 처지는 걸 보니 뭔가 좀 웃기다.
[지가 열심히 작물 키워 놨는데… 진짜 열심히 키웠는데…….]
나는 헛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걸 겨우 참으며 꿋꿋한 표정을 지켰다. 컨셉을 많이 내려 둔 상태라곤 하나 특유의 싸가지 없는 무표정은 지켜져야만 했다.
“좀 더 남아 있을 거다.”
[핫, 진짜요.]
“그래.”
참고로 이건 산군을 달래기 위해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실제로 이곳에 며칠 더 있어야 했다.
“그리고 대족장에게 이것을 전해라. 부탁할 것이 있다고.”
그도 그럴 게, 내 컨셉은 마기만 숨긴다고 다가 아니고, 위장 스킬에 대한 자세한 고구도 필요한걸?
* * *
“떠난다고요?”
“그래.”
데스브링거는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쏟아진 말에 심히 당황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베르세르크가, 다른 어떤 때도 아닌 지금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까닭이다.
“더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정말 그랬나? 그는 정말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있었나?
데스브링거는 그 사태 이후로 매양 가라앉고 있는 투사를 보았다. 이젠 그녀도 한때의 악마기사처럼 심해에 갇힌 듯한 묵직한 공기만을 풀어 흘리고 있다.
“…어디로 가실 건데요.”
“북쪽.”
“북쪽 어디?”
“내 고향으로 돌아갈 거다”
“아…….”
인퀴지터가 신탁을 받았는데, 거기서 북쪽으로 가란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니 같이 가자.
악마기사를 찾아 붙잡으려면─사로잡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잠깐만이라도 대화하려면 붙들 필요가 있다는 거지─강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니 그때까지만이라도 같이 다니면 안 되겠느냐.
그런 말들은 고향이란 단어 앞에 전부 막혀 버렸다. 자신 같은 사람이라면 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향에 제법 큰 의미를 부여하고 다님을 아는 탓이다.
입술을 달싹거리던 데스브링거의 귀가 아래로 축 처졌다.
“그래요,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요.”
해석하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지만, 데스브링거가 보기에 신탁의 후반부는 악마기사를 칭하는 게 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기억을 잃고 헤매는 사람도 따지고 보면 길 잃은 자 아니겠는가?
죽이거나, 구하거나, 돌려보내거나. 세 가지로 해석되는 부분은 뭐가 정답일지 잘 모르겠지만.
“너는 떠나지 않는가?”
“글쎄요. 처음엔 그럴까도 했는데…….”
그래도 최소한 이것 하나는 알았다. 신전에선 높은 확률로 첫 번째를 고를 것이다.
“나리를 위해서라도 남아 있는 게 낫겠다 싶더라고요.”
그러나 그걸 막을 능력이 그에게 있던가? 인퀴지터가 첫 번째를 고르거든 그녀로부터 악마기사를 구할 능력은 있고?
“이곳에 남아 있는 게 그나마 나리와 마주칠 확률이 높을 것 같기도 하고.”
없다. 없지만, 일행 중 누구보다 빠르게 말을 전할 자신은 있다. 그래서 데스브링거는 남기로 했다.
“…그보다 언제 가실 거예요?”
“오늘.”
“바로요?”
“그래.”
“…알았어요.”
그렇지만 이게 정말 옳은 선택일까?
그는 작별을 고하는 투사를 두고 어색하게 입술을 끌어 올렸다.
“잘 가요.”
또, 우리가 다시 볼 수는 있을까?
묻지 못한 한마디가 그의 목구멍을 조였다.
* * *
육귀가 이상 반응을 보인 날로부터 대략 열흘. 나는 그 기간 전부를 새로 얻은 ‘위장’ 스킬 파악에 투자했다.
스킬 사용 시간에 비례하여 효과(디버프)가 증가한다는 구절에 대한 조사.
스킬 해제 시 디버프가 언제까지 남는지에 대한 고찰.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도트 대미지를 고려하여 내가 견딜 수 있는 최대 유지 시간 확인.
상태이상: 마력순환장애로 인해 떨어지는 전투력 및 마력 역류로 인한 반동량 연구 등등.
전부 바깥을 보다 편히 다니기 위한 사전 준비였다.
주르르륵.
“…아.”
다만 그 결과 나는 우선되는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위장을 활성화한 상태로 마력 써 가며 싸우면 좆된다.
“코피는 기본인가…….”
물론 마력 역류가 일 경우 대미지를 입을 뿐이지 스킬이 취소가 되는 건 아니므로─고통에 못 이겨 스킬을 관두는 일은 생길 수 있겠다만─싸움이 아예 불가능하진 않다.
하나 싸움이 길어지면 그땐 많이 곤란해질 터. 이건 정 급한 게 아닌 이상 처음부터 싸움을 피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게 맞다.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몸 주인이 왜 인적 없는 곳에서 솔플하는 걸 고집했는지 알겠구만…….”
나는 앓는 소리를 차마 감추지 못한 채, 근처 나무에 털썩 걸터앉았다. 농담 아니고 정말로 삭신이 다 쑤셨다. 현실의 빈약한 몸뚱이로 돌아간 기분이다.
“죽겠다, 진짜…….”
와중에 마력 역류로 터진 코피는 아직도 멎을 기색이 없다. 나는 손수건으로 코를 막은 채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사르르륵. 멀리서 불어온 바람이 숲 특유의 가지런한 소리와 함께 내 옷자락을 흔들었다. 몸을 서늘하게 만드는 바람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사례 수집은 다 됐으려나.”
손수건으로 코를 막은 상태라 그런가. 무심코 지껄인 말은 코맹맹이 소리로 들렸다.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과 별개로 컨셉과 너무 안 어울려서 좀 웃겼다.
만약 이걸 데스브링거나 인퀴지터가 들었다면 본인들의 귀를 의심하며 입을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모았겠지. 나는 그 모습을 상상했다가 또 한 번 입매를 무너트렸다.
보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껏 웃어도 돼. 그 현실을 앞지른 건 내가 떠나간 자리를 두고 고개 내릴 청년 둘의 모습이다.
올라가던 입꼬리가 바로 바닥에 처박혔다.
꼬르르르.
“음…….”
…그래. 대삼림을 나가기 전까진 컨셉도 끝이 끝이 아니다. 그러니 표정을 다잡자. 나는 그런 결심과 함께 인벤토리로 손을 집어넣었다.
달그락.
도시락이라고 하면 거창한데 달리 붙일 말은 또 없는 점심밥이 쑥 끄집어내어졌다.
“후우.”
운 좋게도 코피 역시 그때쯤 멈췄다. 다른 말로는 손수건으로 코를 막은 채 밥을 입안으로 쑤셔 넣을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편안히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우와아아앗!!]
다만 묽은 죽이 숟가락에 의해 떠올려지는 순간, 숲에 쩌렁쩌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차마 나를 직접 부를 순 없고, 본인이 왔다는 건 알려야 할 때 산군이 하는 짓이었다. 깜짝 놀랐던 가슴이 원위치로 돌아갔다.
[와아아앗.]
나를 집으로 부르려는 건 좋은데, 계속 이러면 제사장들이 조사하러 오는 거 아니야?
나는 일말의 불안감을 두고 도시락 뚜껑을 닫았다. 거처로부터 멀리 나온 것도 아니겠다, 산군도 왔겠다 돌아가서 먹을까 하는 판단이었다.
[와악!]
무엇보다 빨리 타박하지 않으면 산군이 계속 저러고 있을 거다. 돌아가는 게 낫다.
나는 외로움을 느낄라치면 찾아오는 불청객을 두고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시끄럽다.”
[앗, 기사님.]
그래도 시끄럽긴 시끄러워. 나는 검집째로 산군의 몸뚱이를 찰싹 쳤다. 그제야 내 존재를 알아챈 산군이 머리를 슉 돌렸다. 다가온 머리가 내 바로 위에 멈춰 선 채 콧구멍을 킁킁거리고 혓바닥을 계속 낼름거렸다.
[아따. 마기가 사라지니까는 기사님 찾기 너무 어려워가. 별개로 피 냄새 봐라. 또 그거 하셨십니까. 거참, 몸 좀 챙겨 가믄서 하시지…….]
“알 바 아니다. 용건.”
그날부로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육귀는 오늘도 오지 않았고… 산군은 또 왜 왔을까. 또 놀러 왔나? 그런데 나흘 연속 출석이면 너무 과하지 않아?
[아참참. 대족장이 부탁하신 거 오늘 도착했다고 그래가, 바로 전달드리러 왔지요.]
그건 아닌 모양이다. 산군의 몸 일부가 스르륵 움직이더니 꼬리 끄트머리를 내게 내밀었다. 거기엔 보따리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상태다.
“…벌써 구할 줄은 몰랐는데.”
나는 그것을 조심히 받아들었다. 대삼림과 바깥을 오가는 시간이나 발품 팔아 물건을 구할 시간을 전부 고려해 최소 3주는 걸릴 줄 알았다. 하나 그보다 이르게 도착할 줄이야. 당황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근데 고게 뭡니까. 지는 글자를 몰라가…….]
“…네가 알 것 없다.”
그렇지만 이걸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막 부끄럽고 창피한 물건은 아니라지만, 컨셉이 입에 담을 것 같지도 않단 말이야.
[이이이잉.]
그렇게 애교 부려도 안 돼. 산군이면 산군답게 굴란 말이야.
나는 갈수록 떼쟁이가 되는 산군을 두고 보따리를 인벤토리에 쑤셔 넣었다. 자세한 건 쟤가 가고 나면 확인할 거다.
[치사하게.]
“용건이 더 없으면 가라.”
[말 안 해 주심 지가 못 알아낼 것 같십니까. 대족장에게 물어볼 깁니다.]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삐죽거리는 산군을 대강 밀어내었다. 단지 내 입으로 말하기 싫었을 뿐, 대족장에게 듣는 것까진 내 알 바 아니었다.
반면 산군은 왕 삐짐 표정을 지었다. 안면 근육도 없는 주제에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만큼은 발군이다.
“아.”
[핫. 말해 주시는 깁니까?]
“이번 주 안에 떠날 거다. 알아 둬라.”
[히이이이잉.]
아니, 알아볼 것도 다 알아봤겠다, 바깥에 나가 정체를 감출 수단도 다 준비했겠다. 이젠 진짜 가야지.
나는 다른 의미로 징징거리기 시작한 산군을 떼어 내고자 결국 힘을 써야 했다.
[흐에에엥.]
에잇, 좀 떨어져!